Rockstar RAW novel - Chapter 142
141화
전업 인터넷 방송인이 아닌 각계의 인물들을 모아 인터넷 스트리밍을 하게 하고, 평균 시청자 수를 따져 순위를 매기는 프로그램 스트리밍 온 텔레비전.
비교적 음지 문화였던 인터넷 방송이 양지 방송인들에게도 나쁘지 않은 수입원으로 보이게 만들고, 평소 그쪽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을 유입되게 만들었던 선구자 같은 예능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스트리밍 온 텔레비전의 애청자였고 말이다.
‘아직은 시작되지 않은 프로그램이지, 아마?’
내 기억상 지금 눈앞에 있는 박경진 PD는 꽤 오랜 시간 조연출과 공동 연출 생활을 하며 경력을 쌓다가,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기회를 잡아 메인 연출을 맡게 된다.
게임과 서브컬처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난 그는, 인터넷 방송 중계를 공중파 TV의 영역으로 가져오며 대박을 치게 된다.
‘그런데 지금은 한창 인피닛 에피소드 공동 연출로 있을 때 아니었나? 왜 우리 회사에?’
워낙 사회적인 영향력이 컸던 프로그램들을 줄줄이 맡았던 인물인지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스온텔이라는 방송을 너무 재밌게 봤기 때문에 세세한 내용들을 자연스럽게 외우기도 했고.
아무튼 지금 시기에 박경진 PD는 그의 명함에 나와 있듯,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의 공동 연출로 일을 하고 있을 텐데…….
‘어? 아닌가? 스온텔 제작이라도 들어가나? 아니, 아니. 근데 너무 이르잖아.’
혹시 스트리밍 온 텔레비전의 제작 관련으로 우리 회사를 방문했나 싶기도 하다.
아마 처음에는 파일럿으로 시작해서, 반응이 괜찮으니 정규 편성이 되었던가?
그런데 자세히 생각해 보면 그것도 아니다.
‘내년 초쯤이었던 것 같은데.’
첫 방송의 정확한 일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적어도 여름은 아니었던 것이 기억났다.
아마 당장은 인피닛 에피소드의 PD로 있을 것이다.
물론 혼자서 이렇게 짐작을 한다고 해도 의문이 풀리지는 않는다.
나는 명함을 갈무리해서 집어넣고, 박 PD에게 나를 붙잡은 이유를 물었다.
“그런데 저는 어쩐 일로…….”
“아! 용건을 먼저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사실 제가 파일럿 제작에 들어가는데, 삵분들을 섭외할 수 있을까 해서요. 아, 금방 유성 매니저님께는 전달을 드렸고요, 아티스트분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셔서 좋게 봐 주십사 인사나 드리려고 했습니다. 하하.”
‘오호.’
섭외라. 아주 좋은 소식이다.
파일럿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라 함은 분명 스온텔의 이야기일 것이다.
스온텔은 파일럿 방영 때부터 크게 인기몰이를 해서 시즌 1이 끝날 때까지 매 회차 화제를 몰고 다니던 프로그램.
그곳에서 출연 제의를 해 온 것은 우리에겐 매우 좋은 기회가 될 것이 분명했다.
‘아니, 잠깐.’
그런데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다.
‘왜 우리를? 다른 출연자들은?’
내 기억 속의 스온텔은 매번 다섯 명의 방송인들이 출연해 자리를 채웠고, 사람이 줄어드는 일은 없었다.
섭외 대상이 미리 정해져 있었고, 결원 없이 매번 섭외에 성공해 방송을 꾸려 나갔던 프로그램인데 갑자기 우리 삵이 들어갈 자리가 생기다니?
이상한 일이다.
‘애초에 왜 지금?’
또한 원래 예정되었던 제작 일정보다 이른 시기에 섭외를 받았다.
대충 내년 2월쯤 파일럿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던 기억이 있으니, 아마 6개월 정도 이른 시기이지 않을까?
이것 역시 이상한 일이다.
아니면 파일럿 제작 도중에 뭔가 알려지지 않은 일이라도 생겼던 것일까? 그래서 내 기억과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고?
물론 지금 당장 내가 알아챌 수 있는 사실은 없었다.
“멤버들이랑 상의하고 유성 형 통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마 다들 좋아할 것 같아요.”
