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73
172화
“후우웁! 후우우우!”
크게 심호흡을 하고, 손을 앞으로 뻗는다.
그리고 크고 탐스러운 버튼을 꾹 누른다.
찌르르르르르릉!
“억!”
초인종치고는 상당히 큰 소리가 울려 퍼진다.
작업실에 있다 보면 집중하느라 초인종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특별히 달아 둔 벨 소리라고.
잠시 후.
“아, 루치 군. 어서 오세요.”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나는 문을 열고 나온 권 선생님께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했다.
“어허, 너무 그러지 말고 어서 들어와요.”
“넵.”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선생님이 내게 묻는다.
“보이차 좋아하나요?”
“앗, 넵.”
“잠시만 기다려요. 좋은 선물이 들어와서…….”
권 선생님이 주방 쪽으로 물건을 가지러 가신 사이, 작업실을 둘러보았다.
연습실과 레코딩 스튜디오, 컨트롤 룸으로 나눠진 공간에, 휴게 공간까지 합쳐 꽤 넓은 작업실이다.
‘내 작은 작업실이랑은 비교되네…….’
스튜디오는 또 보컬 부스와 악기 연주실이 따로 있어서 장비를 구분해서 둔 모습에, 중간중간 난초 화분과 다기가 놓여 있어 묘하게 고풍스러운 공간이다.
취향이 우아하시다고 할지, 나이가 티가 난다고 할지…….
부스 열고 들어가면 작업실, 문 열고 나가면 생활 공간인 나와는 천지차이였다.
“자……. 일단 들고 얘기하도록 하죠.”
“앗, 넵. 감사합니다.”
나는 선생님이 가져오신 찻주전자에 찻잎이 들어가고, 물이 들어가고, 찻잔으로 옮겨지는 장면을 감상했다.
연륜?
아니면 익숙함?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 그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래서…….”
잠시 다도를 즐기던 권 선생님이 차를 몇 모금 홀짝여 목을 축이시고는 내게 말했다.
“총괄 프로듀서를 구하고자 한다고……. 얘기를 들었어요.”
“네. 그렇습니다.”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오늘 이곳에 찾아온 목적, 권 선생님을 음반 제작 전반을 총괄하는 총괄 프로듀서로 모시는 것에 성공하기 위해 대화에 집중해야 했다.
“내 생각에는 럭키데이 같은 팀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참견쟁이는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지난번 작품들도 다들 스스로의 힘으로 완성해 본 경험이 있고.”
그의 첫 말은 거절의 의사를 밝히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것이 진심으로 자리를 맡지 않겠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우리의 생각을 알기 위해 거절 쪽에 무게를 먼저 두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내가 할 일은 어떤 경우라도 똑같았다.
“저희는 선생님 같은 프로듀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저희의 능력과는 별개로요.”
그를 설득해서 우리 팀의 앨범 제작을 이끌게 해야 한다.
정상에 올랐던 경력, 남을 이끄는 부드러운 카리스마, 어느 정도 실력을 쌓은 뮤지션들이라도 가르침을 주고 지혜를 빌려줄 수 있는 방대한 지식.
우리는 그의 능력이 필요했다.
“곡을 만들고, 흐름을 구성하는 것 자체에는 무리가 없습니다. 사실, 멤버들의 실력을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긴 하죠.”
“그렇지요.”
“하지만 시선의 문제가 최근 명확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시선의 문제라?”
내 이야기에 선생님은 빨리 말을 이어 보라는 듯 되물으며 나와 눈을 마주치셨다.
던져 둔 화두가 마치 거대한 난관이라도 마주한 것 같지만, 실상은 그냥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향에 대한 문제일 뿐이었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나와 수현이의 경우 과도하게 많은 부분에 신경을 쓴다.
“곡과 곡 사이의 연계가 흐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완전히 같은 것만으로 느껴진다면 따로 떨어진 메시지의 전달력이 약해질 것 같고…….”
