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75
174화
그러니까…….
“태호를 세션으로 쓰라……. 그 말씀이시죠?”
“예. 그렇지요.”
“어, 어어……. 그걸로 해결이 될까요?”
나는 권 선생님이 제시한 해결책에 살짝 의구심이 들었다.
만일 선생님께서 예측한 대로 태호에게 거의 일을 하지 못할 정도로 힘든 상황이 벌어진다면, 겨우 세션으로 써 앨범에 발을 걸치게 만드는 것만으로 그것이 해결될 수 있을까?
부정적이었다.
“허허허. 아마 눈에 띄는 변화가 있을 거예요.”
“음…….”
하지만 권 선생님은 그저 웃으며 본인의 생각을 이어 말씀하실 뿐이었다.
딱히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겠노라 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내게 힘내라는 응원과 함께 말을 남겼다.
“협력 프로듀서로서 업무에는 충실히 임할 테니,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연락 주세요.”
“네. 좋은 하루 되세요, 선생님.”
“예. 루치 군도 충실한 하루 보내세요.”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잔뜩 섞인 대화를 마무리하고 나서도 나는 한참 동안이나 그 자리에 앉아서 고민했다.
이게 맞나.
이렇게 하면 과연 위기를 벗어나서 우리 앨범을 잘 만들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결국 시간이 흘러 오늘.
나는.
“너 피아노 좀 치지?”
“어, 어? 피아노?”
질러 버렸다.
“우리 밴드 구성으로는 소화가 안 될 것 같아서 만들다 만 곡이 있어. 네가 피아노 세션으로 참여하고, 편곡도 돕고 해라.”
이렇게 해서 일이 잘 풀릴지 않을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선생님을 신뢰하고 움직이기로 했다.
‘애초에 총괄로 모시려고 하기도 했고……. 믿어야지.’
나는 그가 제안한 모든 일들이 우리의 일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하기 위함임을 알고 있다.
“내, 내가? 근데 난 프로듀서…….”
“프로듀서가 프로듀싱만 하라는 법은 없잖아. 애초에 프로듀서라는 게 역할이 그렇게 한정된 것도 아니고.”
프로듀서라는 직업은 음악을 더 아름답고 조화롭게 만드는 직업이다.
총괄, 스폰싱, 엔지니어링, 레코딩 등. 앞에 어떤 단어가 붙느냐에 따라 주된 업무가 바뀌겠지만, 결국 우리 앨범을 더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것이 그의 임무라는 말이다.
“너 스스로도 알지? 그렇게 벌벌 떨고 있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거.”
“어…….”
“차라리 직접 참여하면서 천천히 구상을 해 보자고. 작업물에서 한 걸음 떨어진 채로 바라보는 것보다, 그 안에서 부딪치면서 뭔가가 있는지 살피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으니까.”
“음…….”
태호는 내 말을 듣고 가만히 있더니 곧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일단 알았어. 편곡을 먼저 진행하고 연주할 수 있는지 볼게.”
태호에게 세션 역할을 떠넘기는 것에는 성공했다.
이제 일이 어떻게 풀릴지는 하늘과 땅과 우리의 협력 프로듀서님만 알 노릇이다.
* * *
원래는 딱히 세션을 쓸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기타 둘, 베이스 하나, 드럼 하나의 4인 체제인 우리가 소화할 수 있는 노래들만 골라 두었다.
아무리 멜로디가 예쁘게 뽑혔고 노래가 좋은들, 완곡에 이를 때까지 중간이 비어 구멍이 숭숭 난 노래를 좋아해 줄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나 일이 이렇게 풀리고 보면, 몇몇 곡들은 악기를 추가하고 세션을 부르는 선에서 더 풍성하고 예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음, 건반.”
딴 따라란, 딴따단. 딴 따라란, 딴따단.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 지금, 확정 트랙 리스트에는 기존 네 곡에서 두 곡이 추가되어 여섯 곡이 오르게 되었다.
건반 하나의 추가로 많은 것이 바뀐다.
반쪽짜리였던 노래들이 제대로 된 완성도를 가진 음악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태호가 키보드로 참여하는 두 곡은 확정이군.’
