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197
196화
“정직하다?”
조금은 추상적으로 들리는 그 말에 릴리안이 내게 되물었고, 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리가 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 낼 무기는 이미 우리 품 안에 들어 있다. 그것이 우리의 생각이었다.
“좋은 음악은 그 어떤 무기보다 강력하죠. 뭐, 미국의 흔한 락스타들이 하는 것처럼 말하자면…….”
대중의 평가를 받아 그 성과물로 먹고사는 이가 맹신하기에는 썩 좋지 않은 이상론일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리 음악이 형편없다면 당신들은 내 엉덩이를 걷어찬 후 쫓아내겠죠. 하지만 듣기에 좋으면? 사람들은 우리에게 동전을 뿌려 줄 겁니다. 요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는 결제도 쉬워요. 듣고, 평가하고, 돈을 주십시오. 음악으로 보답할 테니.”
“오…….”
스튜디오가 살짝 적막에 휩싸였다.
내 답변에 살짝 동그래진 릴리안의 눈동자가 유난히 반짝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아마 착각이나 착시 같은 것이리라.
* * *
토크쇼 탑 셀러의 촬영을 마치고, 우리는 릴리안과 저녁 식사까지 함께한 후, 하루를 휴식하고 나서 다시 긴 이동을 시작했다.
목표 지점은 텍사스 주 달라스.
적당한 규모의 공연을 진행하고, 또 주변의 한인타운 역시 방문할 예정이다.
“흐응…….”
달리는 버스의 창밖을 바라보며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다시 짚어 보는데, 옆에서 라희가 콧소리로 시동을 거는 것이 들려왔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투정일지, 심심하니 놀아 달라는 말일지, 아니면 직전 공연에 대한 감상일지 모르겠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미리 마주하는 것이 낫다.
“왜?”
나는 고개를 돌려 라희를 바라보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느냐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눈을 묘하게 게슴츠레 뜨고는 내게 말했다.
“릴리안이랑 친해졌어?”
“음? 친해졌냐니?”
너무 뜬금없는 물음이었는지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자 라희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번호도 교환하고, 선물도 주고받고…….”
“그거야 뭐, 새로 사귄 친구끼리 의례적으로 하는 일이지.”
“사귀어?”
“응? 잠깐, 단어 선택이 이상한데. 내가 생각하는 그쪽 질문 맞아?”
얘가 대체 무슨 오해를…….
“야, 야. 미국 와서 생긴 인맥이니까 번호도 받고, 맞팔도 하고 그런 거지. 팬이니까 CD도 주고.”
“그런 느낌은 아니고?”
“야 그런 느낌을 느낄 시간도 없었다. 애초에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고, 나는 한국 그 사람은 미국에 사는데 무슨…….”
이번 생에 와서는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해 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롱디는 취향이 아니기도 하고.
“흐으음…….”
내 답변에 라희는 게슴츠레한 눈을 여전히 유지한 채 비음을 흘리더니 고개를 돌려 시트에 몸을 묻었다.
‘뭐야, 대체?’
갑자기 무슨 스위치가 눌린 것인지, 자기 혼자 물어 오고 자기 혼자 대화를 끊는 모양새가 너무나 이상했다.
그때.
“루치야. 잠깐만.”
“넵?”
나는 유성 형의 부름에 반응해 자리를 옮겼다.
눈을 묘하게 질끈 감고 자는 척을 하는 것을 보니, 라희와 대화를 더 할 것 같지도 않고, 일 관련 이야기인 것 같아 빠르게 걸어가 유성 형의 말을 들었다.
“너 레오나르도 카메룬이라는 감독 알아, 혹시?”
“레오나르도 카메룬? 레오나르도 카메룬……. 어……. 뮤직비디오 감독 이름이던가요?”
“응, 맞아. 그쪽에서 조금 급한 제안을 줬는데 말이야…….”
나는 유성 형에게서 나를 부른 이유를 전해 듣고는 조금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뮤비요? 이제 와서? 여기서? 하루 만에?”
“응. Broken 같은 곡이 뮤비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느니, 이건 자기가 꼭 맡아서 해야 할 사명이 있다느니 하는데…….”
“허…….”
너무나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뮤직비디오 촬영 제안이었다.
‘레오나르도 카메룬이면 유명한 사람인데…….’
나는 꽤나 빛나는 커리어를 가진 감독의 이름을 다시 확인하고는 기쁨보다는 의심이 들었다.
무슨 사기 같은 것은 아닌지, 그 감독이 진짜 그 감독이라면 뭔가를 잘못 알았거나 그런 건 아닌지.
“그…….”
“신원은 확실해. 회사 통해서 들어온 거거든.”
