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5
14화
딩동댕동…….
종이 울리고, 열심히 흐르던 수업에도 끝이 찾아온다.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뛰지 말고 안전하게 교실로 돌아가세요.”
지루한 강의가 마무리되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 인생을 모두 통틀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차렷. 선생님께 경례.”
“감사합니다.”
임시 반장의 구호에 따라 선생님께 고개 숙여 인사하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권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아, 잠깐. 루치아노 학생은 제가 시간 좀 뺏어도 될까요?”
“앗, 네.”
갑작스러운 호출인지라 무슨 용건인지 의문이 들었다.
곧 친구들이 모두 음악 교실에서 나가고, 나는 교탁 앞에 의자를 끌어 앉아 권 선생님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루치 학생……. 아, 다른 선생님들이 줄여서 부르더라고요. 저도?”
“네.”
“그래요. 루치 학생이 합주 실습 수업 개설 요청을 넣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맞아요?”
“네.”
대화의 주제는 새 수업 개설 요청에 관한 건.
권 선생님은 나름의 궁금증이 있었던 모양인지, 담당 교사는 누구인지, 수업 개설 신청 제도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는지 등을 내게 물어 왔다.
나는 대충 김하선 선생님이 직접 자신이 맡겠다며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학교 홈페이지를 자세히 살폈다 등의 답변을 날렸고, 권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이 반짝이는 것이 뭔가 굉장히 성실한 학생이구나, 같은 오해를 하게 된 것 같으나 손해 볼 것은 없으니 굳이 정정하지는 않았다.
“그렇군요.”
권 선생님이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어설프게나마 추측해 보는 건데, 루치 학생은 밴드를 생각하고 있나요?”
“네? 아, 네.”
조금은 뜬금없으면서도 놀라운 말.
‘도대체 어떻게 아신 걸까?’
물론 그 추측이 정확한 사실이었기에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이 내 의문을 풀어 주었다.
“그렇군요. 발성이 성악 전공자 출신답지 않게 락 느낌을 잘 살리고 있어서 그쪽에 뜻을 두었구나 했는데, 합주 수업을 열어 달라고 했다기에 생각해 봤어요.”
“아하.”
그러니까 정황이 그랬다는 이야기다.
‘딱 봐도 락덕질 좀 하던 놈인가 싶은 학생이 직접 신청서 써 들고 올라가 합주 수업 열어 달라고 했으니 이건 밴드 하겠다고 동네방네 소문이라도 내는 모습이었겠지.’
그나저나 의외인 점은 권 선생님이 고작해야 1학년 신입생이 벌인 일에 관심을 표하고 개인적으로 불러 사정을 묻기까지 하는 점이었다.
“그래서 밴드 구성은 완료된 상태인가요? 아니면 합주 수업에서 찾을 예정?”
“아, 반반입니다. 1반의 형재우, 진수현 학우와 저까지, 지금 세 명이 임시 합주 파트너로 모였습니다.”
“임시라……. 그래요. 형재우, 진수현, 김루치…….”
밴드의 멤버들을 듣고 그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기타, 베이스, 보컬 모았으니 드럼만 구하면 되겠네요. 아니면 키보드나 세컨드를 따로 쓰나?”
“아, 구성은 아직 계획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선은 스탠다드한 기타, 베이스, 드럼, 보컬로 먼저……. 어, 그런데 어떻게 아셨어요?”
반사적으로 대답하던 나는 순간 깜짝 놀라며 선생님에게 물었다.
어떻게 나, 재우, 수현의 포지션을 다 알고 있는 것인가?
“저도 나름 교사라고 수업을 진행하면서 눈에 띄는 학생들은 머릿속에 넣어 두고 다니는 편이에요. 올해는 특히 눈여겨볼 학생들이 많아서 힘들기는 했어도, 각자 개성들이 넘쳐서 기억이 잘되더라고요. 허허허.”
“오오오…….”
듣던 중 반가운 말이었다.
나를 그만큼 높게 평가해 주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것도 그 권인찬 선생님이!’
눈앞의 호랑이 노신사께서 앞으로 몇 년이 지난 후에도 몇 곡의 히트곡과 성공 앨범을 프로듀싱 해내는 어마어마한 커리어를 가진 노장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아주 좋은 상황이었다.
혹시 아는가?
제대로 된 앨범 구성을 위한 피드백이라거나, 연주 때의 사운드 체크를 부탁드릴 수 있을 수도.
“거기다가 루치 학생이 조금 오드 한 면이 있으니까요. 허허허.”
“오, 오드…….”
“굳이 그럴 필요 없는데 동굴에 머리를 들이미는 유형? A, B, C 세 단계를 거쳐야만 하는데 A에서 바로 C로 가는 유형? 첫 수업 때는 덕분에 꽤 재밌었지요. 오랜만에 수업 레퍼토리도 뒤집고 싶어졌고요.”
