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91
190화
“우우우우, 뉴요오옥!”
“어허, 뒤처지지 말고 따라와.”
“뉴요오오옥!”
14시간을 넘는 긴 비행을 거쳐 우리는 목적지인 JFK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피곤하다며 쥐 죽은 듯 자고 있던 멤버들은 어느새 잠이 다 깨 버렸는지 시끌벅적하게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이 어디로 튀어 나가지 않게 잘 간수하고 입국 심사를 받았다.
길고 귀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심사는 의외로 짧게 끝나 버렸다.
“안녕하세요.”
“오, 나 당신 알아. 럭키데이?”
“어? 어떻게…….”
“소셜 미디어. 유행하더라고. 내 아내도 잔뜩 공유해서 며칠 동안이나 당신들 티저 영상을 봤지 뭐야. 듣다 보니 좋아서 스트리밍도 많이 들었어.”
“오, 고맙습니다.”
우연히도 우리 밴드를 잘 알고 있는 입국심사관을 만난 탓이다.
“여권하고, 세관신고서 좀 볼게.”
“여기요.”
“목적지는?”
“뉴욕에서 시작해서 시카고, 베가스, 캘리포니아 LA로 이동할 예정이에요. 체류 기간은 90일 이상이고, 숙박은 현지 호텔들을 예약한 상태예요. 호텔 예약 확정서는 여기…….”
“입국 목적은? 공연?”
“다큐멘터리 촬영, 공연, 미국 유통사 방문이요.”
“비자는? 90일 이내에 수익이 발생하는 예술 활동을 위한 비자.”
“여기요.”
우리는 공연 진행 등을 위해 미리 발급한 비자와 기타 등등 입국 목적과 여행 일정에 관한 서류를 제출했고, 심사관은 그것을 빠르게 훑어보고 말했다.
“완벽해. 범죄에 연루되지 말고, 약물 조심하고, 좋은 공연 만들길 바랄게.”
“고맙습니다.”
질답을 빠르게 마치고 작성해야 할 서류를 모두 적어 제출한 뒤, 우리는 공항 안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죄지은 것도 아닌데 뭔가 두근거리는 것이, 본격적으로 타지에서 도전이 시작된다는 사실이 실감 나는 기분이었다.
“심사관이 루치 씨를 알아봤어요?”
“하하. 네. 저희 티저 영상을 보셨나 봐요. 출시된 음원도 다 들었다고 하시고, 응원도 해 주셨어요.”
“시작이 좋네요.”
“아직 아무것도 없긴 한데……, 이거 기대 좀 해 봐도 되나 싶네요. 하하하.”
카메라 감독님과 소소하게 대화를 나누며 밖으로 향했다.
일단 첫날은 예약해 둔 숙소에 짐을 풀고 여독을 조금 풀 예정이었다.
우리는 로비에서 익숙한 얼굴을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아 저기다. 영호 형!”
“루치! 얘들아! 하하!”
영국에서 녹음을 할 때 우리를 잘 안내해 주었던 현지 가이드 영호 형.
언어도 되고, 미국 생활을 했던 경험도 있어 미리 소환해 다시 가이드 역할을 부탁한 것이다.
“이야, 몇 주 안 봤는데 되게 반갑다!”
“잘 지내셨어요?”
“난 뭐. 영국에서 여기 오는 거 얼마 안 걸리잖아.”
“흐흐흐. 이번에도 잘 부탁드려요.”
“그럼 이동하자. 얘기는 버스에서 나누고.”
“넵.”
“스태프분들도 짐 다 챙기셨으면 저쪽으로 가시겠습니다. 버스 준비되어 있습니다.”
역시 든든한 사람이다.
‘편해. 아주 편안해.’
버스킹부터 시작하는, 밑바닥부터 저 위까지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예능 촬영인데, 의외로 편하게 진행된다.
비싼 돈 들여 가이드를 고용하고, 현지 매니저 역할까지 해 달라 부탁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숙소 멀어요?”
“그렇게 오래 안 걸려. 버스로 30분 정도?”
“오오오.”
“식사 먼저 하나? 아니면 어디 돌아다녀?”
“일단 짐 풀고 밥 먹은 다음에 조금 휴식을 취할 예정이에요. 바로 시작하기엔 비행 시간이 길었으니까요.”
“좋지, 좋지. 그럼 밥부터 먹고……. 이따가 쉬는 김에 주변 좀 돌아다닐래? 호텔 근처 공원에 가면 버스킹이나 사이퍼 하는 뮤지션들이 꽤 많거든. 안내해 줄게”
“오, 좋죠.”
우리는 빠르게 숙소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었다.
무거운 것들과 귀중품들을 따로 보관한 후, 대충 필요한 것들만 챙겨 밖으로 나왔다.
“호텔 식당!”
“맛있는 거!”
“뛰지 마셈.”
