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54
153화
“자, 여기서 간장으로 간을 잡는데, 아까 소금과 간장을 먼저 쳐 놨죠? 간은 먹어 보면서 맞추는 겁니다. 안 그러면 엄청 짜고 그래요.”
슥슥슥, 슥슥슥슥.
나는 박 대표의 설명을 그대로 스케치북에 받아 적고, 카메라를 향해 들어 보여 주었다.
그렇다.
박 대표의 임기응변이란 바로 본인이 요리를 계속해서 진행하며 설명을 하면, 내가 그것을 듣고 간략하게 스케치북에 받아 적어 화면에 보여 주는 것.
회귀 전 그가 음소거 페널티를 돌파한 방법과 매우 유사한 방식이었다.
이런 그의 대처는 매우 간단하고 우스웠지만 그 효과만큼은 훌륭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루치 왜 자기 방송은 안 하고 여기서 조수 하고 있냐고 ㅋㅋㅋㅋㅋㅋ
-뜬금 콜라보 ㅋㅋㅋㅋㅋ
밥 얻어먹으러 왔던 손님이 보조 요리사가 되어 버린 기묘한 상황에 시청자들의 반응도 묘하게 좋았다.
비록 소리가 나지 않고 있는 화면이지만, 상황이 워낙 우습게 돌아가고 또 신선했기 때문에 음소거라는 강력한 공격의 가치에 비해 이탈률이 매우 적었다.
아니, 오히려 시청자 수가 더 늘어나고 있었다.
“음! 이 정도면 간은 딱 됐네요. 완벽합니다.”
슥슥, 슥슥슥.
‘간, 완벽. 맛보면서 하기.’
내가 박 대표의 말을 옮겨 적어 보여 주니 또 시청자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박주부님 표정은 왜 저랰ㅋㅋㅋ
-마네킹이냐고 ㅋㅋㅋㅋ
나도 가만히 그의 지시를 듣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나는 박 대표에게 묘하게 어색하고 경직된 표정으로 엄지손가락을 척 하고 들고, 조리 과정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등, 최대한 위화감 넘치는 동작과 표정을 보여 줄 것을 주문했다.
나름 웃음을 주기 위한 연출을 가미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큰 호응을 낳았다.
-나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아 ㅋㅋㅋ
-러브하우스 집 고쳐주는 아저씨들이 잘 짓는 표정 ㅋㅋㅋㅋㅋ
-세상 어색한 미소 ㅋㅋㅋㅋㅋ
다소 험상궂은 얼굴에 떡두꺼비 같은 인상의 무서운 아저씨가, 무슨 초보 홈쇼핑 모델처럼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자기 요리에 따봉을 날리는 모습이라니.
‘개멋있어.’
딱 내가 원하던 B급의 우스운 감성이 제대로 나온다.
짧은 시간에 대충 말로 설명한 것을 그대로 소화하는 박 대표의 연기 실력이야말로 일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훌륭한 시청자 반응과 달리 나는 속으로 큰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래도 되나 모르겠다…….’
양심의 가책이라고 할지, 뭐라고 할지.
어차피 내가 아니었어도 이 위기를 훌륭하게 극복했을 박 대표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슴 한구석이 콕콕 찔리는 것을 느꼈다.
물론 어색한 표정과 제스처 같은 소소한 아이디어를 더하기는 했지만, 겨우 그까짓 것이 도움이 되면 얼마나 되냐 싶은 것이다.
‘애초에 스케치북 진행으로 나름 명장면도 뽑아냈던 분인데……. 너무 숟가락 하나 턱 얹는 건 아닌가 싶네.’
당초에는 박 대표가 만들어 내는 흐름에 살짝 발을 담가서 노출 빈도나 조금 올리려는 속셈이었는데, 너무 깊게 관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내 힘은 들이지 않고, 박 대표의 능력에 온전히 기대서 말이다.
“자, 루치 씨. 이것 좀 맛봐요.”
“앗, 네.”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는데 박 대표가 숟가락으로 국물을 살짝 떠서 내게 들이민다.
나는 벌레를 받아먹는 아기 새처럼 그것을 호로록 들이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었다.
슥슥슥슥.
딱히 큰 욕심을 부릴 타이밍은 아니었다.
내가 욕심을 내던 아이템은 어차피 샌드위치였고, 이번 것은 그냥 맛보기였기 때문에 큰 리액션도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는 스케치북에 내 평가를 적었다.
오. 존맛.
사실 나름 고민과 상념에 잠겨 있느라 뭔가 임팩트 있는 리액션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채팅창의 상태가 이상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맛있는 거 맞냐고 ㅋㅋㅋㅋㅋㅋㅋ
-표정 변화 없이 무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임ㅋㅋㅋㅋㅋ
-오. 존맛.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라?’
