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43
142화
“잠들 못 잤어요?”
“하하…….”
“발매되는 거 실시간으로 보다가…….”
“나도…….”
에너지라는 것이 넘쳐흐르는 듯 방방 뛰던 사람들이 숙취에 시달리는 직장인처럼 축 늘어져 있다.
“전부? 한 명도 빠짐없이?”
“그런 듯…….”
전날 앨범이 발매되는 것을 확인하고, 밤을 새우며 돌려 듣느라 잠을 얼마 못 잔 것이다.
“허허.”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사람이라는 게…….’
사람 행동하는 것이 역시 다 거기서 거기이다.
나도 그들과 똑같이 밤 늦게까지 스트리밍 사이트만 모니터링하다가 늦게 잠들었기 때문에, 컨디션 관리에 실패한 것에 대해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당장 급하게 움직일 일도 없으니 하루 정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회복이 가능할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회사에서 같이 듣고 갈 걸 그랬다.”
“그러게 말입니다…….”
“일찍 퇴근해 봐야 집에서 또 음악이나 들을 거…….”
세명 형이 그렇게 각자 집에 가서 어차피 모두 한마음으로 앨범 발매를 기다리고 전곡 감상을 할 거였으면, 차라리 회사에서 야식이라도 먹으며 볼 것을 그랬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 전 어제 약속이 있었어서.”
“약속?”
“누구랑?”
내가 어제는 함께하는 것이 무리였음을 말하고자 약속이 있었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데, 세명 형과 옥선이가 누굴 만났느냐고 캐물었고, 나는 사실대로 답했다.
“럭키데이 멤버들이랑.”
그런데 주영 형이 내가 한 말이 뭔가 이상하다며 되물었다.
“럭키데이 멤버들 두 명은 지금 자유의 몸이 아닌 것 아니었습니까?”
럭키데이 팬이라더니 멤버들 근황도 전부 기억하고 있는 주영이 형이다.
“네? 아 그렇죠. 재우는 사회복무, 수현이는 해외 단기 유학…….”
“뭐야, 그럼?”
“둘이 봤네?”
“그렇지? 라희는 얼굴 보고, 재우랑 수현이는 메신저로…….”
“와……. 기만질…….”
그냥 친구들끼리 화면 공유하면서 떠들고 웃으며 앨범 발매 축하나 했을 뿐인데, 마치 내가 못 할 짓이라도 했다는 양 물어뜯는다.
뭔가 거창한 대사건이라도 있었다면 모를까, 평범하게 맥주 한잔 나누고 음악 듣고 엎어져 잤을 뿐인데 이렇게 말하니 나도 억울하다.
“저도 님들처럼 음악만 줄창 들었으니 태클 노노염.”
“우우우우!”
“기만자!”
“카사노바!”
“순정마초!”
“그……. 그건……. 좋은 뜻…….”
“아, 그런가?”
조용히 시키려고 하는데 소요가 진정되지 않는다.
‘세명 형이랑 옥선이는 그렇다고 쳐도, 주영 형도 저렇게 격렬하게 반응할 줄은…….’
왜 배우가 아니라 베이시스트가 되었는지 의문인 저 잘생긴 사람이, 성별이 여성인 친구와 만난 내게 저렇게 야유를 퍼붓는 것이 굉장히 어이없었다.
나는 더 버티지 못하고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뭐야, 어디 가?”
“도망치는 것이냐!”
“우우우우!”
그리고 냉장고에서 에너지 드링크와 자양강장제 따위를 주섬주섬 챙겨 들고 와서 멤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오케이. 타우린, 카페인 보충 좀 하고 회의 시작합시다.”
“에잉.”
“오늘은 봐준다.”
일단 입에 뭔가를 물려 조용히 만든 후, 일정 관련 사항들을 공유하고 새로 들어온 일감에 대한 의견을 나눌 생각이었다.
이제 일을 할 시간이다.
“흠……. 근데, 이번에도 인터넷 방송 테마로 나가는 거라서…….”
“네.”
“그러면 우리 너무 인터넷 쪽 활동에만 열중하게 되는 거 아니야? 이미지 잡힐 것 같은데.”
스온텔 섭외에 대해 공유하자, 세명 형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꽤 정확한 지적이었다.
“틀린 말은 아닌 게, 아무래도 바이럴에만 너무 집중한다는 말이 나올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 저희가 지금까지 해 왔던 일들이…….”
주영이 형이 바통을 넘겨받아 말을 이었다.
그의 말대로였다.
웹 예능, 다른 가수들의 공연에 나가서 한 퍼포먼스를 관객들이 직접 찍어 올려 행한 바이럴, 인터넷 라이브 방송 등.
