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70
169화
“근데 회사는 어쩐 일이야?”
나는 덤벼들었던 라희를 옆에 곱게 세워 두고 물었다.
그러자 수현이가 답했다.
“응. 복귀 일정 구체화 들어가는 김에 대표님도 뵙고, 루치도 보러 왔지.”
“아하. 계약 효력도 정리해야겠네, 생각해 보니.”
“그것도 있고. 헤헤.”
국내로 돌아온 김에 회사에 와서 정리하고 공지도 들을 일이 꽤 있다.
아마 굳이 또 앞으로 지겹게 마주쳐야 하는 내 얼굴도 볼 겸 삵의 모든 일정이 끝나는 날에 맞춰서 온 듯했다.
“점심은?”
“아직. 안 먹었으면 같이 먹으려고 했지!”
“그럼 잠깐만 기다려. 짐 챙겨서 나가자.”
“이응!”
나는 밝게 대답하는 라희와 수현이를 그대로 두고, 다시 삵 멤버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런데.
“와…….”
“러, 럭키데이 다른 멤버들…….”
“연예인이다…….”
“아니, 님들?”
그들은 얼이 빠져 있었다.
특히.
“저, 호, 혹시……. 사인 좀 부탁드려도…….”
“앗, 네! 주세요!”
원래 럭키데이의 팬이었다는 주영 형은 더더욱 흥분해 있었다.
“음……. 일단 저도 럭키데이 멤버인데……. 그것도 프론트맨…….”
“너는 뭔가 익숙하잖아. 그, 유명 연예인을 만났다는 설렘이 없다고 해야 하나?”
“형들이랑 옥선이도 이제 유명 가수잖아요? 차트 1위도 했고.”
“그게 그거랑 다르지, 인마. 우리는 삵이고, 저기는 럭키데이잖아. 급이 다르다고.”
“아니, 아니…….”
항상 침착하고 냉철한 세명 형이 그러는 것을 보면 놀리는 것 같긴 한데, 반쯤은 또 진담으로 들린다.
하긴, 나한테는 너무나 익숙한 저들이 삵 멤버들에게는 신기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특히 라희와 수현이는 그동안 바빠서 얼굴도 마주친 적이 없으니까.
“저 애들이랑 점심이나 같이 하려고 하는데, 다른 분들은 어쩌실래요?”
“우린 따로 먹지, 뭐. 오랜만에 만났을 거 아니야? 저기 수현 씨는 해외에 계셨다며?”
“헤헤. 그렇죠. 그러면 저 먼저 나갈게요.”
“응. 맛있게 먹고. 이따 저녁 때 쫑파티는 올 거지?”
“당연하죠. 다 끝났으니 고삐 풀고 먹고 마시자고요.”
“좋지.”
나는 세명 형에게 잠시 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짐을 챙겼다.
“나 먼저 가요! 이따 쫑파티에서 봐요!”
“응? 이따 봐!”
“다녀오십시오.”
“가자. 밥 먹으러.”
악보와 가벼운 마이크 이펙터 등의 장비를 챙겨 들고, 나는 라희, 수현이와 함께 방송실을 빠져나갔다.
“뭐 먹을까?”
“아, 잠깐만. 재우도 온다고 했는데?”
“어……. 우, 우리보다 먼저 온다고 했는데…….”
“응?”
무엇을 먹어야 할지 행선지를 정하려고 하는데, 이상한 말이 들린다.
“재우? 오늘 휴가래?”
“응. 밀린 연가 쓴다고…….”
“근데 어딨어?”
“모르겠어…….”
소식도 없던 재우 녀석이 라희나 수현이보다 먼저 온다고 했다는 소식.
잠깐 당황했지만 금방 이성을 되찾은 나는 녀석이 있을 만한 곳을 떠올렸다.
아니, 사실 고민해서 떠올릴 것도 없다.
“거기 있겠지.”
“으응?”
“거기?”
정답은 뻔하니까.
“가자. 연습실로.”
이거 오랜만에 럭키데이의 김루치아노로 돌아오니 뭔가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기분이다.
‘오랜만이야, 이 느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세 녀석들을 데리고 떠듬떠듬 앞으로 나아가는 이 느낌.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추론해서 재빨리 데리고 오고,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정신이 팔려 있을 누군가를 찾아 합류시키는 그 과정!
‘진 빠진다.’
벌써부터 뭔가 피곤해지는 느낌이다.
“음……. 여긴가?”
딩, 디이이잉, 디리링, 딩, 디리링! 덜걱! 지지징, 지징, 지지징, 지지이이잉!
