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87
186화
한국으로 돌아온 후 우리는 며칠 동안 정말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다 끝인가?”
“음……. 남은 일은 없는 것 같은데? 이제 스트리밍 몇 번이랑 홍보 겸 즐기러 버스킹 몇 번 다니면 끝.”
“오오. 드디어…….”
다같이 모여 엔지니어링 검수를 진행했고, 조금 아쉬웠던 한 곡의 베이스 라인을 다시 녹음하고, 이번에 녹음을 마치고 가져온 Broken의 한국어 버전을 빠르게 만들었다.
원곡의 가사와 비슷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지만 조금 다른 표현과 수사로 꾸민, 다른 느낌의 한 곡이 탄생했다.
이제 모든 곡을 완성했고, 영국에 가기 전 남겨 두었던 몇몇 작업들도 끝났으니 앨범 발매의 시기가 다가왔다.
“오늘은? 연습만?”
“아니. 촬영 있다고 했잖아, 어제.”
“못 들음.”
“어휴……. 유성 형이 곧 데리러 올 거니까 기다리고 있어. 기타 꺼내지 말고.”
“이응.”
바쁜 일은 대충 다 마무리가 되었고, 우리는 평소처럼 스튜디오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단, 평소와 같이 악기들 하나씩 잡고 연습을 진행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스케줄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무슨 촬영?”
바닥에 가만히 앉아서 드럼 스틱을 똑딱거리던 라희가 내게 물었다.
“아니, 너희는 어떻게 된 애들이 스케줄이 뭔지도 모르고 있냐…….”
분명 공지는 모두가 함께 있는 장소에서 이루어졌는데, 마치 전혀 들어 본 적 없는 이야기라는 듯 내게 다시 묻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그러자 녀석들은 바닥을 뒹굴며 내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 리더잖아! 너만 알면 됐지!”
“지금 그거 직무 유기 아님? 빨리 말하셈. 아.”
“마, 맞아! 루치가 다 알고 알려 주면 되는 거지!”
심지어 분명 공지 때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 내용을 적던 수현이마저 나를 놀리기 위해 모르는 척을 한다.
“하…….”
그래, 이게 우리 밴드지.
기회만 있으면 물어뜯으려 덤비는 녀석들.
새삼 이 친구들이 없는 동안 이런 스트레스는 없었다는 것을 다시 깨닫고, 나는 한숨을 푹 내쉰 후 힘없이 말해 주었다.
“티저……. 앨범 티저……. 우리 채널에 올릴…….”
“티저? 무슨 티저?”
“그거 뮤비에서 대충 잘라서 쓰는 거 아님?”
“하……. 뮤비 촬영한 곳 알지? 그 촬영장에서 다시 찍어서 올리기로 했잖아…….”
더위에 밝은 조명까지 겹쳐 땀 뻘뻘 흘리며 찍은 우리의 뮤직비디오.
첫 번째 트랙이자 리드 싱글, 그러니까 타이틀곡으로 밀 곡인 지라희 작곡의 Sleep over와 국내에서만 더블 타이틀로 내세울 강철현 작곡의 Peach blossom day의 뮤직비디오를 말하는 것이다.
“아. 그랬나.”
“아, 그랬나? 야, 얘들아, 제발…….”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일수록 녀석들이 좋아 날뛸 것을 알기는 하지만, 숨이 턱 막히는 답답함에 차마 참을 수가 없었다.
아아, 내가 성장한 만큼 멤버들도 성장한 것이다.
나를 놀리는 방법이 말이다.
“어휴……. 잠깐 앉아 있을 테니까 유성 형 오면 불러 줘…….”
“오키.”
“이응.”
“푹 쉬어…….”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있는지 살짝 끝이 흐려지는 수현이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로비 소파에 몸을 깊게 묻고 눈을 감았다.
딱히 졸려서 그런 것은 아니고, 조용히 생각을 좀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타이틀도 정했고, 뮤비도 완성했고, 앨범 작업도 전부 끝났어. 괜찮을까? 조금 아쉽지는 않나?’
아직 앨범 출시 이전이기에 뭔가 잘못되었거나 아쉬운 부분이 느껴진다면 고칠 시간은 다소 빡빡하게나마 남아 있다.