“그럼…….”
“뭔가 잘못 안 것도 아니야. Broken을 정확히 언급했어. 하루 만에 그렸다는 그 콘티도 받았는데, 우리 쪽 인력들은 이건 하루 만에 만든 게 아니라는 소리까지 나오더라고.”
“허…….”
참 이상한 일이다.
‘세상은 넓고 미친놈들은 많다더니…….’
딱 그 꼴이다.
미친놈을 만나고 지나가면 또 미친놈이 등장하고, 그 미친놈이 우리와 엮여 보려고 미친 짓을 시작하는데…….
“그럼 당연히 해야 되는 건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함께 미친 춤을 추게 되더라, 이 말이다.
“그렇긴 한데……. 너희 괜찮겠냐?”
“피곤하긴 해도……. 몇몇 일정만 조정하면 될 것 같은데요……. 살펴본 거 있죠?”
받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일감.
이걸 거절하고 넘어갈 수도 없다.
당장 주요 활동 곡으로 정한 Broken의 인지도와 접근성을 늘릴 수 있는 기회이면서, 직접 우리에게 콘택트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A급 감독과 싸게 협업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
바쁘다고, 피곤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고 안 하면 내가 바보가 된다.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받아야만 했다.
“응. 그렇지. 우선 받을 거면 바로 오늘 경로를 틀어야 해. 텍사스가 아니라 저기 미주리 쪽으로.”
“거기로 갔다가 달라스로 이동할 경로는 나오죠?”
“그렇지. 근데 문제는 일정을 맞추려면 뮤비를 딱 하루 안에 촬영해야 해.”
“엥?”
이러면 또 문제가 있다.
“하루 안에 촬영을 할 수가 있어요?”
“그게……. 가능은 해. 일단 콘티부터 볼래?”
“줘 봐요.”
나는 유성 형의 태블릿을 빌려 그 콘티라는 것을 직접 살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 아하……. 하루 만에 진짜 만들 수도 있는 콘티인데, 이거…….”
너무나 심플한 구도와 내용.
“그렇지? 쭉 나아가는 버스, 벌판에서의 연주, 거리 버스킹 신.”
“심지어 거리 버스킹 장면은 우리 예능 촬영본을 빌려 넣고 싶다는 요청까지 따로 쓰여 있네요. 이 사람 이거…….”
거의 사생팬, 스토커 수준의 분석이 선행된 완벽한 날림 콘티였다.
길게 이어 붙인 신, 재활용해서 소모할 수 있는 신, 짧게 짧게 끊어서 촬영을 해야 하더라도 우리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채울 수 있는 신.
“우리 일정 다 꿰고 있대요?”
“어……. 어느 쪽을 통해서 물어물어 그렇게 만든 것 같긴 하다만…….”
“허, 참…….”
준비를 제대로 해 왔다.
우리가 거절할 수 없도록.
“이거 입장이 뒤바뀐 것 같은데…….”
“그러게 말이다.”
본래라면 우리가 돈을 싸 들고 가서 촬영을 하자고 해야 할 텐데, 오히려 그쪽이 완벽하게 준비를 해 와서 나와 일하자고 덤비는 모양새다.
뭔가 이상해도 한참 이상한 일이지만, 신뢰도 좋고, 준비성 완벽하니 당연히 받을 일이다.
일정에 크게 영향을 주는 일도 아니고 말이다.
“하죠. 애들한테는 제가 말할게요.”
“그럴래? 그럼 하는 방향으로 전달할게.”
“네.”
이번 건은 회의를 빙자한 강요로 애들의 의견을 모아야겠다.
전화위복이라 했던가?
‘한국에서 Broken 뮤비를 안 들고 온 게 이렇게 풀릴 줄이야…….’
사람 일 참 모르는 것이다.
* * *
“이 장면을 떼어서 드리면 될까요?”
“노, 노. 전부. 촬영본 전체를 주십시오. 잘라서 붙여야 할 곳이 띄엄띄엄 있어서 굳이 수고를 할 필요가 없어요.”
“어……. 그렇게까지는…….”
“줘 버려.”
“앗, 네. 알겠습니다.”
“오, 고맙습니다.”
열심히 달려오게 된 미주리.
우리가 만난 감독 레오나르도 카메룬의 첫인상은…….
“광기?”
“응. 광기.”
“광기 그 자체네.”
광기에 휩싸인 예술가.
그 이상의 표현이 없을 듯했다.
“부족합니다. 버스 안에서도 연주 연습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조금 더 늘여서 보여 줄 수 있겠습니까?”
“아……. 가능은 합니다.”
“아주 좋습니다. 그럼 저는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실시간 촬영, 실시간 편집.
