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44
143화
자정까지의 강행군으로도 모자라서, 다음 날의 연습 시간을 제외한 다른 잡다한 일정을 모두 생략 및 감축한 후에야 우리는 스온텔에서 보여 줄 콘텐츠의 타임 테이블을 완성할 수 있었다.
예전에 인터넷 방송 주제로 준비했다가 폐기한 바 있는 레전드 다시 부르기 테마.
한국 락 역사의 발자취를 짧은 방송 시간 안에 띄엄띄엄 되짚어 가며 시청자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노래도 부르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어떻게, 이게 완성이 되긴 되네.’
그나마 모두 함께 라이브를 진행해 본 경험이 있기에 이 정도에서 끝난 것이지, 그것도 아니었다면 훨씬 오래 걸릴 뻔했다.
“이거 보는 사람도 없이 멘트 치려니까 조금 쑥스러운데?”
이제 연습을 진행하며 만들어 둔 대본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참아야죠. 지금 입에 붙여 놔야 나중에 실수 없이 쭉…….”
“알아, 알아. 하는 말이야, 그냥. 이 연습광 놈아.”
“하핫…….”
멤버들은 약간씩 불평을 하긴 했지만, 나름 잘 따라와 주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 쭉 이어진 연습 일변도의 노동 지옥에 이미 익숙해져 버린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면……. 전반부 소개 부분까지 끝났으니까 이제 첫 곡 직후 한국 락 밴드의 발전 과정을…….”
계속해서 방송 예행연습을 진행하려고 할 때.
“얘들아. 잠깐만.”
유성 형이 연습실로 들어와 양해를 구했다.
우리는 잠시 하던 것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일감을 물고 온 매니저의 밝은 웃음을 볼 수 있었다.
“음방 일정 조정이 있어. 2주 차부터 사전 녹화 촬영 들어갈 예정이었는데, 1주 차 라이브 무대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오.”
“라이브.”
대표님이 좋은 무대 만들 수 있도록 힘 좀 써 주신다더니, 진짜로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싹 챙겨 오셨다.
우리 활동에 관심이 많으신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해 주실 줄이야.
신경을 꽤나 많이 써 주신다는 사실이 체감되었다.
“사녹 안 하는 것도 그쪽에서 엄청 양보해 준 건데, 방송 한 회차 더 나오게까지 해 줄 줄은 몰랐네요.”
“그쪽 PD님이랑 안면이 있으시다나 봐. 우리 입장에선 이득이지.”
“근데 핸드 싱크는 해야겠죠?”
“아니!”
‘어라? 안 한다고? 그러면 생라이브로?’
이건 우리 출연 회차가 늘어났다는 사실보다 더 의외인 대답이다.
“그럼요?”
“첫 출연하는 날 베스트 뮤직이 외부 촬영으로 한대. 600회 특집이 너희 네 번째 출연 예정이었던 날인데, 그날에 쓸 스테이지를 미리 점검할 겸 597회 촬영을 거기서 한다더라고.”
“오오? 그런데 그게 핸드 싱크랑 무슨 상관이에요?”
“거기 스테이지가 두 개거든.”
“아하.”
이러면 이야기가 설명이 되었다.
“MR 쓰는 팀은 1번 스테이지, 우리처럼 라이브를 위해 설정 만질 필요가 있는 팀은 2번 스테이지. 이런 식으로요?”
“그렇지. 큐시트대로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되니까, 정신줄 놓으면 안 된다?”
“당연하죠.”
보통 음악 방송 라이브는 핸드 싱크로, 더 심한 경우에는 립싱크로 진행된다.
앰프에 연결하고, 톤을 조정하고 튜닝을 하는 등, 설정에 시간이 걸리는 밴드를 모든 출연진과 관객들이 기다려 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밴드 음악이 인기 있는 곳에서는 이번처럼 스테이지 두 곳 이상이 준비되어 세팅 시간을 버는 것은 물론, 리허설도 따로 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락 음악이 마이너 장르가 된 시대에는 요원한 일이다.
정말 천운이 따랐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타이밍이 잘 맞았다.
‘마침 600화가 코앞인 상황에 그 준비를 위해 야외무대 시험할 겸 라이브를 꾸릴 수 있게 되었고, 마침 출연진들 중 밴드가 두셋 정도 포함되었어.’
덕분에 무대 1에 솔로나 댄스 그룹 셋 무대 2에 밴드 하나, 다시 무대 1에 셋 무대 2에 밴드 하나 식으로 큐시트를 짜서 라이브 공연을 여럿 굴릴 수 있었을 것이다.