이전 며칠 내내 고민한 것이지만, 아직 마음 한구석에서 뭔가 건드릴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공들여 만든 마지막 곡, Broken의 뮤직비디오 정도는 만드는 쪽이 좋지 않을까? 정말 잘 만든 곡이고, 직접 연주한 우리가 듣기에도 좋은 노래이니 꽤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타이틀곡을 세 개로 해서 트리플 타이틀을 써 버리는 것은 어떨까? 세 타이틀을 모두 띄워서 공중파 음악 방송에서 1, 2, 3위를 모두 독식하는 것도 꽤 괜찮지 않을까?
“흠…….”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이거다 싶은 아이디어는 없었다.
‘그냥 너무 불안해하는 걸지도?’
어쩌면 새 앨범을 꼭 성공시켜야 한다는 강박 탓에 내가 너무 깊게 생각에 빠진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생각을 멈추지는 않았다.
‘뭐라도 얻어걸리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말고.’
누가 아는가? 혹시나 이렇게 혼자 고민을 하는 와중 기가 막히는 아이디어라도 떠오를지.
그렇게 상념에 빠져 있길 잠시.
뻠범범버!
“앗.”
라희로부터 전화가 왔다.
“응.”
말이 시작되기 전에 답부터 하고, 허리를 확 튕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마 유성 형이 스튜디오에 도착했다는 뜻이겠지.
“얼른 와!”
역시나.
애들은 방금까지 촬영 일정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멀끔한 모습으로 나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왜 이리 늦음.”
“하여튼 느려 터져서!”
“어, 얼른 가자!”
“에휴…….”
또 쪼아 대려는 녀석들의 말을 고개를 저으며 애써 무시하고, 나는 유성 형이 기다리는 스튜디오 정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피곤해? 눈 감기려고 하네.”
“아뇨. 피곤한 건 아니고……. 뭔가 괜찮은 아이디어 없나 생각이나 좀 하다가 왔어요.”
“너무 부담 갖지 마라. 일에 충분하다는 말을 붙일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만……. 너희 충분히 잘했어, 지금까지.”
“고마워요.”
내 부담감을 덜어 주려는 유성 형의 말에 웃으며 답하고, 나는 차에 먼저 들어가 앉았다.
곧 다른 멤버들도 따라 들어와서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티저 촬영은 어떤 식으로 하는 거래?”
“어, 어……. 아마 Sleep over 전주부터 시작되는 부분까지 천천히 연주를 얹어 가는 방향으로 가게 될 거야. 다섯 마디째에 딱 끊기게 편집하고…….”
“오. 연주 들어감?”
“응…….”
“좋네.”
지금까지 내용은 전혀 몰랐지만, 일단 연주를 한다니 좋아 죽겠다는 녀석들.
그들을 보며 나는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 뭐……. 이렇게 즐기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도 생각인데, 우선은 부담을 조금 내려놓고 즐기며 가기로 했다.
나 스스로부터 즐거워야 듣는 사람도 함께 즐거울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수현이의 설명에 첨언을 얹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베이스, 리듬, 멜로디, 드럼, 보컬 순으로 얹어 가는 버전 하나랑, 각각 마디 연주해서 안 겹치게 그냥 이어 버리는 버전 하나를 만들 거야. 뭐를 올릴지는 봐서 결정하고.”
“둘 다 올리면 안 됨?”
“둘 다 올리면 임팩트가 떨어질걸?”
“그런가.”
굳이 티저 영상을 하나만 올려야 하는가, 조금 더 길게 만들 수는 없는가, 그 이외에도 사전 홍보 활동을 더 하고 싶다 등의 이야기가 오고 갔다.
물론 우리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지 마케팅 전문가가 아니었기에, 제대로 된 토론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저 시간도 죽이고, 사이사이 음악을 어떻게든 끼워 넣으려는 대충대충 마구잡이 무논리의 향연인 대화.
그래도 즐거웠다.
“촬영장 도착하면 우선 감독님께 추가 촬영 고생 많으시다고 인사부터 드리고, 나 음료수 돌리고 올 동안 얌전히 있어야 되는 거 알지?”
“넴.”
“넵!”
“네.”
유성 형의 경고를 듣고, 우리는 촬영장으로 들어갔다.
감독님에게 인사를 건네고, 장비를 세팅하고, 지시대로 촬영을 진행했다.
이 짧은 촬영을 위한 연주도 연주라고, 애들은 그저 손을 놀려 소리를 만들어 낸다는 것 자체가 즐겁다는 듯 촬영을 행복한 표정으로 이어 갔다.
