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86
185화
사업가들의 대화는 문외한이 그 맥락을 추측하기도 전에 휙휙 지나가 어느새 결론을 보이고, 가끔은 말이 어긋나는 것 같으면서도 순식간에 합의점을 찾아 방점을 쿵 찍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생각한 것은 단 하나.
‘스포츠 에이전트 일을 하고 있다고 했나?’
변호사 자격이 있으면서도 협상과 계약을 맡는 일을 하는 사람, 저 오키드 킴이라는 사람이 매우 탐난다는 점이다.
“그러면 오늘 자리에서는 이상까지 사항을 계약서에 수정 반영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외부에 알리지 않는 조건으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죠.”
“좋습니다.”
한참 레스토랑 측의 윤리적 문제와 그것이 협력 관계가 될 호텔에 끼칠 손해 등을 토론하며 물어뜯고 싸우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적당히 양보하고 타협하며 결론을 도출했다.
합의가 모두 마무리된 후, 우리는 레스토랑의 오너인 브라운 씨로부터 인종 차별을 경험하게 만들어 미안하다는 사죄를 들을 수 있었다.
“저희 직원의 미숙한 윤리 의식으로 고객분들께서 좋지 않은 경험을 하시게 만들어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사과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해당 직원은 엄중히 문책 후 재교육의 성과를 확인하여 해고 혹은 감봉의 처분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심지어 우리의 기분을 맞춰 주기 위한 직원 처벌 약속까지.
“크.”
“이 정도면 만족.”
충분히 기다린 보람이 있는 결말이었다.
“일은 마무리가 되었으니 여기서 덮으면서 자리는 여기서 파하고, 추후 조율하여 다시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지요. 저희 탓에 심려를 끼쳐 드려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모두 잘 끝났으니 서로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하하.”
의도적으로 터져 나오는 김 변호사의 웃음에 오너 브라운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지만, 곧 그는 자세를 가다듬고 우리에게 인사했다.
“오늘은 저희 잘못으로 좋지 않은 경험을 하셨지만, 다음에 다시 방문하신다면 저희 레스토랑이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시길.”
오너 브라운이 침착한 표정으로 인사를 마치고 나서 문밖으로 나가고, 잠시 그 모습을 보던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아, 좋아. 아주 좋아.”
결국 보고장 호텔은 제휴 계약에 있어 레스토랑으로부터 큰 양보를 받아 냈고, 김 변호사는 실적을 제대로 올렸으며, 우리는 우리가 당한 일에 대한 사과를 레스토랑 측의 대표로부터 받아 냈다.
“도와드리려 한 것인데 저희만 이문을 남긴 것 같은 기분이라 또 죄송하군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제대로 된 사과를…….”
“아뇨, 아뇨. 이걸로 충분합니다.”
우리 일임에도 물질적 이득은 자신만 봤기에 처음 의도와는 끝맺음의 모양이 달랐다며, 표 상무는 추후 또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다만 우리가 큰 피해를 본 것도 아니고, 오늘 일을 구경하며 큰 통쾌함도 느꼈기 때문에 우리는 극구 사양했다.
그저 인연을 맺은 것만으로도 만족할 일이기도 하고…….
“다만 오키드 변호사님 연락처를 좀 받았으면 좋겠는데요.”
“네? 제 연락처를요?”
추후 영국 진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인재도 찾았고 말이다.
“사업 얘기를……, 조금 했으면 싶어서요.”
나는 제대로 된 현지 유통 파트너를 구하기 힘들어 고생 중이라는 유성 형의 말을 떠올리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 * *
“그래서 회사가 생기는 거야? 여기에?”
“어……. 짧게만 말하면 그렇지.”
레스토랑에서의 사건 이후, 나는 한국의 김 대표님과 연락을 취했다.
“에이전트? 일단 한번 알아보죠.”
변호사이자 스포츠 에이전트로 일하고 있다는 오키드 킴의 협상 능력에 반한 나는 대표님에게 현지 유통 파트너로 모시면 좋을 것 같은 인재를 찾았다고 전했다.
이야기를 들은 김 대표님은 빠르게 김 변호사에 대한 정보를 수소문했고, 곧 그와 연락을 하며 서로 할 수 있는 일들과 해야만 하는 일들을 공유했다.
