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47
146화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라는 수사적인 표현이 이토록 어울릴 수가 있을까?
“바윗길, 세찬 강물, 비 오는 날들……. 에코 살짝 죽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너무 울려요. 나비가 내게 보여 준 보물……. 감사합니다.”
리허설을 쭉 진행하며 나는 하은 형의 실력에 새삼 감탄을 금치 못했다.
딴딴, 딴, 따단! 따다단 딴!
“삵 무대에 더 필요한 거 있으실까요?”
“아뇨, 없습니다. 다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그러면 간단하게 정리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시겠습니다. 혹시 2차 리허설이 있을 수도 있으니 연락받아 주시고요.”
“넵. 고생하셨습니다.”
사운드 체크와 컨디션 점검까지 모두 마치고, 우리는 대기실로 다시 돌아갔다.
나는 걸음을 옮기며 세명 형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와, 하은이 형 진짜 대박이네요.”
“그렇지?”
“네.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하시는 게 눈에 보일 정도인데, 그 와중에 연주는 녹음실 퀄리티 그대로고…….”
“원래 저래.”
세명 형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내게 설명했다.
“전에 하은이가 감기에 걸려서 열이 펄펄 끓은 적이 있거든? 그런데도 펑크를 낼 수는 없다고 라이브 공연에 일단 가서는 연습하던 때 그 모습 그대로 연주를 소화하더라고.”
“와…….”
“깜짝 놀랐다. 나도 그 정도는 아니거든.”
그는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인드 컨트롤 능력 장난 아니시네…….”
백하은이라는 기타리스트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극한의 마인드 컨트롤 능력을 가진 실력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세명 형도 일관적인 연주라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인데, 하은 형은 정말 의외네.’
눈앞에서 함께 감탄하고 있는 세명 형도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스타일을 유지한 채 중심을 잡는, 일관된 퍼포먼스를 보여 주는 뛰어난 연주자이다.
다만 평소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소심하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하은 형이 이 정도로 훌륭한 부동심과 뚝심 있는 연주를 선보일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체크, 체크.’
팀메이트가 가진 의외의 능력을 알게 되었으니 잘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필요한 순간에 적절히 써먹을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심적인 부담, 위험한 체력적 상태에서도 일관된 퀄리티로 연주할 수 있음.
머릿속에 단단히 저장해 두었다.
“하은 형.”
“으, 으응?”
대기실로 돌아와서 나는 하은 형에게 말을 걸었다.
연주 잘하는 건 잘하는 거고, 그렇다고 팀원 멘탈 케어도 없이 그냥 일을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까 그놈들 때문에 속 많이 상했어요?”
“…….”
내 물음에 하은 형은 고개를 푹 숙이더니, 한참 지나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는 웬일로 평소보다 긴 문장을 뱉었다.
“처음……. 밴드를 하고 싶어지고 처음 만난 동료들……. 이라서……. 같이……. 즐거운 줄 알았는데…….”
“으음…….”
그는 동료라는 단어가 붙는 것이 아까운 폐기물 놈들에게 여전히 동료였던 이들이기에 아낌없는 친애를 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하은 형에게 돌아온 것은 거친 시비와 모욕뿐이었다.
“클래식……. 클래식 출신이라서……. 내가…….”
“아. 그건 아니죠.”
길게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가 신기하기도 했고, 그의 속마음을 들을 기회가 흔치 않기도 해서 계속 듣고만 있었는데, 이쯤에서 끊어야 했다.
“말은 바로 해야 해요, 형. 형이 클래식 연주자 출신이라서가 아니라 그 자식들이 천하에 둘도 없는 호쌍새들이라 그런 거예요.”
“처, 천하에……. 뭐?”
“호로 쌍…….”
“어허. 루치. 말 조심해야지.”
“앗, 넵.”
나도 모르게 비속어가 잔뜩 포함된 거센 비난을 갈길 뻔했다.
혹시 대기실 밖을 지나가던 누군가가 듣고 소문이라도 내면 난감하다.
적당히 소리를 죽여 하은 형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걔들이 형한테 클래식 출신이라고 뭐라 했어요?”
“응……. 내가 클래식 배우다 온 기타리스트라서 연주를 제대로 못 한다고…….”
“허.”
“락 음악에 필요한 연주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고…….”
“미친놈들.”
보아하니 있는 말 없는 말 다 꺼내서 사람 깎아내리려고 작정하고 긁어 댄 모양이다.
그리고 심약하고 소극적인 하은 형은 나름 같은 밴드 동료랍시고 하는 그 같잖은 충고를 귀담아들어 버렸고 말이다.
