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81
180화
J&A 스튜디오(Jessel & Adkins Studio).
전설적인 밴드맨이자 작곡가인 레이몬드 제셀과 유명 밴드 The Distant Hill의 프로듀서로 잘 알려진 브루스 앳킨스가 차린 음악 스튜디오이다.
북런던 교외에 위치한 이 스튜디오는 여러 해 동안 수많은 밴드들이 앨범 제작을 위해 방문했으며, 현대 녹음 장비의 최첨단을 달리며 항상 최고의 환경이 유지되는 것으로 이름 높았다.
“크……. 낡았다.”
“생각보다 훨씬 허름한데?”
“안 무너짐?”
근처에 있는 가정집들처럼 생긴 그 건물은 매우 낡았고, 소형차가 와서 들이받으면 무너지지는 않을까 싶은 외견이었다.
물론 겉보기에는 그래도 내실만은 탄탄하다.
‘어……. 그렇겠지?’
아니, 탄탄해야만 한다.
앞으로 짧은 기간 우리의 귀중한 시간을 투자하여 단 한 곡의 명작을 꾸며 보겠다고 왔는데, 내부마저 허름해서는 안 되겠지.
“들어가자. 기다리겠다.”
“예아.”
따로 신호 없이 그냥 들어오라는 메시지를 미리 받았기에, 우리는 정문을 열고 그대로 스튜디오에 입장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로비.
“오, 드디어 왔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 헬로?”
곱슬곱슬한 백발과 덥수룩한 콧수염, 이에 대비되는 검은 뿔테 안경이 인상적인 노인이 커피 잔을 손에 들고 우리를 반겼다.
“여러분이 럭키데이로군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살짝 줄어든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크군요.”
“아.”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내 덩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하긴, 어느 곳에 가더라도 눈에 띄는 모습이기는 하다.
“반갑습니다, 미스터 제셀.”
“오, 레이라고 불러 주세요. 혹시 내가 홍차가 아닌 커피를 마시고 있어서 차별하는 건 아니겠지요? 취향은 어쩔 수 없다고요.”
“앗, 아아…….”
“외국인 손님들은 영국 사람이면 누구나 커피는 배척하고 홍차를 즐길 것이라고 생각해요. 오, 이런, 맙소사. 카페인의 위대함을 느끼지 못하는 그들이 불쌍해.”
“…….”
그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활달하고 에너지 넘치는……,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아저씨 되게 수다스럽네.”
“어…….”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음? 영어 구사자는 김 씨뿐인가요? 이거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너무 아쉽군요.”
“아, 루치아노라고 불러 주십시오. 루치도 괜찮고요.”
“오케이. 좋습니다. 루치.”
“저, 저도 어느 정도는…….”
“오오, 가방을 보니 베이시스트로군요. 그럼 이쪽이 진 씨겠군요.”
“수라고 불러 주세요…….”
“수. 오케이.”
뭐랄까…….
굉장히 수다스럽고 정신 없지만 눈썰미는 대단한 사람 같다.
악기부터 미리 살핀 것도 그렇고, 포지션을 알자마자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보니 우리 이름과 포지션을 다 외우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대단하긴 하네.’
순식간에 분위기를 자기 쪽으로 가져간 제셀이다.
“무슨 얘기임?”
“해석! 통역! 나도 알려 줘!”
최소한 영어를 알아들은 나와 수현이 두 사람에게서만은 말이다.
“크흠. 그보다…….”
“아, 비즈니스 이야기를 해야겠지요. 일단 앉으세요. 커피?”
“아뇨, 물을 챙겨 왔습니다.”
“음……. 아주 좋아요. 훌륭합니다. 관리를 열심히 하는군요.”
그는 다른 멤버들에게도 커피를 마실 테냐 물어본 후, 인원수에 맞추어 음료를 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런던까지 와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겠죠. 오늘부터 바로 시작하는 게 좋겠어요.”
“일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요?”
나는 여유롭게 말하는 제셀에게 물었고, 그는 그 여유를 잃지 않은 채 천천히 답했다.
“우리는 먼저 호흡을 가다듬을 겁니다. 요가를 배운 적이 있나요?”
“어……. 한국과 인도는 아주 멀리 있는 나라라서…….”
