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82
181화
“작가의 심상은?”
“어……. 발전? 발진?”
“진일보?”
“진일보가 뭐야?”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느낌.”
“오. 그것도 맞는 것 같다.”
우리는 액자에 고이 모셔진 사진 앞에서 각자 감상을 뱉었다.
유명 프로 야구 선수가 배트를 휘두르고, 그 배트 앞에는 커다란 전신 거울 하나가 놓여 있다.
멈춰 있는 사진이지만 우리는 곧 배트가 거울에 닿고, 이에 거울이 산산조각 날 것을 알고 있다.
“아니면 탈태? 탈피?”
“그것도 괜찮네.”
각자 나름의 해석을 내놓으며, 우리는 다른 예술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심상을 포착하는 법을 익혀 갔다.
“짐작이나 추측 같은 것이 아니에요. 포착하는 거예요. 작가가 그려 내고자 했던, 담아내고자 했던 그 순간의 영감을 잡아내세요.”
솔직히 이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과정이지만, 제셀과 함께하는 예술 작품 감상 시간은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다각적 사고라고 하던가?
생각의 틀이 넓어지는 느낌이다.
“완벽한 것은 없지만, 어울리는 것은 있어요. 어떤 기법이 가장 이 영감에 어울리는지를 제대로 알아야지요.”
그 이후에는 포착한 영감을 기술로 표현해 내는 법을 다시 점검했다.
“이렇게 툭 튕기면?”
티이잉!
“살짝 뛰는 느낌이지? 점프처럼.”
“아니면 왜 있잖아, 게임할 때 당황한 사람한테 나는 효과음.”
“오, 그것도 있다. 맞아.”
익히 알고 있는 지식이지만, 말하자면 다시 되짚어 보며 적용하는 과정을 통해 조금 더 세밀하게 곡의 표현을 도모하는 것이다.
“트레이닝이……. 아니네.”
“응.”
우리는 지난번 제셀이 했던 말을 기억했다.
“트레이닝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영감을 공유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군요.”
이제 무슨 뜻인지 조금 감이 잡힐 것 같았다.
분명 우리는 배우고 있지만 제셀에게서 트레이닝을 받는 것은 아니다.
주워 담고 있다고 해야 할까?
우리가 잊고 있던 것을, 혹은 놓치고 있던 것을, 혹은 우리가 아닌 다른 음악가들은 자연스럽게 하고 있지만 우리는 신경 쓰지 않고 있던 것들을.
“그러면 이건…….”
“킥으로만 딱딱 박자 만들어 주면서 달리다가 베이스가 얹히는?”
“음……. 그러면 큰 기교 없이 코드로?”
“커, 컴핑……. 조금 지루하기는 해도, 밸런스 있게 2도나 3도 음만 두드려 주는 게…….”
그것은 곧 영감의 표현 방식을 정하는 기준점이 되어 나타났다.
“어? 그러면 그때 Broken 연주할 때도 속주 부분에서 베이스가 기타에 같이 붙어 줘야 했었나 보다!”
“그, 그런가?”
“응. 혼자 가는 게 아니라 이끌어 가는 뉘앙스니까.”
“그런 것 같기도.”
원래도 중요하게 여겼던 표현 방식의 결정에 있어 우리는 조금 더 신중해졌고, 조금 더 세밀하게 조건을 따지게 되었다.
“예술 작품 감상, 감상 공유, 표현 기법 접목…….”
“의외로 연주 스킬을 만지는 작업은 없네?”
“허흐흐흐. 지금 럭키데이에게는 필요하지 않아요. 녹음에 돌입하면 디렉팅이 있기는 하겠지만, 당장은 기술 습득이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사실 프로 대 프로로 만나서 뭔가를 배우는 자세로 작곡가 겸 레코딩 프로듀서를 대하는 것도 모양이 이상하기는 하다.
애초에 생각해 보면 그가 보냈던 편지에는 함께 합을 맞추고 곡의 수정 과정을 겪자는 말이 쓰여 있었지, 우리를 가르치겠다는 말은 없었으니까.
‘함께, 투게더.’
서로 동등한 아티스트로서 말이다.
‘이것 참…….’
뭔가 시야가 트이는 느낌이다.
‘어……. 진짜 트레이닝이 아니었어……. 옆에서 같이 걸어 주고 있어.’
