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71
170화
“와……. 이걸 라희가?”
복잡하지만 연계가 확실해서 엮여 들기 시작하면 청자의 몰입도를 최대한으로 뽑아낼 수 있는 구조.
그러면서도 혹사에 가까운 드러머의 폭주가 요구되는, 난도가 상당하면서 화려한 곡.
“대단한데?”
“라, 라희야. 작곡 공부도 많이 했어?”
이 노래가 우리 중 가장 이론적인 측면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던 라희의 곡이라니.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으헤헤헤! 노래 괜찮아? 나쁘지 않지? 나 이거 1년 내내 만든 곡이거든!”
다들 떨어져 있었던 것이 얼마나 지났을까?
한 2년? 2년 반 정도?
그런데도 이만한 성과물을 들고 오다니.
“괜찮은 수준이 아닌데, 이건?”
“대, 대단해, 라희야!”
물 건너 넘어가서 베이스 연주 이론과 작곡, 프로듀싱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고 돌아온 수현이가 보아도 훌륭한 작업물인 듯했다.
사별삼일 즉당괄목상대라더니.
오랜만에 마주한 라희의 실력은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 할 정도로 부쩍 늘어 있었다.
“이건……. 무조건이다.”
아직은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가지도 않은 스케치 단계였지만, 감이 확 온다.
이 곡은 무조건 앨범에 수록해야 하는 노래였다.
“으헤헷, 으헷!”
라희는 야심 차게 내민 자신의 작업물이 칭찬을 받았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동안 노력하며 배운 것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마침내 결과로써 느꼈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곡은 마음에 드는 거 없어?”
“음……. 일단 골라 놓은 건 여기. 수현이 거 네 곡, 내 거 두 곡.”
나는 따로 빼 두었던 악보를 슬쩍 앞으로 내밀었다.
“아, 멜로디 스케치네?”
“응. 되게 미국 감성이더라고.”
“헤헤……. 해외에서 요즘 특히 자주 쓰이는 흐름을 한번 섞어 봤어…….”
“우리 식으로 다듬기는 해야겠지만, 아이디어가 너무 좋았어. 이건 써먹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느낌.”
“고마워…….”
수현이의 곡들과 멜로디 스케치들 중에서도 다듬어 쓰기 좋은 라인들이 꽤나 많았는데, 서너 곡 정도는 어느 정도 섞고 고쳐서 재탄생할 여지가 충분했다.
있는 그대로도 완성도가 뛰어나며 아이디어가 눈에 띄는 악보였지만, 조금 더 다듬으면 럭키데이가 가장 표현하기 좋은 모습을 갖추지 않을까 싶은 곡들.
확실히 외국에서 공부한 보람이 있게도,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색채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라인이 꽤 있었다.
“내 곡은 그냥 뭐…….”
“예전처럼 대중적인 감각으로 쓴…….”
“응. 그렇지.”
내가 가져온 악보들의 경우 예전과 비슷했다.
밴드의 색을 반영하면서도 대중성이 살아 있는 곡들.
하지만 그게 발전 없이 옛날 그대로라는 뜻은 아니다.
“확실히 메이저 냄새가 나면서도 연주하기 쉽고, 듣기도 좋은 구성이야.”
“엄청 깔끔해.”
“그렇지?”
OST 작곡과 보컬 참여 등으로 쌓은 경험이 그대로 악보에 녹아 있다.
까다로운 우리 고객님들, 영화감독이든 드라마 PD든, 요구 사항도 많고 수정 요청도 많은 분들의 입맛을 맞추며 배운 대중성의 정수.
듣는 사람이 익숙하고 편하도록 설계한 멜로디가 꽤 많이 쌓여 있었다.
“특히 이 둘.”
“응. 나도 그거 골랐어.”
그중에서도 두 곡은 그대로 멜로디를 떼어 내서 합쳐 곡을 재구성하면 꽤 괜찮은 트랙이 나올 것 같았다.
“일단 라희 노래 하나, 내 거 넷, 루치 거 둘……. 이렇게는 따로 빼서 조금 살펴볼게……. 일단 가상 악기로 찍어서 들어 보고 어떻게 만질 수 있는지부터 조금씩…….”
“응. 특히 라희 거 들으면 어떤 느낌일까 또 엄청 궁금하네.”
“으헤헤헤…….”
나의 칭찬에 라희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웃었다.
연주 실력이 아니라 작곡 솜씨에 대한 칭찬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그만큼 기분이 좋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웃어 주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구성은 재우가 와야 또 제대로 틀을 잡겠지만, 일단 우리가 고른 것들을 토대로 분위기를 맞춰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
“으, 응. 아마 라희 곡을 중심으로…….”
