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58
157화
“선은 뒤로 따로 모아서 내밀어 주시고, 저쪽 스피커 좀 옮깁시다.”
“어디까지 갈까요?”
“앞으로 살짝만 당겨 볼게요.”
이곳은 서울의 모 광장.
“텐트! 텐트! 줄 어디다 놨어요?”
“저기 상자에!”
“꺼내 놓지!”
“각자 가져가기로 했잖아요!”
예정된 공연을 위한 무대 정비와 동시에 바자회와 기타 다른 행사를 위한 준비로 바쁜 분위기이다.
“저희 장비 옮겨 놓을 곳 따로 있을까요?”
“앗, 네, 네. 여기 삵 분들 대기 공간! 텐트 안내해 드려!”
“넵!”
우리 역시 그 바쁜 공간 한가운데에 뛰어들어 무대를 꾸밀 준비를 해 나갔다.
“무대 아래쪽에 대기 텐트. 바로 올라가고 내려올 수 있어서 좋다.”
“장비 올리고 내릴 때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우리가 설 무대의 바로 옆 공간.
사방이 뚫려 훤히 보이는 텐트가 바로 초청 무대를 꾸밀 가수들의 대기 공간이다.
프라이버시가 지켜지지 않는 환경이지만, 오히려 관객들의 얼굴이 보여서 좋고, 무대에 오가기가 수월해 좋았다.
“정비 타임에 행사 MC가 시간 끌어 준다고 했지?”
“네. 시간 소모는 얼마든지 해도 좋다고 미리 공지해 주셨어요.”
“MC가 누군데?”
“김승우 배우가 온다던데요?”
“와, A급 배우. 이따가 사인받아야지.”
“그럴 시간도 없을걸요? 우리 행사 마치고 바자 돌아다니다가 곧장 올라가야 해서…….”
“아. 까비.”
규모가 그렇게 큰 행사는 아닌지라, 인력이 꽤 모자랐다.
“자, 잡담은 일하는 중간중간 하시고, 천천히 무대 구조 보면서 장비 올릴 길 좀 맞춰 볼게요.”
“예압.”
우리도 장비를 대기 공간에 놓아 둔 뒤, 무대와 텐트를 오가며 동선을 점검하고 미리 맞추어 둔 움직임을 보이기 적합한지 등을 살폈다.
이후에 리허설이 있을 예정이지만, 인력이 많지 않기 때문에 미리 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끝내 놓고 리허설 타임에 있을 부담을 줄이려는 것이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거지.’
가뜩이나 사람도 적은데 정신없을 리허설 무대에서 모든 것을 점검하고 맞추기보다, 시작하기 전에 살필 수 있는 것을 미리 살펴 서로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다.
“루치 군. 일찍 왔네요?”
“앗, 선배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허허허. 그래요. 정비들 하고 계시군요.”
무대를 살피던 중, 우리는 우리에게 말을 걸며 다가오는 지현섭 선배를 보며 인사했다.
기타 가방을 등에 메고, 한 손에는 행사의 표어와 로고가 그려진 풍선을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이 그렇게 카리스마 넘쳐 보일 수가 없었다.
대체 왜인지 모르게 멋진 모습이다.
“이거, 역시 삵을 모셔 온 것이 잘한 일이었구나 싶네요. 부지런하고, 무대에 열심히고. 아주 좋아요.”
“하하. 감사합니다.”
그는 공연 시간 전 일찍 도착해 미리 무대 준비를 위해 이런저런 점검을 진행하던 우리를 칭찬해 주었다.
나는 멋쩍어 머리를 긁적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잠시 안부 인사를 나눈 후, 그가 말했다.
“그래요. 그러고 보니 중요한 공지를 전해 주러 왔는데, 내가 다른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을 많이 끌었네요.”
“중요한 공지요?”
“네. 사실 오늘 공연에 소년 가장 아이들이 초청되어 오게 되었거든요.”
“엥?”
지 선배님이 전해 준 소식은 꽤나 놀라운 것이었다.
“원래 애들은 없이 홍보 행사만 하는 거였잖아요?”
“그렇지요……. 그런데 행사 주최 측에서 그 아이들한테 공연 같은 걸 볼 기회가 얼마나 있겠냐고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네요.”
“허…….”
썩 기분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애들을 장식품으로 써?’
이런 류의 행사에 후원의 당사자인 아이들을 동원해 객석을 채운다는 것은 그들을 이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높으신 분들이 원한 건가?’
처음에는 분명 행사를 주관하는 복지 재단 측 인원만 참석하고, 후원을 받는 아이들은 인터뷰를 해야 하는 몇과 홍보 영상에 출연한 몇을 빼면 그냥 지역 방송을 통해 송출되는 공연이나 보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현장 무대에 와서 공연을 구경하게 되었다?
