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85
184화
“혹시 어떤…….”
나는 통화를 마치고 우리 곁으로 돌아온 표 상무에게 넌지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개떡 같은 내 말을 찰떡같이 잘 알아듣고 웃으며 답했다.
“레스토랑 앳 노스 런던이 저희 호텔과 관계가 있는 식당입니다. 곧 적당한 규모의 제휴 계약을 맺을 예정도 있었고요.”
“아하……. 생각보다 잘나가는 곳이었네요. 사업적으로도.”
우리가 묵고 있던 런던의 호텔, 그러니까 표 상무가 재직 중인 호텔은 나름 큰 크기와 괜찮은 시설들을 가지고 있었다.
호텔의 등급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레스토랑 개수, 그 외의 연회장 등의 시설은 물론, 룸서비스도 상당히 잘 꾸려져 있는 좋은 곳이다.
기왕 해외 나가서 일하는 거 좋은 숙소 잡고 열심히 하라는 뜻에서 대표님이 직접 결제해 준 좋은 호텔.
그런 곳과 무슨 제휴 계약 같은 것을 맺는다 하니, 이 식당도 맛뿐만 아니라 사업 면에서도 나름 성과가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네. 그래서 압박이 더 수월할 것 같습니다.”
“네?”
“저희 제휴 계약 전반을 직접 만지고 있는 변호사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제휴 계약과 변호사와 우리의 인종 차별 경험이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사실 레스토랑 쪽에 많은 편의를 봐주고 있던 차였습니다. 이름값 높은 곳인 만큼 일단 유치 자체가 도움이 되니, 수습 요리사들의 파견이나 본사 경영은 따로 하는 것, 수익 분배 역시 많이 맞춰 주었죠.”
“아……. 네…….”
“그런데 오늘 같은 윤리적인 문제가 드러난다? 같이 일할 수 없지요. 그것도 우리가 그들이 그토록 차별하고 경멸하는 동양인이 경영하는 회사인데 말입니다.”
“아아아…….”
뭔가 일이 잔뜩 커지는 느낌이다.
‘이게 이렇게까지 될 일인가?’
그냥 밖에 나가며 침이나 탁 뱉고 떠나면 될 일이었는데, 표 상무가 얽히더니 회사와 회사 간의 계약까지 넘어갔다.
그런 내 눈치를 읽었는지, 표 상무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실은 제가 이 레스토랑과의 협업에 유일하게 반대했던 사람이거든요.”
“아아?”
“이번이 첫 인종 차별 사건도 아니고, 그 외에도 이런저런 문제가 많은 곳이었습니다. 다만 저희 호텔은 실력 있는 업체와의 제휴가 필요했고, 이 식당은 해외 분점 설립을 위해, 특히 동양 쪽에 명성이 필요했다는 점에서 이해가 일치했을 뿐이죠.”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영국 안에서, 그것도 런던 한정으로 유명한 식당이라는 이유로 너무 접어 준 감이 없지 않았거든요. 이 기회에 이쪽에 양보를 강요하거나……, 아예 계약을 무산시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하.”
이렇게 얘기를 듣고 나니 표 상무가 벼르고 벼르던 차에 일이 터진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도 못마땅한 계약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레스토랑 측에서 문제를 터뜨려 주었으니 그의 입장에서는 지금이 기회인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가?’
일이 커지기는 했지만, 오로지 나를 위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말을 듣게 되니 오히려 안심이다.
너무 세게 얽히면 귀찮아진다.
우리가 겪은 일을 핑계 삼아 자기 일을 해결하고 있다는 감이 없잖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무 일 없이 사건이 끝나는 것보다는 그들에게 뭔가 불이익이 있는 쪽이 더 통쾌하긴 하고 말이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에게 말했다.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었다.
“혹시 저희가 유명인이기 때문에 기회라고 생각하신 건가요?”
“어느 정도는……. 그런 감이 없지는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한국에서는 유명한 가수분들이시고,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큰 파급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분들이시니까요.”
“가능하면 크게 소란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명분으로 삼아 적당히 이용해 먹는 것은 좋지만, 큰 소란에 끼워 넣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몇 번이고 경계한 일인데, 우리가 나쁜 놈들이 아닐지라도 썩 좋지 않은 사건에 연루되어 뉴스에 오르내리는 것은 사양이다.
어떤 의미로든 사람들 눈에 보이게 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지만, 이미 우리는 작은 명성에 집착할 시기는 지난 지 오래.
오히려 이미지메이킹에 더욱 집중할 때다.