제셀이 제시하는 방향을 살피고, 그곳으로 갈지 말지를 정하는 것은 우리의 역할이다.
이를 통해서 뭔가 성장한 느낌.
새로 배운 것은 없는데, 잊고 있던 것을 되짚으며 그 과정을 지나 한층 성장한 느낌이다.
“이거 한국어로 하면 다 휩쓸고 지나간 후? 그 정도 표현이 맞지 않을까?”
“휩쓸다? 너무 거칠지 않음?”
“애초에 거친 연주가 들어가는 파트이기도 하고, 괜찮을 것 같은데.”
“이미지가 너무 한정되지 않음? 폭풍이 눈보라일 수도 있고, 우박과 비가 섞인 거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다 쓸어 버린다는 이미지는 같잖아.”
“그건 그럼.”
특히나 영어로 쓰인 가사를 한국어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만들어져 있는 원래의 가사는 더 깊게 이해하게 되고, 이 곡의 분위기와 속뜻을 제대로 받아들여 전달하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해야 했다.
이것은 훈련이 아니다.
‘더 나아가기 위한 과정. 함께 겪는 거구나.’
Broken이라는 단 한 곡을 더 완벽하게, 더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다.
그렇게 우리는 Broken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더 아름답게 그 뜻을 선보이기 위해 연구하며 며칠을 보냈고.
“그럼 감상과 적용, 토론의 과정은 어제까지로 하고, 오늘은…….”
“연주!”
“합주!”
“연습!”
“허흐흐흐흐. 그래요. 본격적으로 녹음에 들어가기 전, 합주를 통해 분위기를 몸에 익히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
드디어 실전에 돌입하게 되었다.
‘늘었을까?’
과연 우리는 제셀과 함께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며 Broken을 완벽한 형태로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을까?
비록 본격적인 앨범 트랙 녹음은 아니지만, 그 정도 점검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작해 볼게요. 여러분이 포착했던 깊은 밤 파트의 주된 감정은 뭐였죠?”
“부서짐의 관측?”
“필멸성에 대한 불안과 재창조의 갈망.”
“그걸 순차적으로.”
“네. 그런 심상을 연주에 담아내는 것에 집중하는 거예요. 갑시다.”
우리는 각자 포지션을 잡아 자리하고, 연주에 돌입했다.
“후우우…….”
곡에 대한 분석과 개인 연습과 악보 완독 정도야 계속해서 했지만, 다 같이 동시에 합을 맞추는 것은 오늘이 스튜디오에 도착한 이후 처음이다.
숨을 살짝 빼 주며 긴장까지 같이 뱉어 버리고, 나는 손을 움직였다.
지이이잉, 징, 징, 지이잉…….
깊은 밤, 어둠이 깊게 깔린 자리.
우리는 세상이 거울임을 관측했다.
“When I was a kid, I saw an aurora in the night sky.(내가 어렸을 때, 나는 밤하늘에서 오로라를 보았지.)”
처음엔 그저 지식이 쌓였을 뿐이다.
하지만 다가올 미래를 짐작해 보기 시작할 때부터, 세상은 공포가 되어 내 눈으로 돌아 들어온다.
그것을 맑은 목소리로 가사를 띄워 뱉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Wouldn’t that fall on the street? Tell me, Pandora. Does that come into your black eyes?(저것이 길바닥에 떨어지지는 않을까? 말해 줘, 판도라. 저것이 당신의 검은 눈동자에도 들어오는지.)”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우리는 다른 이의 의견을 끌어오고자 한다.
그것이 듣는 사람의 의견이든, 함께 연주하는 자의 의견이든 상관없다.
늘어뜨린 음계에 살짝 밀리는 박자.
그것을 하나씩 차곡차곡 쌓으며 공감을 이끌어 낸다.
“It’s all broken. It’s broken. Broken…….(다 부서졌어. 부서졌어. 부서졌어…….)”
부서지고, 파괴되고, 일그러지는 것은 세상뿐만이 아니다.
인간,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무너질 것임을 짐작한다.
이어지듯 이어지듯 진행하다가 목소리를 흐려 준다.
천천히 끌면서, 모래알이 흩어지듯이.
“And I’m woken…….(그리고 난 깨어났어…….)”
그리고 또 다른 바람을, 기원을 토해 낸다.
둥둥둥둥 둥둥둥둥 둥둥둥둥 두두둥 둥둥!
