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96
195화
퀸즈 코리아 타운에서 공연을 마치고, 우리는 뉴욕에서 한참 서쪽에 있는 일리노이 주 시카고까지 이동했다.
그 이유인즉.
“잠깐 이쪽 소파에 앉아 보시겠어요? 음……. 오케이. 조명, 밝기 살짝만 낮춥시다. 피부들이 너무 밝아서…….”
“사운드 체크. 아무 얘기나 부탁드립니다.”
“뒤에 화분! 화분! 치우라고 했잖아!”
케이뮤직넷에서 연결해 준 평일 토크쇼 촬영 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검색했을 때 본사는 뉴욕에 있던데.”
“여긴 스튜디오야. 이 토크쇼……, 탑 셀러? 아무튼 이 방송만 시카고에 있는 제작사에서 만들고, 뉴욕에 있는 방송국으로 보내는 거지.”
“아하.”
며칠 머물던 뉴욕에서 계속해서 일정을 진행했다면 이동하지 않아도 되고 몸도 편했겠지만, 어차피 우리의 여행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대륙을 횡단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기에 이쪽이 나았다.
가던 길 가면서 스튜디오에 들르면 되는 것이니.
“대본은 대충 다 봤어?”
“응. 근데 대본이랄 것도 없던데?”
“뭔가 듬성듬성.”
“그렇긴 하더라. 좀 대충 쓰인 느낌도 나고…….”
토크쇼치고는 상당히 빡빡하게 쓰여 있던 한국에서의 예능 프로그램들에 비하면, 이곳에서 찍는 토크쇼의 대본은 널널함 그 자체였다.
지문이 명확하지 않고, 예상 질문도 듬성듬성 그 개수가 적어 애들 말을 빌리자면 대본이랄 것도 없었다.
그냥 필수로 답변해야 할 사항만 몇 개 외우면 되는 정도.
“뭐……. 그래도 외워 두기는 해야지.”
“이응.”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본 자체는 숙지해 두어서 나쁠 것이 없었으니, 우리는 버스에서도, 촬영 직전의 스튜디오에서도 다시금 대본과 준비된 답변들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이고오! 판갑숩니다!”
“어……. 나이스 투 미츄?”
우리가 출연할 토크쇼의 진행자, 코미디언 겸 방송 작가인 릴리안 오스틴이 직접 인사를 건네러 올 때까지 말이다.
“그……. 아이고라는 감탄사는…….”
“영국에 사는 한국인 친구가 알려 줬어요. 인사하기 전에 붙이면 더 친근해 보인다고.”
뭔가 동네 아저씨처럼 친근한 인사말로 대화의 포문을 연 그녀는 우리에게 음료수를 한 병씩 건네며 말을 이었다.
“그 친구가 럭키데이 여러분의 팬이라서 그런데, 혹시 촬영 전에 앨범에 사인을 좀 받아 갈 수 있을까요? 제 것도 같이. 사인은 안 해 주는 타입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요.”
“아, 물론입니다. 앨범 드릴까요?”
“놉! 미리 준비해 왔죠. 잠시만요.”
그녀는 자신의 친구와 자신 모두 우리의 팬이라며 몇 장의 앨범을 가지고 와 우리의 사인을 받았다.
놀랍게도 미국에서는 정발 되지 않은 우리의 한국판 1집과 2집은 물론, 프로젝트 밴드 삵 앨범까지 있었다.
최근 해외 시장에 물량이 풀리기는 했지만, 표지 디자인이 바뀌고 제목이 영어로 쓰인 것들이기에 이건 직접 한국까지 와서 샀거나 구매 대행을 이용했다는 뜻.
진짜 우리 팬이 맞았다.
“와……. 찐팬이신데?”
한국인 친구의 영향으로 처음 우리 노래를 듣고는 겨우 고등학생이었던 우리의 음악에 깊게 빠졌다고.
“헤헤헤.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오히려 우리가 더 고맙죠.”
멀리까지 와서 만난 팬이기에 고마운 마음은 더더욱 컸다.
우리는 앨범에 사인을 정성스럽게 그리고, 서로의 폰으로 사진도 잔뜩 찍었다.
“촬영 끝나고 소셜 미디어에 올려야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다 기분이 좋았다.
