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80
179화
“모레 가냐?”
“응. 그렇지.”
“어휴. 여기도 장마철 얼마 안 남았는데, 비 많이 오는 영국 가서 비 구경하고, 오면 또 비 구경하고. 물 만났네.”
“하하. 물고기처럼 쑥쑥 가려는 모양이지.”
결국 우리는 앨범 작업을 마무리에 걸쳐 놓고 영국행을 결정했다.
“다녀오면 전부 마무리할 수 있겠지?”
“응? 그럴걸? 길어도 며칠 안 걸리도록 설계했으니까.”
완전히 끝낸 것은 아니고, 막바지 엔지니어링에 대한 검수 등의 자잘한 일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시간은 딱 맞게끔 맞춰 둔 상황이다.
“영국에서 일주일 정도. 그러면 다녀와서 며칠만 고생하면 될 테고……. 발매 일정은 아득바득 맞출 수 있겠네. 주말 공휴일 섞여 있으니, 그것까지 계산해서 D-Day를 셌다고 치고…….”
“아마 저쪽에서 녹음에 믹싱, 마스터링까지 다 끝내고 올 것 같아. 그러면 돌아와서 검수랑 혹시 있을 재녹까지만 생각하면 딱 맞을 거야.”
“그래……. 어떻게든 되겠네. 휴.”
짧은 시간 동안 전부 불태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단 하나를 제외한 모든 트랙의 녹음을 완료했다.
잠깐 제동이 걸린 것 같았던 가사 작업 역시 빠르게 쳐 낼 수 있었고, 내 영역이 아닌 엔지니어링 정도만 남은 상태.
“그 할아버지 괜찮겠냐? 조금 이상한……. 음……. 변태……. 같은…….”
“하하……. 괜찮겠지……. 나름 월클 작곡가인데.”
모든 것은 레이 제셀의 제안, 합을 맞추고 곡의 수정을 함께하자는 그 제안을 받아 영국으로 떠나기 위해서였다.
“쩝……. 파이팅 해라.”
“너도 같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어쩔 수 없지. 타이밍이 안 맞는데, 뭐.”
개인적으로 태호도 함께 갔으면 했지만, 녀석도 우리 앨범 작업 이외의 개인 일정이 있어 어쩔 수 없었다.
“네 앨범 준비도 파이팅이야.”
“흐흐흐. 기대해. 너희 활동 끝나는 타이밍에 팍 발매해서, 펑 하고, 응? 알지?”
“그래, 그래. 원 맨 밴드라니……. 그걸 진짜로 할 줄은…….”
원래 일정을 살짝 벗어나려던 우리 앨범 스케줄을 완벽에 가깝게 소화해 내고, 이제 자신의 작품을 준비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태호였다.
“콘셉트랑 뭐, 이런저런 건 다 나왔다고 했나?”
“엉. 연주곡 둘, 보컬 있는 곡 둘, 이렇게 해서 네 곡짜리 미니로 내려고.”
“풀 패키지는 욕심 안 나고?”
“지금 당장은 안 돼. 확실히 내 음악 철학이 반영될 만한 앨범을 뽑을 수 있어야 내는 거지, 그것도.”
“오오. 프로페셔널…….”
나는 한동안 태호와 앞으로 어떤 앨범을 만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르는 대충 뭉뚱그려서 감수성 넘치고 정형되지 않은 모던 락의 탈을 쓸 예정이고, 콘셉트는 원 맨 밴드라는 그 특성 자체를 조명하는 방향으로 가겠다는 것 등.
“괜찮네.”
“처음 내는 앨범에 딱이지. 지금밖에 못 쓰는 콘셉트이기도 하고.”
“신인의 신선함을 강조하며 본인을 소개한다. 좋은 선택이야.”
그는 이미 대략의 계획을 모두 세워 놓았다.
“회사는 안 끼고?”
“엉. 너희 회사에서 계약 얘기가 잠깐 나오긴 했는데, 첫 작품은 인디펜던트의 맛을 제대로 살리고 싶어서 거절했어.”
“크……. 멋지네.”
“뭐……. 계약 전에 뭐라도 제대로 된 작업물이 있으면 추후에 내 몸값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고.”
“큭큭큭. 여차하면 회사가 없어서 망했다고 핑계도 대고?”
“쉿. 그건 비밀이야.”
농담을 끝으로 대화를 정리한 후, 나는 녀석의 어깨를 툭 치면서 응원을 남겼다.
