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95
194화
“그럼 오늘 공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걱정 마세요!”
우리는 적당한 규모의 회관을 빌려 무대를 꾸몄다.
스피커나 다른 장비들 같은 경우 행사 업체를 통해 대여했고, 마이크며 악기 같은 것들은 우리가 가져온 것들을 사용했다.
“저, 우리 딸내미가 여러분을 너무 좋아해서 그러는데, 사진 한 장만…….”
“앗, 좋습니다!”
“당연하죠! 따님은 어디 계세요?”
“흐허허허! 고맙습니다. 딸은 시카고에서 대학 다녀요. 찍어서 보내 줘야 돼요.”
“자, 김치!”
다가오는 관객들에게 사진도 찍어 주고 사인도 해 주면서 천천히 공연을 준비했고,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람들 되게 많은데?”
“우리 예상보다 훨씬 많네.”
“근처 사는 주민들은 전부 온 게 아닐까.”
주민 커뮤니티를 통해 홍보가 잘된 모양인지, 관객 숫자가 우리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큰 공연장을 섭외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
“그래도 어떻게 자리는 다 채워 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따가 다 끝나고 목사님께 감사 인사라도 드리고 가자.”
“그래야겠지?”
“응.”
그나마 주변 교회의 목사님이 앉을 자리가 모자랄 것 같다며 교회에서 의자를 꽤 많이 챙겨다 주셨기에 앉을 자리는 만들 수 있었다.
“슬슬 준비된 것 같으니까 무대 시작할 준비 들어가자.”
“넵.”
공연 시작 시간이 3분 정도 지났고, 이제 들어올 사람은 다 들어온 것 같다.
뭐, 조금 더 늦는다고 해도 인트로 인사라거나 첫 곡 정도 놓치는 게 전부일 테니 더 미룰 필요는 없어 보였다.
“올라갑시다.”
“예압!”
“가자, 가 보자아아.”
우리는 세팅이 모두 완료된 무대 위로 올라갔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열광 속에 빠뜨리겠다는 포부를 한껏 품고서.
* * *
“I want to sing. What I did. You’ll feel it, too. And know what to do…….(노래하고 싶어. 내가 한 일을. 너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뭘 해야 할지 알게 되겠지…….)”
우리는 관객들의 열정적인 응원에 더더욱 최선을 다한 무대로 보답했다.
“I want to sing. What I did. And you……, will……, know……, what to do.(노래하고 싶어. 내가 한 일을. 그리고, 당신은, 뭘 해야 할지, 알게 되겠지.)”
지잉, 징, 징, 지지지징……. 위이이잉! 지징 지징 지징 지징…….
멀리 고향에서 온 밴드에게서 익숙한 향수라도 느낀 것인지 사람들은 우리 무대를 꽤 좋아해 주었고, 우리는 그들을 제대로 만족시키기 위해 평소보다도 더욱 집중해 노래했다.
Peach blossom day, Sleep over, Broken 같은 우리의 히트곡은 물론, 펠비스 브레슬리 노래나 더 비틀의 노래처럼 어르신들이 좋아할 법한 노래들도 무대에서 선보였다.
“후우우……. 저희 곡 Broken 들려드렸습니다.”
“와아아아아!”
“아이고, 젊은 친구들이 노래도 잘하네.”
“한국에서는 유명한 밴드래요.”
“거 조영필이랑 비교해면 아주 어리네.”
“에익, 언제 사람이랑 비교하는 거예요?”
“우리 때는 그 사람이 이거였어. 그래도 그 친구처럼 잘하네.”
정작 그분들이 그리워할 한국어 가사는 한 마디도 뱉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관객들은 기대 이상의 호응을 보여 주었다.
‘진짜 다행이야. 응.’
마지막 한 곡의 임팩트를 위해 설계한 트랙 리스트이지만, 다소 위험성이 있던 것이 사실이다.
