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49
148화
“공연이요?”
대충 짐작한 대로 역시 선행길로의 초대였고, 나는 그에게 되물었다.
적어도 어떤 행사인지는 그 자리에서 들어야 하니까.
그러자 지현섭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해 주었다.
“네. 한국 소년 가장 돕기 행사가 있는데, 그곳 무대를 같이 꾸밀 팀이 좀 필요해서요. 하하. 럭키데이 때도 이런 행사 여러 번 갔었죠?”
“앗, 네. 기억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너무 부담스러워하지는 말고요. 페이도 적고, 행사 규모도 작아서 만약 남는 시간이 있다면 재능 기부하듯 오면 돼요.”
지 선배는 부담 없이 생각하라고 했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좋은 뜻으로 진행하는 작은 행사 무대인 만큼 꼭 최선을 다해 좋은 무대를 꾸며야 한다는 마인드로 접근할 필요는 없으니까.
마음이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나는 천천히, 그의 말대로 우리 일정에 부담스럽지는 않은지를 고민하려고 했는데, 멤버들은 무슨 열린 쌀자루 보고 날아드는 참새처럼 날개를 퍼덕이기 시작했다.
“오오오오!”
“무조건이죠!”
“자선, 복지 행사라면 저는 무조건 찬성입니다.”
“피가 끓어오르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우리 노래로 위로를!”
옥선이와 세명이 형, 주영이 형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끄덕끄덕끄덕끄덕.
금방까지 축 늘어진 텐션으로 날 걱정시키던 하은 형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반기는데?’
잠깐 당황한 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가 평소부터 행사에 목이 말라 있다는 사실과 좋은 일이라면 어지간하면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을 공유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좋아할 만한 일은 맞는 것 같다.
나도 밝게 웃으며 멤버들과 뜻을 함께했다.
“저도 좋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고 싶습니다.”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는 제안이라 바로 참여 의사를 밝혔다.
좋은 일을 한다는데 무슨 계산이 필요하겠는가?
‘더군다나 존경하는 대선배님께서 직접 섭외를 하러 오셨는데, 거절할 수 있을 리가.’
돈 한 푼 주지 않는다고 해도 무조건 가야 할 행사라고 생각했다.
“호호. 이거 참……. 고맙군요.”
지현섭 선배는 미소를 띤 채 우리의 참여를 반겼다.
그러고는 한 사람씩 악수를 건네고 말했다.
“그러면 자세한 일정과 러닝타임은 매니저님 통해서 보내 드리도록 할게요. 훌륭한 결정 내려 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이런 행사라면 무조건 가야죠. 언제든 불러 주십시오.”
“하하하. 네. 그러면 저도 슬슬 가 봐야겠네요. 오늘 무대 고생 많았고, 우리 삵 밴드 다음 주에 볼게요. 쉬세요.”
“감사합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나오지 마세요. 하하하.”
지현섭 선배가 웃으며 퇴장하고 우리는 자리에 앉아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와, 나이츠 지현섭 선배님이 직접 행사 섭외 주신 거야? 대박.”
“다른 것보다 자선 사업 같은 종류라 꼭 하고 싶었습니다.”
“지현섭 선배님이라면 모금 행사나 여러 봉사 활동으로도 유명하시니까 이상한 곳도 아닐 테고 말이야.”
“사이비, 다단계 같은?”
“응.”
사실 자선 행사의 경우 여러 복지 단체가 진행하고 행사의 성격도 여러 갈래이기 때문에 출연에 신중해야 했다.
간혹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종교 단체가 주최 측에 끼어 있다거나, 횡령과 각종 비리 범죄로 유명한 복지 재단의 행사에라도 나가게 된다면 좋은 마음으로 벌인 일이 오히려 비수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다만 섭외 주체가 지현섭 선배님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공중파로 나왔던 수재민 돕기 캠페인 공연이 기억나. 그때 지현섭 선배님 처음 봤는데, 엄청 멋있더라고.”
“어, 저도 봤습니다. 저희 초등학교 때였나?”
“맞아, 맞아. 태풍 때 물난리 났을 때.”
세명 형은 어린 시절 보았던 지현섭 선배의 봉사 행적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고, 워낙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일말의 의심 없이 따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도 심히 동감하는 이야기였다.
“럭키데이 활동 때 이런 류 행사 공연에서 뵌 적이 있는데, 진짜 참된 군자 같은 분이에요.”
난 아직도 격한 밴드 공연을 끝낸 후, 힘들지도 않다는 듯 도시락과 연탄을 배달하던 그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다.
그런 모습을 봤는데 그 태도를 본받으려는 일말의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그럼 소년 가장들을 위한 괜찮은 무대 만들어 보자고!”
“오오오!”
모두의 뜻이 하나로 모였다.