“아,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적인 시선이 아니라, 요즘은 요가가 전 세계적으로 많이 퍼졌잖아요? 하하. 이거 이해하기 쉬운 설명을 하려다 보니 오해받을 말을…….”
그는 고개를 젓고는 다시 말했다.
“시험에 임하기 위해 아마 제가 보내 드린 자료를 오래 연구했을 겁니다. 아주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충분한 고찰이 있는 연주였어요.”
“아……. 그게…….”
“흠? 왜 그러시죠?”
나는 흡족한 듯 말하는 제셀의 앞에서 말끝을 흐리며 땀을 닦았다.
왜 그러냐며 물어 오는 그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사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시간이?”
“앨범 작업을 하는 틈틈이 개인적으로 자료를 감상하고, 그 느낌을 공유하는 것으로 연구를 때웠습니다.”
“각자?”
“네. 함께 모여서 감상하지는 않았고, 그저 감상문과 개인적인 생각 정도만…….”
그런 나의 말에 제셀은 눈을 땡그랗게 뜨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오, 이럴 수가!”
“으앗?”
느닷없이 터진 고성에 나는 깜짝 놀라 몸을 움찔했고, 제셀은 그런 것엔 아랑곳하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함께 감상을 하고 그 자리에서 서로 느낌을 나누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각자 집에서 감상문을 써서 공유를 했어요? 마치 학교 숙제처럼?”
“네, 네…….”
“오, 맙소사!”
노인의 과장된 말투는 우습기보다는 조금 위축되는 감이 있었다.
금방이라도 그렇게 성의 없이 시험에 임하다니, 내 곡을 받을 자격이 없다! 하며 소리를 지를 것만 같은 느낌.
하지만.
“그래서였군! 서로의 연주에 대한 이해와 신뢰는 뛰어난데도 미묘하게 곡의 설계 구조를 망가뜨리는 이유! 애초부터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감상을 나눌 수 있는 팀워크를 따로 두었다가 뭉쳤으니! 오, 이런. 왜 당신들을 진작 이곳으로 부르지 않았을까…….”
“어……. 네?”
“아, 아니에요. 아닙니다. 허흐흐흐흐. 이거 우리가 할 일이 많겠어요. 이레 동안 고생을 해야겠군요.”
“앗, 네.”
묘한 표정으로 혼자 놀라고 생각하더니 이내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제셀.
도대체 뭘 생각하고 무엇에 납득한 것인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우선 내쫓길 일은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첫날은 가볍게 시작하죠. 먼저 여러분이 부르게 될 노래의 완전한 버전을 들어 보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속으로 떠올려 보세요.”
“오.”
“Broken의 원본인가요?”
“정확히는 여러분의 연주를 보고 편곡을 한 완성본이죠. 감상실로 가시죠.”
그는 들고 있던 컵을 빠르게 비워 버리고는 우리를 데리고 스튜디오 안쪽으로 이동했다.
방음재가 붙은 문이 열리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감탄사를 뱉었다.
“와…….”
“대박.”
우리 밴드 멤버들과 유성 형, 그리고 제셀까지 고작 여섯 명이 다 채우기에는 너무 넓은 공간.
커다란 이중 구조 스탠딩 스피커가 소파 앞쪽에 두 개, 뒤쪽에 두 개.
베이스 부스트를 위한 것으로 보이는 우퍼 유닛과 스피커 전용 믹서.
“저, 저거 다이아몬드 테일!”
“미쳤다. 미쳤어…….”
“여, 여기 스피커 값만 쳐도 서울에 건물 한 채는 나올 것 같음.”
그 이외에도 세트 구성에 억대의 돈이 들어가는 다중 모듈 스피커와 초대형 결합형 스피커까지.
“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러분.”
그야말로 룸 어쿠스틱, 룸 튜닝의 정수가 눈앞에 있었다.
“여, 여기가……. 감상실이라고요? 이 장비들은 대체…….”
“허흐흐흐. 스피커 욕심이 많아서 사 모으다 보니 이렇게 되더군요. 어떤 음악을 들을지 고민하고, 어떤 스피커로 재생할지 또 고민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되긴 했지만, 음악을 제대로 들어야 할 때는 이만큼 좋은 게 없어요.”
“확실히 그럴 것 같습니다.”
