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76
175화
럭키데이의 승승장구, 작곡가로서 굴곡 없이 나름 괜찮게 유지되던 커리어, 삵이라는 뜬금없는 프로젝트를 맡아 큰 성공으로 이끌던 모습.
“그런 모습에서 난 너를 굉장히 크게 봤던 것 같아. 뭔가 나랑 다른 종족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내가 너였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놀랍게도 태호는 나, 자신의 친구인 김루치아노를 빅 네임으로 여겼다.
“너랑 같이 작업하면서 내가 실수라도 하면 어떡하나, 내가 제시한 것들이 네 마음에 차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면서 걱정이 많이 들더라.”
그는 내가 이뤄 낸 성과들에서 경외감을 느끼고, 그런 나와 동등한 입장에서,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자리를 맡아 협업을 하게 된 것에서 큰 부담을 느꼈다.
말 그대로 친구인 김루치아노가 아닌, 남들 모두에게서 고평가를 받는 가수 김루치아노의 이름에 압도된 것이다.
‘이게 무슨…….’
나는 잠시 당황스러워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가 그렇게 느끼는 것도 일리가 있어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잠깐 생각하다가 나는 그에게 듣고 싶었던 답을 재촉했다.
“그럼 지금은? 뭔가 생각이 바뀌었어?”
“그냥. 음…….”
그는 말 끝을 흐리다가 다시 답했다.
“여러 가지가 있긴 해. 너희 작업물을 만드는 걸 도와준다는 생각에서 너희와 함께 앨범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바뀌기도 했고…….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성장하는 거라고 자기 위안도 해 봤고……. 조금 복합적이야.”
“복합적?”
“뭐라고 해야 되냐, 이걸……. 딱 정해서 말할 수가 없어. 그냥 그렇게 됐다.”
“뭐, 뭐야, 그게.”
조금은 김빠지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만큼 안심이 되기도 했다.
‘다행인가?’
십 년 가까이 지속된 친구 관계이다.
서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것을 가장 가까이서 봤었고, 넘지 못할 거대한 벽처럼 보이던 현실을 넘어서길 간절히 기원하기도 했다.
언젠가는 집에서 나와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겠다는 나를 기꺼이 받아 주어 자취방 한구석을 내어 주기도 했고 말이다.
“쯧……. 그래도 이제 좀 개처럼 굴려도 되겠네.”
“개, 개처럼?”
나는 태호에게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응. 지금까지 낭비한 시간만큼 열심히 굴러서 좋은 앨범 만들어야지. 응?”
“어, 응? 응……. 그렇지…….”
아무래도 권 선생님의 생각이 옳았던 모양이다.
태호는 시련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넘어서고 있고, 모든 것을 극복한 뒤에는 더 훌륭한 뮤지션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성장은 우리 앨범의 퀄리티에 실시간으로 반영되겠지.
‘태호에게는 발전의 기회를 주고, 우리는 그걸 돕는 동시에 앨범 작업에 도움을 받으라는 뜻이었을까.’
둘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모색했던 제안인가 싶었다.
“가자. 삵보다, 럭키데이보다 더 열심히 구르러!”
“사, 삵보다?”
뭔가 태호가 두려움에 떠는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그간 내가 했던 마음고생에 비하면 뭔들 더 무거우랴!
녀석의 어깨에 내 팔을 올리고, 다시 작업실로 향했다.
“흠흠, 흠흠흠흠……. 흠흠흠, 흠흠…….”
“야?”
마음 무거운 쉬는 시간은 이제 끝.
큰 고민이 사라진 후.
발걸음이 가벼워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 * *
-그래서 앨범 발매일은 언제임?
-ㄹㅇ 방송 켜서 떡밥만 풀고 제대로 된 정보는 안주자너!
-언제 나옴!
“앨범 발매일요? 나도 몰? 루?”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김루치아노/논란/시청자 우롱
“아, 우롱은 무슨. 아직 발매일 확정 안 났어요. 그리고 일자 나왔어도 어떻게 라이브 스트리밍에서 알려 줍니까? 홍보팀분들한테 꿀밤 맞을 일 있어요?”