“하, 하하하…….”
방향이 묘하긴 했지만 좋은 인상이 남은 것 같기는 했다.
“그러면 남은 것이 드럼인데……. 제가 기억하는 학생들만 딱딱 맞춰서 모아 온 것을 보니 마지막으로 들어올 사람은 정해진 것 같군요.”
“네?”
“합주 실습 수업은 당연히 신청할 거라 생각되는데, 혹시 시간이 괜찮다면 1반 지라희 학생에게 한 조를 짜서 합주하지 않겠느냐 물어보세요.”
“아아?”
그러니까…….
‘교양 음악 강의를 하면서 괜찮은 퍼포먼스를 보여 주었던 애들이 몇몇 있고, 마침 그중 셋이 밴드로 묶였으니 남은 하나도 데려가라?’
뜻밖의 소득이다.
“네. 감사합니다.”
재우야 어릴 때부터 유명했던 천재로 지금 당장이라도 솔로로 나서도 반응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고, 수현이 역시 내가 본 바로는 그 형재우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의 재능을 자랑한다.
자화자찬인 꼴이라 부끄럽긴 하지만 나도 그 둘에게 밀릴 정도의 실력은 아니고.
‘하긴 경력이 10년이나 차이 나는데 밀리면 부끄러울 일이지.’
아무튼, 고마운 조언이다.
귀하디귀한 드러머이니 앞으로도 쭉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줄로만 알았는데, 선생님께서 끌어들이라 추천을 해 주시다니.
그것도 자신이 직접 손꼽은 에이스들 중에서 콕 집어 골라서!
“그래요. 이제 수업 준비하러 들어가세요.”
“넵. 가 보겠습니다.”
쓸 만한 정보를 얻어듣고 나는 교실로 향했다.
아무래도 프로를 지향하고 있다 보니 아무나 집어다 멤버로 앉히는 것은 꺼려지던 참인데 잘된 일이다.
이틀 후 시작될 자율 신청 전공 수업이 기다려졌다.
* * *
“아, 맞다.”
“아, 맞다? 얘가 정신이 있어, 없어? 그러면 준비도 안 한 거야, 지금?”
“네…….”
“자랑이다, 자랑이야!”
찰싹! 찰싹!
어머니의 강력한 스매싱이 내 등짝에 꽂힌다.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아니 당장 내일이 콩쿠르 날인데 옷 한 벌 안 꺼내 놓고 지금 컴퓨터나 들여다보고 있어? 얘가 미쳤어, 미쳤어!”
“아, 그냥 컴퓨터 아니고 내일 수강 신청할 화면이에요……. 이것만 보고 옷 꺼내려고 했어요…….”
“당장 가서 꺼내 와!”
“네…….”
콩쿠르 일정이 내일로 성큼 다가온 와중에 노래 외의 준비를 하나도 해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옷이야 그냥 대충 턱시도 있는 거 걸쳐 입으면 되는걸…….’
그래 봐야 알 만한 예고 학생들 몇 명 데려다가 수상자로 뽑아다 앉히고 상장이나 뿌리는 소규모 대회인데, 노래나 잘 부르면 되지 옷은 또 왜 그리 신경을 기울여야 하는지…….
참 귀찮았다.
“이거면 되겠지?”
나는 쓸데없이 커다란 옷장에서 커다란 턱시도 하나를 꺼냈다.
입어 본 지 거의 10년은 되는 것 같다.
‘집 나가고는 볼 일도 없었는데…….’
이 답답한 옷을 다시 입게 될 줄이야.
역시 인생 모르는 거다.
“음. 딱 맞네.”
어느새 옷방에 들어온 어머니께서 옷 핏을 살피고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정말 다행히도 다른 옷을 꺼내 입히고, 어떤 것이 제일 잘 어울리나 고르는 등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만일 그랬더라면 누적된 피로로 내일 대회를 날려야 했을지도.
“그럼 대회 준비 열심히 하고. 목 빨리 풀어야 하니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네. 주무세요.”
어머니가 아래층 안방으로 돌아가시고,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한 것도 없는데 괜히 피곤해지는 느낌이다.
‘그럼 내일은 연습실 못 간다고 해 놓고, 악보나 대충 다시 살펴보고 자야겠다.’
우선 재우와 수현이에게 우리의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합주는 다음 날 수업 시간으로 미뤄야겠다고 메시지를 날렸다.
오늘 재우의 촬영 스케줄 탓에 내일로 미뤘던 것인데, 내 대회 참가 일정으로 또 하루 미뤄야 하다니.