“이번에 두 곡을 합쳐서 만든 곡이 직전의 재지 팝 느낌의 곡이랑 너무 분위기 편차가 커서…….”
“장르의 한계를 결정짓지 않는 게 럭키데이의 매력인데, 그렇다고 일치감 없는 중구난방의 트랙 리스트를 꾸릴 수도 없고…….”
어떻게 보면 우유부단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결국 일을 지지부진하게 만들고 있으니까.
반면 라희와 재우는 거의 정반대의 시각을 가지고 있어 일에 차질을 빚는 경우가 있었다.
“이거 좋은데?”
“그럼 넣자.”
단 두 마디로 마음을 결정해 버릴 정도로 즉흥적인 영감에 의존한다.
치밀한 계산까지는 요구하지 않더라도 조금이나마 신중할 필요가 있는데, 그들은 크게 생각하지 않고 느낌 닿는 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넓은 식견이 있는, 제대로 된 컨트롤 타워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예전이었다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멤버들끼리 서로의 시선을 빌리며 차근차근 천천히 제작을 진행하면 되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각자 실력이 있는 만큼 이견의 여지가 늘어났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가겠군요.”
“정확합니다, 선생님.”
각각의 멤버가 나름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며 실력을 쌓았고, 아는 것도, 해 본 것도 늘어났다.
경험상 아는 것, 해 봐서 아는 것들이 늘어난 만큼, 자신이 중심이 되어 하고 싶은 것도 많아졌고, 이 때문에 합의를 위해 걸리는 시간이 늘어났다.
서로의 의견에서 합리성을 찾고, 나름의 타협을 하며 진행 제작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시간이 많이 투자되어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아까운 일이다.
제대로 된 타협점을 찾아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길잡이만 있다면 쉽게 단축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협력 프로듀서로 태호를 섭외한 상태입니다. 선생님께서 총괄로서 일을 지휘해 주시면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흠…….”
권 선생님은 내가 이야기하는 우리의 사정을 듣더니 고민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모든 제작 과정을 통제하며 대부분의 진행 상황을 직접 손으로 조율하는 책임 프로듀서의 역할을 맡아 달라는 요구이니, 신중히 결정하고자 하는 듯했다.
“만약 제가…….”
권 선생님이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나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어떤 이야기가 나오든, 그를 프로듀서로 섭외하기 위한 설득으로 이어 가기 위해서.
“프로듀서직을 맡게 된다면……. 그동안 봐 온 선생 권인찬과는 조금 다른 모습일 거예요. 괜찮겠어요?”
“프로듀서로 일하실 때는 조금 엄하시다는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엄하다기보다는……. 참견이 많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아티스트의 의견을 중간에 쳐 내기도 하고, 기획 의도를 읽어 정했던 방향에서 어긋나면 짜증도 부리지요. 자기 앨범을 만드는 뮤지션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어요.”
사실 그의 말은 당연했다.
가수의 앨범이라는 것은 비단 가수만의 것일 뿐 아니라, 함께 작업한 프로듀서들 및 참가자들의 피와 땀이 담긴 결과물이니까.
프로듀서 역시 그 앨범의 자기 자신의 작업물이라는 생각으로 더 좋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기 위해 밴드와 부딪히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 아니었다.
다만.
“내가 루치 군을 비롯한 여러분의 선생이었다는 점 때문에 프로듀서가 밴드를 가르치는 모습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에요.”
선생님은 그 자신과 우리 럭키데이의 관계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미묘한 위계를 걱정했다.
“일을 하면서 생기는 사소한 마찰은 당연한 일이지요. 오히려 더 나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그쪽이 더 바람직하기도 해요.”
“네…….”
“하지만 내가 선생이었기 때문에 루치 군과 다른 럭키데이 식구들이 자기 의견을 죽이고 오로지 내가 제시하는 방향만 따르게 된다면……. 그건 주객전도가 되겠지요.”