이제 외부 작곡가들로부터 곡을 받고, 우리가 만든 노래들도 몇 개를 더 수정해 끼워 넣으면서 네 곡 정도를 앨범을 제작할 예정이다.
‘이거 어떻게든 나아지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중요한 것은 상황이 얼마까지 진행되었느냐가 아니라, 상황이 나아졌는지 아닌지이다.
“어때?”
“괜춘.”
권 선생님의 제안대로 나는 태호를 두 곡의 피아노 세션으로 섭외해 연주를 맡기는 한편, 다소 비어 보이는 부분을 찾아 키보드의 멜로디를 넣도록 편곡까지 주문했다.
태호는 예상보다 더 뛰어난 키보드 연주 실력으로 연습 때부터 가녹음 날까지 상당한 활약을 보여 주는 한편, 우리 밴드에 딱 어울리는 편곡으로 곡의 퀄리티를 높여 주었다.
“소리는 제대로 들어갔는데, 음 올라가는 부분에서 레가토 말고 스타카토 버전으로 하나 더 녹음해 보자.”
“왜?”
“곡은 이어지는 모양이 나을 것 같긴 한데, 혹시 라이브 때는 뮤트를 넣어서 보컬을 강조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아, 끊어지는 모양을 좀 보자는 거지? 오케이.”
정해진 대로 연습을 하고, 연습을 한 그대로 녹음을 해 보고, 가끔은 즉석에서 편곡을 뒤집어 보기도 한다.
그렇게 곡을 섞고, 바꾸고, 뒤집는 과정과 연주 연습을 통해 태호는 천천히 앨범 제작 상황에 몰입하기 시작했고.
“이게 2번 트랙으로 들어간다고 치면, 그 뒤로 기존 곡들을 쭉 늘어놓는 식으로 편성이 가능할 것 같거든? 그런데 만약 네 곡을 이어 놓는 게 목적이라면 앞뒤로 피아노가 있는 곡을…….”
어느 순간부터 태호는 자신 본연의 역할, 프로듀서 일까지 조금씩 능숙하게 수행하게 되었다.
아직 하나의 의문점이 남긴 했지만 말이다.
‘평범한 프로듀서 역할 정도는 하고 있지만…….’
과연 A급 프로듀서의 퍼포먼스가 나오고 있느냐면, 또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태호를 총괄 프로듀서로 섭외한 그 목적이 지켜지고 있느냐는 의문이다.
“음……. 강철현 작곡가님으로부터 받은 곡은 픽스 해도 괜찮을 것 같아. 너희 의견은?”
“나, 난 좋아. 분위기도 확실하게 어우러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 이야기로 구성하기도 좋을 것 같아.”
“응. 영화처럼 스토리가 이어지는 앨범을 만들고 싶다는 점에서 사운드적으로 유기적이게 잘 짜낼 수 있는 곡은 대환영이지.”
“달리는 곡과 얌전한 곡 사이의 영역이 제대로 채워지는 느낌?”
“응응. 그런 의미에서 중간에 넣기 좋지.”
검토와 제안에 있어 꽤 꼼꼼하고 세밀하게 일을 하는 면이 있음은 물론, 아티스트들의 영역을 존중해 줘서 편하다.
이건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독선적인 결단이 없다는 그 말은 곧 줏대 없이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세밀한 일 처리와 아티스트에 대한 존중이 좋다는 말과 어긋나는 것 같지만, 그 말은 또 태호가 총괄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길잡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내지 못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대로 둬도 되는 건가?’
다소 우려가 되었다.
이번의 경우 태호의 발전에 대한 우려가 아닌, 우리의 앨범에 대한 우려였다.
우리는 비용을 들여 길잡이를 고용했는데, 길잡이가 본대와 함께 걸어가며 본대의 인도를 따르는 경우가 생긴다면?
목적도, 비용도 흐지부지 흐려진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어떡한다…….’
나는 태호의 성장을 더욱 촉진시키든, 아니면 프로듀서 업무를 덜어 와서 그의 짐을 가볍게 하고 내가 관여하는 영역을 넓히든, 무언가 방법을 구해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했다.
말로만 거창하게 세계를 노린다느니 하며 앨범을 만들었다가, 이렇다 할 성적도 거두지 못한 채 적당적당하게 끝나도록 두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럼 내일까지 샘플 정리해 볼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오케이.”
