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77
176화
“소리 없이 노래했지. 물고기가 떠다니는 연못을 보며. The song for a big fish in a little pond. 이야……. 한글은 직관적으로 시신을 묘사하는데, 영문은 우물 안 개구리를 위한 노래라고 되어 버리네요?”
“깊은 뜻 없이 단발적인 비유로 럭키데이의 딥한 감성을 반영할 수는 없습니다.”
“잠깐만요. 제 영문 가사가 스토리의 연계성을 중시해서 쓰이긴 했지만, 딥하지 않다는 말은 안 되거든요?”
“숙어의 남발입니다.”
“이게 어떻게 남발이에요? 곡 전체의 흐름을 따지면, 과거의 자신과 작별을 하는 화자가 할 수 있을 법한…….”
내가 두 사람의 가사를 읽으며 나름 해석하며 평가를 내리는 동안에도 논쟁은 멈추지 않았다.
양측 모두 타당한 의견이 있었기에 섣불리 중재할 수가 없어 당혹스러웠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만 깊게 뜻이 숨은 가사와, 해석의 방향이 정해진 숙어의 사용이 잦아서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받아들이는 가사라…….’
엄밀히 말하자면 강 작곡가가 말하는 딥하지 않다는 말의 뜻은 일반적인 상황과 조금 다르다.
“강 작가님은 가사를 듣는 사람이 직접 뜻을 풀이할 여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고, 한 작가님은 비유 정도는 있어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가사를 선호하시는군요.”
말하자면 청자가 화자의 마음을 파악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하냐는 것.
그것은 표현의 복잡함이나 비유의 사용 회수 따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쪽이 훨씬 좋지 않아요? 스토리 라인이라는 게 있는데, 곡들을 쭉 따라가면서 붙은 속도는 지켜 줘야죠.”
“하지만 청자가 탐구할 여지를 주지 않으면…….”
내가 던진 질문 하나에도 말꼬리에 말머리가 달라붙으며 논쟁이 이어진다.
이거 적당히 해결할 일이 아닌 것 같아 태호 쪽을 바라보았다.
“어지간하면 의견 맞추고 방향 정하는 게 내 일이긴 한데, 두 분 말씀이 각각 논리가 있더라고. 이 경우에는 아티스트 생각을 최대한 반영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음……. 그렇긴 하지.”
프로듀서가 실권을 얼마나 쥐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아티스트의 판단과 경향을 최대한 존중하는 성향인 태호 입장에서는 퇴근하고 돌아간 나를 불러서라도 정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애초에 상황 자체가 매우 불편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나마 강 작가님이 더 밀어붙이려고는 안 하셔서 다행이네.’
사실 한국어 작곡가가 본인이기도 하고, 가사를 먼저 완성한 쪽도 자신이니, 강철현 작곡가가 자신의 말이 맞다며 몰아붙일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는 서로 논리를 전개해 공격과 방어를 진행할 뿐, 그런 쪽에서 나오는 파워를 휘두르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래서 더 어려워.’
서로 자신의 예술관에 따른 주장을 펼치고 있는지라 끼어들기가 더 어렵다.
차라리 그저 관계가 나빠 싸운다거나, 기분이 나빠 다투는 간단한 상황이었다면 더 중재가 쉬웠으리라.
나는 두 사람의 의견을 저울질하며 어느 쪽이 앨범에 도움이 될지를 한참 동안이나 고민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둘 다 써 봐?’
강철현 작곡가도, 한겨울 작사가도 나름의 일리가 있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두 의견 모두 반영해도 괜찮지 않나?
나는 사람들에게 잠시 손을 들어 보여 양해를 구한 뒤, 전화기를 꺼내 나와 가사에 대해 가장 많은 논의를 나눴던 수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따르르릉.
수화음이 몇 번 울리기 전,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어, 수현아. 잠깐 물어볼 게 있어서.”
“으, 응? 왜?”
나는 그녀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한 후, 의견을 구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둘 모두의 말이 일리가 있다며 크게 고민하는 목소리로 답했다.
“나는 못 정하겠어……. 어떤 의견을 고르든 나름 가치가 있을 것 같아서…….”
“음……. 그럼 이건 어때?”
내가 떠올린 방식.
투 트랙의 앨범인 만큼 두 의견 모두를 반영해 하나는 강철현 작곡가의 의견을, 하나는 한겨울 작사가의 의견을 반영한 곡을 만드는 것.