한인 타운에 와서 공연하는 한국인 밴드에게 기대하는 바는 업계 관계자가 아니더라도 뻔한 모양일 것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영어로 쓰인 곡들만 노래하는 것에 사람들이 아쉬워하며 분위기가 떨어지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적당히 달아오른 분위기 아래에서 마지막 곡을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저희가 준비한 무대는 딱 한 곡 남았습니다. 어떻게 오늘 공연 여러분께서 괜찮게 보셨을지 궁금하네요.”
“아아아아…….”
“아이구, 몇 곡만 더 부르고 가지.”
“저 사람들도 바쁘지. 미국까지 왔는데 저 서부에도 가야 할 것 아닌가?”
“어디, 나성?”
“엉. 뉴욕에만 있기도 뭐하잖여.”
“그렇지. 거기도 가야지.”
비교적 젊은 관객들에게서 전형적인 아쉬움 섞인 리액션이,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아쉬움이 가득하면서도 다독다독하는 대화가 흘러나왔다.
‘세대 화합 그 자체네.’
주변 거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이기에 관람 연령층도 다양했고, 간혹 한인들 사이 동네 백인 흑인 주민들도 섞여 있었다.
서로 보는 것도 다르고 즐기는 것도 다른 여러 계층의 관객들이 음악 아래에서 같은 감정을 공유해 준다는 사실이 흥미로우면서도 즐거운 광경이었다.
“그러면 저희 럭키데이는 마지막 곡과 함께 인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했던 경험 어디 가서 꼭 즐거웠고 아름다웠다고 추억하겠습니다.”
“와아아아!”
호응과 함께 마이크에서 살짝 물러서서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끄덕끄덕.
평소보다 훨씬 비장한 표정의 녀석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도 그럴 것이 주민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한편 한국에서 시작한 밴드라는 정체성을 제대로 선보이기 위한 장치로 기능하는 마지막 곡이기에, 그 퀄리티에 있어 더 큰 신경을 써야 하니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티이이잉! 디잉, 디이잉…….
이번 곡은 내가 시작을 알렸다.
프랫 전체를 짚는 하모닉스로 종소리를 내어 노래가 시작됨을 알리고.
지이이잉……. 지이잉, 징, 지이이잉…….
비브라토가 크게 걸리는 재우의 선행 멜로디가 집중력을 하나로 모은다.
그리고 불시에, 정확히는 우리끼리 약속한 박자에 따라 내가 가사를 뱉는다.
“That lonely island across the sea is my home.(저기 바다 건너 외로운 섬이 나의 집.)”
청해 아리랑.
“The strong wind keeps us from crossing over there.(거센 바람이 저곳으로 건너가는 것을 막는다네.)”
이민자, 재외 동포, 해외 거주민들에게는 각별할 수밖에 없는 노래.
“아아아…….”
“하아…….”
“I think I’ll reach it if I take just one step.(단 한 걸음만 걸어가면 닿을 것도 같은데.)”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재외 국민으로서 생을 마감했던 작곡가 겸 기타리스트, 안토니 초이가 작곡한 곡이다.
“The face in the distance is sadly blurry.(멀리 있는 얼굴은 슬프게도 흐릿하기만 하네.)”
떨림 가득한 소리가 회관에 부드럽게 퍼지고.
둠, 두우움, 둠, 두우움, 둠, 두두둠, 두움……. 두둠…….
익숙한 경기 아리랑의 코드가 그대로 반영된 베이스가 흘러간 보컬의 뒤를 잇는다.
둠, 두두둠, 둠, 둠, 둠……. 둠, 두둠, 두움…….
여운이 지속되록 잠시 여백을 유지하다가.
둥, 두둥, 둥 둥 둥 둥 둥 둥!
라희의 강한 킥과 함께 소리를 키워 연주를 재개했다.
지이잉, 징, 징, 징, 지이이잉! 지이이잉! 지지징징, 지이이잉! 지이이이이잉! 지이잉…….
익숙한 음계, 색다르게 들리도록 찌르듯 날카롭게 울리는 기타 소리.
사람들의 표정이 풀리고, 몸이 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보며, 나는 가사를 다시 이었다.