“너희는 합주 조금 하다가 갈 거지?”
“이응.”
“나 먼저 갈게. 준비할 게 조금 많을 것 같아서.”
그런 내 고민들은 쓸데없는 우려에 불과했다.
* * *
“이게……, 전부?”
“응. 조금이라도 차이가 생기면 전체적인 모양이 아예 달라지거든. 너희가 추상적으로나마 생각하는 콘셉트랑 가장 일치하는 모습을 고르면 돼.”
가녹음 일정 다음 날.
“와…….”
“밤새운 거야?”
“하하……. 조금?”
태호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샘플을 가져와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지금까지 확보한 모든 트랙들, 트랙 리스트에 넣기로 확정된 여섯 곡과 아직 편곡이 완료되지 않았으나 거의 확실히 넣게 될 두 곡, 그것들을 정리해 여러 방향의 배열을 만들었다.
위화감이 들도록 곡과 곡을 끊어 놓아 매 곡마다 피로도가 조금 높아질지언정 집중력만큼은 확실하게 이끌어 내도록 하는 배열.
자연스럽게 이어져 듣는 사람이 전혀 피로하지 않고, 전체 트랙들이 모두 한 곡처럼 느껴지는 배열.
그 외에도 여러 실험적인 곡 배치와, 혹여 곡의 콘셉트를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필요할지 모르는 인터루드 샘플까지.
‘기우였구나.’
그는 하루 만에 어마어마한 분량의 작업물을 가져와 우리를 바쁘게 만들었다.
“일단 여기 있는 샘플들은 전부 체크해야 하고……. 참, 권 선생님 통해서 추가곡 두 개에 대한 작사 요청에 들어갔어. 앞의 네 곡은 너희가 직접 원안을 짜고 싶다고 해서 당장은 일을 진행시키지 않았고.”
“오. 좋아, 좋아.”
“그리고, Sneaky 있지? 루치 곡. 그 곡은 추가 편곡을 해야 할 것 같아. 세 개의 파트로 나눈 만큼 장르의 경계가 조금 더 명확한 쪽이 좋을 것 같거든. 비는 일정이 있는 날 다시 회의를 잡도록 하고…….”
“어, 응…….”
거기다가 슬슬 앨범에 수록될 음악 완성 과정에도 제대로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모든 말이 옳은 주문인지는 차차 회의를 하고 직접 고민도 하며 밝혀내야 하겠지만, 의욕의 영역을 넘어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던 지난번의 컨디션과는 한참 다른 모습이었다.
“어떻게 한 거야? 전까지는 그렇게 힘들어하더니.”
나는 녀석에게 대놓고 물어봤다.
반쯤 넋이 나가 있다가 세션으로 녹음에 참여하게 되고서야 최근 며칠 반짝 정신을 차린 녀석이 어떻게 하루 만에 이렇게 많은, 그리고 여러 각도에서 잘 살핀 티가 나는 작업물을 가져올 수 있었는가?
“그, 그게…….”
그는 내게 대답했다.
“뭔가……. 부담감이 덜하다고 해야 하나?”
“부담감? 무슨 부담감?”
“빅 네임과 작업한다는 부담감이 묘하게 빠지더라고. 키보드를 치면서 너희랑 같이 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잖아? 그때부터 이름값 없는 나랑 이름값 높은 너랑 차이를 두는 걸 멈출 수 있었다고 해야 하나? 약간…….”
“아니, 아니. 빅 네임은 무슨…….”
조금 어이없는 이야기에 나는 실소를 터뜨렸다.
빅 네임은 무슨 빅 네임이란 말인가?
“야, 럭키데이가 아무리 1집 2집 나름 대박 터뜨렸다고 해도, 해외 진출을 목표로 하는 지금 거물 소리를 듣기에는…….”
“아니. 럭키데이가 아니야.”
태호가 내 말을 끊어 버리고 말했다.
럭키데이가 아니라니?
그럼 뭘 말하는 것인가?
이어지는 그의 대답은 내게 있어 조금은 당혹스러운 말이었다.
“널 말하는 거야, 루치야. 너.”
“엥?”
요즘 엥 하며 의문을 토하는 일이 부쩍 늘어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