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84
183화
첫 합주를 끝내주게 소화한 다음날부터 우리는 며칠 내내 녹음을 진행했다.
“오케이, 브라보. 이번에는 마치 더블링을 넣거나 코러스를 하듯 속삭이는 뉘앙스로 해 볼게요. 조금 더 절제된, 다른 목소리를 살리려는 코러스의 기분으로 불러 보세요.”
“네.”
레이 제셀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이며 레코딩 프로듀서이기까지 했다.
“브라보. 아주 좋아요. 파트 3의 1차 녹음은 여기까지 하면 될 것 같군요!”
“충분했나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마무리를 하기로 해요. 고생 많았어요.”
“네. 감사합니다.”
그의 디렉팅은 감각적이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정확하게 말해 주는 감이 있었다.
비유를 있는 그대로 따르면 그가 원하던 느낌의 연출이 뿅 하고 나타나니, 부르는 사람 입장에서도 학술적이고 기술적인 표현을 몸으로 소화할 필요가 없어 편하기도 했다.
“오, 끝?”
“응. 끝.”
녹음실 밖으로 나가니 멤버들이 없어 다른 합주실에 들어갔다.
역시, 그들은 그곳에 모여 각자 악기를 만지고 있었다.
“루치도 왔겠다, 합주 고?”
“기역!”
“고…….”
“아니, 아니. 나 이제 쉬어야지.”
“엥?”
“뭐임. 합주하고 쉬셈.”
녀석들은 녹음을 마치고 나온 나를 보자마자 합주를 권했지만, 나는 손을 내저어 거절했다.
방금까지 열심히 노래를 부르다 나왔는데, 나도 컨디션을 좀 회복할 시간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까도 했잖아. 그리고 나 방금 나왔어, 얘들아…….”
“좀 더 하셈.”
“어허. 목은 아주 민감하다고.”
“손가락도 민감함.”
“아니, 아니…….”
입술이 삐죽 튀어나와 성을 부리는 재우의 모습.
그래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나중에 하자. 그리고 우리 조금 뒤면 나가야 하잖아.”
“왜 나감?”
“어디 가, 우리?”
“어디를?”
“어? 모르는 척?”
나는 내 말에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녀석들에게 어이가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가이드 형이랑 저녁 먹기로 했잖아? 고생 많으시다고, 우리가 대접하겠다고. 기억 안 나?”
“아.”
“맞다.”
반응을 보니 모르는 척이 아니라 진짜로 잊어버렸던 모양이다.
이런 못된 놈들을 봤나?
“야, 너희가 제안한 거잖아? 이걸 잊어버리면 어떡해?”
“하하……. 잊을 수도 있지! 거 참!”
“어휴. 얼른 준비들 해. 잠깐 쉬었다가 유성 형 오면 바로 호텔 가서 영호 형이랑 같이 식당으로 이동할 거야.”
“오키!”
결국 녀석들은 내 말에 수긍하고 주섬주섬 악기를 정리해 자리에 앉아서 얌전히 유성 형이 오기를 기다렸다.
‘아니, 잠깐. 내 목보다 저녁이 더 중요한 건가, 이놈들!’
결국 내 성대 건강이 아니라 저녁 식사 자리가 있다는 것에 설득된 느낌이라, 뭔가 기분이 묘했다.
뻠범범버! 뻠범범버!
“오, 형 왔나 보다. 여보세요?”
“응, 끝났으면 나와.”
“넵! 가자.”
“오우오웅!”
잠시 뒤, 우리는 전화를 받고 제셀에게 인사를 남긴 후 스튜디오를 떠났다.
“녹음은 잘되고 있지?”
“네. 너무 순항 중이라서 오히려 무서워요.”
“그럼 좋은 거지. 오히려 너희 속도에 회사가 못 맞추고 있어서 미안하네.”
“에이, 아직 시간 조금 남았는데요, 뭐. 어떻게든 되겠죠. 다들 일 잘하시는데.”
“그랬으면 좋겠다. 이 현지 유통이 은근히 쿵짝 잘 맞는 사람 고르기가 어렵네.”