나는 당황스러운 감정을 애써 숨기며 상황을 살폈다.
‘왜 좋아하지?’
계속해서 아까처럼 박 대표의 설명을 스케치북에 적어 시청자들에게 보여 주며, 천천히 채팅창을 읽어 내려갔다.
-무표정 대칭찬 ㅋㅋㅋ
-사이보그식 극찬 ㅋㅋㅋㅋㅋ
-오. 존맛.
-소리 났으면 분명 오토튠 발려 있었을 듯 ㅋㅋㅋㅋ
-로봇인 줄 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아, 방금 그게 제대로 먹혔구나.’
전혀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딱히 큰 리액션이 필요한 타이밍인 것 같지도 않았고, 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상황도 아니었고, 속으로 크게 고민을 하던 와중이라 그냥 무미건조한 모습을 보였을 뿐이다.
그런데 시청자들에게는 그 로봇 같은 무표정한 모습과 존맛 같은 줄임말 신조어를 써 가며 한 찬사가 미묘하게 조합되며 재밌게 보였던 것이다.
‘이거다.’
나는 순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박 대표의 등에 업혀서 가기만 하는 것이 아닌, 그의 방송에 나름의 재미를 주며 기여하면서도 내 분량은 챙겨 갈 수 있는 방법.
‘로봇 리액션. 이걸로 간다.’
짧은 시간 안에 임팩트를 주기 위한 무미건조한 극찬 콘셉트였다.
“소리 돌아왔습니다.”
“오, 그래요? 어이구, 이거 오래가네요. 나는 잠깐 먹먹하게 있다가 진행하면 될 줄 알았는데, 여러분 러브 액추얼리 아시죠? 무슨 그 영화처럼 스케치북으로 진행을…….”
곧 페널티가 해제되고, 방송에 소리가 돌아왔다.
-오 들린다!
-음소거 페널티 너무 센 것 같음 ㅋㅋㅋ
-아 스케치북 개웃겼는데 ㅋㅋㅋㅋㅋ
-ㄹㅇㅋㅋ
음소거가 해제되자마자 박 대표와 시청자들 간의 직접 소통이 재개되었다.
박 대표는 만들던 닭도리탕을 완성시켜 플레이팅까지 완료한 후, 화면에 잘 보이게 테이블에 올렸다.
“자, 우리 루치 씨. 샌드위치 하나 얻어먹으러 와서 갑자기 조수 노릇까지 하게 되셨는데, 제가 보답은 드려야지. 이 닭도리탕 좀 먹어 봐요.”
박 대표가 내게 숟가락을 건네며 말했다.
각이 날카롭게 섰다.
‘표정 관리, 표정 관리.’
나는 단단하게 마음먹고 테이블 앞에 서서 닭도리탕을 바라보았다.
빨간 양념에 고기 위에 좌르르 흐르는 윤기.
보기만 해도 군침이 절로 나왔지만, 무표정을 그대로 유지했다.
로봇 리액션.
그것이 내가 박 대표의 방송에 기여하면서 분량까지 당당하게 받아 갈 길.
텁.
국물과 당근 조각, 작은 고기를 함께 떠서 입에 넣었다.
맛있다.
당장 밖에 나가서 돈을 주고 사 먹어도 될 맛이다.
‘아니, 당연한 말이구나.’
애초에 외식 프랜차이즈 업계의 거물인 박 대표이니, 당연히 그런 맛이다.
최소 한도가 명확하게 정해진, 딱 이 정도만 하면 돈 내고 먹을 만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그런 요리.
나는 고기를 꼭꼭 씹어서 삼킨 후, 무표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말했다.
“오. 맛있네요.”
그리고 채팅창이 터져 버렸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발 맛있다는 티 좀 내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표정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
-생긴 건 진짜 잘 먹게 생겼는데 왜 저러냐고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빠른 속도로 시청자들의 채팅이 올라가는 것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와, 다행이다.’
순간 영감을 받아 행동으로 옮기기는 했지만, 확신이 없는 계획이었다.
정말 다행히도 내가 보여 준 로봇 리액션이라는 것이 시청자들의 입맛에 꼭 맞았고, 그간 진행되었던 방송을 통해 시청자 민심이 좋았기에 반응 역시 훌륭하게 잘 뽑혔다.
슥.
살짝 눈을 돌려 상주 제작진들의 얼굴을 살펴보니, 그들도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편집도 힘 빡 주고 해 주실 것 같은데?’
원래부터 방송에 나오는 장면들을 기묘하고 우습게 편집해서 도대체 어디서 웃지 않아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평가까지 들었던 스온텔 제작진이다.
