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74
173화
USB 디스크에 들어 있던 것은 태호의 작업물들이었다.
“허……. 이것 참…….”
거기에는 태호가 연습 삼아 만들어 본 습작도 있고, 실제로 참여했던 프로젝트들의 기록물도 있었다.
꽤 많은 성과물들이 나름 포트폴리오 역할을 했다.
이 친구가 어떤 방향으로 자기 일을 하는지를 알려 주는.
나는 그중 국내의 한 밴드를 모델로 삼아 가상의 앨범 제작을 해 본 습작물을 주의 깊게 살폈다.
‘앨범 전체 트랙 리스트는 원래 있는 노래들로 채우고, 의상 콘셉트, 소모 비용 및 녹음과 마스터링 등 제작 기간까지…….’
굉장히 세세하고 디테일한 배경과 나름 그 내용에 충실한 결과물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내가 느낀 점은.
‘한 끗. 딱 한 끗이 모자라다.’
너무나 아쉽다는 것이다.
‘능력이 거기까지 닿지 않는 건지, 아니면 가상의 상황을 그린 습작이기 때문인지…….’
콘셉트부터 상정 결과물까지의 퀄리티는 굉장하지만 뭔가 아쉬운 수준이다.
정말 잘 만들었지만 특별한 임팩트가 없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이건 실제로 참여한 몇몇 프로젝트들에서도 역시나 느껴지는 점이었다.
‘준수하긴 한데……. 뭔가 아쉬워.’
뭔가 아쉽다.
습작과 마찬가지로 직접 참여해 지휘했던 여러 앨범 제작 건이나 소규모 프로듀싱 포트폴리오에서도 2% 아쉬운 뭔가가 느껴졌다.
“B플러스플러스까지는 줄 수 있어도 A급은 안 된다는 건가?”
“뭔가 아쉬움. 뭔가 뭔가.”
“권 선생님은 이번 일을 도약하기 위한 교육의 기회로 삼으시려는 건 아닐까 싶어.”
“흠……. 쉽지 않네…….”
위험한 일이다.
“좋은 스승님이야. 근데 그게 우리 앨범 만들 때라서 그렇지…….”
그 교육이 하필 우리 앨범을 제작하는 중에 그것을 소재로 진행되는 것도 조금 불안하긴 하고, 태호의 능력을 알긴 해도 총괄이라는 큰 직함으로 섭외해 진행 전체를 맡겨도 괜찮은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곧, 멤버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태, 태호 정도면 잘하는 프로듀서니까…….”
“그렇긴 하지. 솔직히 삵 앨범도 협력으로 참여해서 양호하게 잘 뽑았고.”
“우리 인맥 닿는 곳에 태호 정도 능력 되는 프로듀서가 없긴 해.”
“권 선생님 추천이면 난 괜찮음.”
우리가 성장한 만큼 태호 역시 성장을 반복했다.
우리는 프로로서 활동하며 배울 것을 배우고, 할 일을 열심히 해 왔던 그의 노력에 신뢰를 주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밴드의 결성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권 선생님의 안목을 믿고 싶기도 했고 말이다.
“오케이. 그러면 프로듀서 섭외 관련 회의는 여기서 끝. 이제 트랙 리스트 관련 사항 공지할게.”
“이응.”
“뭐 있더라?”
앨범 제작의 길을 밝혀 줄 총괄 프로듀서 섭외에 관한 건은 짧게 마무리 짓고, 우리는 앨범 트랙 리스트의 확정을 위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모아 둔 곡들 중 앨범에 넣을 수 있을 퀄리티라고 모두가 동의한 곡은 네 곡이야. 공교롭게도 나, 수현이, 라희, 재우가 각각 하나씩 만들었고. 비고로 재우가 가져온 곡은 연주곡이지.”
“그렇게 많이 가져왔는데…….”
“음. 이 잔뜩 갈며 만드는 앨범이니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지.”
처음에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다 좋아서 죄다 앨범에 넣자고 하던 라희 녀석이 짐짓 점잖은 체를 하며 고개를 까딱인다.
일정 이상의 퀄리티가 나오지 않는 곡을 앨범에 넣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설득을 몇 시간이나 해야 했던 나와 수현이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허허허.”
“하……. 하하…….”
조금 짜증이 나긴 하지만, 그래도 전부 해야 한다고 우기던 때보다는 훨씬 낫긴 했다.