차를 타고 호텔로 들어가면서 우리는 일 이야기를 잠깐 나누었다.
녹음은 잘 진행되고 있는지, 발매일은 언제로 맞출 수 있을지, 해외 음반 발매 이후 현지 유통 협력을 받아야 하는데 파트너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느니 등등.
깊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냥 주섬주섬 자투리 정보를 교환하는 정도였다.
‘현지 유통이라……. 어련히 알아서 하겠냐만…….’
다만 회사의 일이 잠깐 막힌 상태라는 그 말은 나로 하여금 약간의 걱정을 불러일으켰다.
‘잘못하면 동시 발매는 못 하는 거 아니야?’
만일 한국과 영어권 국가의 앨범 동시 발매 및 판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아마 한국에서 선출시 후 해외 판매로 방향이 잡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애초에 한국어와 영어 투 트랙으로 달려 더블 앨범으로 기획된 우리 작품인지라, 가능하면 국내와 해외의 열기가 동시에 올라야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짐작해 왔다.
국내와 해외의 앨범 발매 타이밍이 다르면 여기서 타올랐다가 식고, 저기서 타올랐다가 식는 과정을 거치면서 애매한 성적을 거둘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처음부터 대박을 노리고 만드는 앨범인데, 그런 식으로 아쉬운 성과를 거두면 속이 많이 쓰릴 것 같았다.
‘음……. 잘 해 주겠지. 해 줘야만 해.’
하지만 내가 뭔가를 할 수는 없었다.
유통 파트너 선정이야 당연히 회사 몫이고, 내가 그 분야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그저 회사가 좋은 결과를 얻어다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응, 영호 씨. 지금 나오면 돼.”
“영호 형이에요?”
“응. 출입구에서 기다리는 중이……. 아, 저기 오네.”
잠깐 생각하는 사이 차는 호텔에 도착했고, 현지 가이드 영호 형이 후다닥 뛰어와 올라탔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세요!”
“밥 먹으러 고!”
“고고!”
고민은 잠깐 미뤄 두고, 나도 저녁 식사나 즐겁게 하기로 했다.
“어디로 간다고 했지?”
“보자……. 레스토랑 앳 노스 런던. 별 세 개짜리 맛집이래.”
“오, 좋은데?”
길도 찾고, 영국에서의 이런저런 잔심부름을 돕느라 고생 많았던 가이드 형에게 감사를 표하는 김에 큰맘 먹고 고오급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비싼 만큼 맛있는 식당이라고 우리 대표님에게 추천을 받은 곳이다.
“가면 그냥 전부 코스로 주문하면 된다고 하셨어요. 단품도 있긴 한데 양도 모자랄 거고, 그게 제일 낫다고.”
“크……. 호강하네, 호강해.”
“루치가 사는 거라고 했나?”
“넵. 제가 쏩니다.”
“가이드 하길 참 잘했어……. 흑흑…….”
“하하하!”
우리는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차를 몰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레스토랑 앳 노스 런던이라는 그 식당에 도착했다.
꽤 커다란 저택 같은 분위기.
널찍한 마당과 정원수, 그리고 화단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들어갑시다.”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열려 있는 문으로 입장했고, 직원이 로비에서 우리를 맞았다.
“몇 분이신가요?”
“여섯이요. 예약 걸어 놨습니다. 루치아노 킴…….”
“지금 테이블 문제로 웨이팅이 조금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네, 그러죠.”
분명 예약을 해 놨는데도 너무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웨이팅이 걸린단다.
우리는 로비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멍청하게도.
“헤이.”
“몇 분이신가요?”
“둘이요.”
“창가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음?’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뒤로 한 쌍의 커플이 레스토랑에 들어왔고, 직원이 그들을 안내해 안으로 들였다.
“뭐야?”
“기다리다가 나갔다 온 거 아니야?”
“아……. 이거 설마…….”
“이런 큰 식당에서…….”
영문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과 뭔가를 짐작한 듯한 수현이와 영호 형.
