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2
1화
‘자. 생각해 보자.’
나는 오래 준비한 앨범을 발표하고, 갑자기 늘어난 스케줄에 허덕이고 있었다.
초반에는 홍보에 꽤 공을 들였지만 미미한 반응에 좌절했지만 어느 순간 대박이 터져 버렸다.
국민 싱어송라이터라고도 불리는 인기 가수 한나가 어디선가 내 노래를 듣고 너무 좋다며 자신의 라디오 방송에서 소개한 것이다.
이후 내 노래는 차트 위로 급한 등반을 시작했고, 여러 곳에서 나를 찾는 전화가 몰려들었다.
드디어 김루치의 퇴물 가수 인생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아니, 정확히는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바빴고. 마침 일 쉬고 있던 유성 형한테 로드 좀 봐 달라고 부탁했고. 지상파 입성이라면서 들뜬 채 고속 도로를 탔다가 그대로 교통사고.’
운이 없었다.
없어도 너무 없었다.
매니저 경력만 20년에 가까운 유성 형의 신기에 가까운 운전 솜씨는 결코 사고라는 단어와 연을 맺지 않으니, 자동차 옆구리를 들이박혀 데굴데굴 구른 것은 결국 상대 트럭 운전자의 잘못이라는 뜻이 되겠다.
‘대리석 책상, 전위적으로 못생긴 수면등, 그리고 저 그랜드 피아노…….’
천천히 그리운 풍경을 둘러보았다.
가벼운 것을 선호하는 내 입장에서는 쓸데없이 묵직한 책상이나, 예술가가 직접 영감을 받아 만들어 실용성 따위는 개나 준 스탠드. 그리고 비싸디 비싼 고급 피아노까지.
누군가 몰카라도 하려고 내 어린 시절 집안 모습을 그대로 꾸며 놓은 것은 아닌가 했지만, 생각해 보니 저 비싼 물건들을 들여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죽음을 맞이한 후 부활해 고등학생이 되었다는 의미.
‘이게 말이 되나?’
나는 귀신도 외계인도 없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혹시나, 정말 혹시나 내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극히 희박한 확률로 숨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이런 초현실적인 상황이 눈앞에 닥치고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고 말이다.
‘성공이 눈앞에 보였는데 교통사고를 당한 건 악운이고, 그게 사실 환생 트럭이라 과거로 회귀한 건 행운……, 맞겠지?’
다행인 건 상태창 같은 건 보이지 않고 여기가 처음 보는 숲속도 아니라는 점.
죽은 줄만 알고 눈을 꼭 감고 있던 나를 깨운 것이 낯선 새의 지저귐이나 자칭 신이라는 양반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점.
‘몸이 포근하고 따뜻한 게 천국인가 했더니 극세사 이불이네, 이거. 비싼 거.’
적어도 대충 쓴 이세계물 같은 전개는 아닌 모양이었다.
“어휴…….”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았다.
‘앞으로 뭘 해야 하는 거지?’
혹시 누군가 나를 과거로 돌려보낸 거라면 그 의도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세계 멸망을 막으라든지, 미래 기계 문명의 종횡을 저지하려는 인류 저항군의 수장을 미리 없애라든지 말이다.
하지만 그 어떤 시그널도 주어지지 않으니, 이건 뭐 내 마음대로 살라고 던져 놓은 것인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주식, 부동산, 암호 화폐……. 일단 과거로 돌아온 것 자체가 재벌이 될 수 있는 기회이긴 한데.’
갑자기 뭔가 탁 놓이는 느낌이다.
그렇지 않은가?
세상에 먹고살려고 아등바등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시드 머니 좀 모아서 손가락 몇 번 놀리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
뭔가 바보 같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물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아, 아아아. 크흠!”
살짝 바람을 빼며 성대를 점검한다.
역시 갈라지지도 않고, 소리를 내는 데에 어떤 지장도 없이 깨끗하다.
“아아아! 아아아아아!”
내친김에 복부에 힘을 주고 고음까지 내질러 본다.
“휴우우…….”
훈련 정도가 회귀 전에 비하면 조금 떨어져 세밀한 조정이 힘들었지만, 힘 자체는 출중했다.