나는 궁금증을 꾹 눌러 담고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우선 유성 형이 받았다는 제안을 제대로 검토한 후 결정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제안서 통해서 상세한 내용 잘 살펴 주시고 결정 내려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자세히 볼게요.”
“네네. 좋은 하루 보내시고요.”
“조심히 가세요.”
박 PD와 헤어지고, 나는 그가 오던 방향으로 걸어갔다.
금방 제안을 전달했다고 했으니, 아마 그쪽에 유성 형이 있겠지.
곧 나는 외부 방문객이 왔을 때 사용하는 소형 회의실에 도착했고, 유성 형이 서류 뭉치를 넘기며 읽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형.”
“응? 아, 루치. 일찍 왔네?”
그는 보던 서류를 내려 두고 내게 인사했다.
나는 의자 하나를 빼서 앉으며 물었다.
“네. 섭외 들어왔다던데…….”
“응. 지금 읽고 있는 거야. 복사해 줄까?”
“네, 부탁드려요.”
“잠시만.”
유성 형은 보던 서류를 복사기 안에 차례차례 집어넣었고, 금세 뚝딱 한 부를 복사해 가져다주었다.
“오오, 빨라, 빨라…….”
“기술의 발전이란 정말 대단한 거야. 응. 예전에는 스캐너를 한 땀 한 땀 눌러 찍었어야 했는데.”
신형 복사기의 위엄을 목도하고 그 전율을 한껏 느끼며, 나는 제안서를 살폈다.
‘기획 의도. 진행 방향. 전부 그때 그대로네.’
정확히는 미래에 방영될 스온텔의 포맷 그대로다.
다섯 명의 출연자가 초콜릿 TV라는 플랫폼을 통해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고, 그걸 촬영해 재밌게 편집해서 내보내는 프로그램.
다른 출연진의 방송에 개입해 방해할 수 있는 페널티 아이템이라거나, 시간제한 같은 예능적 장치가 있기는 하지만, 결국 방송인들이 인터넷 라이브 스트리밍을 하고 순위를 매긴다는 틀은 매우 간단하고 직관적이다.
다만 내 기억과 다른 점이 딱 하나 눈에 들어왔다.
“홍승연 섭외 취소가 나와 있네요?”
“응? 아, 응. 기획 단계에서부터 섭외 확정이 나 있었는데, 급하게 취소했더라고.”
“왜 취소했대요?”
‘아직 문제를 일으킨 사실이 드러나지도 않았을 타이밍인데.’
나는 뒤에 올 문장을 꾹 집어삼키고 유성 형의 답변을 기다렸다.
“나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이런 경우에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만한 사고를 쳤다거나 하는 경우지.”
“아아……. 따로 뉴스는 없던데…….”
“모르지. 뭔가 사정이 있어서 출연을 취소한 건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 있는 건지.”
기획서에 쓰여 있는 섭외 취소 목록의 가수 홍승연은 후일 막말과 갑질 사건으로 큰 타격을 입고, 방송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될 정도로 큰 역풍을 받는 인물이다.
앨범은 나름 꾸준히 내고, 음원 발매도 했지만 대중의 따가운 시선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던 그 모습이 기억난다.
‘그때보다 그 사실이 일찍 터진 건가?’
회귀 전에는 이 시기쯤에 멀쩡하게 방송도 잘하고 돌아다니던 사람이다.
심지어 예능 치트키 소리를 들으며 종횡무진 활약하기도 했고 말이다.
갑질 폭로 전까지기는 하지만.
“흠……. 그럼 저희한테 일이 들어온 건…….”
“아마 사고 친 사람 빼 버리고 땜빵 넣은 거겠지. 그래도 일 순위로 들어온 섭외니까 너무 기분 나빠할 필요는…….”
“아뇨, 기분 나쁠 일은 아니죠. 그냥 궁금해서요.”
“그럼 다행이고.”
아무리 생각해도 악행이 회귀 전보다 일찍 폭로되어 제작진이 쳐 낸 것이라고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아파서 스케줄을 전부 취소했을 가능성도 적고, 딱히 앨범 준비에 들어가며 바빠진 것 같지도 않으니까.
사건 진행이 미래와 달라진 것이다.
‘뭐, 우리한테는 좋은 일인가?’
나쁜 사람은 조금 더 일찍 나락으로 가고, 우리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애초에 내 회귀와 활동 탓에 바뀐 미래가 한둘이 아니라서, 그걸 일일이 계산하다 보면 끝이 없기도 했고, 사건이 바뀐 걸 따지면 지금 이 프로그램이 제작되는 것도 설명이 안 되니 말이다.