“최소 여덟 곡에서 열 곡을 담는 풀 패키지로 제작할 예정이니 절반은 확보한 셈인데, 이제 외부에서 곡을 가져오거나, 앨범을 채울 노래를 더 만들어야 해.”
우리는 최소 여덟 곡, 많으면 열 곡 정도를 앨범에 수록할 예정이다.
물론 한국어 버전과 영어 버전을 동시에 제작해 더블 앨범을 뽑아낼 것이니, 앨범의 볼륨 자체는 곡의 개수보다 훨씬 크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근데 총괄 프로듀서가 들어올 거니까, 프로듀싱에 따라 천천히 구성해야 하지 않나? 우리가 골라 둔 곡들이 앨범에 들어가도 되는지 안 되는지도 프로듀서의 판단에 달려 있고 말이야.”
“아, 일단 그렇긴 하지.”
라희가 합리적인 의문을 제시했다.
우리가 직접 프로듀서 역할까지 수행하며 앨범의 모든 구성을 고려하던 지난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방향성을 탐색하고 직접 키를 쥐어 행보를 정하는 프로듀서가 있다.
때문에 우리가 맘에 들고 안 들고를 중점으로 살피기보다는, 프로듀서가 앨범에 어울리는지,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등을 따져 고른 우선순위를 존중해 트랙 리스트를 구성해야 한다.
“그래도 당장 어느 정도 리스트에 올릴 법한 곡들을 추려 놓는 정도는 할 수 있지. 나중에 컷이 된다고 해도, 미리 준비하는 쪽이 좋잖아? 손가락 빨며 기다리고만 있을 수도 없고.”
“그렇네.”
그러나 본격적으로 프로듀서의 인도를 따라 제작을 진행하기 전에, 우리끼리 먼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가늠하며 후보 목록을 작성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오히려 그쪽이 시행착오를 위한 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으니 어떤 면에서는 더 나을 수도 있다.
물론.
“어……. 그러니까……. 첫 곡이……. 살짝 얼터너티브 느낌의 부드러운 곡이니까……. 음……. 그……. 초반 어쿠스틱 스타트가 인상적이고……. 그러니까……. 끄으응…….”
세상 모든 일이 예측처럼 쉽게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태, 태호야?”
“왜 그럼?”
수현이와 재우의 우려 섞인 물음에 태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겠다는 듯 우왕좌왕 횡설수설을 반복했다.
“아, 응? 어. 미안. 아, 이……. 그게. 내가 말이 좀 이상했지? 그러니까……. 그, 이 곡이 말이야……. 그……. 배치를……. 아니, 아니……. 뭐랄까……. 곡의 분위기들을…….”
말은 시작했는데 끝까지 가질 않고 멈추고, 의미를 해석하기 전에 곧장 다른 이야기로 혼자 넘어가 흔들려 댄다.
총괄 프로듀서 자리를 맡아 본격적인 제작에 임하기 시작하고 첫 회의.
태호는 매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태호야, 정신 좀 차려.”
“으어! 아……. 미안…….”
“하아……. 일단 멈추자. 잠깐 쉬고 다시 시작하기로. 오케이?”
“오케이.”
“쉬자, 휴식!”
나는 태호의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음을 깨닫고, 곧장 회의를 잠깐 멈추고 휴식 시간을 가질 것을 제안했다.
잠깐이나마 끌어올렸던 집중력들을 확 풀어 버린 멤버들이 의자 깊숙하게 묻혀 쉬기 시작했다.
마치 인형처럼.
“어……. 원래 저렇게 쉬어?”
“냅둬. 심심해지면 알아서들 일어나서 뛰어다닌다.”
“애들도 아니고…….”
놀 때도 미친 듯이 놀지만 쉴 때도 제대로 쉬는 모양을 내겠다며 하는 짓이다.
“잠깐 나갔다가 오자. 음료수 좀 뽑아 오게.”
“어? 어…….”
나는 눈에 띄게 의기소침해진 태호를 데리고 스튜디오를 벗어났다.
어차피 스튜디오 안에도 음료수 같은 것은 많이 있다.
“뭐야? 뭐가 문제야?”
“응?”
그냥 대화를 하기 위한 핑계 삼아 나온 것이다.
“너도 알지? 오늘이 첫 회의인데 집중도 못 하고, 정리도 안 되고.”
“응…….”