우리도 나름 유명한 코미디언인 그녀가 우리의 팬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더 좋은 일이기에, 그녀와 함께 SNS에 사진을 게시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잠시 후.
“카메라 테스트 한번 진행한 후 촬영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본격적으로 토크쇼 촬영이 시작되었다.
“시청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언제나 새롭고 핫한 연예계 상품을 소개하는 탑 셀러, 릴리안 인사드립니다. 오늘은 최근 인터넷을 통해 뜨거운 관심을 얻었던 신상이죠? 한국에서 온 밴드, 럭키데이를 만나 보겠습니다. 큰 박수로 모실게요!”
밝고 쾌활한 목소리로 릴리안이 우리를 불러들였고, 우리는 각자의 장비를 들고서 세트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토크쇼에 악기들을 가지고 가는 것이 조금 어색했지만, 토크 중간에 연주 기회가 있다고 하고, 본래 밴드나 여타 뮤지션들이 나올 때는 악기를 지참하는 콘셉트가 있다 해서 부담은 버려 두었다.
“반가워요, 럭키데이! 정말 보고 싶었어요!”
“고맙습니다, 릴리안. 출연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시청자들에게 보이기 위해 세트 아래에서와 달리 정중 진지하게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처음에는 조금 딱딱하게 시작했지만, 대화와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분위기는 부드럽고 쾌활해졌다.
“아하. 그래서 첫날에 휴식도 없이 바로 버스킹을 진행하게 된 거군요.”
“네. 하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다 버스카즈였고, 하필 제 옷차림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뜨내기 뮤지션처럼 보였고, 하필 멤버들이 비행기를 타고 오느라 연주에 매우 목마른 상태였었죠.”
“오 이럴 수가. 순식간에 100만 조회 수를 돌파한 그 버스킹 영상에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니…….”
인터뷰에서는 미리 준비되어 있던 질문 외에도 릴리안이 즉석에서 뱉는 새로운 내용들이 나왔는데, 딱 우리를 인터넷을 통해 처음 접했을 사람들이 궁금해할 법한 것들이었다.
대개 한 번쯤 풀어 주면 좋을 이야기들.
‘진행 편안하고 좋네.’
괜히 지역 동시간대 시청률 2위, 전국 10위권의 방송이 아닌 것인지, 시청자들이 궁금해할 만하면서도 우리가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을 딱 적절하게 던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럼 이쯤에서 우리의 새로운 상품, 럭키데이의 음악을 들어 봐야겠죠? 구매자들의 심장을 빼앗을 무대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예정되어 있던 어필 시간.
특히 가수 출연자가 나올 때는 홍보 시간이나 마찬가지인 무대 타이밍이 돌아왔다.
“저희가 준비한 것은 Broken이라는 노래입니다.”
오늘 우리의 선곡은 제셀과 함께 만든 노래, Broken.
그간 버스킹과 공연을 진행하고 너튜브 실황 업로드를 하며 얻은 정보와 통계에 따르면, 미국 시청자들의 호응이 가장 좋은 곡들 중 하나였다.
말하자면 이번 미국 시장 진출 작전에 있어서 Broken이 타이틀곡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쟈아아앙, 징, 징, 지이잉…….
“When I was a kid, I saw an aurora…….”
수도 없이 불러 익숙해진 가사가 자연스럽게 내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내 기타가 만드는 반주에 보컬이 얹히고, 천천히 드럼, 베이스, 멜로디 기타가 함께하기 시작하면, 평소 만들어 내던 락 버전의 Broken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어쿠스틱 버전의 Broken이 스튜디오에 가득 울려 퍼진다.
“It’s shattered in the sky! On a deep, clear night! Oh…….”
오랜 기간 신경을 써 온 모든 소리의 조화는 당연한 것이고, 이번 연주에서 가장 집중해야 하는 것은 절제였다.
파트가 넘어가면 넘어갈수록 위기를 전면에서 맞이하는 것은 보컬도, 기타도, 베이스도 아닌 드럼.
정확히는 온갖 무기로 치장하고 있다가 단 한 대의 카혼으로 전장에 서게 된 우리의 드러머 라희.
“Under such a bright darkness…….”
담백하게.