‘가수들 너튜브 채널도 원래보다 더 일찍 유행했고, 써커펀치도 더 빠르게 나락에 가 버렸고, 피넛버터 애들도 곡도 못 받은 채 조용히 활동한다고 하고……. 바뀐 게 많아서 이제 계산이 어렵지.’
지금 당장은 내가 신경을 써 봤자 바뀌는 것도 없고, 바꿔서 볼 이득도 없고, 딱히 그럴 이유 자체가 없다.
미래와 뭔가가 달라졌다거나 하는 사실보다는 앞으로 내가, 나와 삵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집중하기로 했다.
“일단 저는 출연 찬성이에요.”
“그래? 괜찮겠어? 나도 출연 찬성이긴 한데, 파일럿 프로그램이라 위험성도 있고, 하루를 통째로 써야 하는 프로그램이라 시간도 많이 잡아먹을 거라서 깊게 고려를 해야 해.”
“저희가 인터넷 방송에 익숙하기도 하고, 포맷이 마음에 들어서요. 연예계에서 확신을 가지고 말하면 안 된다지만, 뭔가 대박 칠 것 같은 느낌?”
느낌이 아니라 대박을 칠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으니 확신이 섞인 말을 뱉을 수 있는 거지만 말이다.
‘애초에 그 성공 신화를 직접 눈으로 보고도 이 기회를 날려 먹으면 바보 멍청이지.’
방송가에서는 이름값이랄 것도 없는 외식 사업가를 한국 최고의 인기 스타로 만들고, 망하기 일보 직전의 아이돌 가수가 예능 섭외 일 순위가 된 방송이다.
내가 너무 좋아했던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을 제외하고도 출연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게 문제지.
“그래, 뭐……. 너희가 좋다면 무조건 존중이지. 애초에 공중파 예능 출연이야 당장 필요한 거기도 했고.”
다행히도 JH가 아티스트들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는 회사였고, 파일럿 프로그램일지라도 인기 예능의 공동 프로듀서가 메인을 맡는 것이다 보니 출연할 가치가 충분했다.
우리가 이것저것 가려서 나가는 초절정 인기 밴드도 아니고, 얼굴 비칠 기회 있으면 너무 힘들지 않은 선에서는 다 받아들여야 할 급이기도 하고 말이다.
“겹치는 시간표는 없죠?”
“응. 미리 확인했는데, 녹화일 겹치는 것도 없고, 출연 일정 자체는 딱 맞아. 앞뒤로 일정 잡기도 좋고.”
스케줄 조정도 편리하고, 겹치는 일정도 없다.
“얘기 들어 보니 박 PD님이 너희를 콕 집어서 섭외하고 싶다고 우겼다더라고.”
“저희를요?”
“그래.”
홍승연 가수의 출연이 취소되고 대타를 찾는 도중 박 PD가 우리의 섭외를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출연 대상 서칭을 하고 있는데, 너튜브에 올라온 복면 쓴 밴드단 콘셉트의 난입 퍼포먼스와, 삵은 살아 있다라는 제목으로 진행한 우리의 라이브 스트리밍이 눈에 띄었다고.
“오호. 이거 이거…….”
“대우 좀 받으면서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아.”
“딱히 대접은 필요 없긴 한데, 그래도 성공작 여럿 연출한 PD님 눈에 든 건 기쁘네요.”
“그렇지. 나중에 더 큰 기회도 받을 수 있고.”
PD의 간택을 직접 받아 들어가는 만큼 후일 좋은 관계를 쌓아 갈 여지도 충분했다.
우리 입장에선 꼭 붙잡아야 할 기회였다.
“그럼 멤버들 오면 공유하고 의견 물어볼게요.”
나는 혹여 멤버들이 하지 않겠다고 말해도 설득해야겠다는 마음을 굳힌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케이. 연습실 갈 거지?”
“네.”
“대표님이 저기 유자차 가져다 놓으신 거 있는데, 좀 챙겨 가라.”
“오. 유자차.”
나는 유성 형에게 인사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보온병 두 개를 챙겨 연습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멤버들이 연습실로 출근하기를 기다렸다.
“하이…….”
“안녕…….”
“아니 다들 왜…….”
그리고 잠시 후 마주친 그들은 다크서클이 광대까지 내려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