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48
147화
“다음, 삵 무대 준비 들어가겠습니다. 바깥쪽 스피커는 전부 꺼진 상태니까 안쪽 앰프로만 소리 맞춰 주세요! 감독님! 다음 팀 올라가요!”
“네, 감사합니다.”
왱알앵알이 무대에서 내려가고 잠시.
1번 스테이지에서 다른 가수들의 무대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가 준비할 차례가 왔다.
“자. 관객들 심장 수확하러 갑시다.”
“어……. 그건 좀 무서운데?”
“어? 그런가? 그러면 관객들 마음 사냥하러 갑시다!”
“그나마 낫네.”
우리는 소란스럽게 무대 위로 올라갔다.
쓸데없는 헛소리를 하면서 부산을 떠는 것도 다 긴장을 풀기 위한 루틴 같은 것이다.
“떨지 말고 갑시다.”
“파이팅, 파이팅.”
“튜닝 먼저 다시 볼게.”
서로 응원을 나눈 후, 각자의 장비를 살폈다.
징, 지이잉…….
“들려?”
“응. 들려요, 들려요. 옥선이 인이어 확인해 봐.”
둥! 둥둥! 채애앵!
“이거 마이크 너무 가까이 잡혀 있는 것 같지 않아?”
“소리 울려?”
“울리진 않는데…….”
“그럼 괜찮을 것 같긴 한데 물어볼게. 감독님, 드럼 볼륨 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아까랑 같은지.”
다른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시간을 잡아먹는 동안 세팅 시간을 버는 것이기에, 오히려 순차적으로 오르는 무대보다 더욱 정비 시간이 여유롭다.
“확인 완료요.”
“나도 끝.”
지이잉!
“저도 끝났습니다.”
먼저 점검을 마친 사람부터 순차적으로 상황을 알리고, 곧 세팅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리허설 때 기본적인 조정을 끝내 두었지만, 직전의 공연 팀 왱알앵알이 워낙 무대를 지저분하게 써서 세팅도 세팅이고 전반적으로 스테이지가 개판 오 분 전인 상태였다.
그래서 여유로운 시간제한에 맞지 않게 조금은 다급하게 움직여 겨우겨우 공연 시작 전에 모든 준비를 끝마칠 수 있었다.
“스탠바이 들어가겠습니다!”
“넵.”
“스크린 큐 사인 올라가면 바로 시작하시면 됩니다! 삵 파이팅!”
“감사합니다.”
진행을 돕는 조연출의 응원을 감사하게 받으며, 우리는 시작 신호를 기다렸다.
“네에! 스페이스돌즈의 환상적인 무대! 이곳 베스트 뮤직 야외 스테이지를 뜨겁게 달구는 멋진 군무였습니다!”
“다음 순서는요! 인기 밴드 럭키데이의 김루치 씨와 또 다른 실력파 연주자들이 뭉친 프로젝트 밴드! 삵의 무대가…….”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저기 멀리 스피커를 통해 MC들의 진행이 언뜻언뜻 들려온다.
앞의 무대가 끝나고, 이제 우리 차례가 찾아왔다는 뜻이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멤버들과 눈을 마주쳤다.
끄덕끄덕.
모두 연주에 돌입할 준비는 완료된 상태였다.
“오케이. 파이팅.”
마이크에 들어가지 않는 작은 소리로 그들에게 속삭여 주고, 천천히 스타트 신호를 기다렸다.
삑.
LED 라이트가 켜지고, 그것을 확인한 옥선이가 카운트를 울렸다.
딱! 딱! 딱! 딱!
정확한 박자에 모두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우우웅……. 두웅, 둥 두둥, 두루루룸, 둠…….
쾌활하고 여유로운 리듬이 스피커를 통해 관객들에게 날아든다.
딩, 딩, 딩 디딩. 딩, 딩, 딩 디딩.
기타 줄 뜯기는 소리가 흥겨워 나도 모르게 고개를 까딱이며 리듬을 맞추게 된다.
흥을 그대로 담아서.
“흠흠, 흠, 흠흠…….”
모두 함께 즐거워지기 위한 노래를 불렀다.
“한 걸음 앞의 향기로운. 꽃밭에 앉은 저 하얀 나비. 활짝 웃는…….”
관객들이 지켜보는 무대에서 우리 노래 나빌레라를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
복면을 쓰고 있던 디밴드 콘서트에서의 그 무대와 지금 우리의 외형도 다르지만, 무엇보다 노래의 퀄리티가 달라도 한참 달랐다.
딴 딴, 딴, 따단! 두둑, 드르륵, 따다닥! 딴따단, 딴, 따단! 드르륵, 채애앵!
매우 추상적이고 두루뭉술한 표현이지만, 옥선이의 말을 빌리자면 그래.
쫄깃쫄깃하다.
음악이.
“바윗길, 세찬 강물, 비 오는 날들. 여기까지 오는 것도 힘들었지만!”
삵의 발걸음에는 여유가 생겼고, 그간 디뎌 온 발자국이 헛되지 않았다는 듯 길이 다져졌다.