오히려 미래의 나보다 훨씬 강렬한 소리가 너무나 쉽게 나온다.
나는 깨달았다.
‘그렇지. 사고도 당한 적 없고, 성대결절도 없던 목이구나.’
당연한 일이다.
교통사고로 인한 폐 기능 손상은 약 2년 후, 그리고 성대결절로 소리가 거칠어지고 고음에서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거의 10년 후쯤이니까.
“크흐음! 내 사랑에! 세상도 양보한걸! 널 끝까지 아끼며 사랑할게…….”
확인을 위해 좋아하는 노래의 후렴을 짧게 불러 보았다.
이번에는 그냥 소리만 점검하는 게 아니라 몸의 움직임에 신경 쓰면서.
“약속해 줘! 서로만 바라보다!”
척추를 중립으로 두고 횡격막을 제대로 당겨 호흡을 끌어올려 성대를 진동시킨다.
아주 기본적인 호흡법 위주의 체크.
그리고 성대 조임근에 원하는 만큼 힘이 들어가는지, 공명이 너무 과해서 부담스럽게 들리진 않는지, 혹은 너무 적어 목에 무리가 간다거나 소리가 작아지지는 않는지를 점검했다.
“언젠가 우리! 같은 날에 떠나…….”
접지된 성대 덕에 깔끔하게 고음이 터져 나간다.
넓은 침실에 반주 없이 노래가 크게 울린다.
귀가 아니라 마음이 가득 차는 느낌이 들었다.
“아아…….”
끝내주는 기분이었다.
‘좋다.’
회귀도 회귀고 돈도 돈이지만 결국 노래다.
순간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락스타가 된다.’
가수로서 성공하고 싶다.
보통 성공이 아니라 끝내주는 락스타가 되고 싶다.
카네기 홀, 웸블리 아레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공연을 열어 모두 매진시키는 초특급 슈퍼스타가 되고 싶다.
‘어떻게든.’
결국은 빛을 보기 전에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지만 내 경험들은 헛되지 않았다.
폐 손상과 성대결절 이후 언제나 처음부터 다시 쌓아 올리는 기분으로 발성을 연구했고, 그렇게 좋지 않은 내 목 상태로도 잘 팔리는 앨범을 만들기 위해 좋은 곡을 살피는 눈을 길렀다.
그런 노하우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데 몸 상태까지 최고라면?
‘내친김에 질러 본 건데 확실히 목 상태는 너무 좋아.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좋아. 아직 몸이 익숙하지 않아서 목소리에 딱 맞는 발성 이론을 접목하고 듣기 좋은 창법을 장착해야겠지만 하드웨어만큼은 최상이야.’
이번 생에는 이런 경험들과 원래 좋았던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내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로잡는다.
락스타가 될 것이다. 반드시.
‘돈은 벌 수 있으면 번다. 주어진 기회를 그냥 내다 버릴 이유는 없으니까. 다만 그걸 훌륭한 가수가 되기 위한 포석으로 삼는다.’
전생에 겪었던 여러 차례의 고난들 중 금전으로 인해 생겼던 것들은 꽤나 나를 귀찮게 만들었다.
가수의 길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그냥 실력만 믿고 덤벼들었던 과거, 제대로 꼬꾸라져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낭비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운과 실력, 그리고 정글 같은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혜가 적절히 조화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 노래 솜씨를 다듬어야 함은 물론, 금전적 위기를 이겨 내기 위한 돈이나, 집안의 지원 등도 내게 꽤나 절실했다.
‘그러면 집에서 계속 살아야 한다는 뜻인데…….’
나는 원래 이맘때쯤, 정확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출을 감행했다.
그때는 한시라도 빨리 가수가 되고 싶었고, 성악가인 아버지에게 붙잡혀 레슨을 받고 콩쿠르에 나가는 등의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부모님은 물론 친동생까지 성악에 대한 애정이 깊게 뿌리박힌 터라 대중음악 가수를 목표로 하는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에 집은 내게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번 생은 달라야 한다.
덜컥!
“연습하니?”
갑자기 문이 열리고 고상한 목소리가 울렸다.
