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78
177화
“캬……. 크아아아……. 뻒예아아아아아!”
나는 소포 상자를 뜯어 확인하며 괴성을 질렀다.
드디어 왔다.
“악보랑……. USB네?”
자기 곡을 원하는 가수들에게 샘플만 덜렁 주고 연주를 시킨 후, 자기 나름의 기준점을 넘어야만 곡을 준다는 것으로 유명한 작곡가 레이몬드.
“시험! 시험 볼 수 있어! 이메일 답장 보낸 지 꽤 됐는데 소식이 없더라고! 타이밍 좋게 날아오려고 그랬던 거야! 응!”
작곡을 요청하고, 시험을 제안받고, 응하겠다는 답장을 보낸 지 몇 주 정도 연락이 없어 포기해야 하나 싶었던 와중.
샘플 악보가 날아왔다.
“레이몬드……. 제셀? 야, 루치야. 이거 그 레이몬드 제셀이야? 진짜로?”
“그래! 그 레이몬드 제셀이지! 하하하!”
데저트 하트의 레이 제셀은 굉장히 유명한 밴드맨이자 작곡가이다.
한때는 영국 락의 자존심이기도 했고, 한때는 많은 기타리스트들이 본받고자 한 기타리스트이기도 했으며, 또 한때는…….
“이야……. 저 사람 곡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세계에 널려 있을 텐데, 너한테 답장이 왔다고? 대박이네.”
많은 이들이 그의 곡을 받고자 지구 한 바퀴를 도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최고의 작곡가이기도 했다.
‘이건 샘플 악보. 코드랑 멜로디, 1절과 훅까지. 이 USB는……. 확인해 봐야겠지만, 자료겠지?’
악보 뭉치와 USB 디스크 하나를 살피며, 나는 흥분했던 마음을 간신히 가라앉힐 수 있었다.
아직 곡을 받는다는 것이 확정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에게서 단 한 곡을 받기 위해, 우리는 샘플 악보를 보고 나름의 해석을 곁들여 연주 영상을 촬영하고, 이것을 다시 소포로 보내야 한다.
‘연락은 이메일로 하면서 대체 왜 자료와 악보는 소포로 보낸 건지…….’
사람 가려 받는 작곡 외에도 하늘을 날겠다며 낙하산을 달고 다리에서 뛰어내리거나, 응원하던 축구팀의 경기에 난입하는 등, 여러 기행으로 유명한 레이 제셀이기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와, 이거 손 악보야?”
“그런 것 같아. 크……. 레이 제셀 친필이라니…….”
“엄청 삐뚤빼뚤하네.”
악보 뭉치는 상당한 악필의 지시문과 삐뚤빼뚤한 선 탓에 손으로 쓴 것이 분명해 보이고, USB는 컴퓨터에 연결해서 확인해야 그 정체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잠깐 컴퓨터 좀 쓸게?”
“응? 데스크톱 말고 저쪽 저거 써.”
“아, 오케이.”
나는 컨트롤 룸 한쪽 구석에 있는 노트북에 USB 디스크를 연결해 내용물을 확인했다.
짧은 악보 파일 하나와 이미지 파일 몇 개, 그리고 문서 파일이 하나 있었다.
“이건……. 샘플 악보랑 똑같은 거네.”
악보 파일은 수기 샘플 악보와 완전히 동일한 것이었다.
아마 가상 악기를 사용해 소리를 들어 보라는 배려인 것 같았다.
‘어……. 그럴 거면 손 악보는 왜 보낸 거야?’
애초에 이런 불친절한 시험을 만들어 가수들에게 선사하는 것에서부터 그 배려심이 전혀 감동적이진 않았지만.
‘이미지 파일은……. 뭐지, 이거? 그림이랑 조각상?’
이미지 파일은 몇 점의 그림과 조각상 등이 찍힌 사진들과, 팝 아트처럼 보이는 사진 몇 장이었다.
나는 그 이미지들을 살피며 생각했다.
‘이거……. 뭐더라?’
어디서 본 것도 같은데, 정확히 무슨 그림, 조각, 사진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공통적인 부분이라 한다면 일그러지고, 뻗어 나가고, 깨지는 등, 사물 혹은 인물의 형상이 변형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
일그러지는 형상은 기괴하기도 하고, 깨져 나가는 모습은 일견 호쾌하기도 하지만 슬쩍 봤을 때 느껴지는 불길함이 또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다.