“기대했는데. 쯧.”
“뭐가?”
“악! 아악! 뭐야?”
스마트폰을 옆으로 던지고 중얼거리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 보니 단정하고 말쑥한 얼굴에, 나만큼은 아니라도 중학생치고는 큰 덩치의 소년이 눈에 들어온다.
“호세 너 이놈. 형님 방에 노크도 없이 들어와?”
똑똑.
“했어.”
“들어오고 나서 두드리는 건 노크가 아니란다.”
내 동생이자 미래 한국 성악계의 슈퍼스타, 김호세다.
“아무튼. 내일 대회 나간다며?”
“엉. 뭐라도 해야지.”
“성악 그만둔다면서 콩쿠르는 나가?”
“너 그거 부모님께는 말 안 했지?”
“응.”
“잘했어. 앞으로도 입 꾹 닫고 있으렴.”
뛰어난 재능과 나날이 성장하는 기량으로 한국 성악계의 희망이 되어 우리 부모님의 진노를 내게 향하지 않게 만들어 주던 방파제.
엄한 곳에 빠져 성악은 집어치운 형을 보고도 끝내 한 우물만 파던 외골수!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내가 락스타가 되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다.
“대중음악을 내가 잘 모르기는 한데, 성악이랑 병행해도 괜찮을 정도야?”
앞뒤 잘라먹은 문장 구성과 톡 쏘는 말투가 아주 그냥 일품이다.
물론 형제간에 통하는 마음이라는 게 있어 저 말 한마디가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릴 시간이 있느냐?’라는 의미의 걱정이라는 것쯤은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건 아니지.”
“그런데?”
녀석은 락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시간에 뭘 하고 있느냐는 뜻을 담아 나를 쏘아보았고,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동생의 의문을 친절하게 풀어 주었다.
“일단 첫째로 집을 나가겠다는 계획을 뒤집어엎었기 때문에 한동안은 둘을 병행해야 쓰겠다.”
“안 나가? 왜?”
“집밥이 그리울 것 같아서.”
반쯤은 사실이다.
열일곱 소년이 바깥세상에 무일푼으로 튀어나와 먹고 살 일을 찾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당시 배곯으며 기타 부여잡고 노래하던 것을 떠올리면 아직도 눈물이 글썽이면서 라면 한 젓가락이 당길 정도다.
“적당히 성악 열심히 하는 척하다가 내가 하고 싶은 분야에서 성적을 만들어 내면 당당하게 허락 구하려고.”
“흐응…….”
동생에게는 뭔가 적당적당한 계획으로 들렸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이게 최선이다.
부모님과 동생을 먼 곳에 두고 혼자서 실패에 맞서기에는 나는 외로움이 너무나 무서웠다.
“둘째로…….”
“둘째로.”
농담 섞인 첫 번째 이유에 이은 두 번째 이유.
“그 두 개를 동시에 해도 괜찮을 정도로 네 형이 노래를 좀 잘한단다.”
이건 진담이다.
내가 성악과 대중음악을 가리지 않고 모두 잘 소화해 낼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이 두 분야를 병행하는 이유가 되기엔 조금 어설플지언정 그것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유지하게 만들기엔 충분하다.
“엥. 근자감 무엇.”
“보면 알겠지. 내일 방과 후에 보러 오든가.”
“시간 없어. 레슨 가야 돼.”
“음? 아버지도 내일 심사 들어오신다는데?”
“나 정찬성 교수님한테 레슨받은 지 1년 넘었거든?”
“아, 그랬나?”
“관심 좀 가져라.”
하긴.
우리 아버지께서 남들 가르치는 데에 소질이 없으시긴 하다.
‘본인이 워낙 천재라서 그런지 자신이 설명해 준 걸 제자가 한 번에 못 해내면 이해를 못 하시니…….’
나도 어릴 때 꽤나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로서는 좋은 분이지만 스승으로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분이시니, 차라리 외부에서 레슨을 받는 쪽이 더 좋을 것이다.
“너야 신경 안 써도 알아서 잘하잖아.”
“됐어. 얼른 자.”
“오냐. 너도.”
잠깐 쓸데없는 얘기나 하다가 곧 동생을 돌려보냈다.
아직 키가 한참 커야 하는데 밤늦게까지 깨어 있게 만들 생각은 없다.
‘들으면서 자자.’
나는 스마트폰으로 내가 부를 노래인 ‘별은 빛나건만’을 재생해 둔 채 잠에 빠져들었다.
‘중간만 가자, 중간만.’
마음을 편하게 먹고, 몸을 이완시킨다.
목적은 처음 그대로.
부모님께 내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대상, 김루치아노 학생! 큰 박수로 모시겠습니다!”
“저요?”
큰 실수를 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