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45
144화
“뭐야, 이건? 보호자냐?”
‘오.’
나는 앞사람에게서 터져 나온 적의적 언행에 순간 감탄을 금치 못했다.
‘걸던 시비를 마저 걸 자신감이 있다니. 대단한데?’
일반적으로, 존재 자체가 위협인 나와 내 옆의 옥선이를 보고도, 명백히 그 일행일 것이 분명한 이들에게 시비를 걸 수 있는 분조장 환자들은 거의 없다.
그런데 눈앞의 이 사람은 너무나 사나이답게도, 시끄러운 상황을 정리하고자 온 나 역시 그 시비의 대상에 대뜸 포함시켜 시비를 이어 나가 버린다.
몸집이라는 시비 프리패스를 지니고 있는 내게 있어서는 아주 신선한 사건이었다.
“허.”
순간 신기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해서 헛웃음을 터뜨리는데.
움찔!
눈앞의 남자가 놀라 어깨를 들썩이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아. 쫄긴 쫄았구나.’
아쉽게도 진짜배기 분조장은 아니고, 그냥 겁먹은 것을 꾹 참아 숨기고 있던 모양이었다.
이건 뭐, 동네 치와와도 아니고.
“풉.”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 씨…….”
파악!
그러자 그것을 비웃음이라고 생각해서 화가 났는지, 앞에서 주도적으로 시비를 걸던 남자가 내 어깨를 손으로 밀쳤다.
그러나.
툭! 부우웅.
“으억!”
힘을 풀고 있던 내가 어깨에 손이 닿는 순간 몸을 돌려서 그것을 흘려 버렸고, 순간 중심을 잃은 그가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고 말았다.
툭. 데구르르…….
탁구공 구르듯 잘도 굴렀다.
“허허……. 참 나…….”
이젠 우습지도 않았다.
‘어지간한 놈들은 상대하는 재미라도 있지, 이건 급도 안 되고, 깜냥도 안 되고…….’
뭘 하는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라도 잘하거나 힘이라도 있으면 싸워 줄 용의는 있다.
서로 부딪히는 과정과 결과 아래서 이득을 획책할 여지가 있을 테니.
그런데 이건 뭐 작업실 근처 카페 사장님이 기르는 길고양이 나비랑 싸워도 이보단 재밌을 것 같다.
나는 그냥 좋게 좋게 마무리 짓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넘어졌다가 땅을 짚고 일어나는 그와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
“저기, 아저씨.”
“이런 개…….”
툭.
마침 옆에 좋은 게 있다.
정수기 옆에 일회용 종이컵을 버리라고 배치해 둔 철제 쓰레기통.
마침 흔하디흔한 파랑 플라스틱도 아니고, 시각적 효과도 좋을 것 같다.
나는 그것을 양손으로 잡아들고 말했다.
“방금 건 그냥 없던 일로 할 테니까요.”
그리고 힘을 줘 꾹 눌렀다.
꾸드드드드득…….
“힘 함부로 쓰려고 하지 마세요.”
철제 쓰레기통이 완전히 찌그러져 홀쭉해진다.
“다쳐요.”
유치하고 부끄러운 퍼포먼스다.
경고를 듣지 않는다면 다음에는 쓰레기통이 아니라 너를 찌그러트릴 것이다, 하는 협박과도 같다.
‘상대가 정상적인 성인이었으면 나도 이따위로 안 하지.’
최소한 말이 통하는 상대였다면 나 역시 대화로 좋게 풀었겠다만, 먼저 짐승처럼 행동을 하니 짐승 대하듯 가르침을 주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막말로 내가 힘이 없고, 돈이 없고, 빽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자리에서 고개 푹 숙이고 그들의 시비를 감내해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싸우는 것 싫어하고, 좋게 좋게 넘어가는 걸 더 좋아하는 내가 이렇게 우악스러운 행동을 한다는 게, 그 자체로 불편하고 마음이 안 좋다.
힘의 논리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야생의 문명도 아니고, 다 큰 어른들끼리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일터에서 그러지 맙시다. 다른 사람들 시선이 무섭지도 않으신가? 쯧.”
나는 순간 치솟았던 화를 누그러뜨리고,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말했다.
“와 미친.”
“저게 사람인가…….”
근데 놈들 놀래라고 한 행동에 세명 형과 옥선이가 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본다.
“왜요?”
“아니다.”
아니, 이 사람들은 그럼 음료 박스 두 개씩 번쩍번쩍 들고 다니는 나를 보고 이런 일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아예 없었던 걸까?
굳이 자랑할 것은 아니지만, 초등학생 시절부터 씨름부니 유도부니 스카우트도 질리게 받았던 나다.
자라면서 점점 굵어지는 가슴통과 넓어지는 어깨, 쭉쭉 자란 신장은 말 그대로 사람의 몸으로 소의 힘을 쓰기에 최적화된 모습을 띠었다.
애초에 살만 찐 것도 아니고 주기적인 운동과 관리를 통해 체력을 쌓아 왔으니, 얇디얇은 철제 쓰레기통 하나 못 뭉개면 지금껏 관리에 쏟은 그 시간이 아까운 것이다.