홍보 활동을 대개 인터넷을 이용한 바이럴 마케팅으로 진행했기에 우리에겐 익숙한 앞마당 같은 인방 포맷이다.
“위험하긴 하죠.”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우리 밴드의 새로운 모습은 보여 주지 못할뿐더러, 인터넷 활동을 주로 하는 밴드로만 기억에 남을 수 있다.
이미지가 고착화되어 버리는 것이다.
“소문이긴 한데, 우리 쪽에서는 방송사 사람들이 너튜버나 스트리머, BJ 등등은 조금 꺼린다고 하잖아. 그런데 계속 인터넷으로만 나가면 우리도…….”
이번에는 옥선이의 우려 섞인 목소리다.
이것 역시 맞는 말이다.
“암암리에 도는 얘기긴 하지만, 막상 따지고 들면 없는 말도 아니지.”
“인방이나 웹 예능 포맷 구매는 하면서, 정작 출연진은 TV 방송인으로 채우는 거 흔한 일이잖아.”
“그렇지.”
옥선이도 경력 좀 되는 너튜버이다 보니 업계 사정이 안 들리려야 안 들릴 수가 없다.
대강이나마 알게 되는 몇몇 이야기들은 우리가 인터넷 쪽 시장에서만 이름을 날리게 되는 것을 우려하게 할 이유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때 하은 형이 조용한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 인방……. 그래도……. 공중파…….”
“아, 인방을 소재로 삼긴 했지만, 그래도 공중파 채널로 방영이 되긴 하죠. 네.”
“응…….”
함께 지낸 지 몇 달째, 이제 소심하게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를 대충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말은 살짝 반대의 방향으로 흐르던 회의의 분위기를 살짝 식히기에 충분한 의견이었다.
“하은 형 말도 맞아요. 스트리밍을 하는 것을 촬영하는 방송이긴 한데, 아무튼 편집해서 내보내는 창구는 공중파 채널이니까요.”
“그것도 그렇네.”
그저 인터넷 방송만 하는 것이라면 앞서 언급된 우려들처럼 우리의 이미지 관리 문제, TV 방송국과의 우호 문제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이번 섭외가 단순히 한 차례의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편집 등의 가공 과정을 거쳐 TV를 통해 송출된다는 점에서 메리트는 충분했다.
“그럼 이제 거기서 우리가 어떻게 장면들을 뽑아낼 수 있느냐가 중요한 거겠네. 관건은 그동안 진행했던 인터넷 방송의 시청자들과 다른 팬층에 어떤 부분의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지고.”
“오, 옥선이. 분석력 무엇?”
“저 원래 똑똑한데요?”
“응?”
“예?”
“아, 응…….”
옥선이가 잠깐 생각하더니 만약 출연을 결정하게 된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미리 계산해 늘어놓았고, 그 분석은 놀랍도록 이야기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었다.
‘하긴, 옥선이도 너튜브 활동 오래 하면서 쌓인 짬이 있는데.’
나름 자신만의 콘텐츠를 쌓아 올리며 시청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던 경험이 있는 녀석이다 보니, 맥락을 제대로 짚을 줄 알았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이 방송을 기존의 팬층과 겹치지 않는 다른 범위의 대중들을 우리의 팬으로 만들 기회로 삼아야 했다.
그러려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방송을 연출할 필요도 있을 것이고, 혹은 보여 줬던 것들 중 처음 봤을 때 시선을 확 잡을 수 있는 퍼포먼스들을 되새겨 하나씩 골라 준비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TV 앞의 시청자들에게 우리의 매력을 보여 주는 것.
인터넷과 TV로 동시에 송출되는 스온텔은 분명 큰 메리트가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발매 전 홍보 기간은 끝났지만, 지속적으로 대중들에게 노출되며 인지도를 쌓을 필요는 언제나 있어요. 공중파 예능 출연은 우리한테 좋은 기회고요.”
“파일럿이지만.”
“성공 가능성이 매우 큰 파일럿이죠.”
“근거는?”
“PD님요.”
“흠…….”
방송국의 제안서를 비롯, 내 분석을 포함한 성공 전략과 출연에 의한 부수 효과에 대한 설명은 모두 끝냈다.
남은 것은 결정뿐.
“그러면 나는 기권에 가까운 찬성.”
세명이 형의 한 표.
“저는 찬성입니다. 음방 일정과 겹치지 않으니, 얼굴 자주 보일 기회가 된다면 그걸로 좋습니다.”
주영이 형의 한 표.