밴드 음악이라는 것이 원래 라이브로 들을 때 더욱 즐거우니 우리에겐 참 잘된 일이었다.
“그럼 마지막 녹화에도 라이브로 가는 거예요?”
“그건 아직 모르겠네……. 출연 여부 자체도 다음 주 지나야 알 것 같아. 어지간하면 들어갈 수는 있을 텐데, 확정이 안 나서.”
“음흠. 특별한 촬영을 할 예정일 테니까……. 갈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렇지.”
우리 대표님 입김이 절반, 600회 기념 방송을 위한 준비 중 필요성을 위한 등판이 절반 정도 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나는 가능하면 우리 활동 마지막 주차인 4주 차의 600회 기념 라이브에도 참여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특집 방송에는 그 격에 맞추기 위한 출연진 섭외가 있을 것이 분명하고, 우리 삵이 그 틈에 비비고 들어가면 효과는 확실히 누릴 수 있을 테니까.
아마 그에 앞선 세 차례의 음방 촬영과 방송의 결과를 보고 결정이 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럼 이번 주에는 수요일에 라이브 하러 가고, 다음 주에는 또 월요일 사전 녹화 촬영하러 가야겠네요?”
“응. 이틀 쉬고 바로 나가고, 베스트 뮤직 월요일, 쇼 차트가 화요일, 뮤직센터가 목요일. 그 외에는 스온텔 촬영밖에 없긴 한데, 너무 피곤하지는 않겠지?”
“그 정도면 여유 있는 스케줄이죠.”
“하긴.”
럭키데이 활동을 할 때는 정말 바쁘면 하루 이틀에 촬영을 예닐곱 개씩 몰아서 하기도 했으니, 이 정도 일정이면 여유로운 편이다.
오히려 내 얼굴이라도 내보내려 섭외 요청이 조금은 더 많이 올 줄 알았는데, 촬영까지 기한이 조금 남은 여유로운 일들만 몰려 왔으니 그게 의문일 정도.
“음방 일정 조정 외에는 별도의 변동 사항은 없고, 다음 주부터는 예능 촬영이 몇 개 있어. 단편 출연이기는 하지만, 추가 촬영이 있을 수 있으니 미리미리 컨디션 관리에 신경 좀 쓰고.”
“넵!”
“네.”
“좋아. 그럼 연습들 계속해. 이따 밥 먹을 때 연락하고.”
“넹!”
맡은 일 때문에 여전히 바쁜 유성 형이 전달 사항을 모두 전하고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라이브!”
“오예!”
그리고 곧장 멤버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기쁜 마음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거 운이 따르네요. 크…….”
“그렇지. 처음부터 초대박을 치지 못한 게 아쉬웠는데, 첫 주 음악 방송에서 라이브 공연? 이건 떡상하라고 하늘이 내려준 계시라고.”
“아시죠? 제대로 빨아먹으려면?”
“연습!”
“자, 다시 갑시다. 먼저 첫 곡, 이제 어떡해를 마치고, 한국 밴드 음악의 역사를…….”
기회는 언제나 찾아오고, 그것을 붙잡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그 기회를 살려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해야 할 것은 피 나는 연습뿐.
“어, 어. 여기 대본 이상해.”
“어디요?”
“가요제 수상 곡이랑 메아리의 리메이크 곡에 대한 설명이 섞여 있는 것 같은데, 이거?”
“어라? 아하. 쉼표 찍어 드릴게요. 제가 제대로 못 썼네요.”
우리는 대본을 충분히 숙지해 스온텔 촬영 대비에 박차를 가했다.
아마 오늘의 방송 연습이 끝나면 다시 음악 방송에서 선보일 나빌레라의 합주 연습에 돌입할 터.
‘바쁘다, 바빠. 바빠서 너무 좋아.’
작곡가 노릇으로 시간을 보내던 때와 비교하면 정말 정신없어 죽을 것 같았지만, 가수로서 일을 하고 있음에 그 기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 * *
“삵분들은 저쪽 공동 대기실 바로 옆, A 16호 사용하시면 됩니다. 가능하면 화장실은 안쪽 직원용으로 사용해 주시고요. 밖에는 사람들이 많아서요.”
“네. 감사합니다. 이거 스태프분들 드시라고…….”
“아이고, 이런 걸 다…….”
“그럼 고생하십시오.”
“예. 시간 되면 불러 드릴게요.”
우리는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대기실을 찾았다.
그간 JH 뮤직의 사세가 성장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멤버 중 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대표님과의 인연이 뒤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인지 스태프분은 꽤 정중한 태도였다.
‘신인 때는 되게 툴툴대던데.’