피해자일 뿐이라도 이런 뉴스에 포함되는 것 자체가 손해가 된다.
“잘 알겠습니다. 레스토랑 측에만 한국의 유명인이라고 하는 정도로 적절한 조치를 취하죠.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내 뜻을 존중해 일을 더 크게 만들지 않는 선에서 처리해 주겠다고 다짐을 주었다.
첫 만남은 매우 이상했지만, 꽤 괜찮은 사람이다.
‘말귀도 잘 알아듣고, 능력도 좋고…….’
비록 첫 만남은 매우 이상했지만 내가 뭘 원하는지도 금방 캐치해 내고, 그에 맞춰 존중을 담은 행동을 보여 주는 썩 괜찮은 사람이다.
첫 만남은 매우 매우 엄청 이상했지만 말이다
‘어라? 그러고 보니…….’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와 일행들이 가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이러면 처음 만났을 때는 왜 아무런 언급이 없었는지 궁금해진다.
‘호텔에서는 그냥 모르는 척을 한 건가?’
괜히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알아본 듯한 눈치를 보이면 우리가 불편해할 것 같아서? 아니면 썩 관심을 가진 밴드가 아니라서?
뭐가 됐든 아예 우리를 모르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나마 애들이 우리를 못 알아봤다며 찡찡거리는 건 이제 원천봉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뭐야? 뭔데?”
“저분 기억나지? 호텔 상무님.”
“응. 진상인데 진상이 아니었던 분.”
“사장 아들님.”
“응, 그분. 표 상무님이라고 하는데, 변호사 불러서 해결해 주시겠대.”
“진짜? 어떻게?”
“나도 잘 몰라. 참교육 각 날카롭게 섰다, 지금.”
“오오오오. 팝콘, 팝콘.”
나는 현재 상황을 일행에게 공유한 후, 여기서 그 장면을 구경할지를 물었다.
모두의 대답은 당연히 예스.
우리가 직접 해결하는 것도 아니고, 오늘 헛걸음한 것에 대한 보상이 기다리는 것도 아니지만, 저 무례한 직원이 쩔쩔매는 꼴을 보는 것은 꽤 재밌을 것 같다는 모두의 생각이었다.
“표? 표!”
“어, 여기.”
잠시 기다리자, 표 상무가 전화로 호출한 변호사가 레스토랑 로비에 도착했다.
둘은 그다지 정다워 보이지는 않게 인사를 나눈 후,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표 상무가 한손으로 변호사 양반을 가리키며 소개했다.
“루치아노 씨, 이쪽은 김난수 변호사입니다. 변호사 겸 스포츠 에이전트로 일하고 있고, 저희 호텔 계약 법무를 일임해 돕고 있습니다.”
“아이고, 노래는 잘 듣고 있습니다. 오키드 킴이라고 불러 주세요.”
“반갑습니다, 오키드 변호사님.”
“흣헛헛헛헛! 표 이 친구는 제가 영국 귀화해서 개업한 지가 벌써 2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한국 이름으로 불러요. 아, 오키드 소리 들으니 이렇게 편하네.”
김 변호사는 털털하고 개성적인 사람이었다.
흔치 않은 이름도 그렇고, 처음부터 웃으며 다가와 노래를 잘 듣고 있다고 하는 인사말도 그렇고, 쉽게 다가서는 성격인 것 같았다.
일을 잘하는지 어떤지는 이제부터 봐야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오늘의 일감은? 지난번에 계약서 작성은 다 끝낸 거 아니었어? 마지막 작업만 하고 도장 찍는다며?”
“문제가 생겼지. 압박 좀 세게 하고 가려는데, 괜찮지?”
“아하. No problem. 그래서 문제가 뭔데. 전후 세세하게. 최대한 후려칠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여기 계신 루치아노 씨와 럭키데이 분들 포함 일행분들이 예약을 하고 찾아오셨는데 말이야…….”
표지헌 상무가 오키드 킴 변호사에게 자세한 정황을 설명했다.
우리가 받은 인종 차별적인 대우와 협상 마무리를 위해 식당에 들어오다가 화가 난 우리들을 직접 목격한 것까지.
김 변호사는 이야기를 모두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네. 아니, 괜찮네. 사이즈는 딱 맞아.”
“키우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후려칠 소스가 되겠어?”
“딱이지. 얘네가 자기들 몸값 올려치면서 너희 호텔 쪽에 엄청 뻗대고 있잖아? 근데 흠잡을 거리가 이렇게 떡하니 나타나 줬네. 심지어 얘네 목적이 뭐야?”