‘무슨 작품들인지는 나중에 찾아보고, 다음. 문서.’
그리고 나는 그 작품들의 정체를 문서 파일에서 찾을 수 있었다.
“자료구나…….”
문서 파일에는 레이 제셀의 전언이 쓰여 있었다.
“뭔데? 뭔데?”
“음…….”
소포를 통해 보낸 짧은 악보는 만일 밴드 럭키데이가 시험을 통과한다면 그들에게 선물할 곡의 일부이다.
동봉한 사진과 그림 등은 이 곡을 만들 때 이미지를 잡는 데에 도움을 주었던 작품들이다.
럭키데이가 나름의 해석과 감상을 가미해 연주를 한 후 촬영본을 보내면, 나는 그것을 토대로 그들이 내 곡을 받아도 괜찮을지를 판단할 것이다.
부디 아름다운 표현을 보여 주길.
“짧게 축약해서 대충 그런 말이야.”
“오오오……. 힌트 크게 주셨네.”
“그렇지. 이게 다 영감 덩어리들이란 말인데…….”
우리가 받을 곡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던 이미지들.
그것을 보고 그가 어떤 마음으로 곡을 만들었을지를 상상하며, 그 안에 담겨 있는 메시지를 우리 나름의 해석으로 재현하라는 것이다.
“일단 애들이랑 같이 보면서 머리 좀 굴려 봐야지.”
“어……. 머리를 굴려? 너희가?”
“얘가 우리 애들 너무 무시하네.”
나는 태호의 말에 손을 휘저으며 반박했다.
물론 바깥 사람들이 보기에는 과격파, 행동파 그 자체인 우리 멤버들이지만,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 진심인 녀석들이다.
그 진심이 어느 정도냐면…….
“고등학교 때 나보다는 훨씬 많이 아는 것 같아, 이제.”
“오. 의왼데?”
“뭐……. 학교도 다녔고, 유학도 다녀왔고. 그럴 만도 하지.”
“생각해 보니 그렇네.”
해박한 음악 지식이 장점이었던 녀석은 장점이었던 지식의 총량을 늘려 왔고, 부족한 음악 지식이 단점이었던 녀석은 자신의 부족함을 메울 만큼의 전공 지식을 쌓아 왔다.
이제 이론에 있어 답답함을 느낄 일은 많이 없는 것이다.
“뭐, 그럼 일단 작업은 중단?”
레코딩 프로듀서와 함께 내 녹음을 봐주고 있던 태호가 내게 물었다.
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그에게 답했다.
“응? 아니. 하던 건 마저 해야지.”
“어……. 안 바쁘겠어?”
“바쁘긴.”
나는 수습 못 할 일을 저질러 놓고 허우적거리는 성격이 아니다.
“이것까지는 충분히 가능해. 일정은 넉넉하다고.”
물론 그것도 상황이 다 받쳐 줄 때 얘기지만 말이다.
* * *
“아니, 재녹이라뇨? 이미 일정 맞춰서 다 끝냈잖아요?”
“아……. 그게……. 참……. 미안하게 됐다.”
레코딩 프로듀서 승훈 형의 말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 되물었다.
“현장에서 가믹싱 진행하면서 했잖아요? 우리도 다 같이 들으면서 했고.”
“이게 들을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입력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야. 현장 스피커로 바로 빼서 마스터 사운드를 들었던 게 실수지. 그렇게 하는 게 편하긴 한데…….”
“배, 백업은요?”
“입력 문제인지라…….”
“그쪽도 깨졌겠군요. 허허허.”
“미안하게 됐다는 말밖에 못 하겠다…….”
이러면 안 된다.
‘일정 제대로 꼬였네, 이거.’
빡빡하게 잘 짜 두었던 시간표가 확 무너졌다.
녹음 과정에서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해 재녹음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럼 우리 어떡해? 아직 편곡이랑 가사 수정이랑 러셀? 제셀? 아무튼 그 아저씨 시험도 봐야 되잖아?”
“으으……. 그러게…….”
내 실수였다.
‘시간표를 너무 타이트하게 잡았나? 조금 더 여유를 두었어야 했나?’
