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72
171화
딩, 딩딩. 딩딩딩. 끼리릭. 딩딩딩딩.
기타 줄을 튕겨 가며 소리를 내고, 정해진 음에 맞는지 확인하면서 조율을 한다.
‘유난히 귀에 잘 들리는 느낌인데, 오늘?’
왜인지 평소보다 소리가 더 잘 잡히는 느낌이다.
친구들이 함께 있어서일까?
아마 기분 탓이겠지만, 느낌이 좋다.
“손에는 조금 익혔어들?”
“이응.”
“으, 응……. 대충…….”
“난 내가 만든 곡이라서 이미 다 외웠지!”
“어이구. 대단하셔.”
“으헤헤헤!”
세팅을 마치고 모여서 각자 손에 자기 파트를 익히는 시간을 가졌다.
다들 악보를 눈여겨본 덕인지 금방 내용을 숙지할 수 있었다.
라희의 경우에는 애초에 자신이 만든 노래인지라 딱히 새로 익힐 필요가 없었고 말이다.
“해 볼까?”
“응.”
“이응.”
“응!”
실로 오랜만에 합주를 하는 것이다.
살짝 긴장이 되기도 하고, 설레는 마음도 있다.
“틀려도 그냥 맞춰 간다는 느낌으로, 안 멈추고 계속 가자. 오케이?”
“이응.”
“오케이!”
“응…….”
“흠! 크흠! 프르르르르! 쁘르르르르!”
립 트릴과 텅 트릴을 하며 목을 풀어 주고, 기타 줄을 튕겼다.
쟈라랑!
몽환적인 카본 기타의 음색이 울려 퍼진다.
이 소리도 꽤 오랜만에 듣는다.
‘아, 소리 좋고.’
부업 작곡가 시절에는 조금 더 노멀한 소리를 내야 했기에 평범한 통기타를 사용했고, 삵 활동 중에는 기타를 칠 일이 없었다.
재우에게서 거의 영구 대여 형식으로 빌린 카본 기타의 이 서늘한 느낌이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것 같다.
“후우우…….”
한숨 소리와 함께 리듬 기타의 두 마디 전주가 시작되었다.
쟝, 쟈자장, 쟈가장, 쟈장. 쟝, 쟈자장, 쟈가장, 쟈장…….
단조로운 스트로크.
적당한 BPM으로 리듬이 만들어진다.
이 스트로크의 타이밍에 맞추어 세팅 시간에 대충 박자만 맞춰 붙인 가이드 가사를 내뱉었다.
“오늘 점심은 햄버거……. 샌드위치를 먹고 싶었지만…….”
“푸훕!”
그 밑도 끝도 없는 가사가 취향을 저격했는지 수현이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순간 나도 웃음이 새어 나오려 했지만, 큰 반응 없이 내 보컬과 기타 연주에만 집중했다.
첫 절까지는 오로지 리듬 기타와 보컬로만 꾸려 가는 빌드업의 영역.
단 한 사람이 자신의 표현력의 한계를 보여 주는 시간이다.
“잠이 와. 졸려서 못 가…….”
단조롭지만 절실한 뉘앙스의 코드 진행.
아마 이에 맞는 감성적인 가사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아직 정해진 것이 없기에, 대충 음정에 담아내고자 했던 라희의 의도를 미루어 짐작해 표현했다.
그렇게 열여섯 마디의 첫 벌스가 이어진 이후, 라희의 킥이 나지막하게 섞이고.
둥……. 둥……. 둥……. 둥…….
재우와 수현이의 연주도 살짝씩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며 연주에 진입한다.
징징지징 징징……. 징징지징 징징……. 둠, 둠둠, 둠, 둠둠, 둠, 둠둠, 둠, 둠둠.
아직은 여전히 조금 단조롭고 부드럽다.
이겨 낼 수 없을 것만 같은 우울감에 짓눌리는 화자의 심정이 음악 밑바닥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응어리가 질 듯, 그것을 토해 내고 싶은 듯, 마치 울먹임처럼 네 사람의 소리가 엉켜 든다.
그리고 두 마디가 더 흐르자.
채애앵! 두두두두 두두둥!
라희의 드럼이 박자를 잘게 쪼갬과 동시에 소리가 층층이 쌓이기 시작했다.
징징징징! 징징징징! 징징징징!
내 어쿠스틱 기타 소리에도 디스토션 이펙트를 먹여 소리를 왜곡시켰다.
마찬가지로 재우의 멜로디가 과감하게 제 주장을 펴고, 수현이의 베이스 리듬도 전에 없이 화려하게 달렸다.