역사상 최고의 소프라노, 신이 내린 목소리, 가장 완벽한 기교 등 수식하는 별명도 많지만 내게 있어 저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붙일 수 있는 호칭은 하나뿐이다.
‘어머니…….’
언제 봐도 그리운 얼굴, 그리운 목소리.
내 어머니 오수영 소프라노였다.
“아, 네.”
살짝 목이 막히려는 것을 꾹 눌러 참고 답했다.
어머니의 비교적 젊은 얼굴을 보니 과거로 돌아왔다는 것이 확 체감되는 느낌이다.
그때 어머니가 말을 이어 나갔다.
“음 찍는 게 많이 능숙해졌더라. 3옥타브도 안정적이었고. 제대로 된 공명은 아니었지만, 연습이니까. 그런데 다음부터는 가요 말고 제대로 된 실기곡으로 하렴. 습관이 무서운 거야.”
“아…….”
누가 가업이 성악인 음악가 집안 아니랄까 봐 들어오는 즉시 노래에 대한 평가부터 내리신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내 노래를 들은 사람이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라는 점?
‘아버지였으면 따로 가요를 연습할 정도로 한가하냐며 혼내셨겠지.’
어느 정도는 융통성을 보여 주시는 어머니라 다행이었다.
“참. 오늘 약속 있다고 하지 않았니?”
“네?”
“세 시에 태호 만나러 간다며? 아닌가?”
“아.”
나는 침대에 널브러져 있던 스마트폰을 들어 메시지 앱을 확인했다.
태호 : ㅇㄷ?
태호 : 오고 있슴?
태호 : ㅇㄷㅇㄷㅇㄷ
태호 : 님?
태호 : 자냐
태호 : 안 옴……??
“아…….”
아무래도 오늘은 친구와의 약속이 있는 날인 듯했다.
“나갔다 올게요.”
“너무 늦으면 안 된다? 밥은 먹고 오니?”
“몰라요. 먹고 오면 연락드릴게요.”
“뛰지 말고!”
나는 급하게 옷을 챙겨 입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 * *
“너 미친놈이냐?”
“아니.”
“약속 시간이 몇 시야?”
“두 시…….”
“지금은?”
“세 시…….”
“야!”
중학교 때부터 쭉 친구인 태호 녀석이 내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근데 너도 자주 늦잖…….”
“나는 10분, 20분 늦는 거고! 1시간씩 늦지는 않는다고!”
“아 미안.”
회귀를 자각한 직후 시간을 낭비하느라 약속 시간에 거하게 늦어 버렸기에 친구의 분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미래에는 약속 한번 잡으면 두 시간 세 시간도 늦던 녀석이, 내가 한 시간 늦은 것에 길길이 날뛰는 모습이 꽤 신선했다.
‘만나는 줄 알고 역에서 해 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갑자기 제주도라는 전화를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
다행히 약속 장소인 태호의 자취방까지 오면서 메시지를 통해 오늘 무슨 이유로 만나기로 했는지는 알 수 있었다.
‘동네 형님의 멘토링 날.’
자기 집에서 좋은 장비 가지고 풍족하게 배워 나가는 학생들도 있겠지만, 보통 대중음악을, 특히나 락 음악 같은 장르를 전문적으로 하고 싶다고 하면 우선 반대에 부딪히는 학생들이 부지기수.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동네 음악 커뮤니티다.
동네 노래 잘하는 형.
학교 밴드부 선배.
교회 기타 가르쳐 주는 선생님.
본의 아니게 절벽을 눈앞에 두게 된 학생들이 음악을 접하고 배우기 위해 고수들의 꼬랑지에 매달리는 것이다.
‘예고 가려고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 다니면서 배운 애들보다는 상황이 힘들겠지만.’
소위 엘리트라고 불리는 이들보다 성장 속도도 더딜 수밖에 없을뿐더러 주어지는 정보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차이가 크다.
하지만 이런 환경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들은 언제나 나왔다.
바로 오늘 나와 태호가 만나게 될 동네 형.
“아, 선우 형한테 연락 왔다. 조금 일찍 와서 세팅 만져 봐도 된대.”
락 밴드 ‘스코프’의 보컬, 나선우가 그런 언더독 슈퍼스타의 대표적인 예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