나는 힘든 녹음 일정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와 너튜브 라이브 방송을 켰다.
정말 오랜만에 하는 구독자들과의 소통.
-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우우
-/야유
-/비난
-우우우우우!
언제 봐도 정겨운 팬들.
사랑이 넘치는 반응.
“음. 너무 좋아. 방종하고 싶어.”
기를 쪽쪽 빨리는 느낌이다.
“님들 그런 거 말고, 응? 새 노래 어때요, 앨범 제목은 뭐예요, 그런 질문 있잖아요? 더 물어볼 거 없어요?”
-아 ㅋㅋ 어차피 앨범 나오면 다 알게 된다고 ㅋㅋ
-됐고 노래 한 곡 해봐라 ㅋㅋ
“아오……. 환장…….”
다른 멤버들과 함께 방송할 때는 그렇지 않은데, 혼자 방송을 켜면 묘하게 놀리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딱히 유도한 것이 아닌데도 내가 놀리고 시청자들이 놀리는 과정이 반복되어 버린다.
삵 때도 진지하게 Q&A를 진행하려고 하면 분위기가 싹 바뀌고는 했는데, 어째 혼자 진행할 때는 그게 되질 않는다.
‘대체 왜지…….’
아마 회사에서 방송할 때와는 퀄리티가 다른 화면과 음성, 딱히 준비된 것 없는 콘텐츠, 적극적인 의사소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싶었다.
-녹음 진행 중이라 들었는데 얼마나 됐나요?
“오! 드디어 제대로 된 질문!”
잔뜩 쌓인 웃음과 농담 사이, 제대로 된 질문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성심성의껏 답했다.
“지금 모든 트랙 가녹과 가이드 녹음은 끝났고요, 천천히 완성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작사가 완료되지 않은 곡이 하나 있어서 조금 걸릴 것 같아요.”
-오
-왜 하나만 늦음?
“하하……. 그게 이유가 있는데……. 여기서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아직 앨범 발매와 향후 활동 목적에 대한 정보가 다 풀리지 않은 상태인지라,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준비 중인 영어 가사가 다 나오지 않았다는 답을 줄 수가 없었다.
-ㅡㅡ
-김루치아노/논란/시청자 우롱
-ㅋㅋㅋㅋㅋㅋㅋ 그놈의 논란ㅋㅋㅋㅋㅋ
“아, 또 무슨 논란!”
대놓고 우리 미국 갑니다, 하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도 답답하다.
진짜 혹시나 말실수라도 해서 퍼져 나가기라도 하면 홍보팀장님의 핵꿀밤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테니까.
“아무튼 올해 안에 발매하긴 할 거예요.”
-다른 가수들 복귀 타이밍 안 봄?
“네. 신경 안 쓰고 그냥 냅니다. 일정 미루고 당기는 거 없이 완성되면 검수 후 심의 넣고 발매 들어가요.”
-오오오오
-자신감 ㄷㄷㄷㄷㄷ
사실 예상 발매 기간인 9월 중순쯤에는 크게 부딪칠 만한 팀이 없어서 일정 조정 없이 출시하는 것인데, 어떻게 말을 하다 보니 그게 자신감 넘치는 대사처럼 들렸나 보다.
-속보) 김루치아노, 다음 앨범 그 누가 오더라도 이길 자신 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속보) 선배들? 후배들? 다 비켜! 럭키데이가 간다! 일정 조정 없다는 그들의 자신감!
-여기 기레기들 많네 ㅋㅋㅋㅋㅋㅋ
이제는 무슨 말을 하더라도 논란거리처럼 바꿔서 나를 놀리는 데에 써먹는 시청자들이다.
“아무튼 앨범 작업 자체는 굉장히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차후에 관련 정보가 홍보차 더 풀리긴 할 텐데, 진짜 기대 많이 하셔도 좋다는 말씀 정도만 드릴게요.”
-캬. 이번엔 진짜 자신감.
-믿고 듣는 럭키데이니까 ㅋㅋㅋ
-나오면 바로 들어봄!!!
계속해서 방송을 진행하는데.
뻠범범버! 범범범버!