“배고프긴 하다. 으으으.”
기내식을 먹었음에도 배가 꼬르륵거린다.
원래 장시간 이동한다는 것이 몸을 지치게 만드는 일인지라, 오늘은 영양분 좀 채우고, 휴식으로 몸도 풀어 준 뒤 내일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자, 이쪽으로. 뷔페식이니까 탈 안 날 정도로 잘…….”
“가자, 가자.”
“뉴욕 뷔페는 뭔가 다르려나?”
“뛰지 마셈.”
“배고파, 배고파.”
음식들이 저렇게 깔려 있는데 그 누가 흥분하지 않으리오?
나는 점잖은 신사보다는 흥분한 돼지가 되리라 생각하며 전투적으로 밥을 먹었다.
맛이야 서울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지만, 지친 상태였기에 꿀처럼 달게 느껴졌다.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부른 배를 통통 두드리며 애들이 재잘대기 시작했다.
“근데 배부르니까 또 연습하고 싶다.”
“연주하러 가실?”
“여, 연주를 할 공간이 있을까? 호텔인데…….”
“세미나룸이나 그런 거 있잖음.”
“야, 야. 오늘은 쉬라니까.”
배 좀 채웠다고 어째 기운들이 펄펄 솟는지, 휴식하기로 미리 계획한 지금인데도 음악 얘기로 떠들썩했다.
“직접 연주는 못 해도 남들 하는 건 구경할 수 있는데. 갈래?”
“에잉. 감질나는데…….”
“어쩔 수 없지.”
“기역기역.”
“하하. 영호 형. 아까 말씀하신 그 공원, 지금 가 볼 수 있을까요?”
“언제든지. 촬영팀이랑 같이 가지?”
“네.”
“따라가야죠.”
한국 땅을 떠나 미국에 도착했음에도 뭔가 우리는 변하는 것이 없는 것 같다.
“이 동네 버스킹은 어떤 느낌일까?”
“듣기로는 밴드 말고도 힙합 뮤지션들이나 탭 댄서 같은 사람들도 많다는 것 같던데.”
“오.”
그저 음악, 음악.
질리지도 않고 음악 얘기가 흐른다.
“버스킹 명소에 가면 전선이나 주변 무대 같은 것도 잘 정비되어 있다더라.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퀄리티 높은 공연을 기대해도 괜찮을 거야.”
“오오오.”
“갑자기 기대되게 하네.”
물론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괜찮은 음악이 있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음악은 언제나 짜릿하고 흥분되기 마련이다.
“버스 안 타고 걸어서 이동할 거야. 일행하고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알았지?”
“넵.”
“너희 진짜로 조심해야 돼. 여기서 떨어지면 평생 미국에서 거리 음악으로 먹고살아야 할 수도 있어.”
“어……. 근데 원래 우리 음악으로 먹고살지 않나?”
“먹고살긴 사는데 빵밖에 못 먹어. 쌀 없어.”
“히이익!”
가이드 형이 우리와 촬영팀을 인솔해 미리 봐 두었던 버스킹 명소라는 공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호텔에서부터 시내 광경은 꽤 괜찮은 모습이었지만.
“자기 오리지널 음악으로 공연하는 사람들도 많겠지?”
“보통 커버 아님?”
“모르지. 취미 버스커가 아니라 무명 밴드들도 많잖아, 왜. 여기가 뉴욕인데!”
“그거 다 환상임.”
“이이잉…….”
우리의 관심은 온통 버스킹 명소라는 그곳에만 쏠려 있었기에 구경할 정신은 없었다.
잠시 거리를 걸어 도착한 공원.
“Oh, oh, oh, sing us a song, you guitar man! Sing us a song tonight!(오오오, 노래를 불러 주게 연주자! 오늘 밤 노래를 불러 주게!)”
“His palms are sweaty, knees weak, arms are heavy.(손바닥은 땀에 젖었고, 다리는 떨리고, 두 팔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아.)”
“Forgive me girl! Wah! Oh! Ohhhhh!(오! 절 용서해 줘요. 워! 어! 어어어어!)”
소울풀한 옛 재즈 명곡부터 각운이 인상적인 거친 랩, 시원시원한 샤우팅이 그곳을 가득 메우고.
“저 팀 연주가 거칠군.”
“호흡은 잘 맞으니 팀 컬러라고 봐야지.”
“엄마, 스파게티를 왜 스웨터에 토해?”
“쉿. 아직 네 나이에 하드코어 힙합은 듣는 게 아니야.”
분석하는 관객, 즐기는 관객, 해맑게 묻는 아이와 래퍼로부터 아이를 당기는 엄마가 보인다.
“아아. 혼돈과 화합 사이 그 어딘가. 이곳이 버스킹 천국이구나.”
“오우……. 뉴욕 낯선 거리에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의 냄새가 나는데…….”