아랫층 연습실을 돌며 기타 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을 찾았다.
우리는 살짝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지징, 지지징, 지이이잉!
“여기 있네.”
“음? 히읗이응.”
혼자 연주 삼매경에 빠져 있던 재우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인사를 건넸다.
참……. 그다운 모습이다.
“밥 먹으러 가자. 나와.”
“이응. 수현, 라희 히읗이응.”
“재우 안녕!”
“안녕!”
뒤에 있던 라희와 수현이에게도 인사를 한 후, 재우는 이펙터와 기타를 챙겨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고픔.”
“그럼 나 있는 곳으로 잘 찾아오지 그랬냐…….”
본인이 연락도 없이 연습실로 출근해서 줄창 앉아 있었으면서 배가 고프다고 칭얼대는 꼴이라니.
이 얼마나 그리웠던 장면인가!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적당히 먹을 수 있는 곳으로 가자. 근처에 국밥도 있고, 뭐, 햄버거도 있고…….”
“구, 국밥 좋아. 외국에선 많이 못 먹었어.”
“오케이. 그러면 국밥 고.”
우리는 빠르게 메뉴를 정하고 자리를 옮겼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라 모두들 배가 고픈 상태였다.
적당한 국밥집을 찾아 앉은 우리는 각자 밥을 시키고, 본격적인 대화에 들어갔다.
“그래서, 복귀 일정에 관해서는 대표님이랑 얘기 좀 했어?”
“응. 재우 복무 끝나면 곧바로 회사로 모여서 준비 들어가는 쪽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앨범 준비로?”
“당연하지!”
“앨범이 좋지.”
모두들 활동을 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상태였기에 의지들이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대표님께 드린 방향성은 전해 들었지?”
“응. 해외 진출.”
아이들의 눈빛에 불꽃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해외 진출.
얼마나 꿈같은 목표인가?
우리보다 훨씬 경력이 길고, 더 많은 성과를 거두었던 선배 가수들도 현실의 벽에 부딪혀 포기했던 그 원대한 꿈.
우리는 진지하게 그것을 노리고 있었다.
“해외라고 말만 했지만, 정확히는 미국 진출인 거……. 다들 알지?”
“당연!”
“응.”
“이응.”
“좋아. 우선 내가 생각해 본 전략은 투 트랙이야.”
나는 약 한 달 동안 고민했던 복귀 및 해외 진출 전략을 멤버들과 공유했다.
“앨범을 내긴 내는데, 더블 앨범으로 가는 거야. CD1은 한국어 버전, CD2는 영어 버전. 준비 기간이 오래 걸릴 것 같긴 하지만, 본격적으로 미국 시장을 노리려면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더라고.”
“더블 앨범…….”
“곡 개수는 어느 정도로?”
“최소 열 곡은 되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복귀 일정에 대해서는 아직 깊게 논의된 바가 없음에도 전략 자체는 꽤나 본격적이다.
그 디테일을 구상한 지 꽤 오래되기도 했고, 이만큼 진지하게 임하지 않으면 기회조차 얻지 못할 테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지만 준비되지 않은 자들의 무덤이기도 하다.
어설픈 각오로 도전했다가 우리 이미지만 박살 나서 돌아오고, 끝내 모국 땅에서도 인지도가 떨어져 그저 그런 그룹으로 전락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준비 단계에서부터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프로듀싱은 전처럼?”
“음……. 개인적으로는 전문 프로듀서를 모시고 싶은데, 자세한 건 준비를 시작하면서 논의해야겠지.”
“우, 우리가 직접 만든 곡도 넣을 수 있겠지?”
“당연하지. 사실 구상으로는 우리 곡으로 꽉 채운 앨범을 만들고 싶긴 해. 현실적으로는 힘들 확률이 높겠지만.”
우리는 트랙 리스트의 구성 노선, 한국어 가사와 영어 가사 작사를 위한 작사가 섭외, 앨범 전체의 분위기와 그것들을 만질 프로듀서는 누가 좋을지 등을 가볍게 떠들어 보았다.
아직 정해진 것은 하나도 없고, 나온 것이라고는 대강의 윤곽뿐이지만, 멤버들끼리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며 가야 할 길을 어림잡을 수 있도록 했다.
“만일에 누군가에게 곡을 받아야 한다면 강 작가님이랑 창희 형님이…….”
“영어 작사는 나 유학 중에 알게 된 이예나 선생님이라고 계신데…….”
“우리 밴드의 장점 중 하나가 많은 색을 가진 곡들을 소화할 수 있다는 건데, 굳이 장르를 한정 지어서 분위기를 맞출 필요는…….”