“아…….”
노파심이기는 했지만 합당한 걱정이기도 했다.
‘사제 관계를 떠나서 권 선생님이 너무 거물이다.’
수십 년을 인정받는 음악가로서 활동했던 권 선생님에 비하면 우리 럭키데이의 이름값은 달빛 앞의 반딧불처럼 작다.
아무리 몇 년 인기를 끌어 본 경험이 있다고 해도 숫자의 자리부터가 차이가 난다.
과연 그런 우리가 호랑이 선생님에게 우리의 생각이 옳다며 정반대의 의견을 정면에서 내세울 수 있을까?
“그런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연하다.
“예의가 없는 녀석들은 아닌데……. 음악에는 위아래가 없는지라…….”
그 머리에 음악밖에 안 들어 있는 또라이들이 선생님이 하는 말이라고 해서 그저 듣고만 있지는 않을 테니까.
“그게 말처럼 쉬운 것이…….”
“라희가 얼마 전에 황보문 선생님이랑 대판 싸우고 전화를 걸더라고요…….”
“음? 황보 교수랑?”
“네. 드럼 라인으로만 이루어진 곡을 만드는 게 무슨 재미냐고, 자기는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이 조화되는 밴드 음악만 만들 것이라고요. 경험 삼아, 과제 삼아 해 보라는 말에도 꿈쩍도 않고 하던 작업만 하다가 된통 혼났는데, 그대로 도망쳐서 제 작업실로 왔습니다.”
“허허…….”
옳은 건 옳다, 틀린 건 틀리다. 그렇게 말할 줄 아는 녀석들이다.
음악에 대한 지식이 선생님보다 부족할지언정, 프로듀서의 방향 제시를 자신들의 실력에 맞추어 재단해 볼 능력 역시 있다.
“수현이나 재우도 의심 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는 녀석들은 아닙니다. 1집, 2집 앨범 작업을 하면서 얼마나 많이 부딪쳤는지 모릅니다.”
실력도 좋고 심지도 굳은 우리 럭키데이 멤버들인 만큼, 선생님이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 이 일을 맡으신다면 선생님께서 고생을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핫…….”
오히려 다른 의미로 고통스러울지는 몰라도 말이다.
“허허허허. 그래요…….”
선생님은 껄껄 웃으시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작품 활동은 접어 뒀지요. 내 노래를 내지도 않았고, 작곡도 잘 하지 않고……. 앨범 제작을 도와달라는 요청이 있기는 했지만, 학생들 가르치는 것이 더 좋아서 맡지 않았고요.”
그는 잠깐 멈춰서 가만히 있다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래요……. 마침 학교도 휴직 중이고……. 오랜만에 본업을 조금 즐겨도 괜찮을 것 같군요.”
“아.”
“프로듀서 직함은 받아 들도록 할게요. 그러나 조건이 있어요.”
권 선생님은 섭외를 수락하는 한편 뒤에 단서를 달았다.
나는 바로 한 자세를 유지한 채 그의 말을 경청했다.
“총괄 프로듀서가 아니라 그냥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리고, 협력 프로듀서로 섭외된 태호 군을 총괄로 앉혀 줬으면 해요.”
“네? 태호를요?”
깜짝 놀란 나를 향해 권 선생님이 밝게 웃으며 답했다.
“프로 대 프로로 함께 일하게 된 것이지만……. 선생으로서 제자에게 마지막 수업을 할 기회인 것 같아서요. 허허허허.”
그는 USB 디스크를 하나 내밀며 내게 내용물을 전부 감상해 본 후 결정하라고 했다.
며칠 후, 나는 권 선생님께 다시 전화를 드렸다.
“태호를 총괄 프로듀서로, 선생님을 협력 프로듀서로 모셔서 작업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 어떤 의도로 그리 말씀하셨는지 대강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