나는 관자놀이를 꾹 눌러 솟아오르려는 두통을 가라앉히고, 하은 형에게 말했다.
“형. 걔네 말 다 개똥 같은 소리예요.”
“개똥…….”
“아무 의미도 없고, 근거도 없고, 그냥 형한테 시비 걸고 싶어서 한 개소리라고요.”
“그래도…….”
사람이 되지도 않는 이유를 들어 자꾸 갈굼을 당하는 상황에 익숙해지다 보면, 점점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되지 않기 시작한다.
사람을 깔아뭉개고, 찍어 누르고, 말 같지도 않은 그 헛소리에 익숙하게 만들어 고분고분한 샌드백으로 만드는 것이다.
특히나 남의 말을 귀담아들을 줄 알고, 자기 의견을 앞에 내세우는 것을 싫어하는 하은 형이라면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나에게는 이미 5년도 전에, 아니, 정확히는 수십 년 전에 떨쳐 버린 그 딱지가 하은 형에게는 커다란 짐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저도 클래식 출신이잖아요.”
“어, 어?”
하은 형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생각해 보니 나 역시 성악 유망주 출신이었다는 것이 떠오른 듯했다.
사실 자세히 살피면 그들의 지적들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지는 쉽게 인지할 수 있다.
‘클래식으로 음악을 시작해서 대중음악으로 넘어온 연주자들 중에 성공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당장 여러 선배 뮤지션들을 거론하지 않아도 단번에 제시할 수 있는 예가 그의 눈앞에 있지 않은가?
“근데 그렇잖아요. 걔, 퍼그노스 보컬 걔.”
“…….”
“걔가 저보다 노래 잘해요?”
“아…….”
거창한 논리 같은 것은 필요도 없다.
성과.
나와 그놈이 지금껏 이뤄 놓은 것들이 얼마나 거대한 차이를 보이는지를 대놓고 제시하는 것.
이것은 그 자체로 놈이 지껄였던 헛소리들의 반박이 된다.
“말을 들으려면 뭐 대단한 놈들이 하는 말을 들어야죠. 급도 안 되는 애들이 하는 말을 그렇게 믿으면 어떡해요?”
“그…….”
“형이 걔네보다 훨씬 뛰어나고 가치 있고 재능 넘치는 연주자인데, 얼간이 등신들이 하는 말을 믿을 이유가 없잖아요.”
눈을 마주친 채, 자신감 있게.
나는 하은 형을 치켜세웠다.
“삵의 기타리스트 자리에 형 대신 다른 연주자가 들어왔으면, 우리는 지금처럼 좋은 앨범 못 만들었을 거예요.”
칭찬 세례를 퍼붓는다.
“마찬가지로 내 자리에 퍼그노스 보컬? 걔가 들어왔으면 좋은 앨범을 못 만드는 수준이 아니라, 기한도 못 맞추고 프로젝트 무산됐을걸요?”
그에게 트라우마가 되었던 대상을 깎아내린다.
“막말로 퍼그노스 때 형들 공연 영상 보면, 기타 두 사람밖에 안 보여요. 보컬, 베이스, 드럼 다 쩌리라고. 형이랑 세명 형이 말 그대로 업고 가던 밴드라고요.”
이 대화를 통해 뭔가 커다란 성과를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못 미더우면 조금 이따가 봐요. 무대에서.”
하은 형이 한 발자국.
트라우마에서 단 한 발자국만 나아갈 수 있다면.
“걔네가 잘하는지, 형이랑 우리가 더 잘하는지.”
그는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다.
“깊은 분석도 필요 없어요. 딱 들으면 아니까. 비교가 될 거예요.”
내가 그랬듯이.
“믿어 봐요, 한번.”
하은 형이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더니, 내게 대답했다.
“응.”
* * *
전 퍼그노스, 현 왱알앵알의 보컬이자 리더, 이홍석은 생각했다.
‘개 같은 놈이…….’
한참이나 어린 주제에 선배랍시고 자신이 하던 일을 막음은 물론, 복도에서 소란스럽게 만들어 까마득한 선배에게 눈초리를 받게 만든 덩치 큰 놈.
그놈만 아니었어도 오늘 이렇게까지 기분이 나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소란은 자신들이 일으킨 것이고, 그저 옆으로 지나가던, 자신들이 버리고 떠나갔던 옛 동료들을 보고 부아가 치밀어올라 시비를 걸어 생긴 일이라는 사실은 전혀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그게 왜 잘못이란 말인가?
