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20
19화
“너 우리랑 밴드 해라.”
“좋다!”
원래는 합주 실습 수업을 통해 서로를 조금 알아 가다가 제안할 예정이었지만 나는 더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바로 질러 버렸다.
솔직히 이런 멋진 드러머를 어디서 또 구하겠는가?
다행히도 라희는 시원시원하게 제안을 받아 주었고, 우리는 드디어 모든 포지션에 사람을 꽉꽉 채운 완전체 밴드가 될 수 있었다.
‘뭔가 길게 얘기한 것 같은데 결국 하자. 그래. 두 과정만 기억에 남네…….’
앞으로의 비전. 우리가 너를 필요로 하는 이유. 이미 모인 멤버들의 재능.
서로 나눈 얘기가 많았지만 결국 밴드를 하고 싶다는 뜻이 같았고 모두의 재능에 모두가 각각 감탄하던 와중이라 일이 술술 풀렸다.
“정식으로 밴드가 결성된 김에 서로 소개라도 해 볼까?”
“좋지.”
마지막 멤버인 라희가 자기소개를 제안하고, 모두가 동의해 순서대로 입을 열었다.
“형재우. 기타. 잘 부탁함.”
“어휴……. 길게 좀 해라.”
“더 필요함? 레이어즈 기타 구독 좋아요 부탁드림.”
“그래, 그래.”
재우는 평소처럼 짤막하게 자기 할 말만 하고 소개를 끊었고.
“어……, 1반 진수현이고……, 베이스 기타를 치고 있고……, 나이는 열일곱……. 잘 부탁해…….”
“나이는……. 어차피 우리 전부 동갑인데.”
“앗……. 미안…….”
“아니, 미안할 것까지는 없고.”
수현이는 정식으로 밴드가 결성되었음에도 여전히 낯을 가려 조용조용하게 말했다.
“근데 생각해 보니 재우랑 수현이는 나랑 같은 반이라서 딱히 소개가 필요 없었네. 하핫!”
“그럼 왜…….”
라희가 껄껄 웃으며 자기소개의 무용함을 깨달은 듯 이야기했지만, 기왕 시작한 것 전부 마무리하기로 하고 나도 스스로를 소개했다.
“2반 김루치아노. 보컬이야. 편하게 루치라고 부르면 되고, 원래는 성악을 하다가 실용음악으로 완전히 돌아섰어. 부모님이 성악가셔서 아직 대중음악을 하고 싶다는 말은 안 한 상태고.”
이제 동료로서 함께 일해야 할 사이이니 알아야 할 것은 알아야겠다 싶어 전부 털어놓았다.
부모님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성악가라는 것.
그분들의 기대를 따라 나도 성악을 했었고, 나름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것.
그리고 내가 락 음악을 너무나도 사랑한다는 것.
“오오. 개멋있어.”
“인정.”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게 좋지…….”
애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이야기를 들었다.
밴드 하겠다고 모인 넷이니만큼 여기서 공감하지 못할 사람은 없었다.
특히나 라희는 더욱 그랬다.
“나도 비슷해. 뭐 유명한 성악가 집안 같은 건 아닌데,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가 무용을 가르치려고 했거든.”
그녀는 중학교 때까지는 발레를 배웠고, 나처럼 나름 괜찮은 성적을 얻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음악에 목숨을 바치게 된 것은 중3 여름 방학.
“학원 끝나고 가던 날이었어. 그날 마침 기사님이 휴가를 내셔서 집에 걸어가야 했거든? 만약 평소처럼 기사님이 데리러 오셨으면 난 아직도 발레를 하고 있을 거야.”
예고 무용과에 진학하기 위해 연습을 이어 가던 날.
그녀는 학원에서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거리에서 음악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어릴 때 바이올린도 배웠거든? 그런데 갑자기 바이올린 소리가 들리니까 추억 돋아서 그 자리에 서서 계속 들었지. 근데…….”
거리 연주를 나온 두 여자 연주자.
부드럽고 선명한 바이올린 선율이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유명한 멜로디를 그려 냈다.
카논.
파헬벨의 카논이었다.
“너무 멋있더라고.”
음악이 아름답게 울고, 익숙함 속에서 화려함이 자라났다.
그녀는 가슴이 세차게 뛰는 것을 느꼈다.
“드럼이.”
바이올린 연주자의 뒤에서 신나게 스틱을 휘두르던 드러머의 모습이 잊히질 않더란다.
그녀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온갖 테크닉으로 음을 표현하는데, 여러 종류의 북을 쳐서 리듬을 찍어 내며 곡을 리드하던 그 장면에 푹 빠져 버렸다.
바이올린을 배울 때도, 발레를 할 때도 이렇게 심장이 뛰는 것을 느끼지 못했는데, 드디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 기분이었다.
“그다음 날부터 발레 학원 간다고 하고 그냥 다른 데서 시간을 때웠어. 그리고 차곡차곡 학원비를 빼돌렸지. 후후후.”