정말 놀랐던 점은 오키드 킴의 자세였다.
“변호사 자격도 있고, 스포츠 에이전트로 축구 선수 여럿 계약 도와주고 있고, 음원 음반 유통도 할 수 있다? 그 사람 뭐 하는 사람이야?”
“능력자라고 하지. 세상엔 참 대단한 사람들이 많아. 응.”
법에 관한 업무도 아니고, 주로 하고 있는 스포츠 스타들의 계약 및 사업 대리인 업무도 아니다.
그러나 오키드 킴 변호사는 본업과 살짝 달라도 연예계 일을 어느 정도 소화가 가능함을 어필했다.
“영국 현지에서 일하고 있는 몇몇 매니저들이나 방송 관계자들과 인맥도 있고, 사람들 끌어모아서 합작 회사 설립까지 빠르게 할 수 있었으니까……. 천운이야, 천운. 딱 그런 사람이 보였다는 게.”
유성 형의 말처럼 그런 인물이 딱 필요할 때 눈에 띄었다는 것은 천운에 가까웠다.
굳이 일을 도와줄 사람을 찾아 동분서주할 필요도 없었고, 이제 회사가 우리 일을 제외한 모든 범위에서 발에 땀나게 뛰어다닐 수 있을 것을 확신하게 되었으니.
덕분에 우리는 앨범 작업에만 열중할 시간을 벌었다.
“김 변호사랑 영국 합작사 럭키 뮤직 설립, 음반 발매 일정 확보, 음원은 지금 제작 중……. 오늘로 녹음만 마무리 지으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겠네.”
“하루 더 걸릴지 바로 끝낼지는 가 봐야 알아요.”
“난 믿어. 루치 믿어. 형 엄마 밥이 너무 그립다, 지금.”
“노력해 볼게요.”
앨범 작업 중에서도 이제 남은 일은 한국에 남겨 두고 온 마무리 작업들과, 오늘 Broken의 마지막 보컬 녹음뿐이다.
영국 유통 및 매니징 파트너도 생겼겠다, 우리는 믹싱과 마스터링까지 J&A 스튜디오에 맡기고 한국으로 돌아갈 각을 세웠다.
“제셀 씨.”
“어서 오세요, 킴. 코러스 녹음은 그저께 모두 끝냈으니, 킴의 보컬 녹음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만남도 오늘이 끝이겠군요.”
“시간 참 빠르게 지나가네요.”
“허흐흐흐. 나이를 먹을수록 더 빠르게 지나니 지금을 마음껏 즐겨야 할 거예요.”
“조언 감사합니다.”
백전노장, 작곡가 제셀과의 시간도 막바지에 도착했다.
힘들지만 즐거웠던 협업의 끝이 보인다는 것은 꽤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한 기분이었다.
내가 언젠가 또 이런 천재 아티스트와 협업을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말이다.
“휴우우……. 이번에 럭키데이와의 협업을 통해 많은 재미를 얻어서 한동안은 또 굉장히 심심할 것 같아요.”
“심심하다뇨?”
제셀이 한숨을 푹 내쉬며 한탄하기에 나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되물었다.
그는 옆에 있던 가방에서 악보 몇 장을 꺼내서 내게 보여 주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
“사실 럭키데이와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곡을 요청한 사람들이 몇 있어요. 한국의 밴드, 일본의 보컬, 그리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몇몇 보컬이었지요.”
“마음에 안 드셨군요.”
“단 한 팀도.”
“저런…….”
우리가 즐거웠던 만큼 제셀도 충분히 즐거웠던 것 같아 뭔가 흡족한 기분이었다.
다만 곡을 만들고, 자기 곡을 받은 사람들을 파트너로 삼아 그 해석과 표현을 완성시켜 나가는 것을 즐기는 제셀인데, 다음 파트너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조금 괴로운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
그러고 보니, 그런 그에게 자극이 될 만한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제셀 씨, 혹시 소개도 받으시나요?”
“다른 아티스트 말인가요? 물론이죠.”
그는 누군가를 소개해 주겠다는 내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보였다.