‘밴드 음악은 하나도 모르는 클래식 기타랑 팀을 짜서 뭐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무것도 모르는 클래식 출신 연주자 하나와 자신이 만든 밴드에서 사사건건 반대 의견을 놓던 꼬장쟁이 하나.
그들을 존중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그러니 괴롭혀도 자신의 죄가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흥. 어차피 무대가 끝나면 다 벗겨질 가면이야. 럭키데이? 운이 좋아서 반짝 뜬 메이저 밴드 주제에.’
오늘 자신을 가로막은 그 덩치 큰 녀석의 정체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다.
럭키데이.
5년 전 혜성처럼 등장해서 고등학생 밴드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성적을 거둔 메이저 밴드.
다만 그는 그들의 성과와 실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큰 회사에서 돈 들여 기획하면 당연히 그 정도는 하겠지.’
자신들처럼 인디에서 아무것도 없이 자기 음악을 시작했으면 모를까, 회사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럭키데이는 자신들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룩했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와 우승, 그 이후의 앨범 발매와 여러 활동들 역시 회사의 힘일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우리도 빵빵한 회사에서 지원받게 됐어. 인디에서 실력을 쌓고, 이제 기획사의 힘까지 등에 업은 우리라면 럭키데이 따위는 일도 아니지.’
그는 이제 CMYK라는 적당한 규모의 기획사에 소속되어 활동을 하게 되었다.
타협적인 태도를 견지하던 세명과 하은을 쳐 낸 이유, 마이너 신에서 자기들의 음악을 하겠다는 고집을 꺾고 들어간 것이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계약금도 크게 받았고, 앨범 제작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주도할 수 있었으니까.
JH 같은 큰 회사에 들어갔더라면 이런저런 관리와 간섭을 받느라 할 수 없었을 일들이리라.
물론 사실과는 전혀 달랐지만, 그의 생각으로는 그러했다.
JH는 사실 아티스트들에게 자유도를 크게 부여해 창의성을 보장하고, CMYK는 자유라는 탈을 쓰고 이리저리 판을 기울여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일이 흘러가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일개 신인 아티스트인 그가 알 수 있을 리가 없기는 했다.
“왱알앵……. 왱알 아알알? 아, 왱알앵알 팀! 준비하실게요!”
“예.”
스태프의 부름이 들린다.
“가자.”
“오케이.”
“롹 윌 네버다이!”
그들은 각자의 악기와 장비를 챙겨 스테이지 뒤쪽으로 이동했다.
멀리 제1 스테이지에서 아이돌 걸 그룹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이번 무대로 기를 꺾어 버리고, 우리 음악이 메이저에서도 먹힌다는 걸 증명해 주겠어.’
첫 방송국 공연이다.
여기서 제대로 분위기를 휘어잡아 더 높이 올라갈 것이다.
타협 없이 이어 나갔던 자신의 음악.
쓸모없는 두 사람을 쳐 내고 새로 만든 자신의 밴드가 최고임을 증명하고서 말이다.
‘거기 아래에서 계속 보고 있어라.’
무대 구석, 아래쪽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프로젝트 밴드 삵.
자신이 버린 두 사람이 소속된 대형 기획사의 프로젝트 밴드.
딱 어울리는 눈높이였다.
“준비, 준비! 스크린 큐 사인 들어가면 바로 연주 시작하면 됩니다!”
“예.”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신호등처럼 생긴 LED 라이트에 불이 들어온다.
부우우웅!
베이스 소리와 함께 왱알앵알의 싱글, 떠들썩이 시작되었다.
“나를 비웃는 세상의 시선! 멋대로 살고픈 락커의 꿈!”
이홍석은 거친 샤우팅으로 노래를 이어 나갔다.
관객들은 생소한 소리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그래도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고 손뼉를 치며 호응해 주었다.
첫 메이저 공연치고는 괜찮은 반응이다.
‘너……. 날 왜 그런 눈으로…….’
그런데 그런 그의 눈에 누군가의 모습이 들어왔다.
“…….”
“어때요?”
조용하기만 하고 실력은 형편없는 기타리스트 백하은과, 그의 동료인 덩치 큰 놈. 김루치아노였다.
“우리가 훨씬 낫죠?”
“……응.”
뭐라고 하는 것인지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는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나는 아무 잘못 없지! 모두 부수지 못한 게 내 탓이라면 욕해! 나는 오히려 그걸 딛고…….”
하지만 그는 그 느낌을 애써 무시하고 노래를 이어 나갔다.
곧이어 어떤 절망이 찾아오게 될지,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