‘옥선이 얘는 운동도 꾸준히 하는 애가 이런 걸 가지고 놀라고 그러냐…….’
반응이 이리 좋으니 오히려 내가 다 부끄럽다.
아니, 애초에 부끄러운 행동이 맞으니 이게 정상인가?
성인들끼리 애들 싸움처럼 이러고 있는 것도 사실 굉장히 어색하고 유치해서 더 이러고 있을 기분이 아니었다.
“근데 이 사람들 뭐 하는 분들이에요?”
나는 질린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세명 형에게 물었다.
“뭐……. 예전 팀메이트지.”
“팀메이트?”
“퍼그노스.”
아하.
옛 동료들.
‘아니, 그러면 옛 친구들을 둘러싸고 지금 린치라도 하려던 거야, 뭐야?’
정체를 듣고 보니 더 이상한 광경이다.
“아니, 아니……. 이미 연 끊은 사람들이 무슨 면목으로 이렇게 와서 행패래요들? 근데 방송국 대기실은 어떻게 들어왔대?”
“얘네도 이번에 데뷔한댄다. 회사가 어디랬지? CMYK?”
“CMYK? 또 거기야? 하.”
들어 보니 JH와의 계약을 앞두고 빤쓰런을 쳤던 전 퍼그노스의 멤버들은, 이번에 다른 기획사인 CMYK와 계약을 해 멤버를 충원하여 데뷔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
럭키데이 때부터 악연이 있었던 그 CMYK였다.
‘하여튼 거기는 어떻게 하나같이 쓰레기들만 잘도 주워 모은다냐.’
참 그 안목이 경이로울 정도다.
“너 이 어린놈이 어디서…….”
“응?”
잠깐 상황을 살피던 내게 바닥에서 일어난 남자가 말을 해 왔다.
몸으로는 안 되고, 뭐라 말할 처지도 안 되니 나이로 밀어 보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러면 또 내가 가만히 듣고 있을 수도 없다.
상황이 그렇다.
“저기 근데…….”
나는 뒷목을 긁적이고는 말했다.
“이번이 첫 앨범 아닙니까?”
그러자 으르렁거리던 그가 당당하게 답했다.
“맞는데. 근데 어쩌라고. 내가 이세명보다 한 살이 많으니 당연히 너보다도…….”
“허…….”
나는 불퉁한 그의 답을 듣고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뭘 믿고 지금 선배한테 이따위로 하십니까?”
“선……. 뭐?”
그렇다.
내 데뷔가 벌써 5년 전 일이다.
“제가 12년도 공중파 데뷔해서 그해에 앨범 내고, 이후로도 한 장 더 냈죠. 이번에 프로젝트 앨범이 한 장 더 나왔고요. 활동을 해도 제가 더 오래 했고, 데뷔를 해도 제가 더 먼저 했는데, 원래 선배 대접 그렇게 하십니까?”
아무리 인디 활동 경력이 있다지만, 세명 형과 한 살 차이라던 그가 활동을 해 봐야 얼마나 했겠는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메이저에 데뷔해 앨범을 내고 쭉 활동했던 나와는 꽤 큰 경력 차이가 있는 것이다.
‘내가 딱히 선후배 따지는 인간은 아니긴 한데…….’
가요계가 무슨 군대도 아니고, 선배가 시키면 후배는 하는 그런 부조리한 풍조는 옛날 옛적에 사라졌다.
하지만 나이 차이가 있어도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는 게 당연하다.
거기다가 선후배 관계라면 더더욱 그렇다.
군대만큼이나 군기 빡세기로 유명한 희극인들 정도는 아니지만 가요계 역시 선후배 논리쯤이야 당연히 있었고, 옛날 옛적 부조리와 똥군기로 점철되었던 시대를 아직 기억하는 선배들도 남아 있다.
“여기 선배님들 많이 계시는데, 보기 힘든 꼴 그만 만드시고 그냥 들어가시죠? 굳이 선배라고 대우받을 생각은 없지만, 계속 이러시면 저도 가만히는 못 있습니다.”
그 말인즉슨, 절대로 그들이 나이를 앞세워 상하 관계를 조장해 나를 압박하거나 찍어 누를 수가 없다는 뜻이다.
나는 평소에는 하지도 않는 선배 행세를 하며 그들에게 고압적으로 말했다.
전후 사정은 잘 몰라도, 일터에서 이따위로 행동하는 사람들에겐 힘을 휘둘러 줘야 마땅한 법이다.
그게 물리력이든, 권력이든 말이다.
“하. 참…….”
던져 대는 고성에 주눅 들지도 않아, 밀어도 밀리지 않아, 경력도 선배야.
그들 입장에서는 내게 비빌 구석이 없었으니, 입에서 나올 것은 그저 기가 차다는 한숨과 혓바닥 차는 소리뿐이었다.
‘그냥 여기서 끝내면 좋겠는데.’