“대박 나라.”
“너희도. 잘 다녀오고.”
태호의 아티스트 데뷔를 응원하며 앨범 작업의 99퍼센트를 모두 완료했다.
그로부터 이틀 후.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돌아다닐 때는 유성 매니저랑 현지 가이드에게 의지하시고요.”
“넵!”
우리는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 * *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오오, 넓어, 넓어. 로비부터 영국 냄새가 나는군.”
“뭔 냄새?”
“영국 냄새.”
“그게 무슨 냄새야?”
“나도 몰라.”
영국 냄새 같은 소리를 하려면 호텔 로비가 아니라 공항에서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나는 굳이 언급하지 않고 넘어갔다.
수현이 빼고 모두 이렇게 멀리 나오는 것은 처음인지라 사방이 신기하게만 보였다.
“잠깐만 숙박 수속 좀 마치고 올게요. 여기서 기다려요. 어디 가면 안 돼요.”
“넵.”
“얌전히 있겠슴당!”
런던 히스로 공항에 도착해서 우리는 현지 가이드인 영호 형의 인도를 따라 호텔에 도착했다.
가이드 형은 우리를 잠깐 대기시키고 체크인 같은 것들을 하러 프론트로 향했고, 우리는 잠깐 통화를 하러 간 유성 형과 가이드 형을 기다리며 로비를 구경했다.
“아니, 당신 내가 누군지 몰라? 모르냐고!”
그런데 그때.
익숙한 언어의 고함이 우리의 귀에 들어왔다.
“와. 진상인가?”
“진짜 저런 대사를 하는구나…….”
“신기.”
젊은 남자 한 명이 프론트 데스크의 동양인 직원에게 뭔가 드라마에서 봤을 법한 대사로 윽박을 지르고 있었다.
우리 또래 정도 되어 보이는데, 옷과 시계, 구두 같은 몸에 걸친 물건들이 반짝반짝하고 딱 봐도 비싸 보이는 것이, 자주 보이는 진상 고객의 스테레오 타입 같은 남자였다.
‘한국인인가? 한국어로 소리치는 걸 보면 맞는 것 같긴 한데, 그럼 직원도 한국 사람?’
마음 같아서는 말리고 싶었지만, 내 일이 아닌 소란에 엮이는 것은 곤란했다.
나는 불편한 마음을 감추고, 그 모습을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그런데.
“에잇, 진짜!”
진상 고객이 돌연 화를 내며 들고 있던 종이컵을 땅에 패대기쳤다.
그리고.
퍽!
그것은 내게 날아와 맞았다.
정확히 가슴팍에.
“아.”
순간 짜증이 확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쯧……. 진짜 이건 또 뭔…….”
그나마 내가 다치진 않았고, 안에 뭔가 들어 있지는 않은 빈 종이컵이었기에 참았다.
다 쓴 식기를 던졌다는 것이 짜증이 나기는 해도, 세탁 같은 것이 필요하지는 않을 테니까.
툭툭.
나는 그저 맞은 자리를 툭툭 털고, 떨어진 종이컵을 주워 구겨서 쓰레기통에 가져다 버렸다.
‘참아야겠지?’
굳이 소란에 얽혀 드는 것은 좋지 않다.
특히나 대중들의 관심을 먹고 사는 예능 계통 종사자들은 더더욱 그렇다.
만일 내가 정치인이었다면 정의로운 인물 코스프레라도 하며 달려들었겠지만, 연예인은 시시비비도 불명확한 이런 종류의 일에는 관여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런데 그때, 프론트 데스크에서 진상을 부리던 남자가 내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응? 뭐지?’
나는 순간 굳어 있는 그의 표정을 보며 긴장감을 느꼈다.
설마 엄연한 피해자인 내게 시비라도 걸려 오는 것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죄송합니다. 사람을 향해서 던지려던 건 아닌데 본의 아니게……. 연락처 주시면 제가 세탁비는 변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어……. 에?”
나는 너무나도 정중한 그의 태도에 오히려 당황해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더더욱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혹시 기분이 많이 상하신…….”
나는 묻는 그에게 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아,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뭐 더러워진 것도 없고요. 괜찮아요.”
“그래도 제가 피해를 끼쳤는데요. 정말 죄송합니다. 어떻게 배상을…….”
“정말로 괜찮습니다.”
“이런…….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당황스러운 기분이다.
‘뭐지? 뭐야? 뭐야, 이거? 뭐지?’