“곡 만들어 둔 거 있음?”
논의는 꽤 오래 지속되었고.
“아. 밥 다 불었다.”
국에 말아 둔 밥알이 퉁퉁 불어 빵처럼 커질 때까지 우리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나누었다.
“푸하하. 몇 년이 지나도 똑같네, 참.”
“그러게.”
“나는 다른데! 이제 나도 작곡 얘기에 낄 수 있어!”
“이응.”
“뭐지? 평소랑 같은 말투인데 뭔가 무시하는 느낌?”
“니은.”
“아니구나. 좋아.”
마지막 활동부터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변함없는 모습에 뭔가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대로만 쭉 가면 뭘 해도 되겠다.’
아직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그때의 모습 그대로였기에, 이 열정을 가지고 계속 움직인다면 누군들 그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까 싶었다.
복귀에 대한 부담감,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는 조급함, 너무 커다란 꿈을 품은 것은 아닌가 싶었던 자신에 대한 불신 등이 싹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일단 다 먹고 회사로 돌아가자. 유성 형도 봐야지?”
“응!”
“유, 유성 오빠 못 본 지 되게 오래됐네…….”
“난 전에 봄.”
“잠깐 보고 우리 연습실에서 죽치고 있다가 갔잖아?”
“그래도 본 건 본 거임.”
떠들기만 하느라 식기도 다 식었고 밥알은 잔뜩 불어 버린 국밥을 빠르게 해치우고, 우리는 회사로 돌아갔다.
돌아다니며 직원들에게 오랜만이라며 인사도 하고, 매니저인 유성 형도 만났다.
나야 어제도 오늘도 마주쳤지만, 다른 녀석들은, 특히 수현이는 꽤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그래. 이제야 다들 모였구나.”
“앞으로 복귀와 새 앨범 제작 관련해서 도움을 요청할 일이 많을 거예요.”
“언제든지. 우리 럭키데이를 위해서라면!”
유성 형은 밝은 목소리로 우리의 재결합을 응원해 주었다.
아마 다른 큰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우리의 매니지는 형이 맡아줄 것이다.
인사를 모두 끝마친 뒤, 아이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합주라도 하고 가고 싶은데…….”
“미안. 삵 쫑파티가 있어서…….”
“내일 하면 되지!”
“나 내일은 근무임.”
“앗. 그럼 주말에!”
오랜만에 만나서 손이 근질근질했지만, 꾹 참고 며칠 뒤를 기약하기로 했다.
내가 일정이 있었기 때문인데, 재우의 자유인 신분 획득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조금 더 참아도 괜찮을 것이었다.
“연습 좀 하다 갈까…….”
조금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았는지, 빈 연습실이 없나 기웃거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럼 내일 봐!”
“나는 주말.”
“너는 주말에 봐!”
“응!”
“이응.”
럭키데이 멤버들과 헤어지고, 나는 쫑파티가 예정되어 있는 고깃집으로 혼자 이동했다.
“오! 루치!”
“우리의 리더!”
“어서 오십시오.”
“아, 앉…….”
먼저 도착해 있던 삵 멤버들이 나를 반겼다.
“유성 형은 일 좀 하다가 온대. 다른 직원 형들은 위에 있어.”
“예압. 올라갑시다.”
“오늘 배 터져 죽을 때까지 먹는다!”
“오우오우!”
우리는 고깃집에서 거하게 먹고 마시며 배를 채웠다.
힘든 활동기가 훌륭한 성과를 거두며 끝났음을 축하하고, 앞으로 이어질 새로운 도전을 축복하기 위해서.
“많이 먹어! 더 달리려면 열량 충분히 쌓아야지!”
“형들 기타 듀오 화이팅입니다!”
“럭키데이도 파이팅! 주영이 새 데뷔도 파이팅! 옥선이 세션 활동 및 이것저것도 빠이팅이다!”
이제 헤어지는 우리 다섯 사람은 서로의 새 출발을 있는 힘껏 응원했다.
그리고 다음 날.
“끄어어어…….”
“많이 마셨어?”
나는 숙취에 시달리며 수십 장의 악보를 훑어보아야만 했다.
“이거……. 이거 괜찮네……. 응? 아니, 괜찮은 수준이 아닌……. 윽! 머리가!”
그리고 그중 한 장의 악보를 집어 들었다.
술병 탓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와중에도 속으로 음을 불러 보니 눈에 확 띄는 퀄리티의 곡.
“어? 그거 내가 쓴 거야!”
라희가 만든 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