사실 잡아 두고 조지려면 더 조질 수도 있고, 금방의 상황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려면 기획사인 CMYK에 직접 연락을 넣어 압박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당장 여기서 그만하고 자리 비키자는 내 말은 오히려 그들을 배려하는 것이었다.
“거기. 뭐야?”
“앗.”
이런 상황에 말이다.
“안녕하세요, 형.”
“루치. 뭐야, 지금? 방송 직전에 현장에서 싸우냐?”
솔로 가수이자 데뷔 10년 차 선배인 백경현.
그가 화장실에 가던 도중 주변이 소란스러운 것을 보고 온 것이다.
“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냥 옛날에 같은 팀이었던 분들인데, 묵은 감정이 있어서 조금 격해졌나 봐요.”
“쯧…….”
그도 눈치가 있고 짬밥이 있다.
현장 분위기만 싹 훑어도 대충 어떤 상황인지 속으로 견적 정도는 낼 수 있는 것이다.
빠르게 어떤 상황인지를 읽어 낸 그는 혀를 차고는 말했다.
“맺힌 일이 있으면 따로 풀어. 괜히 현장 분위기 흐리지 말고. 이거 루치한테 하는 말 아니야. 얘는 공사 구분 확실히 할 줄 아는 놈이니까. 너희. 똑바로 들으라고. 응?”
“하…….”
묵직한 목소리로 충고를 주는 백경현의 말에 전 퍼그노스의 멤버이자 이번 소란의 주동자가 눈을 피하며 한숨을 내쉰다.
그러자 백경현이 울컥하며 그에게 말했다.
“대답이 꼬롬하네? 야, 너희 회사 어디냐?”
“형, 형. 하하……. 저희가 알아듣게 얘기할게요. 한참 선배가 그렇게 소리치는 것도 남들 보기에 좀 그렇잖아요.”
나는 화를 내려는 그를 말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 눈치 없는 놈들.’
제 기분이 아무리 나쁘더라도 선배가 와서 지적을 하면 좋게 끝내고 자리를 피할 줄도 알아야 한다.
아니면 하다못해 부당한 지적이라며 들이받기라도 한다면 누군가의 평을 받아 체면이라도 차릴 수 있겠지.
“뭐 저런 놈들이 있어? 야, 사람 말이 장난 같냐? 안 들려?”
그런데 대답은 피하고, 눈길도 피하고, 그렇다고 수긍하는 것도 아니고.
눈앞의 선배는 짜증 나고, 제 자존심은 챙기고 싶고, 그렇다고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숙이지도 못하고 제대로 싸울 줄도 몰라 일어나는 일이다.
내 생각보다 훨씬 멍청한 놈들인 것이다.
“쯧……. 됐다. 루치 너는 나중에 시간 나면 연락해라. 성인 됐는데 술 한잔 못 사 줬네. 나 참, 별 이상한 놈들…….”
“네, 형. 들어가세요. 이따 봬요.”
나는 어떻게든 백경현 선배를 말려 보낸 후, 식은땀을 닦았다.
내가 인사를 하자 우리 멤버들도 따라서 인사라도 했고, 나는 친분을 이용해 적절히 상황을 넘겼다.
그런데 눈앞의 이 멍청이들 때문에 관련도 없는 사람이 당사자가 되어 일이 커질 뻔했다.
“후……. 어쩌실래요? 더 개싸움 벌이고 싶으면 나도 받아 주고. 그땐 방금 같은 실드는 없습니다.”
최후통첩이다.
이 이상 귀찮게 만든다면, 나는 회사의 힘을 빌리든, 내가 직접 제재에 나서든, 하다못해 SNS로 저격을 하든, 놈들을 최대한 괴롭혀 줄 생각이었다.
적어도 내가 귀찮았던 그 이상으로 귀찮도록 말이다.
빈말이 아니다.
나는 충분히 그럴 능력과, 그럴 힘이 있다.
‘이 몸이 얼마 후면 대한민국 상위 1퍼센트의 자산가가 될 몸이시다!’
나는 지갑에 고이 잠든 수 종의 암호 화폐들을 믿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채굴을 하고, 가끔 돈을 써서 매수한 그것들.
급등기의 조짐은 올해부터 보이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표적인 코인이 수천만 원을 돌파할 때쯤, 나는 재벌 부럽지 않은 재력을 손에 쥐게 될 것이다.
그동안 럭키데이의 든든한 백이 되었던 나의 부모님이나 재우의 부모님, 수현이와 라희의 부모님보다도 더 많은 돈이 생긴다는 말이다.
‘네놈들의 앞날을 패스트푸드 알바와 편의점 알바 두 갈래로만 한정해 버릴 수 있을 정도란 뜻이지!’
아직 인지도도 얻지 못한 신인 밴드 하나쯤은 제대로 묻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나는 그런 뜻을 가득 담아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퍼그노스의 멍청이가 세명 형과 하은 형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흥. 어차피 클래식 출신 초짜 새끼나 끼고 다니는 놈들이면 수준 뻔하지. 라이브 망하고 질질 짜지나 마라.”
그리고는 3류 악역의 대사를 날리고 사라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휴. 등신들.”
“푸훕!”
세명 형이 때아닌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