“해외 진출이지.”
“응. 그것도 동아시아 쪽. 아마 중국을 노리는 것 같더만.”
“아하.”
김 변호사의 설명은 사업에 대해서는 쥐뿔 아는 것 없는 나도 대충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심플했다.
‘동아시아 진출을 노리고 있는데 아시아인 차별 이슈가 터진다. 심지어 그걸 발견한 사람이 아시아계 명성 획득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될 사업 파트너.’
그는 우리에게 가해진 인종 차별 행태가 협업 계약에 있어 레스토랑의 고압적인 자세를 무너뜨릴 강한 카드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아, 물론 일 자체는 크게 불타지 않도록 죽여서 다뤄야 할 거고, 그러려면 우리가 잴 수 있는 사이즈는 기껏해야 저쪽이 가져간 계약서상의 이득을 뭉텅 갈라 먹는 정도. 어때? 그쯤으로 만족할 수 있어?”
“그 정도면 뭐. 어차피 계약 내용은 다 통과된 와중에 완전히 무산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니지. 표. 아니지, 아니지.”
“음?”
김 변호사 본인이 내민 절충안에 표 상무가 고개를 끄덕이자, 곧바로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너는 지금부터 계약서를 백지화하러 온 와중에 호텔의 VIP 손님인 럭키데이 분들이 당황스러운 상황에 놓인 것을 보게 된 거야. 오케이?”
“아하. 좋군, 그것도. 알았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이야……. 스캇 보라스 저리 가라네.’
무슨 법정 영화, 혹은 스포츠 구단물을 보는 듯한 장면이 휙휙 지나간다.
순식간에 상황을 설명, 이해하는 과정을 지나 설정을 맞추기 시작하더니, 이제 레스토랑 오너를 어떻게 압박할지를 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선 직원이나 지배인, 셰프 등은 필요 없다고, 오너부터 나오라고 하는 거지. 그리고 그 사람 오기 전에 계약 관련해서는 오늘 마무리를 짓겠다고 엄포를 놔야 해. 무슨 뜻인지 알지?”
“잔뜩 흔들린 상태에서 구두로라도 계약 사항 조정을 하게 해라?”
“그렇지.”
그냥 안면 좀 있는 가수가 협업을 하기로 되어 있던 식당에서 불미스러운 피해를 본 사건이 이렇게까지 흥미진진하게 바뀔 줄이야.
“야, 기다리길 잘했다.”
“이응. 흥미진진.”
“팝콘! 나 팝콘 사 올게!”
“어허. 나가지 마. 자리 비운 사이 재밌는 거 다 지나갈라.”
“아, 그렇네! 아아, 여긴 무슨 식당이 팝콘도 안 파냐!”
상황이 너무 부담스러운 듯 눈치를 살피고 있는 수현이를 제외한 우리 모두는, 이 상황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저 직원 표정 좀 봐.”
“한국어 못 알아들어서 더 답답하고 힘들걸?”
“조, 조금 고소한 것 같기도…….”
중간중간 언뜻 들리는 변호사 같은 단어를 빼면 죄다 한국어로 이야기가 진행되었으니, 우리에게 인종 차별 짓을 시전했던 직원의 표정은 시간이 갈수록 거멓게 죽어 갔다.
표 상무의 얼굴을 얼핏 알아본 듯하니, 자신이 벌인 일이 얼마나 크게 번져 돌아올지 살짝이나마 눈치를 챘을 것이다.
그나마 제일 조용히 있던 수현이마저도 그 모습에 약간 통쾌함을 느낀 듯했다.
그리고 곧.
“보고장 호텔 표지헌입니다. 오너 브라운을 좀 뵙고 싶은데……. 나도 동양인이라 여기서 계속 기다리고 있어야 될까요?”
“앗…….”
표 상무와 김 변호사의 협동 공격이 시작되었다.
대상은 레스토랑 앳 런던, 목적은 보고장 호텔과의 협업에 있어서 최대한의 이득 탈취.
그리고 곁다리로 금방 있었던 사건의 피해자인 우리에게 통쾌함을 선사하는 것과…….
“변호사 오키드 킴이라고 합니다. 저와 협업하는 분들이 마침 여기에 두 팀이나 계시네요. 보고장 호텔과…….”
우리의 현지 파트너의 능력을 견식하는 것.
“JH 뮤직의 고객들이요. 이거 문제가 커지겠어요.”
‘찾았다.’
나는 눈빛을 빛내며 그들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유심히 관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