금방까지 보였던 그의 모습은 진상 그 자체였고, 진상 손님은 대개 나쁜 사람들이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말이다.
‘어……. 무슨 사정이 있는 거였나?’
그런데 지금 또 이렇게 직접 와서 사과를 하고 정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면 전혀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교양 있고 예의 바른 사람처럼만 보였다.
‘이상한데?’
나는 이렇게 예의 바르고 정중한 사람이 방금까지 데스크에서는 왜 그렇게 소란스럽게 난리를 떨었는지가 궁금해졌다.
“저…….”
“네, 말씀하십시오. 어떻게 제가 도와드릴 일이라도…….”
“아뇨, 그게 아니라…….”
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데스크에서 소리를 많이 지르시던데……. 무슨 일 있으신가요?”
사람을 단면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더니, 저기서와 여기서의 태도가 많이 다른 남자의 모습에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내 물음을 들은 남자가 순간 움찔하더니 손으로 목을 쓸었다.
그리고는 대답했다.
“아……. 아,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군요. 이게 참…….”
“아, 혹시 아는 분이신가요?”
나는 혹시 남자가 진상을 부리던 것이 아닌 건가 싶어 물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아는 사이에 다투면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아, 음……. 사실은…….”
그는 살짝 뜸을 들이다가 답했다.
“저는 아는데 저 친구는 모른다고 해서 지금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엥? 그게 무슨…….”
나는 알 수 없는 그의 말에 더더욱 의문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 나를 보며 남자가 말을 이었다.
“사실 제가 이 호텔 사장님 아들이거든요……. 아버님을 뵈러 왔는데 약속 없이는 못 만난다고 자꾸 가로막지 뭡니까. 제가 아버님 호출을 받고 온 거라 빨리 올라가 봐야 하는데…….”
“어……. 예?”
예상도 못 했던 이야기에 나는 순간 멍해져서 멍청한 소리로 되묻고 말았다.
“심지어 저 친구는 전에도 제가 봤던 직원인데, 사람 얼굴을 기억 못 하니 답답해서……. 저도 모르게 소란을 피웠네요. 불편을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 아이고. 아닙니다. 아니에요.”
세상에 맙소사.
아무리 세상은 넓고 기기묘묘한 일들은 곳곳에서 일어난다지만, 이런 꼬이고 꼬인 상황이 우리 눈에 들어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일어난 소동이었을 것이라 누가 짐작했겠는가?
나는 모든 전말을 듣고 나니, 속으로 그를 진상이라며 욕했던 것이 괜히 미안해졌다.
‘물론 사람들 많은 곳에서 시끄럽게 화를 터뜨린 게 잘한 짓은 아니지만…….’
세상 얼마나 답답했으면 호텔 사장 아들이 로비에서 분통을 터뜨리며 발을 굴렀겠는가 싶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사정을 모르니 그저 진상으로 볼 것만 같아 그게 조금 답답하기도 하고…….
아무튼 그저 황당하고 이상할 뿐이었다.
그때.
“표지헌이! 왔으면 안 올라오고 뭐 하나!”
데스크에서 조금 떨어진 곳, 계단 쪽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네! 지금 올라가겠습니다!”
그러자 표지헌이라고 불린 남자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혹시?”
“네. 저희 아버님입니다. 기다리시다 못해 내려오셨나 보네요. 후우우…….”
“아이고……. 어서 가셔야죠.”
그를 호출해 두고서 기다리다 못한 사장이 직접 내려와 아들을 발견해 부른 것이다.
“네. 아무튼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호텔에 묵으시는 동안 불편한 점이 있으시다거나……, 뭔가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꼭 좀 연락 주십시오.”
“앗, 네. 감사합니다.”
“그럼 좋은 하루 보내시길…….”
“네. 좋은 하루 되세요!”
나는 그가 건넨 명함을 챙겨 들며 인사했다.
천천히 표지헌이 사라지고, 그것을 살폈다.
멤버들도 내게 다가와 그것을 함께 보았다.
“와……. 진짜 사장님 아들이었구나…….”
“평범한 진상 손님인 줄.”
“진상 손님이 평범한 건 아니지 않아?”
“그런가.”
‘런던 보고장 호텔 상무이사 표지헌……. 진짜네…….’
검색해 보니 보고장 호텔 사장의 이름은 표태식.
정말로 사장 아들이 맞았다.
“근데 저 사람 우리 못 알아봤어…….”
“앗.”
“자존심 상하네.”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기묘한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