구색이나 맞추자고 애들 데려다가 홍보 풍선 역할을 시키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나는 얼굴을 찡그린 채 고민에 빠졌고, 그런 내 표정을 본 듯 지 선배님이 말했다.
“너무 그럴 것도 없어요. 시간이 되는 아이들만 데려오기도 했고, 나름 공연을 기대하고 있으니 최선을 다한 무대를 보여 줘야 해요.”
“앗, 네.”
다소 맘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다 때려치우고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제대로 해야겠네요.”
“허허허. 그렇지요.”
비싼 돈 들여 콘서트에 가거나 각종 무대를 보러 다니는 것이 아까울 그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심어 주는 것이다.
“세트리스트 변경은……. 자율적으로 해도 괜찮겠죠?”
“네. 삵이야 MR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러닝 타임만 맞는다면 얼마든지 괜찮지요. 그렇지 않아도…….”
그는 내 물음에 단번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고는 말을 이었다.
“아이들을 위해서 조금 더 희망적이고 밝은 무대를 만들어 달라고 하려고 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매일매일이 지루하고 피곤한 아이들이니…….”
“네. 맡겨 주세요.”
또 희망차고 밝은 노래라면 우리 삵을 빼놓을 수 없지.
지루하지 않게, 즐겁게.
뜬금없이 행사가 있다며 후원 홍보에 동원된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생각이다.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잠깐 멤버들과 회의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허허. 그래요. 고생하세요.”
“넵. 섭외 감사합니다.”
“내가 더 감사하죠. 이렇게 와 줬는데. 나중에 봐요.”
행사의 중요한 요소가 변경되었다는 공지를 듣고 지 선배를 떠나보낸 후, 나는 멤버들과 함께 대기 공간에 다시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
“저희 공연 세트리스트 좀 바꿨으면 해요.”
“찬성.”
“저도 찬성입니다.”
특별 주문을 받았으니 그에 맞는 메뉴를 제시해야 한다.
타이틀곡을 위주로 꾸린 기존의 세트리스트를 파기하고, 희망적이고 힘찬 노래로 세 곡을 부르기로 했다.
“나빌레라까지 버려?”
“흥겹긴 한데 조금 잔잔한 느낌이라……. 내용 자체는 괜찮을 것 같긴 해요.”
“그렇게 늘어지는 곡은 아니니까 괜찮겠지, 뭐.”
“애초에 타이틀이라서 안 부르기도 조금 그렇습니다. 관객들에게 익히 알려진 곡이니 호응도 편할 거고요.”
“그것도 그렇네요…….”
우리는 한참을 원래 준비했던 레퍼토리의 분위기를 살피며 뺄 곡과 새로 넣을 곡을 고민했고, 결국 세 곡을 확정 지었다.
“여행길, 나빌레라, 포효 순으로 갈게요.”
“괜찮네.”
빠르게 달리는 노래 하나, 전 곡에 비하면 살짝 잔잔하지만 통통 튀는 느낌의 노래 하나, 그리고 다소 느리지만 힘 있고 강한 어조로 의지를 설파하는 노래 하나.
“딱 적절한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 시간을 딱 맞춰서 진행할 수 있는지와 톤 배열, 노래 자체의 어울림 등을 따졌을 때 우리가 낼 수 있는 최선의 수였다.
우리 무대를 구경할 소년 가장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목적의식에도 부합하고 말이다.
“오케이. 그럼 대충이나마 맞춰 보자.”
“여행길이랑 포효는 라이브 무대에서 한 적이 없으니 조금 걱정되긴 하네요.”
“그……. 연습 때……. 순서…….”
“아? 그렇죠. 이 순서로 진행해 본 적도 없죠, 참.”
다만 라이브에서는 보여 준 적이 없는 곡들이기도 하고, 여행길, 나빌레라, 포효 순서로 레퍼토리를 짜서 연습해 본 적도 없어서 걱정이 되기는 했다.
뭐, 그래도 어쩌겠는가?
상황은 닥쳤고 해야만 하는데 말이다.
“그러면 연결 없이 여기서 한번 쭉 연주해 볼까요?”
“가볍게?”
“가볍게.”
“오케이.”
우리는 각자 장비를 꺼내 들고, 앰프에 연결하는 일 없이 그냥 가볍게 연주하며 합을 맞춰 보기로 했다.
너무 소란스럽지 않게, 딱 우리의 준비 정도를 확인할 수 있을 만큼만.
기타와 베이스는 그대로 줄을 조율하고, 드러머인 옥선이는 빈 하드케이스 하나를 들고 자리에 앉는다.
