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92
191화
“어? 루치 뭐해?”
“루, 루치야? 왜 거기에…….”
“뭐임. 왜 님만 재밌는 거 함?”
그때, 멤버들이 저쪽에서 나를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내가 재밌는 거 하는 것처럼 보이냐…….”
“혼자 버스킹 하려고!”
“자기 혼자만 즐기려고!”
“야 이…….”
남은 당황스러워서 입을 못 열겠는 판인데 마치 혼자 재밌는 놀이라도 하려다가 걸린 것처럼 말하는 그들을 보니 목구멍이 턱 막혀 버린다.
‘아니, 얘들은 진심이겠지.’
순간 놀리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생각해 보면 이 녀석들은 순도 100퍼센트 진심일 것이다.
“나도! 나도!”
“가, 같이 해…….”
“아니 왜 님만 함.”
음악이란 생업이자 재밌는 놀이.
그쯤으로 생각하는 친구들이니까.
“이봐, 무슨 일이야?”
“오? 친구들인가? 같은 밴드의 동료들?”
“이런. 친구들도 악기가 없는 것 같군.”
그렇게 잠깐 붙들려 흔들리고 있자 악기도 빌려주고 자리도 만들어 준 아저씨들이 다가와 묻는다.
그러자 잘 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재우가 뭐라고 자꾸 어필을 해 댔다.
“예스. 히 앤 미, 밴드. 아임 기타. 기타리스트. 오케이? 디스 이지 베이스 앤 드럼. 오케이?”
“오. 이 친구가 기타리스트고, 여기 있는 아가씨들은 베이시스트와 드러머라는 뜻인 것 같군.”
“하하하. 좋아. 자네들 것도 빌려주지!”
“오. 깁슨. 땡큐.”
“어디 젊은 친구들이 얼마나 하는지 한번 보자고!”
과연 중년의 두터운 오지랖으로, 우리 멤버들 역시 각자 악기를 빌려 내 옆으로 모여들었다.
악기란 건 뮤지션의 혼과 같은 것이라고들 많이 말하는데, 이렇게 모르는 사람한테 휙휙 빌려줘도 되는 건지 싶었다.
멀리서 온 이방인 뮤지션에게 따뜻한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아재들의 마음씨가 그만큼 넓은 것인지.
“결국……. 휴식은…….”
“하, 항상 있는 일이니까…….”
“어휴…….”
오늘은 정말로 일 없이 쉬려고 했는데, 결국은 또 음악이다.
“그래서 싫음?”
“……아니.”
뭐,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다.
“하는 김에 제대로 하자고.”
“출발할 땐 Peach blossom day 했으니까 이번에는 Sleep over?”
“오케이.”
“세팅 필요해?”
“필요하지.”
빌린 장비들인 만큼 익숙해질 시간 정도는 필요하다.
“시간 잠깐 끌고 있을게.”
“그럼 땡큐지.”
우리가 설정을 만지고 톤을 정비하는 동안 라희가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
휘리릭! 두둥, 두두두두두두……. 채애앵!
“오오오.”
“스틱 돌리는 것 좀 봐.”
“대단한걸?”
“하핫!”
간단히 손을 푸는 동작과 연주임에도 관객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화려하긴 해.’
제멋대로 스타일로 출발했던 그녀의 연주는 분명 남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맛이 있었다.
거기에 제대로 된 연주 스킬과 이론이 접목된 지금.
탕, 둥, 둥, 둥, 탕탕, 둥둥, 둥둥, 둥둥, 탕탕탕, 둥둥둥, 둥둥둥, 둥둥둥, 탕탕탕탕, 둥둥둥둥, 둥둥둥둥…….
미니 드럼으로 간단한 속주 패턴 나열을 선보이는 것만으로도 흥미를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크…….”
“깨끗한 타격은 아닌데, 뭔가 매력적이야.”
“신기한 드러머로군.”
“실력 있는 밴드인 것 같은데? 저런 드러머는 흔하진 않아. 기본적인 스킬로도 붐! 사람들이 와! 동료들은 또 어떨지 기대가 되잖아.”
악기를 빌려준 아저씨들이 라희의 연주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들의 장비를 잡게 해 줄 가치가 있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처럼.
“다 됐어.”
“오케이!”
두두둥, 채애앵!
우리가 정비를 마쳤다는 신호를 듣자마자 라희가 간단한 시선 끌기를 마치고 심벌을 세게 내려쳤다.