내 리액션이 상당히 괜찮은 반응을 얻었기 때문에, 그들도 내 모습을 소스로 삼아 이리저리 가지고 놀기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으리라.
작전대로였다.
‘좋았어. 분량 제대로 확보!’
처음부터 박 대표의 곁에서 기웃거리며 어떻게든 한 발 걸쳐 보려고 했던 이유, 1위를 할 것이 분명한 그의 방송을 통해 분량을 얻어 가겠다는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한 것으로 보였다.
“아니, 이게 맛있다는 사람 표정 맞아요? 더 먹어 봐요, 더.”
박 대표 역시 반응이 좋은 것을 확인했는지 괜찮은 호응으로 장면을 조금 더 길고 재밌는 티키타카로 이어 주었다.
나는 전에 만들었던 음식들까지 하나하나 맛보면서 계속해서 무표정한 극찬을, 너무 같은 반응이라 시청자들이 크게 질리지 않도록 아주 살짝씩 표현을 바꿔 가며 던졌다.
“오. 좋네요.”
“와. 대박.”
-ㅋㅋㅋㅋㅋㅋㅋ
-표현력 제발 ㅋㅋㅋㅋㅋㅋㅋㅋ
-노래에만 인생을 바친 그는 음식을 맛있게 먹을 줄 모르게 되었다.
-내 식욕 어쩔거야 ㅋㅋㅋㅋㅋ
아까 들렀다 왔던 시아는 꽤 오버스러운 리액션으로 펄쩍펄쩍 뛰었고, 상주 작가님은 또띠야 맛을 보고 놀란 표정으로 오물오물하는 것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런 그들을 보다가 무표정과 힘없는 톤으로 너무 맛있다고 말하는 내 모습을 보니 그 괴리감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크……. 루치 씨 무슨 장승이야, 돌하르방이야? 그럼 이것도 먹어 봐요. 삵 양반들 가져다 먹으라고 빼 둔 샌드위치인데, 이것도 내가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했거든? 자, 자.”
나는 식빵 사이에 참치와 달걀, 맛살 따위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받아 들고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와……. 겁나 맛있다.’
들어간 내용물은 별로 특별할 바 없었다.
참치, 으깬 달걀, 다진 당근, 맛살, 머스터드 소스 등.
집에서 만들기에도 충분한 재료였다.
그런데도 시중에서 사 먹는 음식들만큼, 아니, 그보다 입맛에 잘 맞았다.
“음……. 냠냠냠…….”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없이 샌드위치를 물어뜯었다.
곧 네모난 샌드위치가 흔적도 없이 내 뱃속으로 사라졌다.
‘어라?’
샌드위치를 다 먹고 나서야 나는 살짝 불안감을 느꼈다.
‘콘셉트 완전히 무너졌는데?’
입맛에 맞는 음식이어서 너무 신을 냈다.
표정도 흐트러졌고, 먹는 데에 집중하느라 멘트도 제대로 못 쳤다.
그간 콘셉트를 지켜 가며 유지했던 시청자들의 몰입을 제대로 방해한 것이다.
그런데.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눈 휘둥그레 ㅋㅋㅋㅋㅋㅋㅋㅋ
-겁나 맛있나 보다
-와씨 나도 저거 해먹어본다.
-참치 샌드위치 진짜 제대로인가 보네
시청자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어? 왜지?’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곧장 입을 열어 멘트를 뱉었다.
“이거 진짜 맛있습니다. 제 취향에 딱 맞아서 말도 없이 먹었네요.”
다시 표정 관리를 시작하고, 고저 없는 톤을 유지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금방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 정신 차리고 다시 로봇 행세를 해보는 김루치
-이미 늦었지롱
-눈 크게 뜨고 샌드위치 학살하는 거 캡처 땄음 ㅋㅋㅋ
다만 그 반응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 좋았다.
“어이구, 드디어 제대로 된 리액션이 나오네. 그렇지. 이 샌드위치를 먹고도 무미건조하게 그럴 수는 없거든요.”
-ㄹㅇㅋㅋ
-로봇 김루치 선생도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샌드위치 ㅋㅋㅋ
그간 이어 왔던 콘셉트가 깨지며 거기에 몰리던 관심이 내가 먹은 샌드위치로 단박에 옮겨갔다.
로봇 리액션이라는 콘셉트가 깨졌다는 사실에 대한 불만보다는, 샌드위치가 얼마나 맛있으면 로봇도 감정을 되찾고 저렇게 탐욕스럽게 샌드위치를 학살했겠느냐는 반응이 나온다.
캐릭터 하나를 단기간에 구축하고 그것을 한 방에 무너뜨림을 통해, 내 손으로 명장면을 제대로 뽑아낸 것이다.
‘어……. 개이득?’
운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