저녁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촬영은 끝이 났고, 애들은 집으로, 나는 회사 연습실로 돌아왔다.
“크흠, 크흐흠!”
뭔가 오늘은 혼자 노래를 부르고 싶은 날.
내일은 또 앨범 완성본 모니터링으로 바쁠 테니, 조금이라도 시간을 빼서 연습을 하고 싶었다.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스타카토로 음을 뱉으며 발성 연습을 조금 해 주고, 음원을 골라가며 몇 개 정도의 노래를 불렀다.
“시간은 멋대로 가고……, 상실감은 영원하지……. 이 졸음이 모두 달아났지……. 후우우. 크흠흠!”
마지막으로 우리 노래 Sleep over를 부르고 목을 가다듬던 순간.
“루치니?”
“우왓! 어? 선배님.”
금발의 염색모가 유난히 반짝이는 유레나 선배가 연습실 문을 열고 머리를 빼꼼 들이밀어 말을 걸었다.
“연습하고 계셨어요?”
나는 순간 놀라서 사정없이 쿵쿵거리는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음료수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흐흐흐. 활동기도 다 끝났는데, 쉬고 있자니 몸이 늘어져서.”
지난 앨범의 성공으로 앨범 활동 이외에도 예능 출연과 광고 촬영 등 꽤 오랜 활동기를 가진 유레나 선배이다.
이제 휴식기를 갖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그녀도 천상 아티스트라고 남들 없는 시간에 회사에 와서 연습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너는 이제 곧 복귀하는 거 아니야? 이 시간까지 여기 있어도 되나? 이거 이거, 연습벌레 같으니!”
“하하…….”
기껏 생긴 휴가 동안 심심하다고 회사에 나온 사람과, 일정이 바쁜 와중 따로 시간을 빼서 연습을 하러 온 나 중 누가 더 연습벌레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멋쩍게 웃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애들한테는 비밀이에요.”
혹시나 자기들 따돌리고 혼자 연습했다고 애들이 성질부리는 꼴을 보게 될 수도 있으니, 이 사실은 비밀로 두어야 했다.
“그러지 뭐. 너희 앨범 엄청 잘 뽑았다던데.”
“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조금 그렇긴 한데, 이번 앨범 진짜 대박이에요.”
“오. 자신 있어?”
“저희가 누구입니까? 한국을 넘어 세계로 나아가려는 그 밴드, 락이 죽기 직전이었던 대한민국에서 오로지 뚝심으로 우뚝 솟은 그 밴드…….”
“그래. 럭키데이지. 하하하.”
유레나 선배는 음료수 뚜껑을 열면서 연습실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마지막 곡 연습도 끝났겠다, 스피커와 휴대전화 선 같은 것을 정리하며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냐. 요즘 상태는 어떻냐. 스케줄이 너무 피로하지는 않으냐.
대부분 누님이 동생을 걱정하는 내용의 대화였다.
“조금 힘들긴 한데……. 재밌어요.”
“재밌다……. 그거 중요하지.”
레나 선배는 내가 오늘 새삼 깨달은 정신 무장 상태의 중요성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력 있는 유명 가수 동료인 만큼, 그녀도 내가 겪었던 대부분의 위기와 피로를 맞닥뜨려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공감대가 제대로 맞는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선배는 얘기가 잘 통하는 대화 상대였다.
“아, 맞다.”
잠시 거기서 거기인 내용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레나 선배는 문득 떠올랐다는 듯 손뼉을 짝 치더니 내게 말했다.
“내가 휴식기라서 약발이 통할지는 모르겠는데, 홍보 좀 도와줄까?”
“음?”
나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몰라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고, 선배는 스마트폰을 꺼내 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누나가 그래도 100만 팔로워 인플루언서잖니?”
지원사격이라…….
회사 동료의 인지도를 등에 업고 시작부터 꽤 괜찮은 속도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을 것이다.
“내일 대표님께 여쭤보고 연락드릴게요.”
“아마 허락해 주실 거야. 헤헤헤. 아, 곡 저장되어 있는 거 있으면 좀 보내 줘. 듣고 감상 올리게.”
“네. 톡으로 보내 드릴게요.”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도와주려 하다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나는 선배에게 고개 숙여 고마움을 표현하고는 최종 마스터 버전의 Broken 음원을 그녀에게 보내 주었다.
레나 선배로부터 시작되는 이 홍보 작업이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두게 할지는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