서로 엮여 드는 소리는 이전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하나가 되어 퍼지는 그 소리는 곡에 담고자 했던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가장 좋은 모양새가 되었다.
이건 갑작스러운 변화나 느닷없는 각성 따위가 아니다.
‘연습은 배신하지 않아. 음.’
남들 쉴 때 한 곡 더 부르고, 남들 퇴근할 때 불을 밝히고 연습실을 지켰던 우리의 노고가 담긴 발전이다.
딩 디리링 딩, 부우웅! 두둠, 두루룸.
수도 없이 반복했던 패턴.
손이 익고, 찢어지고, 부르틀 때까지 연습했기에 어떻게 해야 되는지, 내 옆의 동료는 어떻게 할지를 머리보다 몸이 먼저 기억한다.
“맛난 꿀도 금도 아닌 따순 햇살이, 나비가 내게 보여 준 보물이라네. 헤이!”
딴딴 딴, 따단! 딴딴 딴, 따단!
박자 맞추는 건 눈을 깜빡이는 것만큼 쉽고, 톤을 일치시키는 것은 서로 숨소리를 듣고 맞추는 것보다 쉽다.
내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를 모두 알고 있는데 멈칫거리다가 나아갈 타이밍을 놓칠 우유부단한 사람은 우리 팀에 없다.
“흠흠흠, 흠, 흠, 흠흠……. 흠흠흠흠, 흠, 흠흠…….”
베이스와 리듬 기타의 인도에 맞추어 콧노래를 울린다.
톱니바퀴처럼 잘도 맞아 돌아가는 그 소리가 멜로디 기타와 참 어울리는 느낌이다.
부드럽고, 여리고, 동시에 즐겁게도 따뜻한.
감상의 시간이 열광과 분석보다는 편안한 휴식이 되길 바라며 만든 흐름이다.
“흠흠, 흠, 흠흠……. 음흠흠흠, 흠흠흠흠, 흠흠흠 흠흠…….”
여행에 떠난 삵이 겪은, 마주한, 기억하는 것들을 함께 감상하며 즐길 수 있는 단 3분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몇 날 며칠을 밤을 지새우며 노력했다.
그리고 그 성과는 지금 내 눈앞에 보였다.
짝! 짝! 짝! 짝!
박자에 맞추어 손뼉을 치며 발을 구르는 관객.
까딱 까딱 까딱.
눈을 감은 채 드럼 리듬에 맞추어 고개를 까딱이는 관객.
‘몰입하는구나.’
우리가 만들어 내고 있는 선율에 깊게 몰입해 하나의 시선을 공유하게 되었다는 증거였다.
“살그머니 따라오는 나뭇잎은, 콧등 위에 살짝 올라타서. 갈 수 없는 험한 길을 데려 달라며,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네. 흠흠.”
우리가 풀어 내는 동화 같은 이야기에서 원하는 뜻을 찾아 가져갈 수 있기를.
감상과 고찰이 힘들 정도로 피로하다면, 그저 따뜻한 곡의 분위기 속에서 잠깐이나마 편안함을 느낄 수 있기를.
그런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기 위해 우리는 집중해서 음악을 엮어 냈다.
“바윗길, 세찬 강물, 비 오는 날들. 여기까지 오는…….”
참 신기한 일이다.
항상 나는 설계대로 무대를 이어 나가기 위해 기술의 구사에 한껏 집중해 노래를 하는데, 어째서인지 관객들과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지면 고양감을 감추지 못하고 자꾸 웃음이 터지려 한다.
‘이게 라이브의 맛이지.’
녹음을 할 때나 인터넷 방송을 할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이다.
현장감이 발끝에서 정수리까지 뒤덮고 고작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다시는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던 쾌감이 느껴진다
‘이거야. 이거지. 이래서 무대에 서는 거지.’
내 노래를 듣는 이들과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음악을 함께 즐기면서 같은 감정을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이것은 직접 맛본 적 없는 사람은 결코 느낄 수 없는 기쁨이다.
생활에 여유가 있음에도 자꾸 무대에 오르고 싶고, 얼마 전에 무대에 올랐음에도 또다시 생각나는 이 즐거움.
“흠흠, 흠, 흠흠…….”
작업실 구석에서 어서 럭키데이가 다시 뭉치기를 기다리고만 있지 않고, 프로젝트 밴드 결성 제안을 받아들인 것을 후회하지 않는 이유였다.
힘들고 귀찮고 화가 나는 일이 많았지만, 너무나 즐겁다.
“흠흠 흠흠, 흠, 흠흠……. 후우우…….”
나도 모르게 여운에 취해 인사하는 것을 잊을 만큼 말이다.
짝짝짝짝짝짝짝!
멍하니 선 나에게 관객들의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와아아아아!”
“삵! 삵! 삵!”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기쁨이 하은 형에게도 그대로 느껴졌을지.
그리고 이전의 퍼그노스 시절에 겪었던 라이브 무대와 비교하면 어느 쪽이 즐거울지.