기술 문제야 천재지변이니 내 힘으로 어쩔 도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조금 더 여유롭게 일정을 잡았더라면 그래도 꼬인 일을 부드럽게 술술 풀어 나갔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이거 어떡하지…….’
녹음 일정 외에도 아직 마무리 편곡 작업이 남은 곡이 몇 개 있고, 직접 쓴 가사 수정 회의도 잡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레이 제셀의 시험을 위한 연구도 진행해야 한다.
“시, 시간이 모자랄 것 같은데.”
정말 최소한으로 잡아 이틀 정도는 소모해야 하는 재녹음 일정과 함께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편곡 일정을 미루면?”
“그러면 녹음 일정이 또 한 바퀴 꼬이게 되겠지.”
“가사 수정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그건 좀 아님. 우리가 쓴 건데 남이 더 잘 만질 수 있을 리가 없음.”
“끄으응…….”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최대한 시간표를 잘라 붙이며 일정을 조정할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결국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단 한 가지.
“악보 해석을…….”
“조금 대충…….”
“사전 분석은 거의 없이 한다고 봐야겠군.”
레이 제셀의 악보.
함께 회의를 진행한다는 스케줄을 캔슬하고, 그 영감을 주었다던 이미지와 자료들의 해석을 각자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래도 되나?’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한 가지의 그림을 백 명이 본다면, 백 개의 해석이 나오는 것이 당연지사.
우리 네 사람이 같은 악보와 같은 자료를 따로 보면 분명 각각 또 다른 맛의 영감과 감상을 끌어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는 시간이라도 줄여서 자료 살펴보고, 녹음 진행 일정 도중에 단톡방에 감상문 올리는 걸로.”
“그, 그걸로 괜찮을까?”
“어쩔 수 없지, 뭐.”
“어떻게든 싱크로가 맞길 바랄 뿐.”
이건 하늘에 빌어야 한다.
아니.
“우리가 함께했던 지난 시간들을 믿어!”
지금까지 함께 음악을 했던 그 소통과 조화의 시간에 빌어야 한다.
제발, 제발…….
“같은 곳을 바라보는 합주가 나오길 바라면서!”
어떻게든 조화로운 연주가 만들어지기를.
“어…….”
“살짝 무리인뎁숑.”
“운에 기대지 마셈.”
아.
아무튼 따로따로나마 연구를 진행하며 의견 공유야 하겠지만 말이다.
* * *
“준비됐어?”
“음!”
“아……. 이, 이걸 준비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니은.”
며칠 뒤.
우리는 예정대로 레이 제셀에게 보낼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모였다.
“아아아아. 괜찮아. 우리 감상도 제법 많이 나눴고, 거의 회의하는 시간만큼 시간 투자했잖아? 응?”
불안한 목소리로 물어보지만, 멤버들은 자신이 없는 표정이다.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라 나 또한 긴장이 되었다.
작곡가에게 우리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한 시험이나 제대로 된 준비 없는 합주 트라이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밴드의 저 음악 광인들이 자신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처음이다.
너무나 낯선 상황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응. 괜찮아. 진짜로.’
속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그리고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괜찮을 거야.”
“어? 어…….”
“……이응.”
“오케이! 좋아! 오케이!”
툭 던진 말에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내 한마디에 긴장이 살짝 가신 듯한 모습이다.
“후. 됐어. 좋아. 잠깐 손 좀 풀고 가자.”
“이응.”
“준비!”
“으, 응…….”
마인드 컨트롤 과정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순식간에 마치고, 나는 연주 준비를 요구했다.
멤버들도 불안했던 기색을 꾹 숨기고 손을 풀었다.
나도 준비에 들어갔다.
딩, 딩, 딩딩, 디이잉…….
“뿌, 뿌. 크흠! 뿌, 뿌르르르르르르! 쁘르르르르르!”
손으로 기타 줄을 몇 번 튕겨 주고, 입으로는 목과 혀를 푼다.
“좋아……. 준비됐지?”
“응!”
“이응.”
“좋아! 들어간다!”
“고!”
신호와 함께 오른손을 움직였다.
지이이잉, 징, 징, 지이잉…….
디스토션 효과가 먹혀 거친 질감의 저음 리프가 흐른다.
그것을 신호로 천천히 연주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