뭔가 익숙한 풍경이다.
‘세계 어디를 가나 음악이 만들어지는 곳은 다 비슷한 분위기인 걸까…….’
물론 분위기가 익숙하다뿐이지, 활기차게 본인의 음악을 선보이는 아티스트들의 열정은 너무나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와…….”
“좋다, 여기.”
잘 꾸며진 공연 공간은 배치도 잘되어 있어 공연자들끼리 부딪칠 일이 없게 만들어져 있고, 공연을 하는 뮤지션들 역시 같은 시간에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해 소리를 과하게 키우지 않고 있다.
관객들은 그저 순수하게 음악을 즐기고, 언뜻 보이는 관리자들 혹은 직원들도 중간중간 소리를 즐겨 가며 쾌적한 공연 환경을 만드는 노력을 하고 있다.
“감독님. 우리 여기서 공연해도 좋겠는데요?”
“거리로 안 가시고요?”
“음……. 시간이 되면 여기서 먼저 하고, 원래 예정되어 있던 곳으로 이동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확인해 볼까요? 이런 곳은 미리 버스킹을 하겠다고 신청을 해야 될 텐데…….”
“저쪽에 물어보죠, 뭐.”
나는 이 장소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긴장감 없이, 마치 고향에서 익숙할 정도로 했었던 버스킹을 하듯 편하게 손을 풀기 위해 한 번쯤 들러도 괜찮은 곳인 것 같았다.
만약 시간이 허락한다면 여기서 먼저 스타트를 끊어도 좋을 것 같았기에, 나는 대관 혹은 공연 신청을 따로 하는 방법이 있는지 묻고자 자리를 정리하던 연주자를 향해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음? 안녕. 음악 하러 왔나?”
“네. 아니, 아뇨. 버스킹을 보러 왔죠.”
“그렇군. 근데 왜?”
“여쭤볼 게 있어서요.”
“음흠?”
통기타 두 대를 양 옆구리에 멘 채, 흰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머리는 빡빡 민 흑인 아저씨는 내게 손을 내둘러 계속 이야기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다.
“혹시 여기서 공연을 하려면 어디에 신청을 해야 하나요? 저희도 내일 버스킹을 하고 싶…….”
“뭐야, 역시 뮤지션이었잖아? 하하, 부끄러워하기는! 아직 우리 밴드 공연 시간이 남았는데, 너희가 할래? 우리 드러머가 손목 관절이 안 좋아서 빨리 멈췄거든.”
“예? 아니, 아니. 아뇨, 그게 아니라…….”
아저씨는 껄껄 웃음을 터뜨리더니 자신들이 쓰던 자리를 쓰겠냐고 우리에게 물어봤다.
아무래도 내가 공연을 하고는 싶은데 이곳 사람이 아니라 방법도 모르고, 예약도 꽉 차 있어서 곤란해하는 신출내기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아니면 세계 어느 곳을 가든 동네 아저씨들의 친근한 오지랖은 똑같은 것일지도.
“이리 와, 이리 와. 사양할 것 없어.”
백발 흑인 아저씨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더 긴 이야기는 필요 없다는 듯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자신과 함께 공연하던 밴드 동료들을 향해 외쳤다.
“이봐, 잭슨! 리드! 알리! 대타가 왔어!”
“응? 대타?”
“오. 마침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해서 관객들과 관리인 치즈 버거에게 미안하던 차였는데, 잘됐군.”
“거기 덩치 큰 동양인 친구인가? 어서 오게.”
“오, 이런. 내가 봤던 동양인 친구 중 제일 큰 친구로군. 빅 보이야, 빅 보이.”
그는 그런 게 아니라는 내 부정은 듣지도 않은 채, 나를 동료들에게 소개했다.
“여기 이 친구는……. 이름이 뭐라고 했지?”
“어……. 소개한 적도 없는데……. 루치아노 킴입니다.”
“그래. 킴. 이 친구가 남은 시간을 메울 거야.”
“아뇨, 그게 아니라…….”
“음. 근데 악기는? MR로 대신하나?”
“아뇨, 저도 밴드맨이긴 한데, 오늘은 연주할 생각이 없어서 악기는 호텔에 두고…….”
“저런. 전쟁터에 왔는데 총이 없으면 쓰나! 내 걸 빌려주지.”
“네?”
정신이 없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부정하려 해도 쏟아지는 질문과, 중년 아저씨들 특유의 걸걸한 웃음은 어느새 내 집중력을 앗아 가더니 결국 기타를 손에 쥐게 만들었다.
“어, 어라?”
“좋아. 언제든 시작하면 돼! 이봐요! 여기 공연하고 있어요!”
“어?”
오늘은 분명 쉬는 날이었는데 말이다.
“어어…….”
왜인지 모르게 나를 향해 쏟아지는 버스킹 구경꾼들의 눈빛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