“It’s shattered in the sky!(하늘에서 산산조각이 났어!)”
강하게, 하지만 맑은 목소리로.
불순물 없이 깨끗하게.
“On a deep, clear night!(깊고 맑은 밤에!)”
직접 행할 수 없음에 다소 좌절감을 느끼지만.
“Under such a bright darkness……. Oh, oh oh oh…….(이렇게 밝은 어둠 속에서……. 오, 오오오…….)”
파괴 이후에 찾아올 재창조에, 우리가 남긴 노래와 메시지는 그대로 남을 것임을 믿으면서.
키이이잉!
다가오는 조화에 보컬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비켜 주었다.
지징 지징 지징 지징 지이잉! 지지지징, 지지징, 지잉!
시험을 위한 연주와는 조금 다른 패턴으로, 재우의 솔로 기타가 날아간다.
두둠, 두둠, 두둠, 둠둠, 두둠, 두둠, 두둠, 둠둠…….
부드럽고 묵직한 베이스가 그 뒤를 받쳐 제대로 화려하게, 깨진 거울에 빛이 반사되듯 여러 방향으로 발산되는 기타 솔로의 소리를 강조한다.
그렇게 열여섯 마디의 자기주장이 흐르고.
키이이이이잉!
다시 한번 기타의 고성이 울려 퍼졌다가.
지징징 징 지징! 지이이이잉! 지징징 징 지징! 지이이이이이잉!
거칠고 혹독한 추위가 몰아닥친다.
지징 지이잉, 위이이잉! 윙 윙 위이이잉…….
곧 밤이 지나고 새벽이 다가온다.
거친 비바람과 눈보라 사이 솟아나는 고요.
파괴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Poor land, driven out of the arms of peace.(평화의 품에서 쫓겨난 불쌍한 땅.)”
산산이 부서지는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드는 감정은 좌절과 공포가 아닌 가엾음이다.
그리고 다시 눈보라가 몰아치고.
지징징 징 지징! 지이이이잉! 지징징 징 지징! 지이이이이이잉!
또다시 고요가 찾아올 때, 입을 연다.
“Oh man, take a step back. So that we can all remain one piece.(오 인간이여, 한 발짝 물러서게. 우리 모두가 한 조각으로 남을 수 있도록.)”
살짝 힘이 빠진 목소리로 권유했다.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항거하려는 마음을 앞세우다가 자신을 잃지 말라고.
그리고 다시 눈보라가 몰아친다.
지징징 징 지징! 지이이이잉! 지징징 징 지징! 지이이이이이잉!
그 거센 환경 안에서 주장했다.
“What we need to prepare for is not a siege.(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공성이 아닐세.)”
고요가 찾아오지 않아도 내가 내뱉는 뜻은 그 힘을 잃지 않는다.
“After the storm sweeps through everything, we’ll see!(폭풍이 모든 것을 휩쓸고 나면, 우리는 알게 될 것이네!)”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모든 것의 끝은 아니라는 것을.
둥둥둥둥! 두두두두두두두두!
땅이 뒤집힐 듯, 드럼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우고, 나는 그 뒤를 따라 힘차게 샤우팅을 내질렀다.
“Everything that used to rot will be gone! But the things we really loved will go on!(썩어 가던 모든 것들이 사라질 거야! 하지만 우리가 정말 사랑했던 것들은 계속되겠지!)”
남을 것이다.
우리가 전부 사라져도 남을 것이다.
그것을 알리기 위해 목청껏 소리쳤다.
“Destruction is not the end, let your fears go. Keep your seat so that you remain a deep underground bone! Oh oh!(파괴는 끝이 아니니, 두려움을 버려. 땅속 깊은 곳에 뼈로 남을 수 있도록 자리를 지켜! 오 오오!)”
3옥타브 미를 계속 유지하다가.
“오오오!”
3옥타브 라의 초고음 샤우팅을 내질러 메시지에 힘을 더한다.
가슴 깊숙한 곳에 남도록.
“오오오오!”
지지징! 지지지징! 지 지지징! 지이이이이잉! 위잉 위잉 위잉…….
두 번째 파트, 모든 것이 부서지고 휩쓸리는 이른 새벽이 격렬한 고성과 함께 끝났다.
한껏 정돈된 분위기.
아니, 전부 불타고 무너진 황량한 분위기가 남았다.
이제 쨍하니 해가 떠오르는 아침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