지속적으로 문화생활을 누릴 여건이 되지 않는 학생들은 여전히 많이 있다.
삶이 바쁘고 지치고 힘들어 죽겠는데, 영화, 드라마, 공연 등을 보러 다닐 시간이 있을 리가.
우리는 그들을 위로하는 좋은 무대를 꾸미는 한편, 다른 대중들의 주목을 유도하는 퍼포먼스로 그들에 대한 관심의 불씨를 살리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뭐, 말이야 이렇게 거창하지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최선을 다해 끝내주는 노래를 부르면 된다.
어떻게?
열심히 연습해서.
“그럼 공연 연습은 저녁에 남는 연습 시간에 하도록 할게요.”
“응? 왜?”
“지금 당장 최선을 다해 준비해도 모자라지 않아?”
물론 더 급한 일을 쳐 낸 후에 말이다.
“우리 스온텔 촬영도 해야죠.”
“아.”
새로 받은 행사는 행사고, 먼저 받은 일감부터 완벽하게 처리해야지.
* * *
이곳은 스온텔의 촬영이 진행되는 방송국 스튜디오.
칸막이가 서고, 방마다 테마가 달리 꾸며진 세트가 눈에 확 들어온다.
‘이거 매 화마다 인테리어 바꾸던가?’
생각해 보니 출연진이 바뀔 때마다 방의 구조나 인테리어도 바뀌었던 것 같은데, 하루씩 날 잡고 꾸민다고 해도 개고생일 것이 뻔히 보여 제작진에게 애도를 표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삵! 어서 오세요! 하하! 하하하!”
우리의 도착을 확인한 박경진 PD가 폴짝폴짝 뛰어오더니 기쁜 얼굴로 인사를 건네왔다.
우리 역시 반갑게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짐이 있으면 저쪽 파란 문 세트에 풀어 놓으시면 되고, 물이라든가 뭔가 필요한 것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하하하.”
바쁘고 고단한 촬영일임에도 그는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나는 궁금해하며 그에게 물었다.
“오늘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 봐요?”
그러자 그가 빙긋 웃으며 답했다.
“이야, 사실 어제 새벽에 걱정도 되고 긴장도 돼서 조금 늦게 잠들었는데, 아주 좋은 꿈을 꾸고 일어났거든요. 몇 시간 못 잤는데도 힘이 펄펄 나더라고요. 하하하!”
“꿈이요?”
“네. 파일럿이 대박이 터져서 정규 편성이 되고, 연말에 베스트 프로그램 상을 받는 꿈을 꿨죠. 하하. 개꿈이라도 기분은 좋더라고요!”
이럴 수가.
‘귀신.’
놀랍도록 정확한 감이다.
파일럿 대박 이후 정규 편성. 그리고 제작 당해에 시청자들의 무한한 지지에 힘입어 연예 대상에서 베스트 프로그램 상을 받는 것을 정확하게 예측해 내다니.
‘PD가 아니라 점쟁이가 되셨어야 했는데.’
회귀를 통해 그것이 전부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그에게 빨리 PD 때려치우고 신내림부터 받으라는 말을 꾹 참아야 했다.
대신 기획 단계에서부터 재미있을 수밖에 없도록 잘 만든 프로그램이니,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며 다소 상투적인 덕담을 했다.
그러자 박 PD는 더 크게 기뻐하며 웃었다.
“하하하. 그렇게 되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일단 여기 거실 세트에서 잠깐 기다리시죠. 카메라 돌아가기 전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 있어요. 저기 간식도 조금 챙겨 드시고…….”
“넵. 감사합니다.”
“오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장비들을 마련되어 있는 우리의 방송 공간에 놓아 두었다.
“야생 느낌 물씬 풍기네?”
“꾸미는데 고생들 많이 하셨겠다…….”
뒤와 좌우측은 벽이 서서 산속 풍경이 그려져 있고, 앞쪽에는 스트리밍 컴퓨터와 모니터, 캠, 마이크 등과 촬영 장비가 늘어서 있다.
“근데 이거 다른 분들 방송에 사운드 침투하지 않을까?”
아쉽게도 우리의 방송 세트는 촬영을 위해 스태프들이 그 장면들을 모두 눈과 기계에 담아야 하고 진행도 도와야 하기에 전면이 뻥 뚫린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시끄럽게 연주하면 옆 세트에서 진행되는 방송에 우리의 사운드가 넘어갈 것 같았다.
“아, 괜찮습니다. 현장 사람들 귀에는 잡히겠지만, 마이크 세팅만 잘하면 다른 방 시청자들에게까지 넘어가는 일은 없거든요. 준비 잘해 놨습니다. 연주하실 때는 여기 방음 커튼으로 주변에 벽을 세우시면 되고요.”