“와아아아!”
“잘한다!”
“멋지네!”
보통은 톤 세팅을 하는 기타가 이런저런 단락 연주를 하며 시선을 끄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잘하는 드러머를 그냥 놀릴 이유가 없으니 우리의 버스킹이란 대개 이런 식이다.
다만 라희의 연주가 워낙 강렬하고 화려한 느낌이 짙다 보니 자칫 잘못하면 본 공연 들어가기 전에 분위기가 너무 달아오를 때가 있다.
‘그나마 세팅이 빨리 끝나서 다행이네.’
다행히도 정비가 일찍 끝나서 그런 일은 없겠지만, 주의할 부분이다.
‘어떻게 빌린 악기가 또 하이브리드 기타라서 쉽게 했어.’
공교롭게도 흑인 아저씨가 쥐여 준 기타 역시 내가 애용하는 하이브리드 기타였다.
통기타와 일렉트릭 기타의 역할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자칫 잘못하면 이도 저도 아닌 맛이 나지만, 잘만 버무리면 이곳저곳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기타.
둥, 디잉, 디이잉…….
어느 브랜드의 제품인지, 재질이 무엇인지 따위는 내 안목이 떨어져서 알 수 없었지만, 꽤나 잘 울리는 것이 비싼 물건인 듯했다.
“소리 괜찮겠음?”
“나쁘진 않아. 조금 더 섬세하게 만져야겠지만.”
물론 카본 기타가 아닌지라 특유의 뭉개지는 음색에서 나오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기는 어려울 테지만, 그건 톤 세팅과 연주 실력으로 극복해야 한다.
“뭐……. 멍석 잘 깔아 줬는데 이쯤은 해 줘야지.”
“이응.”
예전이었다면 난색을 표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그럼 가 볼까?”
“오케이.”
“이응.”
“고, 고!”
지금의 나는 멤버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발전한 일류 밴드맨.
내 입으로 말하기는 낯 뜨겁지만.
쟝, 쟈자장, 쟈가장, 쟈쟝…….
나는 이제 연주로도 충분히 제 몫을 하는 서브 기타가 되었다.
“흐음…….”
“음…….”
안정적인 리듬 메이킹.
가볍고 단조롭게. 하지만 이후 다른 악기들이 어떤 복잡한 연주를 선보이며 엮여와도 자연스럽도록 스트로크에 신경을 기울인다.
그리고.
“Got up from my seat. There’s no one around. Should I look around and lie down on the ground?(자리에서 일어났어. 주변엔 아무도 없어. 주위를 둘러보고, 땅바닥에 누워야 할까?)”
숨소리를 많이 섞은 살짝 거칠어진 목소리를 최대한 부드럽게 들리도록 연음을 잘 이용해 뱉어 낸다.
“Can’t sleep any more. Just looking at the door. Maybe it’s because I don’t know what to live for…….(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어. 그냥 문만 바라보고 있어. 어쩌면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몰라서 그런 것일지도.)”
단조로운 리듬 위에 얹히는 모순적인 보컬.
갈라지지는 않지만 충분히 피곤하게 들리는 색의 목소리와, 연음과 끝음 흐리기에 집중해 최대한 부드럽게 만든 창법.
제목은 Sleep over인 주제에 잠이 오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하는 가사.
둥……. 둥……. 둥……. 둥…….
성글게 짜인 전반의 벌스에 라희의 킥이 슬며시 섞여 들기 시작하고.
둠……. 두움……. 두루룸……. 둠……. 두움……. 두루룸……. 징징지징 징징 지지징……. 지지징징 징, 지이잉, 지지징 징…….
베이스와 리드 기타가 함께 곡에 진입하며 점차 울먹울먹한 분위기를 완성시킨다.
그에 따라 창법도 조금씩 그 분위기를 달리한다.
모순 속에 담긴 뜻을 읽어 달라는 호소를 하듯.
혹은 이 이상의 이야기는 내가 아닌 당신들이 듣는 것이라고 말하듯.
덤덤하고 또렷하게.
“One day, when I first grabbed this guitar, all my sleep went away.(언젠가 내가 이 기타를 처음 잡았을 때, 졸음이 모두 달아났지.)”
악기들의 소리는 한순간 화려해지고, 모두가 함께 곡을 이끌어 나간다.