“음? 강 작가님이네?”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러분 잠깐만요. 저 통화 좀.”
-일?
-강 작가님이 누구?
-아이언스트링 작곡가인 듯?
나는 잠시 마이크에 음소거를 걸어 놓고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아, 루치 씨. 혹시 통화 괜찮으십니까?”
“네, 네. 괜찮습니다.”
“아……. 사실은 제가 지금…….”
천천히 이어지는 강철현 작곡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간이 살살 찌푸려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차, 캠.’
나는 지금 표정이 카메라에 잡히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는 급하게 표정 관리에 나섰다.
-루
-버
-거
-루
-바
-거
다행히 시청자들은 알아채지 못한 듯 나를 놀리는 채팅에 심취해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나는 그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대답했다.
“제가 지금 스튜디오로 가겠습니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이따 뵈어요.”
뚝.
통화를 종료하고 다시 마이크의 음소거를 풀어 시청자들에게 공지를 남겼다.
“자, 여러분.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
-갑자기?
-무슨 큰일이라두 있어여???
“아뇨, 큰일은 아니고. 작업 때문에 회사에 잠깐 가 봐야 할 것 같아서요. 하하하……. 다음에 방송 다시 켜도록 할게요. 뿅!”
-루바
-루-바
-앨범 얼른 나와라잇!
시청자들의 애정 어린 배웅과 함께 방송을 종료했다.
“끄응……. 가야지.”
그 여운을 즐길 새도 없이, 나는 대충 옷만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대체 무슨 일이야?’
강철현 작곡가님과 이번에 그가 보내 준 곡, Song to Me의 영문 작사를 위해 섭외한 한겨울 작사가가 싸우고 있다니.
왜 그런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일단 가서 보자.’
이게 무슨 일인지 너무 궁금해서, 본래라면 만날 일도 없는 두 사람이 대체 어떻게 만나서 왜 다투고 있는지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빠른 걸음으로 회사 회의실로 가니, 태호와 강 작곡가님, 그리고 한 작사가님이 모여서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잠깐 진정들 하시고요…….”
“아니, 그러니까. 럭키데이에게는 조금 더 딥한 감성을 얹어 줘도 충분히 소화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소화의 문제가 아니에요. 전체 분위기와 어울리는지, 앞뒤와 제대로 연결이 되는지를 따져야죠.”
“사운드가 이렇게 잘 맞아떨어지는데, 가사를 쓰면서 연결이 되는지를 따질 이유가 있습니까?”
“어머? 이분 좀 봐? 콘셉트 앨범이잖아요? 스토리 배치에도 신경을 썼던데, 당연한 거 아닌가요?”
나는 순간 입에서 터져 나올 뻔한 엥 소리를 간신히 눌러 참아 목 안에 담고는, 살짝 문을 두드려 소리를 내며 그들에게 인사했다.
똑똑.
“안녕하세요.”
“어머, 루치 씨! 안녕하세요!”
“아, 왔냐? 앉아 봐. 앉아 봐.”
“안녕하십니까, 루치 씨. 어서 오세요.”
곧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세 사람이 나를 반기며 자리를 권했다.
대충 상황을 보니 알 것도 같았다.
‘작사 방향성 얘기구나.’
원래라면 작곡자인 강 작가님과 작사자인 한 작가님이 만날 일은 없었겠지만, 이번 경우엔 강 작가님이 한국어 작사를, 한 작가님이 영어 작사를 각각 맡아 하고 있기에 서로 얼굴 볼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뭐가 어떻게 다르기에 이렇게 부딪치고 계세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원곡자의 작곡 의도와 콘셉트, 제목까지 모두 나와 있는 와중에 대체 뭐가 어떻게 다르기에 이렇게 열불을 내는지 알 수 없었다.
달라 봐야 얼마나 다르단 말인가?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일 뿐이거늘.
“일단 이것 좀 봐 봐. 한국어 버전이랑 영어 버전이야.”
“응? 응.”
그런데 내 생각보다 두 작품이 꽤나 다른 분위기였다.
“어, 어……. 어? 이게 이렇게도 되나?”
둘은 같은 콘셉트, 같은 주제를 가지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