동일 인물은 아니지만, 럭키데이 1집 활동을 시작할 때쯤 만났던 무례한 스태프와는 꽤 다른 모습이었기에 나름의 격세지감 같은 것을 느꼈다.
물론 회귀 전에 겪었던 수모들을 생각하면 그때의 대우도 비교적 양호한 편이지만 말이다.
“외부 스테이지라고 해서 어지간한 특설 무대가 그런 것처럼 스테이지 외의 대기 공간이라든가, 다른 것들은 상황이 열악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괜찮네요?”
“돈 좀 들였다더라. 뭐, 여름 특집이라거나, 방송사 주도의 대형 공연 촬영에도 쓸 수 있고, 시간표가 비면 공연장 대여로 투자금 회수는 될 테니까.”
“아하.”
시설도 나쁘지 않다.
출연자 대기 공간도 잘 꾸며진 상태고, 가장 중요한 정수기 관리도 잘 되어 대기실에 놓여 있어서 목이 마를 일도 없을 것 같다.
“저 잠깐 화장실 좀.”
“나……. 나도…….”
“앗, 다녀오세요. 얼른 오셔서 대충 무대 맞춰 보시죠.”
“그래, 그래.”
“형! 화장실은 잘되어 있는지 봐 줘요! 이따가 대변기 쓸 일이 있을 것 같…….”
“그건 네가 직접 봐!”
옥선이에게 불꽃 같은 거절 대답을 던지고, 세명 형과 하은 형이 화장실로 사라졌다.
우리는 그사이 대기실에서 할 수 있는 준비를 먼저 시작하기로 했다.
“그럼 우리는 잠깐 무대 도면 좀 봅시다.”
“네.”
“넓진 않네?”
“그래도 다른 실내 공연장보다는 훨씬 넓지.”
“집 근처 근린공원에 있는 무대 정도 크기인데. 소리는 잘 울리려나?”
“리허설 때 점검해 보자.”
출연자마다 미리 받은 이동 동선과 카메라 위치, 전체 무대의 모양을 보며 우리가 움직일 방향을 미리 살피고, 어디까지 앞으로 갈 수 있는지, 워킹의 길이는 얼마 정도까지 잡을 수 있는지를 계산했다.
“어……. 시간 좀 지났는데 왜 안 오지?”
그리고 몇 분 후, 우리는 이상함을 느꼈다.
“그러게? 큰 건가?”
“아닐걸? 네가 대변기 확인해 달라고 했을 때 불호령 쏟고 가셨잖아.”
화장실에 간다고 나간 세명 형과 하은 형이 돌아오질 않는다.
“이상하네.”
“찾아보고 올게.”
“같이 가자.”
“얼른 와. 리허설 시간 몇 분 안 남았으니까.”
“넵.”
나는 옥선이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곧 두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화장실이 저쪽 복도 끝이었던가…….”
“어? 저기 사람들 있는데?”
“세명 형이랑 하은 형이랑……. 나머지는 누구지?”
화장실 근처 복도 공간.
세명 형과 하은 형을 몇 사람이 에워싸고 있었다.
“…….”
“……!”
그런데 뭔가 소란스러웠다.
“야, 뭔가 이상한데?”
“쟤네 누군데? 형들한테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빨리 가자.”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해 몰려 있는 사람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래서 너희가 안 되는 거야. 결국에 한다는 게, 아이돌 멤버랑 메이저 밴드 보컬, 너튜버 데려다가 프로젝트 밴드라고?”
“회사 힘으로 단독 대기실 쓰니까 좋겠다? 응? 누구는 공동 대기실에서 두 밴드가 후끈후끈하게 몰려 있는데.”
“인디 때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놈들이…….”
상황이 심상치 않다.
저 사람들이 누군지는 몰라도 목소리에 날이 서 있고, 하은 형이 저렇게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보면 절대 좋은 관계는 아닐 것이다.
어째서인지 누구 앞에서든 잘만 말하는 세명 형도 조용하고, 스태프들의 시선이라도 몰리기 전에 빠르게 참견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서 그들의 사이로 파고들어 시선을 빼앗았다.
“뭐야 넌…….”
세명 형과 하은 형을 향해 독한 말을 쏟아 내던 그들의 입이 잠깐 멈추고, 시선이 내 가슴팍에 머무르다가 천천히 위로 올라온다.
하은 형을 향해 내리꽂듯 쏟아지던 눈빛이 위로 올라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내가 그들에게 말했다.
“뭡니까, 그쪽들은?”
우리 멤버들을 향해 일방적으로 태울 듯 뜨거웠던 그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