그 이야기를 들은 수현이는 말을 잠시 멈추었다가 대답했다.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닌데……. 그, 그래도 괜찮을까?”
“어……. 딱히 문제가 될 건 없지 않나? 반드시 한국어 버전과 영어 버전의 가사가 완전히 동일한, 그러니까 번역했을 때 각 언어의 해석이 동일할 필요는 없잖아.”
“으응……. 음…….”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잠시 시간을 죽였다.
그리고.
“괜찮을 것도 같아…….”
“음. 일단 오케이. 회의 더 해 보고 이따가 다시 전화할게.”
“응…….”
통화를 마치고, 나는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열심히 의견을 개진하느라 내가 수현이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저…….”
“네?”
“말씀하세요.”
어차피 앨범은 투 트랙이고.
“한국 버전은 강 작가님 의견대로, 영어 버전은 한 작가님 의견대로 한번 가 볼까요?”
2개국어 모두를 할 수 있는 리스너는 적으니까.
“괜찮지 않나?”
팔자 좋은 아이디어이지만 이 이상의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마니아층의 청자들이 탄탄한 한국에서는 해석의 여지를, 조금이라도 더 많은 리스너가 있고 파고들기 싫어하는 청자들이 많은 미국에서는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면…….”
“음…….”
“으음…….”
각국 음반 시장의 차이도 분명 있고, 애초에 두 버전의 소비 계층이 크게 겹치지 않으니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사례를 따져 보면 아예 없는 일도 아니고 말이다.
‘주제나 소재, 말하고자 하는 바 정도는 같을 수 있어도 표현 방식이 완전히 같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실제로 박선욱 선배님의 꿈의 태양과 Infernal은 같은 노래인데 가사의 뜻은 아예 다르고 말이야.’
해 볼 만한 시도가 아닐까 싶었다.
아니, 오히려 도전해 봐야 할 시도일 것도 같았다.
“아예 다른 노래처럼 구성하자는 뜻은 아니지?”
태호가 내게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제 의식과 소재를 통일하는 선에서, 표현 방식을 바꿔서 가사를 써 보는 거지.”
“흠……. 제일 편한 방법이긴 한데……. 부딪치는 일도 없고…….”
잠시 고민의 시간이 흐르고, 곧 강철현 작곡가가 먼저 내게 대답했다.
“저는 좋습니다. 나름의 가사 철학이 있으니 의견을 좁히기도 힘들고, 후일 대중들이 평가해서 누가 옳았는지를 가름해 주는 것도 기대할 수 있겠군요.”
그러자 한 작사가도 말했다.
“하! 당연히 제가 옳았다는 걸 아시게 될 거예요. 저도 좋아요!”
“어……. 경쟁이 아닙니다. 이건 창작…….”
“판매량으로는 판단이 어려울 테고, 평론과 일반인 평가를 기다려야겠군요.”
“두고 보세요.”
“아니…….”
그러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마치 둘에게 경쟁을 붙인 꼴이 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잠깐 당혹감을 느꼈지만, 나는 굳이 말리지는 않기로 했다.
‘그래, 이렇게 두 분이 경쟁심을 불태우면서 더 좋은 작업물만 뽑아 준다면야.’
서로에게 자신의 작업물이 더 옳은 방향을 가졌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두 사람은 예술혼을 불태울 것이다.
“완성된 가사를 다시 수정해야겠습니다. 며칠만 말미를 조금 주실 수 있겠습니까, 태호 PD님?”
“네? 아, 네. 레코딩 일정 조정은 아직 충분히 가능합니다. 마감일은…….”
“일주일이면, 아니, 닷새면 충분합니다.”
“좋습니다. 녹음 일정을 살짝 미룰게요.”
“저는 곧 가사 다 나와요! 오늘 초안에서 조금만 다듬으면 돼요!”
“그럼 영어 버전은 그대로 둬도 되겠네요.”
벌써부터 사소한 것들을 경쟁 종목으로 삼고 있으니, 진짜 가사 퀄리티는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럼 가사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쓰겠습니다.”
“맡겨만 두세요!”
나는 두 사람에게 인사를 드리고 회의실을 벗어났다.
‘어우 더워.’
곧 날씨가 죽고 가을이 될 때임에도 어찌나 열기가 뜨거웠는지, 등에 살짝 땀이 난 상태였다.