“제 기준에 협업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실력과 해석 능력만 갖추었다고 보인다면, 누구든지!”
“한 팀, 그리고 한 사람이에요. 한 사람은 한 팀이기도 한데……. 어쨌든 이 두 그룹은 재밌는 음악을 하고 있으니, 일단 만나 보시면 충분히 즐거울 거예요.”
나는 그에게 세 사람의 연락처와, 그들의 작업물을 볼 수 있는 링크를 적어 메일로 보내 주었다.
이세명, 백하은, 그리고 김태호.
기타 듀오와 원 맨 밴드.
지금 자신들의 앨범을 준비하고 있는, 나와 함께 음악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전 동료들이다.
“호오……. 한번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죠.”
“제셀 씨와 작업을 할 기회가 있다고 말을 해 둘게요.”
물론 제셀의 시험에 통과하는 것은 그들의 문제였지만, 나는 그들을 믿었다.
‘재능이야 차고 넘치는 사람들이니까.’
뮤지션으로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디려는 세 사람과,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아 헤매고 있는 늙은 작곡가.
꽤 괜찮은 시너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그러면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오늘 녹음도 즐겁게 해야겠지요?”
“언제든 준비되어 있습니다.”
“허흐흐흐. 그럼 바로 가시죠! 오늘이 마지막 녹음이 될 수 있길!”
나는 다른 멤버들을 뒤에 두고, 혼자 녹음실로 들어갔다.
“흠, 흠. 프르르르르! 트르르르르르! 트르르르……. 마스터링 체크 들어가겠습니다.”
“내는 소리로 아무거나 편하게 불러 보세요.”
“아, 아. When I were a boy! 살짝만 줄여 주실 수 있을까요?”
“마스터 볼륨 다운…….”
본격적인 녹음이 아닌 사전 확인과 준비 작업조차 어찌 그리 즐거울 수 있는지.
나는 노래를 부르고, 제셀은 컨트롤 룸에서 그걸 확인하며 문제점이 있는지를 살피고 디렉팅을 하며, 이미 자기들 파트의 녹음을 마친 멤버들은 밖에서 마스터 스피커를 통해 그 노래를 즐겼다.
아주 긴 것만 같았던 영국에서의 일정은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다.
“고생 많았어요, 킴, 진, 즤, 그리고 형.”
“고마웠어요, 제셀.”
“땡큐, 땡큐!”
“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허흐흐흐! 영국에도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라 했으니, 로열 알버트 홀이나 로열 페스티벌 홀 공연 정도는 해야겠지요? 아니, 웸블리 정도는 노려야 젊은이들다운 꿈일지도요. 어쩌면 투어를 다니는 것도 좋겠지요.”
헤어지기 전, 제셀은 작별을 아쉬워하는 대신 우리를 격려하는 한편 큰 꿈을 품으라는 조언을 다소 돌린 표현으로 전했다.
멤버들은 그 말을 통역을 통해 듣고, 크게 웃으며 떠들었다.
“네……. 꼭!”
“웸블리. 좋음, 웸블리.”
“카네기 홀보다는 역시 웸블리지! 머큐리가 섰던 그 자리! 크으으!”
나 역시 웃으며 제셀에게 말했다.
“큰 무대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 다시 오겠습니다. 티켓을 보내 드릴게요. 반드시.”
“그래요. 반드시.”
어쩌면 몇 날 며칠을 함께하며 한 곡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 파트너에게 재회를 약속하는 가장 멋진 방법이 아닐까 싶었다.
“또 봐요, 제셀!”
“바이바이, 제셀!”
“Annyeong!”
어설픈 영어로 인사하는 라희와 재우에게 제셀은 똑같이 어설픈 한국어로 답하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좋아! 한국행!”
“아니, 출발은 내일이야.”
“그럼 호텔행!”
이제 남은 것은 음반 출시, 홍보 활동, 그리고 재회를 위한 부단한 노력과 멋진 공연.
“런던 다시 오려면 엄청 열심히 해야 돼. 알지?”
“우리가 열심히 안 한 적도 있음?”
“흐흐흐. 그렇지.”
“화이팅!”
우리는 이곳에 가장 멋진 모습으로 돌아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호텔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