“으헤헤, 으헤헤헤…….”
연신 웃음을 흘리는 라희를 그대로 웃게 내버려 두고, 나는 수현이에게 물었다.
“재우는 내일부터 출근한다고 했나?”
“응.”
“그러면 내일부터는 재우네 스튜디오로 가자. 그쪽이 시설도 더 좋고, 넓기도 하고…….”
이제 재우도 슬슬 밀린 연가를 모두 소모하며 반쯤 사회인으로 돌아올 때가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준비에 들어가도 될 것이다.
오늘처럼 내 좁은 작업실에 모일 필요는 없겠지.
그런데 그때, 라희가 말했다.
“잉? 여기도 있을 것들은 다 있어서 괜찮은데? 매트리스도 있고!”
“아니, 좁잖아.”
넓고 장비도 더 좋은 재우의 스튜디오를 두고, 괜히 몇몇 악기와 녹음 장비만으로 꽉 차서 좁은 내 작업실로 모일 이유가 없다.
매트리스도 있고, 일단은 자취방이나 마찬가지라 편한 환경이기는 해도, 음반 작업을 하기에 좋은 곳은 아니니까.
“스튜디오에도 소파에, 간이침대에, 편히 쉴 곳은 다 있으니까 그거 써.”
“힝. 여기가 좋은데.”
집에서의 거리도 재우네 스튜디오가 훨씬 가까울 텐데 왜 이리 투정일까 싶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오는 길에 자주 보이는 길고양이가 예쁘다든지, 오다가 들렀던 카페가 맛집이었다든지…….
“아무튼 내일은 스튜디오로. 재우한테는 내가 미리 연락해서 말해 둘게.”
“응.”
“에잉!”
“그리고 이 곡 외에도 몇몇 분들께 미리 연락을 좀 드려서 도움을 구해야 하는데…….”
나는 대충 대화를 정리하고, 먼저 생각해 두었던 다시 앨범 작업을 위해 미리 해야 할 일들을 공유했다.
“강철현 작곡가님, 창희 형님, 그리고 태호. 세 사람에게 곡 작업에 도움을 받을 예정이야.”
“작곡, 작사, 프로듀싱?”
“일단은 그런데, 한 사람에게 하나만 맡기게 되지는 않겠지. 하다 보면 욕심도 생기고 하니까 편곡도 맡길 수 있고, 태호한테 곡을 달라고 할 수도 있는 거고.”
“그건 그렇지…….”
강 작가님께는 작곡을, 창희 형님에게는 영문 작사를, 태호에게는 프로듀싱 협력을 요청할 예정이긴 한데, 그게 그렇게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컸다.
세 사람의 스케줄이 되는지부터 살펴야 하고, 영감받으면 한 곡이 아니라 두 곡, 세 곡을 같이 작업할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작곡에 작사까지 다 해서 넘길 수도 있을 테니까.
“아, 제우스 형님. 제우스 형님은 꼭 섭외해야 해.”
“오, 맞아. 그 오빠 이번에 크게 한탕 했다고 소식 들었어!”
“어……. 한탕 했다고 하면 뭔가 되게 범죄자 같잖아.”
“그거나 그거나.”
얼마 전 아이돌 앨범을 프로듀싱하며 대박을 터뜨려 스튜디오를 확장 이전한 제우스 형님도 섭외 1순위로 생각하고 있다.
후일 마스터링은 해외 스튜디오에 맡길지언정, 레코딩과 믹싱만큼은 제우스 형님에게 맡기고 싶었다.
“헬래빗 앨범 들었어? 소리가 아주 맛깔나더라고.”
“으음……. 확실히…….”
“엇, 난 못 들어 봤는데.”
“지금 들어 볼래? 꽤 좋아. 댄스 그룹치고는 발라드 넘버링이 많아서 부담 없이 듣기도 좋고……. 잠깐만. 몇 곡만 일단…….”
나는 제우스 형이 참여한 핼래빗의 지난 앨범을 들어 본 적이 없다는 라희를 위해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곡을 찾아 재생했다.
“언제나 그리워서, 당신이 떠올라서……. 오늘도 홀로…….”
애절한 발라드 가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모든 세션 악기의 조화와 제우스 형 특유의 잔향감이 잘 살아 있는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아주 실감 나는 소리가 공간감을 극대화하며, 라이브 연주 못지않은 몰입도를 자아냈다.
“와아…….”
라희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감탄이 새어 나온다.
노래가 좋은 것도 좋은 것이지만, 믹싱에 집중해서 들어 보면 확실히 어떤 곳이 어떻게 좋은 것인지를 발견할 수 있다.