캐묻는 내게 답은 안 하고 고개를 푹 숙이는 태호를 보며, 나는 한숨을 쉬고는 다시 물었다.
“긴장이 많이 돼? 총괄 같은 거창한 타이틀은 처음이라서?”
정곡을 찔렀는지, 그는 푹 숙인 고개를 살짝 까딱였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선생님, 대체 어디까지 내다보신 겁니까…….’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가기 앞서 내게 미리 연락을 줬던 권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 *
“시작하고 얼마 정도는 긴장도 되고, 두려움도 클 거예요. 아마 일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떨 수도 있겠지요.”
“네? 그래도 태호도 이제 나름 경력이 좀 있는데 설마 그렇게까지…….”
“재능은 뛰어나지만……. 태호 군은 아직 무게감을 이겨 내는 법을 잘 몰라요. 보조 PD, 협력 프로듀서, 몇몇 곡의 작곡가나 편곡가 롤 정도야 맡아서 부담을 빠르게 덜고 해냈겠지만, 직접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는 그 무게감이 다르지요.”
“음…….”
권 선생님은 태호가 긴장감을 이겨 내지 못해 실수를 연발할 것이라 예측했고, 나는 쉬이 동의할 수 없었다.
작업물의 퀄리티가 아주 살짝 아쉬운 것쯤이야 아직 연륜이 쌓이지 않았고, 경험이 모자라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한다 치자.
하지만 나름 프로로서 일을 해 온 태호가 자리의 무게 때문에 일을 망칠 것이라니?
심지어 나와 함께 작업을 해 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닌지라, 빠릿빠릿하고 여유롭게 일을 하는 그의 모습을 봤기 때문에 더더욱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삵 밴드 앨범 만들 때는 괜찮았습니다. 저희랑 더 밴드 코리아 결승 무대를 꾸밀 때도 그랬고요. 그때는 심지어 고등학생이었는데, 긴장이나 부담 같은 것 없이 자신 있게 잘했습니다.”
“허허허. 꿈만 넘칠 때와 현실을 알고 난 이후는 다르지요.”
권 선생님은 나직한 웃음을 흘린 후, 이어서 말했다.
“의욕이 넘치던 때에는 배운 것들, 하고 싶은 것들을 잔뜩 세상에 선보이며 그것을 자랑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보여 주는 것에 거리낌이 없지요. 평가야 어찌 되든, 더욱 발전해 뒤집을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부담이 생깁니다. 슬럼프라고도 하지요.”
그는 스승으로서 제자인 태호에 대해 단호하게 평가를 내렸다.
“태호 군은 얼마 전부터 흔들리는 모습을 자주 보였습니다. 작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성과물들의 양과 질이 줄어들기 시작했지요. 슬슬 벽을 느낄 때가 된 거예요.”
근거가 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간 그가 보여 준 모습, 그가 보여 준 한계.
“태호 군은 역시 발전해 넘어서야 하는 순간 앞에서 어쩔 줄을 모를 거예요.”
선생님은 그것을 보며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제가 그랬듯, 계기를 통해 큰 발전을 얻고, 남들 앞에서 자신이 음악인임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될 기회지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제자 역시 어느 순간 반드시 성장을 해야만 하는 정체기를 맞이할 것을 말이다.
“루치 군과 다른 럭키데이 여러분이 그를 조금 도와줬으면 해요.”
“저, 저희가요? 선생님께서 직접 하시지 않고요?”
“언제까지 보조 바퀴를 타고 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허허허.”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태호가 스스로 일어서기를 바랐다.
곧 그에게 들이닥칠 난관을 A급 프로듀서가 되기 위한 시련으로 삼아서.
나는 그런 선생님께 물었다.
“어…….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알단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지요.”
선생님은 웃음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태호 군의 성향을 생각했을 때, 자기 것이 아닌 앨범을 만드는데 진행이 느려지면 자기 탓에 진행이 되지 않는다고 부담을 크게 느낄 거예요.”
그는 이미 태호가 마주하게 될 시련에 대한 대비책을 구상해 두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는 제갈공명의 비단 주머니가 열리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권 선생님의 비방.
“자기가 직접 참여하는, 프로듀서로서가 아니라 음악을 직접 연주하는 제5의 멤버가 되면 되는 거지요.”
그것은 성인이 된 이후 프로듀서로서만 일을 맡아 온 태호를 세션으로 삼아 굴리라는 이야기였다.
“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