나 역시 대강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인종 차별이야, 이거?’
먼저 온 손님을 기다리게 두고, 뒤에 온 손님들은 안으로 정중히 모신다.
원래라면 예약하지 않은 손님과 예약을 한 손님이어야 정상인 상황인데, 그 문장에 아시아인 손님과 백인 손님이라는 말을 포함한다면 뉘앙스가 달라진다.
“어서 오십시오. 몇 분이신가요?”
“넷.”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수현이와 영호 형이 뭔가 대화를 나누고 내가 곰곰이 생각을 하던 그사이, 한 팀이 더 들어와 직원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어이가 없었다.
“허.”
속이 부글부글 끓는 기분이다.
“루, 루치야……. 이거…….”
“응. 대충은 알아. 이거 어떡한다…….”
대표님 추천씩이나 받아서 예약까지 하고 왔는데 이런 수모라니.
자존심도 자존심인데 내 시간이 아까워서 더 열불이 터졌다.
‘외국 나와서 인종 차별이라고 싸움이라도 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나는 외국인이고, 아무리 차별 자체가 불법이라고는 해도 그들을 신고한 후 처벌을 기다릴 시간이 없다.
며칠 뒤면 우리는 이곳을 떠날 것이다.
직원이 이 모양이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수 있고, 누군가와 따지고 들려 해도 우리만 피곤해질 확률이 높았다.
애초에 인종 차별 따위를 저지르는 이들은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그냥 가자. 예약 없어도 되는 다른 곳을 알아보면 되겠지.”
“응.”
“그래야겠네. 허허. 별 세 개라더니…….”
나와 수현이, 영호 형은 화가 났음을 굳이 숨기지 않고 표정을 구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로비에 벌 세우는 것처럼 앉혀 놓고 아무런 안내도 없는 것이 저 음습한 놈의 소심한 인종 차별 행위라는 걸 모르는 세 사람은 무슨 상황인지를 우리에게 물었다.
“이거 괴롭히는 거야. 방금 우리보다 늦게 들어온 두 팀 들여보내는 거 봤지?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개무시한 거라고.”
“헐……. 무슨 그런 것들이 다 있어?”
“말로만 들었던 인종 차별이구나. 허. 직접 겪으니 이거 기분 참 그렇네.”
“뭐임. 딴 데 감?”
“어. 다른 식당 찾으려고.”
“잘했음. 굳이 매출 올려 줄 필요 없음.”
셋은 짧은 설명에도 찰떡같이 잘 알아들어 주고는 우리를 따라 일어났다.
로비에 가만히 서 있던 직원 놈은 자리에서 일어난 나와 눈이 마주치고도 배웅이나 설명 따위는 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참 치졸하고 더러운 짓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때, 열린 문으로 아는 얼굴이 들어왔다.
“어?”
“어? 김루치아노 씨!”
“앗, 호텔……. 사장 아드님…….”
“표지헌입니다.”
“아, 하하하……. 표지헌 상무님.”
며칠 전 호텔에 체크인을 하며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에 안면을 트게 된 인물, 표지헌 상무였다.
그는 우리 일행의 안색을 살피더니 뭔가 이상함을 느낀 듯, 내게 물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아, 그게…….”
나는 굳이 이런 사정을 이야기해야 하나 싶었지만, 생각해 보니 표 상무도 손님으로 왔다면 더러운 꼴을 볼 수 있겠다 싶어 대충 인종 차별임을 알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움찔, 움찔…….
내가 표 상무와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을 본 로비 직원이 표정을 구기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안절부절못하는 것이었다.
‘뭐지?’
나는 저 사람 오줌이라도 마려운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표 상무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음……. 레스토랑 앳 노스 런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줄은 몰랐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지난번에 끼친 민폐를 제가 오늘 갚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어……. 네…….”
안절부절못하는 저 직원.
한껏 위협적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전화기를 꺼내 든 표 상무.
소리가 작아 잘 들리지 않지만 명백하게 포착된 단어, ‘Lawyer’.
‘어……. 참교육 각인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은 바보라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