“오호. 감사합니다.”
그나마 다행히도 제작진분들이 밴드의 출연에 미리 대비해 기술적인 안전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고 한다.
컴퓨터와 마이크를 둘러싸는 커다란 방음 커튼은 물론, 옆 세트에서 다소 소란스럽게 굴어도 송출에는 방해되지 않도록 엔지니어링 점검을 모두 끝낸 상태라고.
‘죄송하다고 꾸벅꾸벅 인사 다닐 일은 없겠네.’
방송 도중에도 실시간 모니터링이 이뤄질 것이고, 만약 필요하다면 중간중간 컨트롤 타워에서 조정에 나설 것이다.
이 정도면 같이 촬영을 진행하는 출연진들에게 미리 조금 시끄러울 수 있다고 양해만 구하면 될 것이다.
“저기 소파에 앉아 있으면 되나요?”
“넵! 과자 조금 가져다드릴까요?”
“과자 드실 분?”
“난 됐어.”
“나도. 아까 밥을 많이 먹었더니.”
“저도 됐습니다.”
도리도리.
“그럼 주세요. 저희 혹시 물도…….”
“네, 네. 여기 앉아 계세요!”
“왜 물어본 거야?”
“저는 먹을 거라서.”
우리는 방송이 진행될 세트에서 대강의 악기 세팅을 해 놓고 거실 세트로 돌아와 중앙 소파에 앉았다.
조연출 형님이 준 과자나 까먹으며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출연자들이 한둘씩 도착하기 시작했다.
“와! 박 대표님! 안녕하세요!”
“아이고, 저를 또 어떻게 알아보시네요.”
“한식왕 너무 잘 봤습니다. 제가 요리를 잘하지는 못하는데, 방송으로 보는 것은 또 좋아해서요.”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외식 사업가이자 후일 요리 방송의 만능 치트키가 되는 인물.
박중원 대표가 가장 먼저 등장했다.
“허허허. 이거 영광이네요. 저도 삵 노래 재밌게 듣고 있어요. 전곡 재생으로.”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혹시 사인 좀…….”
나는 미리 준비한 사인지와 펜을 내밀며 그에게 사인을 부탁했고, 그는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다.
“제 사인 같은 건 받아다가 뭐에 쓰시려구…….”
“하하……. 제가 박 대표님 팬이라서요. 그리고 아마 얼마 지나지 않으면 방송 쪽에서 더 대박을 치실 것 같다는 느낌이…….”
“허허허. 설마요.”
실제로 그는 후일 본인이 메인으로 나서는 예능을 열 개도 넘게 만들게 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방송인이 된다.
그것도 오늘의 방송, 스온텔을 계기로 말이다.
“진짭니다. 저는 확신해요. 캐릭터도 워낙 좋으시고, 전문성도 뛰어나신데, 최근 트렌드를 보면 요리, 쿡방 분야는 점점 지금보다도 더 수요가 늘어날 겁니다.”
나는 웃어넘기려는 그에게 말했다.
“외식 사업 시장에 있어서는 시장 최고를 다투시는 박 대표님은 그야말로 최적의 조건을 갖춘 인물이니, PD님들의 러브 콜이 쏟아지겠죠.”
“말 들으니 기분이라도 좋네요. 허허허.”
박 대표는 내 장담을 그저 팬이라는 사람의 근거 없는 칭찬 혹은 덕담 정도로 여겼는지 허허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그가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도록, 더 밀어 대는 것을 멈추고 함께 웃으며 잡다한 대화를 나누었다.
전에 나왔던 프로그램에서 어떤 모습이 좋더라, 박 대표가 경영하는 프랜차이즈 중 어디를 가 봤는데 어떤 메뉴가 너무 맛있더라 등.
미래에는 익히 알려졌지만 지금 당장은 팬이 아니고서야 짚어 낼 수 없는 부분들도 굳이 입에 담았다.
“오오. 그 대패삼겹이라는 게 기름이 확 녹는 맛에 먹는 거거든요?”
“차돌박이 부위랑은 조금 다르죠?”
“그렇쥬. 이게 기름이 얼마나 단단하냐 차이인데…….”
과연 그의 관심 분야에 대한 말을 꺼내니 톤이 확 달라지는 것이, 기분이 매우 좋아진 듯했다.
이 정도면 환심을 사기엔 충분하지 않았을까 하며, 나는 그에게 물었다.
“혹시 오늘 방송 진행은 쿡방 형식으로 하실 예정이신가요?”
“그렇죠. 요리 파는 사람이 방송에서 요리 말고 보여 줄 게 또 없으니까.”
그리고 곧 내가 기대하던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혹시 촬영 중에 배고프면 시식하러 한번 와요. 한 그릇 빼놓을 테니까.”
보험을 드는 것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