“나도 찬성. 조금 불안하긴 해도, 준비 열심히 해서 가면 되겠지. 가능하면 1등을 목표로 가자고.”
“찬…….”
이어지는 옥선이와 하은 형의 한 표씩까지.
잠시 의견을 교환하고, 결국 찬성으로 모두의 뜻이 모였다.
“오케이. 그럼 스온텔 섭외는 받는 걸로 하겠습니다.”
만일 반대로 표가 모이거나, 결정이 더뎌지면 어떻게 설득을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다행히도 그럴 필요는 없게 되었다.
그때 세명 형이 나와 옥선이를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어? 잠깐. 그러면 또 방송 준비한다고 연습 시간 늘어지고, 회의 시간 추가되고, 주말 출근 시작하고……. 너희 설마?”
“음? 당연하지 않아요? 그게 우리 직업인데.”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는 것인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퍼포먼스, 다른 액션을 보여 줘야 하는데 당연히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 직업은 가수잖아.”
“가수가 하는 일이 연습이죠, 뭐.”
그렇다.
가수가 하는 일은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닌 연습을 하는 것이다.
세상에 연습 없이도 완벽하게 아름다운 무대란 있을 수가 없으니, 완벽한 무대를 꾸리고 싶거든 우리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다.
“구멍이 숭숭 나 있는 대본으로 얼개만 대강 갖추고 진행했던 초기 스트리밍보다는, 빡세게 타임 테이블 설계해서 했던 중후반 방송처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아니, 왜? 보니까 녹화 시간도 꽤 되던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이게 메인 PD님은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고 듣긴 했는데, 작가진이나 편집 감독님들도 다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잖아요. 하하…….”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방송국 사람들 보기에 부담 없이 잘라 붙일 수 있는, 딱딱 떨어지는 구조가 아무래도 분량 몰아 받기 좋을 것 같아서…….”
특히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원하는 대로 방송이 진행되도록 기획을 해야 하며,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 역시 준비해야 하는 경우라면 그 연습 시간을 더욱 늘여야 마땅하다.
“애초에 방송 페널티와 어드밴티지라거나, 시간제한 같은 게 있는 엄연한 예능 프로그램이다 보니, 그에 대한 대처까지 빡빡하게 기획해서 그대로 맞춰 나가는 쪽이 녹화하기 더 편할 거예요.”
“아니……. 그건 그런데…….”
돌발 상황이 일어날 여지가 많다 보니 최대한 여유 있는 기획이 필요한 게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반대다.
이번 촬영 같은 경우에는 어떠한 페널티가 있는지, 함께 촬영하는 출연진들은 누구인지가 미리 정해져 있다 보니 예상치 못한 변수가 없는 수준.
처음부터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미리 계산해 준비한다면 끝까지 안정적으로, 준비한 콘텐츠를 모두 선보이고 방송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길고 지루한 연습이 필요하겠죠. 시청자도 없이, 우리끼리 방송 예행연습. 음음. 생각만 해도 즐겁네요.”
“하…….”
겨우 탈출했나 싶었는데 어김없이 눈앞으로 다가온 연습 지옥에 세명 형의 얼굴이 구겨진다.
옆에서 에너지 드링크를 홀짝이던 옥선이는 의외로 차분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렇지. 아무런 계획 없이 콘텐츠 도중에 음소거 페널티 같은 거라도 날아들면 우리 입장에선……. 어우. 끔찍하다.”
우리가 받은 제안서에 포함된 대외비 자료인 방송 기획서에는 프로그램에서 사용될 여러 아이템, 예컨대 시간별 시청자 순위 1등에게 주는 아이템에 대한 내용도 들어 있었다.
그중 우리에게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아이템은 지정 대상에게 강제로 음소거를 걸어 버리는 페널티 어택.
“상상도 하기 싫어.”
“강제 에어 기타라니.”
“음소거 터지는 순간 시청자들 쭉 빠져나가겠죠.”
음악을 주요한 콘텐츠로 삼아야 하는 우리에게는 심장에 꽂히는 비수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면 연습……. 해야겠죠?”
“그래……. 해야지…….”
“그럼 유성 형한테 섭외 받겠다고 전달하고, 오늘 합주한 다음에 유성 형이랑 모니터링 자료 확인. 일정 다 끝나면 대본 기획 회의 진행하도록 할게요. 잠깐 휴식!”
“와……. 휴식이다…….”
힘이 쭉 빠져 버린 세명 형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유성 형을 찾아갔다.
출연 제의를 받겠다고 말함과 동시에 오늘 일정인 앨범 판매량 및 스트리밍 성적 모니터링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또 바빠지겠네. 흠흠.’
어쩐지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