“와, 진짜 무서웠어……. A급, A급, 얘기만 들었지 저렇게까지 자기 철학에서 벗어나는 일은 절대 못 하겠다고 할 줄은…….”
“음. 솔직히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야? 클라이언트가 원한다고 우리가 힙합 노래를 만든다거나, 배우로서 영화에 출연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아, 그렇게 말하면 또 그렇긴 하지.”
태호 역시 중간에 끼여서 말리기도 하고, 중재도 하다가 피로도가 급증했는지, 집으로 향하는 나를 배웅하겠다며 따라 나왔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녀석에게 물었다.
“일은 괜찮아?”
“뭐가?”
그는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듯, 내게 되물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안 힘드냐고. 알잖아.”
“흐흐흐. 알지.”
그는 내가 재차 물어보니 그제서야 웃음을 터뜨리며 답했다.
“힘들긴 하지. 근데 그때처럼 힘든 건 아니야. 무슨 뜻인지 알지?”
“흠…….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긴 한데, 나 같은 절대 무적 우주 최강 슈우퍼 롹스타 님에 대한 열등감으로 힘들지는 않다는 뜻이지?”
“미친놈.”
“크흐흐흐.”
“애초에 열등감이 아니야. 부담감이라고.”
“알아, 알아.”
어느 정도 마음의 짐을 떨쳐 버린 것 같아 대놓고 놀리는 농담을 던졌다.
피식.
잘도 웃는 것을 보니 마음이 편했다.
“근데……. 이거 먹힐까?”
“투 트랙?”
“엉.”
태호가 내게 성공 가능성에 대해 물었고,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나야 모르지.”
“응?”
세상에 이런 멍청한 질문이 어디 있단 말인가?
“성공할지 못 할지 다 알고 시작하면 세상에 망한 앨범이 왜 있겠냐?”
“쩝……. 그건 또 그렇지.”
확신은 없다.
그냥 이렇게 하면 조금 더 괜찮지 않을까, 이렇게 하면 좋은 반응을 얻지 않을까 하며 더듬더듬 길을 짚어 나갈 뿐이다.
“잘 만들어 봐야지. 평가는 듣는 사람이 할 거고.”
“강 작가님 말씀 생각나네.”
“하하하. 대중들이 평가할 것이다.”
“어우, 떨려. 처음 총괄 프로듀서로 들어간 앨범인데……. 망하면 안 되는데…….”
“그니까 안 망하게 잘해.”
“그래야지! 뜨아아아!”
태호 녀석이 기합을 넣듯 거리에서 소리를 질러 댔다.
부담감은 덜었어도 평가 직전에 놓인 긴장감은 완전히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피식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조용히 해, 미친놈아. 사람들 다 보잖아.”
“뜨아아앙! 꾸에에에엑!”
“아오.”
나는 마스크를 끌어 올려 얼굴을 단단히 가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집으로 빠르게 걸어가야 했다.
* * *
“빗소리를 들어 봐. 비명에 사라진 것들의 노래. 불꽃이 하늘로 쏘아지듯…….”
뚝.
“괜찮은데, 살짝 누르듯이 발음하기로 했잖아.”
“아, 실수. 뜨르르르르! 쁘르르르! 다시 가자.”
빡세고 힘들고 피곤하고 여유 없는 녹음 일정.
나는 답답한 녹음실에서 몇 시간째 같은 노래를 반복했다.
아니, 같은 소절을 반복했던가?
아니면 같은 마디?
‘음……. 살짝 띄운 소리로, 볼륨은 크게, 발음은 꾹꾹 눌러서.’
의도한 메시지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한 표현 방법을 다시 교정하고, 나는 대체 몇 회차인지 모를 재녹음을 시작하려 했다.
그때.
벌컥.
“루치야……. 아이고, 녹음 중이었구나?”
“아, 형. 지금 살짝 멈춘 상태였어요.”
“아, 다행이다. 너한테 택배 온 거 있는데, 지금 보여 줘야 할 것 같아서.”
“잉? 뭔데요?”
유성 형이 상자 하나를 가지고 들어왔다.
수신자 Luciano Kim.
발신자 Raymond Jessel.
“어? 어어어?”
나는 경악하며 입을 쩍 벌린 채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으어어! 레이몬드 제셀이 나한테 소포를 보냈어! 으어어어!”
영국의 유명 밴드 데저트 하트의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레이몬드 제셀로부터 내 문의에 대한 답변을 대신하는 선물이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