“Can’t remember the blue scenery of Namsan, and I’m forgetting the clear Hangang water…….(남산의 푸른 풍경은 기억나질 않고, 맑다던 한강의 물도 잊혀 가는데…….)”
맑지만 쭉 뻗는 소리로, 부드러움은 슬슬 벗어던지고 웅장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공명을 상당히 키워서.
“I can still see your lovely face. When can I forget this hard memory…….(사랑스러운 당신 얼굴은 여전히 보이네. 언제쯤 이 힘든 기억을 잊을 수 있을까…….)”
차라리 잊어버리면 힘들지나 않을 것을, 사라지지 않는 그리움 탓에 타들어 가는 그들의 향수를 대변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바다를 넘어가고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오오오, 아리랑 파도 위로 나를 넘겨 주오…….”
작가가 울컥하는 심정으로 그려 나갔을 그 심상을 표현하기 위하여, 저 멀리에도 닿았으면 좋겠다는 화자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하여, 소리가 쭉 뻗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영어로 쓰인 가사들 사이 흐르는 한국어 아리랑 소리는,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순간 확 파고들었다.
“하아아…….”
“고향 생각 나는구먼.”
“좋네.”
“아이고, 사람 울려, 참…….”
토속적 향취가 물씬 풍기는 후렴구에서 결국 울컥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디이이잉, 디이잉, 디리리링, 디리링, 디리링, 디이이잉!
규칙적으로 울리는 리프는 현대적으로 편곡되어 화려함을 놓지 않았고, 4분의 3박자 안에서 옛 소리의 끈을 놓지 않은 리듬은 익숙한 모양으로 손뼉을 치게 만든다.
우리 곡이 아님에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연습하던 그 보람이 느껴지는 모습들이다.
“The boat foams white on the sea. Can I go to see you if I step over there?(배가 지나는 바다에 하얗게 거품이 이네. 저곳에 발을 디디면 당신을 만나러 갈 수 있을까?)”
그러나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숨 관리에 신경을 썼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게, 직전부터 끌고 왔던 세밀한 볼륨 조절과 음정 관리 역시 신경을 기울이면서.
“Think I’ll doze off if I get tired while crossing. I can’t cross because I’m afraid it’ll be a dream if I wake up.(건너가다 피곤하면 깜빡 졸아 버릴 것만 같네. 또 일어나면 꿈이 될까 건널 수가 없네.)”
징, 징, 징, 징…….
뒤를 받치는 리듬 기타가 한 키씩 폴짝폴짝 뛰며 후렴으로 곡을 인도하고.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바다를 넘어가고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오오오, 아리랑 파도 위로 나를 넘겨 주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바다를 넘어가고파…….”
곧, 듣고 있던 사람들의 입 모양이 한 사람의 것인 듯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둠……. 둠…….
베이스 하나만 남아 관객들과 함께 나아가는 보컬의 등을 밀어주었다.
“아리랑 바다를 넘어가고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오오오, 아리랑 파도 위로 나를 넘겨 주오…….”
이제는 울먹거림도 들리지 않도록, 모두의 목소리가 한 가사를 함께 읊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바다를 넘어가고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오오오, 아리랑 파도 위로 나를 넘겨 주오…….”
나도 그 가운데에서 헤엄치듯, 계속해서 후렴을 불렀다.
반복되던 그 가사가 끝이 난 직후.
사람들은 눈물 대신 그리움을 모두 털어 낸 후련함으로 우리에게 크게 웃어 주었다.
“히야…….”
“와아아아!”
“고생했습니다!”
직전에 만났던 주민회장과 목사님과 인사할 틈도 없이, 우리는 관객분들에게 포옹과 악수 요청을 끊임없이 받아야 했다.
“고맙네. 참 고마워.”
“이렇게 확 눈물 풀어 버린 게 얼마 만인지…….”
의도대로 되었음에도 코끝이 확 찡해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그들에게 하나하나 고개 숙여 인사하며 모든 요청을 받아 주었다.
만난 지 며칠 정도 된 부모님 생각도 나고, 참 그런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