저런 미친 짓거리가 과연 가능은 하단 말인가?
‘천재 소리는 저런 사람들한테 어울리는 거구나.’
한편으로는 촬영을 진두지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예능 제작진에게 촬영본과 영상 자료를 요청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편집 감독과 함께 직접 편집을 하는 그 트리플 태스킹.
“크큭……. 흐흐흣……. 여기 이 장면에서는 훨씬 와이드한 화면을…….”
“어……. 우리 괜찮은 거지?”
“당장이라도 등에서 기계 팔 튀어나오면서 우리한테 파란색, 보라색, 초록색으로 반짝거리는 약물 같은 거 주입할 것 같음.”
“음……. 괜찮겠지.”
포트폴리오도 확실하고, 주변 평가마저 최상급으로 좋은 감독이 랩탑을 무릎에 얹고 큭큭거리는 웃음을 쏟아 내며 실시간으로 광란의 편집 파티를 벌이는 장면은 너무나 기괴했다.
그런데 또 촬영 자체는 콘티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고, 바로 옆에 있는 편집 감독은 데스크탑 전선을 주렁주렁 본인의 차에 매달고 딱 알맞은 곳에 적절히 컴퓨터 그래픽 효과를 입히는데, 그게 또 예술이다.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여러모로 이상하기는 했지만, 뮤비 촬영 자체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여러모로 이상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완성입니다!”
“뮤비라는 게 이렇게 뚝딱하면 뿅 하고 튀어나오는 거였나?”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건…….”
“세계는 넓구나…….”
미친놈과 함께한 미친 작업은 겨우 하루가 다 가지 않은 시간에 완성되었다.
“랜더링도 제대로 못 할 시간인데 그 효과를 다 입혔어?”
“그래픽을 미리 준비해 왔대. 저 유리 깨지는 이펙트 같은 거.”
“아니, 접촉도 어제 했다며?”
“그래서 대단한 거지, 뭐.”
나름 영상을 다루는 같은 분야의 사람들, 우리 예능 제작진들도 그들의 미친 편집 쇼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신속, 정확, 퀄리티 양호.
그야말로 상상으로도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하면 욕을 들어 먹기 충분한, 말도 안 되는 작업 속도였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아, 네.”
우리는 버스에 모여 앉아 그의 컴퓨터로 결과물을 확인했다.
그리고.
“And you……, will……, know……, what to do……. 후우우우…….”
“와, 미친…….”
“쩐다…….”
달리는 버스에서 악기를 휘두르는 로드 무비에서 뉴욕 거리를 음악으로 뒤덮는 뮤지컬 쇼가 되고, 어느새 세상이 유리 조각처럼 깨져 나가는 재앙 판타지가 되는 뮤직비디오는 우리에게서 감탄사를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아아아……. 너무나 만족스러운 작업물입니다. 여러분은 그야말로 영감의 보고……. 우리 집 지하실에 가둬 놓고 음악만 만들게 하고 싶…….”
“아뇨, 아뇨. 그건 좀.”
그 작업물을 보고 경탄을 뱉는 우리에게 레오나르도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건 내일 바로 업로드하는 게 어떨까요?”
“내일요?”
“네. 제 채널과 럭키데이가 운영하는 채널에 동시에 말이죠.”
“어……. 좋습니다.”
우리는 유성 형과 논의해 당장이라도 이 영상을 대중들에게 선보이고 싶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레오나르도 감독의 의견에 맞추어 업로드 일정을 정했다.
본디 검수 과정과 이런저런 협의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본인 스스로가 몸이 달아 이것저것을 우리에게 전부 맞추고 있는 이 감독이라는 사람의 모습이 참 천재 같다고나 할지, 괴짜 같다고 할지 모를 상황이다.
그는 잠시 자신의 영상을 다시 돌려 보고, 또 돌려 보고, 다시 한번 돌려 보고 나서 마치 하얗게 불태운 사람 같았던 표정과 자세를 다시 처음의 광기 어린 모습으로 돌렸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말했다.
“혹시 저와 저희 촬영 팀이 여러분의 여로에 따라가도 괜찮겠습니까?”
“네?”
“여러분과 함께 몸을 움직이며 영감을 받고, 그 보답으로 예능 다큐멘터리 촬영에 도움도 드리고 싶은데……. 혹시 안 되겠습니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저자세인 괴짜 천재 감독의 발언은 우리 쪽 PD님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니 대체 왜…….’
혜성처럼 데뷔해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서 큰 명성을 얻은 이 천재 감독이 우리의 예능 촬영에 업혀 가겠다는 것인지, 그 저의가 짐작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