“언젠가 이 기타를 처음 잡아 봤을 때, 졸음이 모두 달아났지.”
끝을 흐리던 발성에서 조금은 또렷하고 덤덤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발성으로 전환한다.
마디 사이 그런 급격한 변화가 있었지만, 악기들의 소리가 확 화려해지는 순간을 노린 것이라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1절은 진즉 다 지나갔다.
혼자 노래를 이끌어 나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지이잉, 징 징 징……. 지지징! 지잉 징…….
굳이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서로 어떻게 맞춰 줘야 음악이 제대로 아름답게 풀리는지를 아는 팀원들이 있으니까.
“떨어지는 별꽃에 눈물이 함께 흐르고, 손끝에서 흐르는 음악에 취하겠지.”
생각해 두었던 허접한 가이드 가사 대신, 즉석에서 떠오르는 영감들을 있는 그대로 내뱉었다.
어차피 녹음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대충 맞춰 보는 과정이다.
다만 어떤 느낌인지를 확실하게 인지하기 위해서 빈 노트에 아이디어를 스케치하듯, 감을 잡는 과정으로 적당히 가사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둥둥둥둥, 둥둥둥둥, 둥둥둥둥, 두두둥 두룸 두두둥…….
반복되는 리듬 아래 집중력이 고조된다.
어렴풋이 이 노래를 통해 어떤 느낌을 표현해야 할지에 대해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베이스의 리듬이 다시 단조로워지고 드럼을 제일 앞에 내세워 곡을 끌어 나가게 하는 3절부터는, 그저 심상이 잡히는 대로 그 이미지를 단어로 바꿔 내뱉었다.
“시간은 멋대로 가고, 상실감은 영원하지. 졸음이 모두 달아났지.”
경쾌하게 흐르는 얼터너티브 스타일의 연주에, 묘하게 힘이 없고 회한으로 가득한 보컬 표현이 합쳐져 상당히 좋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곧 준비되어 있던 멜로디 라인을 모두 소진하고, 드럼이, 베이스가, 멜로디 기타가 그 자취를 감추었다.
쟝, 쟈자장, 쟈가장, 쟈장. 쟝, 쟈자장, 쟈가장, 쟈장…….
그리고 처음부터 한 치의 변화도 없는 내 스트로크만 사운드를 메웠다.
공허하게 울리는 그 소리와 함께 노래가 끝났다.
“허…….”
듣고 있던 재석 형의 허탈한 목소리가 스튜디오에 울렸다.
“너흰 진짜……. 세계로 가야겠구나…….”
“하하하!”
“갑자기?”
“그렇죠?
“저, 저희가요?”
반응은 가지각색.
아무튼 나에게는 아주 듣기 좋은 소리였다.
누가 뭐래도 우리가 목표로 두고 있는 지점인데, 그것에 대한 긍정이 가득 담긴 칭찬이었으니까.
“방금 노래 괜찮았죠?”
나는 기타를 벗어 자리에 두며 재석 형에게 물었고, 그는 당연한 것을 뭘 묻냐는 듯 답했다.
“끝내줬지. 이거 언제 나오는 곡이야?”
“아직 일정 없어요. 우리 전부 딱히 싱글로 내고 싶은 마음은 없고, 정규 앨범으로, 그것도 더블 앨범으로 내야 해서 조금 걸릴 것 같긴 해요.”
“어허……. 빨리 나왔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좋았어요?”
“가사는 완성되지 않은 것 같긴 했는데, 약간 그, 절절하다고 해야 하나? 담담함 속에 숨어 있는 그 감정이 너무 좋더라.”
“오호.”
감이 온 김에 질러 본 건데, 나름 괜찮았던 모양이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멤버들의 곡 해석 역시 나와 비슷했기에, 어긋나는 지점도 없었고 말이다.
‘오늘 대강 생각한 이미지로 완성시키면 되겠다.’
우리는 재석 형의 감상을 가슴에 품은 채,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금방의 합주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합은 아직 흐트러지는 부분이 많긴 한데, 느낌 자체는 통일되어 있고 좋았어.”
“응. 근데 편곡이 아직 안 된 상태라 한꺼번에 맞추기는 무리가…….”
“나 이거 보컬 멜로디 조금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거든? 3절 분량에서 반복되는 구절을 빼고, 아래로 낮춰서 새로운 내용을…….”
“그보다 합주 좀 더 하면 안 됨?”
“이따가, 이따가.”
즉석 합주의 감상을 토대로 어느 부분을 살려야 할지를 살피고, 우리가 직접 연주하며 체크한 아쉬운 부분에 대해 토론을 나누었다.