‘우리였으면 좋겠네.’
문득 궁금해졌다.
“…….”
아니.
관객들에게 늦은 인사를 올리며 옆을 보니 바로 알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은 형도 분명 우리와 함께하는 무대가 훨씬 즐거웠을 것이다.
동료라고 부를 수도 없었던 머저리들과 함께했던 어설픈 퍼포먼스보다 백 배, 천 배는 더.
“들어가죠.”
“……응.”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무대.
항상 같은 즐거움.
그리고 매번 아주 조금씩 다른 환경과 상황.
나는 끝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 여정의 중간에 있는 아주 평범한 오늘 한 번의 무대가, 앞으로 기타리스트 백하은의 음악 경력에 있어 큰 의미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 *
“좋았다.”
“고생했어요.”
“고생하셨습니다.”
우리는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서로에게 수고했다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자 대기실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그 말을 받아 우리의 노고를 칭찬해 왔다.
“고생 많았어요. 루치 군은 오랜만에 봐도 참 노래 잘하는 것 같아요.”
나는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고 화들짝 놀라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엇? 서,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하하, 편하게 해요, 편하게. 너무 그러면 나이 먹은 것 같아서.”
“아하하……. 하하…….”
디밴드의 임대현 선배가 롤 모델이고, 우리 태양고의 권인찬 선생님이 멘토였다면, 눈앞의 인물은 그저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천상의 존재와도 같다.
한국 락의 전설 지현섭.
1988년 방송국 가요제에서 대학생 밴드 청룡으로 데뷔해 활동하다가 청룡의 해체 이후 NIGHTS라는 밴드를 결성,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 가고 있는 전설적인 보컬이다.
“예전에 NIGHTS의 밤 산책 때 만나고 처음인가요?”
“앗, 네. 그렇습니다. 밴드 인원 전체가 나와서 교습받는 식으로 라디오를 진행했었죠.”
“그때보다 살이 많이 빠졌네요. 잘 챙겨 먹어야 활동도 오래 할 수 있는데.”
“하하……. 그때는 보통보다 조금 더 찌웠던 상태였던지라……. 지금이 조금 더 정상 체중에 가깝습니다.”
“하하하. 이게 나이 먹은 사람들 눈에는 덩치가 불어 있어야 건강해 보이는 게 있어요. 이거 미안하네.”
“아, 아닙니다. 염려 감사합니다.”
그가 전설인 이유는 그저 활동 기간이 오래되었기 때문도, 히트곡을 많이 만들었기 때문도 아니다.
“우리도 이번에 앨범 준비하면서 똘똘 뭉쳐서 밤도 새고, 연습도 하고 그러는데, 체력이 부족하니까 뭐가 안 되더라고요. 하하하. 운동 열심히 해야 해요.”
“새겨듣겠습니다.”
훌륭한 인품과 끝을 모르겠는 음악에 대한 열정.
그것이 그를 살아 있는 전설로 만든다.
인연이 있든 없든 업계에서 종사하며 한 번이라도 눈을 마주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선 호의를 주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해 주는 그는 모든 가수들의 귀감과도 같은 선배였다.
기부도 많이 하고,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떨치려고 노력하는 좋은 사람이다.
또한 밴드 내부의 불화로 몇 번이고 해체와 재결성을 반복하다가도, 어디서 그런 영감이 샘솟는지 다시 나타날 때마다 명반을 하나씩 들고나온다. 그리고 그 앨범들은 대부분 지현섭이 주도적으로 만든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음악광의 표상 그 자체였다.
‘저런 가수가 되어야 한다.’
그가 하는 것처럼만 따라 하면 롱런하는 가수가 될 수 있다.
지현섭 선배는 누군가에게 저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그런 기준이 되는 훌륭한 선배였다.
“노래 잘 들었어요. 달리는 곡도 아니고, 완전 감성적인 곡도 아닌데 반응이 되게 좋았어요. 이 정도면 차트 성적은 물론이고, 베스트 뮤직 포함 음방 성적도 기대해 볼 만하겠는데요?”
나는 그의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허리를 꾸벅꾸벅 굽혔다 펴기를 반복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하하. 편하게 하래도……. 어떻게, 다른 후배님들은 오늘 무대…….”
우선 친분이 있는 내게 격려와 칭찬을 건넨 후, 그는 다른 멤버들에게 인사를 하고 신변잡기를 물었다.
멤버들 역시 대선배의 옥음에 감격해 나처럼 허리를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는 방아깨비가 되었다.
‘뭔가 제안이라도 들고 오신 건가?’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지현섭 선배가 우리에게 뭔가 맡기거나, 부탁하거나, 시킬 일이라도 있는 것이 아닐까.
갑작스러운 등장과 평소 그의 행동을 보면, 피처링 제안 같은 사소한 일로 직접 오시진 않았을 테고, 혹시 어디 기부 행사라도 잡혀 우리를 게스트로 섭외하려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런 내 예측은 딱 들어맞았다.
“어떻게, 다음 주에 공연 한번 같이 갈 생각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