엮여드는 것에서 조금씩 풀려 나가는 모양으로, 점차 아름답게 노래가 전개된다.
“Tears will flow with falling star flowers, and I will be drunk with music flowing from my fingertips.(떨어지는 별꽃과 함께 눈물이 흐르고, 손끝에서 흐르는 음악에 난 취해 버리겠지.)”
꼬여 있던 매듭이 풀리며 퍼져 나가는 감동.
“우우……. 우, 우, 우우우우…….”
그것이 계속해서 타오르도록 부드럽게 바람을 불듯 흘리는 내 가성 애드리브와 함께, 간주의 솔로가 시작된다.
둥둥둥둥, 두두둥둥, 둥 두루루룸, 두두둥 두룸 두두둥…….
일반적으로 잘 보이지 않는 화려한 베이스 솔로.
그러나 수현이의 섬세하면서도 리드미컬한 핑거링은 당연히 밴드의 뒤를 묵묵히 받치고 있어야 한다는 그 선입견을 뛰어넘는다.
두두둠, 두둠, 두두두둠! 둠, 둠, 두루룸, 둠, 두우웅, 두두두둥, 두루룸, 둠, 둠…….
거의 혹사에 가까울 정도로 박자를 정확하게 잡으면서도 노트를 빼곡하게 채우는 드럼 연주가 뒷받침을 하고 있기에, 수현이는 오로지 화려하게 그 묵직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두 번째 벌스와 훅.
우리는 한 몸처럼 나아가도록 연주의 속도에 심혈을 기울이며 노래를 이어 나갔다.
“One day, when I first grabbed this guitar, all my sleep went away.(언젠가 내가 이 기타를 처음 잡았을 때, 졸음이 모두 달아났지.)”
이미 한번 지나갔던 후렴 멜로디가 전혀 지루하지 않다.
내가 노래를 한껏 즐기고 있는 탓도 있겠지만, 제대로 된 조화를 맞춰 놓고 화려함을 담당하는 파트를 이리저리 주고받는 곡의 구조가 이에 한몫을 하는 것이다.
“호오…….”
“각운이 맞는데, 안 맞는군.”
“그래. 끝 발음을 흐려서 오묘하게 맞추고 있어. 엠엔엠처럼.”
“저 친구 능숙하네.”
이 곡은 라희가 만들 때부터 끝내주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편곡을 할 때 수도 없이 밤을 지새우며 그 설계에 심혈을 기울인 노래였다.
노래를 듣고 있는 청자들이 우리가 만들어 둔 그 구조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감정의 변화를 인지할 틈도 없이 공감의 영역을 차차 넓히는 식으로.
리듬, 멜로디, 가사, 그리고 변화하는 분위기.
우리가 그들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에게 적응하게 하는 노래.
“Tears will flow with falling star flowers, and I will be drunk with music flowing from my fingertips.(떨어지는 별꽃과 함께 눈물이 흐르고, 손끝에서 흐르는 음악에 난 취해 버리겠지.)”
지이이잉, 지지징징, 징, 지잉, 지이잉! 지지징, 지지징, 지지징, 지지징, 징, 징, 지이잉!
“후우우!”
“오우, 제길. 멋지잖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기타 멜로디에 따라 광분이 솟았다 죽기를 반복하고, 일정한 패턴의 박자 안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집중력을 쏟아붓는다.
지이잉, 징 징 징……. 지지징! 지잉 징…….
기타, 베이스, 드럼이 힘을 잃고 리듬 기타 하나만 남을 때까지.
“Time goes by itself, and the sense of loss lasts forever. Sleepiness won’t come ever…….(시간은 멋대로 가고, 상실감은 영원히 지속되지. 졸음은 다신 오지 않을 거야…….)”
쟝, 쟈자장, 쟈가장, 쟈장. 쟝, 쟈자장, 쟈가장, 쟈장…….
곧 보컬과 리듬 기타의 스트로크도 공허하게 울리며 끝을 맺고, 노래가 끝날 때까지.
몇 초 동안.
“아…….”
“후우우…….”
사람들은 아무런 말이 없이 있다가.
“와아아아!”
“휘이이이이익!”
“끝내주네!”
“이야, 저게 내 기타라고! 이봐, 봤어? 저 친구가 내 기타로 저런 끝내주는 연주를 했다고!”
집중력을 쏟아부을 곳이 사라진 후에야, 환호성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