라희는 내가 왜 제우스 형을 반드시 섭외해야 한다고 했는지를 제대로 알게 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킹정이지. 웃돈을 주고서라도 모셔 와야지.”
“그렇지?”
어차피 앨범 제작 작업 진행의 전반을 우리가 알아서 꾸리도록 대표님 허락이 떨어졌기에, 이것저것을 정하고 계획하는 데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앨범 전체의 그림을 내가 총지휘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의 힘을 빌려 채우고 짜 맞추는 것.
이를 위해서 할 밑 작업이 꽤 많지만, 차근차근 준비하면 충실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멤버들이 잠깐 떨어져 지내는 동안 훌륭하게 발전해 돌아왔으니, 예전보다 속도를 더 뽑아낼 수도 있고 말이다.
츄릅.
요 녀석들을 어떻게 굴려야 맛있는 음악을 팍팍 토해 낼지 궁금했다.
그때.
삑! 삑삑삑……. 삑! 삐로링!
“오, 왔나 보다.”
“히읗이응.”
재우가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일찍 끝났네?”
“오늘 어차피 일도 없다고 일찍 가래서 일찍 왔음. 개꿀.”
“크……. 꿀이구먼!”
방금 근무를 끝마치고 왔을 텐데 손에는 기타 가방을 두 개나 들고 온 것이, 벌써부터 의욕이 만만이다.
마침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지금 우리 써 둔 곡들 풀어 놓고 앨범에 넣고 싶은 것 고르는 중이었거든? 너도 악보 있으면 꺼내 봐.”
“악보? 잠만. 프린터 좀 씀.”
“이응!”
재우의 말투를 따라 하며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는 내가 일어난 자리로 다가가 컴퓨터에 USB 드라이브를 연결하더니, 곧 몇 장의 악보를 출력해 우리에게 넘겼다.
“여기, 우리 것도 받아서 한번 봐 봐. 특히 라희 거.”
“그거 엄청 좋아!”
“으헤헤헤!”
“이응.”
재우는 악보를 받더니 곧장 라희의 악보부터 보면대에 펼쳐 두고는…….
드르륵! 디링!
기타를 꺼내 들었다.
“바로 연주해 보려고?”
“이응. 그냥 보는 걸로는 판단이 안 됨.”
“흠……. 그래라, 그럼.”
우리는 재우가 라희의 악보를 대강 초견으로 후리는 것을 들으며, 그가 출력한 악보를 보는 데에 집중했다.
디린, 디리리링, 디잉! 키이익! 디리링…….
아니, 집중하려고 했다.
‘아, 근질거리네…….’
“흠…….”
“두둠, 둣, 두두둠……. 두둥…….”
“라, 라희야…….”
“앗, 미안.”
도저히 집중이라는 것을 할 수가 없었다.
“아……. 이거, 참…….”
“헤헤…….”
“야, 너희도?”
나와 수현이, 라희의 눈이 교차하고, 곧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었다.
“고?”
“고!”
“고!”
“재우, 잠깐 스톱. 악보 잠깐 보면서 숙지하고 합주로 해 보자.”
“이응? 이응.”
그냥 눈으로만 보고는 만족할 수가 없다.
이건 합주를 해야만 했다.
“기타, 기타…….”
“나, 나 베이스 어디다 뒀지…….”
우리는 대충 넘어지지 않게 둔 자기 장비를 찾아 꺼내 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드럼은? 야, 드럼은 없는데?”
“저기 전자 드럼.”
“아……. 저건 별론데…….”
라희가 두드릴 악기가 마땅치 않았다.
“어쩔 수 없잖아. 작업실이 좁아서 드럼을 통으로 두기는 좀…….”
소리를 내기 위해 전자 드럼을 구비해 두기는 했지만, 라희는 그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하긴, 공간 탓에 전자 드럼 중에서도 제일 작은 것을 골라 구매했던지라 드러머 입장에서는 이걸 치는 건지 아닌 건지도 모르겠다는 말이 나올 법도 했다.
소위 연주하는 맛이 없는 것이다.
“아니면 재우네 스튜디오로 갈까?”
“어, 그럴까? 전자 드럼은 휘두르는 맛이 없어! 자그마하고, 소리도 애매해서.”
결국 우리는.
“그래서……. 여기로 왔다고?”
“하하……. 그렇게 됐습니다.”
“헤헤……. 재석 오빠. 오랜만이에요.”
“안녕하세요.”
“히읗이응.”
재우의 스튜디오로 들이닥쳐 마침 회사를 쉬며 휴가를 만끽하고 있는 다중 채널 네트워크 채널링의 대표, 재석 형과 인사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