“어떤 음악을 들어도 가장 완벽한 환경에서 들을 수 있을 테니…….”
세상에.
여기 스피커에 미친 사람, 아니, 음악에 미친 사람이 있었다.
“저 할아버지 그냥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진짜 제대로 이상한 사람이었어.”
나는 라희의 말에 속으로 동의했다.
‘보통 이상한 사람이 아니지. 어지간한 집 한 채 값이 이 스튜디오에……. 아니, 감상실이 전부는 아닐 거 아냐? 그러면 대체 이 스튜디오는…….’
이 J&A 스튜디오라는 곳이 유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엄청난 곳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공간 음향 설비도 이렇게 완벽할진대, 녹음 시설은 얼마나 좋을까 자연스럽게 기대가 되었다.
“자, 앉으세요. 이제 Broken의 완전한 모습……. 아니, 여러분이 연주하기 직전의 불완전한 모습을 똑똑히 봐야 해요.”
“오오오…….”
제셀이 우리에게 손짓하자 우리는 소파에 앉아서 그가 음악을 틀어 주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곧 그가 준비한 Broken의 완성본이 스피커를 통해 흘렀고.
“아…….”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지이잉, 징, 지이잉, 지이이이잉…….
아련하고 우울하게 흐르는 기타 리프.
둥, 두두두둥! 두두두둥! 두두두둥, 둥! 둥, 두두두둥! 두두두둥! 두두두둥!
최고의 세션이 연주했을 것이 분명한 웅장한 드럼 소리.
두움, 둣, 두두둣, 두우움, 두움, 둣, 두두둣, 두우움…….
가장 완벽한 연결고리의 형태로 기능하는 베이스 리듬.
‘이거……. 우리가 연주했던 그 곡 맞아?’
다소의 표현 기법 차이.
아주 살짝 위아래가 바뀐 멜로디.
차곡차곡 쌓아 올려지는 마디에 가슴이 쿵쿵 뛰어 댄다.
“들으면서 대충 숙지하세요.”
제셀이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던 우리에게 말했다.
“Broken은 한 곡에 세 파트가 있어요. 깊은 밤, 옅은 새벽, 쨍한 아침.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여러분이 어떤 깨달음을 얻고 어떻게 변해 가는지 연주에 반영할 필요가 있어요.”
설명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으려 한다.
흐르는 곡의 위엄이 너무 강해서, 거기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기기 직전이어서.
하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곡을 듣는 한편 제셀의 설명에 제대로 귀를 기울인다.
“앞으로 며칠, 우리는 Broken을 함께 탐구할 거예요. 하지만 이것을 트레이닝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영감을 공유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군요.”
트레이닝이 아니다?
영감을 공유하는 과정?
잘 모르겠다.
‘우리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
이런 대단한 곡을 만드는 사람과 우리가 마치 동등한 관계인 것처럼 서로 생각을 나눌 것이라는 말인가?
그게 가능한 일이기는 한가?
나는 처음으로 그런 마음이 들었다.
‘우리 음악이……. 묻혀 버리지는 않을까?’
제셀의 음악 세계가 럭키데이를 완전히 뒤덮어 버리지는 않을까?
거장의 앞에서 내 음악관을 지켜 낼 수 있을까?
조금, 아니, 많이 두려웠다.
내가 이 명곡을 소화할 수 있는 보컬인지 의문이 들었다.
꿀꺽.
그런데 그때, 큰 소리가 양쪽에서 들려왔다.
“…….”
라희와 재우.
두 사람이 얼굴에 가득 웃음을 짓고 침을 꼴딱 넘기는 소리였다.
‘아.’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미친. 나는 대체 무슨 생각을…….’
녀석들은 이미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순간 부끄러워 얼굴이 화닥거렸다.
그리고.
‘이거…….’
빨리 이 곡을 함께 연주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함께 만들어 보는 거예요.”
제셀 역시 한껏 밝은 웃음을 지은 채 말해 왔다.
“이 노래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의욕이 가득 차올랐다.
아,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가 선행되어야겠지요? 감상을 마치고 식사부터 한 후, 여러분이 조금은 소홀히 했던 영감 포착의 시간을 가지도록 해요. 허흐흐흐.”
“앗…….”
그런 마음이 들었다고 바로 이 완전한 버전의 곡을 연주할 기회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