“그거 쓰려고?”
“엉. 킥, 햇, 스네어 소리 대충 따라만 할게.”
옥선이가 드럼 스틱을 들고 케이스를 살짝 내려쳐 소리를 들려주었다.
툭툭. 토독. 딱! 딱!
“이런 느낌.”
“오. 좋네.”
음의 구분은 거의 가지 않았지만, 그 뉘앙스는 귀에 확실히 꽂힌다.
“아, 아. 됐어요?”
“준비, 준비.”
“오케이. 살살 갈게요.”
“핫, 둘, 셋, 둘, 둘, 셋!”
툭툭, 투두둑, 토도도독! 딱! 챙!
케이스의 지퍼 부분을 손으로 후려 심벌 소리까지 내며, 옥선이가 드럼 소리를 흉내 내고, 우리도 연주에 진입했다.
“난, 계속 달려갈 거야. 막을 테면 막아 보시지.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달릴 거야, 달려갈 거야.”
펄쩍펄쩍 뛰듯, 박자 위를 빠르게 타도록 소리를 낸다.
물론 마이크도 쓰지 않고, 주변을 소란스럽게 만들지 않도록 잔뜩 죽인 소리이지만, 그 안에 담긴 에너지는 잘 전달되도록 조절해 내뱉었다.
툭툭툭툭툭툭툭툭, 툭! 투두두둑!
“싸우고, 욕하고, 떠들고, 작은 삵을 무시하는 손가락질에, 침울해서 멈출 수는 없어! 오오, 오!”
달린다.
그 한 단어를 표현하기 위한 3분이다.
그저 달린다는 말이 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는 연주가 우리 밴드의 손끝에서 태어난다.
“난, 계속 달려갈 거야. 제발 날 막으려 하지 마. 평화로운 들판이 나올 때까지, 달릴 거야, 달려갈 거야. 날 막지 마. 달릴 테니까. ”
1절의 끝과 함께 강제로 클린톤 연주만을 하게 된 세 사람이 화려한 간주를 피워 냈다.
디잉, 딩딩딩딩 딩 디이잉……. 디리리링 디리리링 디리리리링, 디디딩!
지판을 톡톡 두들겨 나오는 하은 형의 기타 소리가 경쾌하게 흐른다.
그 뒤를 굳건히 받치는 세명 형의 리듬과 주영 형의 베이스 역시 일품이다.
‘괜찮네.’
라이브에서 한 번도 선보인 적 없는 곡이지만, 애초에 그렇게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그간 연습에 묻혀 지냈던 나날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듯, 우리는 완벽한 합을 만들어 냈다.
슥.
나는 손을 들어 멤버들에게 보였다.
딩 딩 딩 디이이잉, 딩 딩 딩 디이이잉! 디리링!
그러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간주가 끝나는 타이밍에 맞추어 더 연주를 진행하지 않고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오케이. 거의 완벽했어요.”
“진짜?”
“넵넵. 미리 힘 뺄 이유도 없으니까, 이따가 리허설에서 첫 곡을 끝까지 가기로 하고, 바로 다음 곡으로 넘어갈게요. 사람이 없는 거지, 리허설 시간은 충분하다고 했으니 괜찮을 거예요.”
“오케이. 그럼 다음도 1절만?”
“넵.”
지금은 연습을 하는 시간이 아닌 점검을 하는 시간.
너무 힘을 들여서 점검을 진행하는 것은 오히려 좋지 않다.
“다음, 나빌레라. 갑시다.”
“하낫, 둘, 셋, 넷!”
두둑, 투두두둑!
우리는 가볍게 1절씩을 짧게 맞추며 합의 모양을 맞추었고, 상태는 완벽하다는 것을 확신한 후 멈추었다.
전 곡의 끝에서 다음 곡의 시작이 매끄럽게 이어지는지는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되겠다, 이건.’
감이 확 왔다.
이번 무대도 분명 끝내주게 멋질 것이라는 감이 말이다.
“삵 분들, 리허설 진행해도 될까요?”
“아, 저희 차례인가요?”
“원래 앞에 댄스팀이 있는데, 리허설이 일찍 끝났어요.”
“아하. 그럼 시간을 조금 넉넉하게 써도 되겠네요?”
“네. 괜찮습니다. 바로 무대 위로 가실게요.”
“넵!”
우리는 무대 위로 올라 우리가 연주를 할 공간을 다시 확인했다.
오르는 동선, 위에서의 움직임.
맞춰 볼 것은 다 맞춰 봤다.
‘어디 한번 봅시다.’
이제 남은 것은 좁은 무대에서 넓은 관객석을 희망으로 가득 채우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