화려하게 치달릴 수 있는 원곡과는 사뭇 다른 깨끗하고 매끄러운 진행을 유도해야 한다.
파워풀한 느낌이 살아야 하는 부분은 파워풀하게, 감성을 긁도록 부드럽고 잔잔해야 할 때는 또 그렇게 진행하되, 긁는 소리를 자제하고 거칠게 몰아치는 대신 한 방에 눌린 소리를 밀어 다른 뉘앙스의 파워를 보여 준다.
“After the storm sweeps through evereything, we’ll see! Everything that used…….”
샤우팅이 터지는 부분 역시 비강 스크래치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압력을 늘려 단단하게 함으로 중심을 확 잡아 내지른다.
이런 세심하고 귀찮은 작업들을 통해 노래는 전혀 다른 곡이 되어 버린다.
빠른 박자를 더 많은 소리를 이용해 쪼개지 않아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고, 일견 부실하게 보일 수 있는 중반부는 확 압축되어 전체의 모양에 있어 꽤나 충실하게 들린다.
“I want to sing. What I did. You’ll feel it, too. And know what to do…….”
“후우우우……. 우……. 우……. 우…….”
숨 쉬듯 살짝 흘리는 고음의 가성과 함께 긴 노래를 마무리하면.
“오……. 맙소사…….”
듣고 있던 사람의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감탄사가 새어 나온다.
“후우우우……. 감사합니다.”
숨을 확 빼내며 감사 인사를 올리니 그제야 릴리안이 머리를 흔들어 감동을 털어 내고는 진행을 이어 나갔다.
“와우, 여러분……. 저는 진심으로 이 현장감, 이 감동이 화면 밖의 여러분께도 전달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칭찬으로 이어지는 인터뷰 2부의 포문을 연 릴리안은 이어서 우리 음악에 대한 질문을 몇 가지 더했고, 우리는 성심성의껏 이에 답했다.
“유명 작곡가인 제셀과 함께 작업을 했는데, 어떻게 연이 닿게 된 건지 들어 볼 수 있을까요?”
“먼저 곡을 요청한 건 저입니다. 알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인데 제셀은 곡을 받을 사람들을 테스트하죠. 저희는 앨범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그의 시험을…….”
“방금 들려준 Broken이 미국 활동에서 가장 전면에 내세울 곡이 될까요?”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공연에서 Broken의 반응이 제일 좋았거든요. 물론 상황은 언제나 뒤집힐 수 있습니다. 다른 곡들이 운이 좋게도 더 큰 인기를 끌게 된다거나…….”
그렇게 몇 번의 질의응답이 더 이어지고, 릴리안이 다소 민감할 수 있는,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미국은……. 생각보다 외부인에 대한 평가에 가혹한 나라예요.”
“음…….”
우리가 꼭 한 번은 정면으로 맞이해야 할 상황.
오히려 지금쯤 직접 언급하는 편이 더 좋을 내용.
“직접적인 차별, 은근히 보이는 무시하는 시선, 성과에 대한 온당하지 못한 평가가 수반되겠죠.”
인종 차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금 민감할 수도 있는 이야기이지만, 특히나 럭키데이에게는 궁금했어요. 미국에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미국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해외에서 미국으로 온 이민자도 아니죠.”
“네.”
“그 차별적인 시선을 이겨 낼 수 있나요?”
릴리안의 눈빛에 감정이 흐르는 것이 보인다.
미안함.
이런 민감한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에 대해 미안한 것인지, 자신이 이 질문이 가장 필요한 질문이도록 만든 주류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점에 미안한 것인지.
‘참 미안할 것도 많다.’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범위의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일일이 자책을 느낄 필요가 없음에도, 그녀는 마치 자신이 범인인 것처럼 미안해하고 있다.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솔직히 예상은 하고 있죠. 조금 힘든 여행이 될 거라는 것 정도는요.”
“그래요?”
“네. 하지만 그럼에도 저희가 미국 진출을 강행한 이유……, 저희의 믿음이라고 해야겠죠, 아무튼 그 이유는…….”
우리가 직접 걸어 들어온 환경이다.
극복 못 할 것이라 생각했으면 애초에 오지도 않았으리라.
“음악은 정직하기 때문이에요, 릴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