고칠 부분이 상당히 많았지만, 너무나 즐거운 과정이었다.
“햐……. 이것도 오랜만이네.”
“그, 그러게……. 루, 루치는 얼마 전까지 했으니까 익숙하지?”
“어. 삵에서 하기는 했지.”
“부럽다…….”
“넌 내가 처음 섭외할 때 뻥 차 버렸잖아.”
“공연 따라가지 말고 프로젝트 밴드 들어갈걸!”
연주를 즐기고 고칠 점을 찾는 그 단순하고 반복적인 과정이 어떻게 이렇게 즐거울 수 있는지 의문이다.
한 발 한 발 고심하며 걸어가는 기분.
“이대로만 가면……. 이 정도 퀄리티의 곡들로 앨범을 가득 채울 수 있으면…….”
정상까지.
“해외 진출이 아니라 빌보드도 꿈이 아니겠는데?”
올라가는 기분.
“다른 사람들이 말했으면 말도 안 된다고 반박이라도 했을 텐데…….”
“루, 루치가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그런 것 같아…….”
“당연한 거 아님?”
굳은 신뢰가 등 뒤를 받치고 있는 것이 느껴져 더욱 좋다.
앞으로 나아갈 동력은 충분하다.
“그러면 앉은 김에 곡 살짝 만져 볼까?”
“합주는 안 함?”
“조금 뒤에 하자. 시간도 많잖아.”
“이응.”
각자 하나씩 영감을 붙들어 잡은 것 같으니, 그걸 구체화하고 곡에 반영할 차례가 왔다.
“일단은……. 메인 멜로디부터.”
“으, 응. 아까 멜로디 기타 속주 부분에서 떠오른 건데…….”
첫 연주부터 음악 전문 너튜버들을 수십 명씩 관리하는 재석 형을 놀라게 만든 곡이다.
“그러면 거기서 베이스도 같이 쪼개면 되는 거 아님?”
“어……. 그런가?”
“일단 한번 연주해 보면서 그렇게도 되나 보자.”
“오케이.”
둠둠, 두둠, 둠 두루루룸, 두둥, 두두둠둠!
“이 정도?”
“이응. 거기에 이렇게 맞추면 될 듯.”
지이잉, 지지징, 디리링 디리링 디리링, 지지징징, 지이이이잉!
“오, 좋다.”
“여덟 마디 충분히 메울 수 있는 거지?”
“당연.”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곡은 차츰차츰 변하며 나름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럼 리듬 기타는?”
“안 바꿔도 돼! 그건 그대로!”
“흠……. 아쉬운데…….”
“노우! 일관적으로 전진하는 리듬 기타 소리 주변으로 멜로디랑 베이스가 도는 거야! 만유인력!”
“너 예체능이잖아…….”
더 멋지게, 더 연주하기 편하게, 더 곡의 뉘앙스를 잘 표현할 수 있게.
“가사는…….”
럭키데이 3집의 첫 곡, sleep over가 슬슬 완성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 * *
“네, 그러면 오후 여섯 시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뚝.
나는 전화기를 내려 통화를 종료하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왔다.
“후우우…….”
흩어져 있던 럭키데이의 마지막 퍼즐 조각인 재우가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민간인이 된 지도 며칠이 지났다.
그간 연습도 하고, 편곡과 스케치의 구체화 작업도 진행하면서 앨범 제작의 초석을 다졌다.
동시에 엔지니어, 협력 프로듀서 및 작곡가와 작사가들과도 컨택을 진행했고, 원했던 몇몇의 협력을 구하는 데에 성공하기도 했다.
‘강 작가님, 창희 형님, 태호, 그리고 제우스 형까지.’
굳이 그들의 작업물과 이름값을 논하지 않더라도, 앨범 한 장 만들기 위해 섭외한 이들의 면면들이 녹록지 않다.
그야말로 호화로운 캐스팅이고, 그런 대단한 음악가들이 이번 앨범 제작에 함께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설마 진짜 모실 수 있을 줄은 몰랐어.’
마지막으로 연락을 드리고 섭외에 성공한 인물은 나도 진심으로 모셔올 수 있으리라 생각지 않았던 사람이다.
소프트 락과 블루스 컬러의 거장이며, 00년대 최고의 프로듀서이자 작곡가 중 하나.
‘마침 권 선생님이 안식년 휴직을 신청해서 쉬고 계시다니!’
나와 우리 밴드 멤버들의 은사, 전직 가수 겸 프로듀서 겸 작곡가이면서 현직 태양고등학교 교사, 권인찬 선생님.
그분을 우리 총괄 프로듀서로 모실 기회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