하지만 지금까지 바이올린, 발레 같은 것을 배우다가 갑자기 드럼을 치겠다고 하면 교양 있는 부모님께서 어떻게 반응할지 두려웠다.
그래서 그녀가 선택한 것은 삥땅이었다.
“레슨비가 꽤 비싼 편이라서 돈은 금방 모이더라.”
발레 학원 등록비를 빼돌려 모은 후, 월세 25만 원짜리 작은 연습실을 빌려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드럼을 구해다 놓았다.
그리고 너튜브를 통해 드럼 연주를 독학.
그것이 지금까지 몇 개월이나 이어진 것이다.
“와……. 그러면 너도 부모님이…….”
“태양고 무용과로 온 줄 아시지. 흐흐흐!”
“대단하네.”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독학으로 어떻게 그런 연주를…….”
“동감.”
사정을 알게 되니 이해가 조금 되었다.
‘독학이라서 그랬구나.’
노래를 듣고 박자와 루프를 카피하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음에도 선생님으로부터 테크닉을 지적받는 아이러니한 실력.
독학으로 드럼을 배웠기에 기본기가 모자란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재능충이네.”
“충?”
“아, 천재라고.”
눈앞의 드러머가 제대로 된 재능충이라는 뜻이다.
‘바이올린과 발레 경력 덕에 박자 감각을 키울 기회는 충분히 많았다고 쳐도, 그걸 연주에 그대로 반영할 수 있다는 건 재능이 있다는 뜻이지.’
비록 음악 지식이 모자라고,
기초가 탄탄하지 못해 안정적인 연주가 불가능하고,
드럼 루프의 작곡이 불가능하다는 명확한 단점이 있지만,
그 재능만큼은 단연 최고라고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 175 정도 되나?”
“키? 나 177cm.”
“그렇군. 무게는 아마…….”
“스톱. 그건 입 밖으로 말하는 거 아니야.”
“아, 미안.”
압도적인 피지컬이다.
나만큼은 아니라도 상당히 큰 키.
저 단단한 근육.
‘발레로 다져진 하체에, 원래 좋게 타고난 팔 근육인가? 상당해.’
발레리나는 키가 과하게 큰 경우 파트너 배역을 고르기가 힘들어 불편한 점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드럼은 다르다.
‘길쭉길쭉한 만큼이나 근육의 발달도 좋아서 장시간의 연주에 무리가 없을 것 같아.’
그야말로 드럼을 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닐까 싶은 몸.
북을 강하게 두들기고, 팔다리를 쭉쭉 뻗으며 밟아 대는 시간을 견뎌 내기에 최적인 외양이다.
본인의 적성과 흥미도 그렇고, 신체적인 조건도 역시 발레리나보다는 드러머가 훨씬 어울려 보였다.
확실히 아까도 파워 자체는 출중했으니, 기본기만 잘 배운다면 분명 훌륭한 드러머가 될 터였다.
‘아니, 근데 내가 왜 이런 애가 있다는 걸 몰랐지?’
그러면 또다시 의문이 생긴다.
이런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도 왜 미래에 유명한 연주자가 되지 못한 것인가?
물론 내가 모든 음악가를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니, 라희가 잘 성장해 내가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그리고 열심히 드럼을 치고 살았을 확률도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재능을 생각하면 겨우 드럼을 계속 쳤다 정도로는 모자라다.
일류 세션이 되었다거나, 유명 밴드에서 드럼을 맡았다거나, 하다못해 교수가 되었다거나.
적어도 그 정도 명성은 얻었어야 정상인데, 아예 그녀를 본 기억이 없으니 이상한 일이다.
‘재능에만 의존해서 연주를 하는 경향이 있으니, 결국 창의력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 걸 수도…….’
독학으로 드럼을 익혔다 보니 카피 실력과 감각만큼은 출중하지만, 이론에 매우 약하고 스스로 루프를 만들 재능은 기대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기에 그 벽을 넘어서기 전에 음악을 포기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녀의 옆에 앉은 수현이의 경우 실력 있는 연주자의 기술을 보고 들으며 자라서 음악 이해도가 높아 그걸 바탕으로 편곡과 연주력을 키울 수 있었다.
때문에 자기 베이스 워킹을 직접 만들어 낼 수 있고, 편곡 능력도 수준급이다.
그런 수현이와는 달리 라희의 경우 창작 능력은 검증되지 않았으니 합당한 추측이었다.
어쩌면 부모님에게 걸려 불벼락을 맞고 다시 무용을 하게 되었을 수도 있고 말이다.
‘생각해 보면 수현이도, 재우도 밴드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는데…….’
수현이는 진수영이라는 유명 연주자의 동생임에도 아예 본 적도 없는 얼굴이고, 재우는 나름 유명한 기타리스트였다지만 밴드를 하지는 않았다.
결국 우리 밴드에는 끝내 밴드맨이 되지 못한 미생들만 모인 셈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 재능 넘치는 애들이 밴드를 하지 못했다는 걸 안타까워한 음악의 신이 나를 과거로 돌려보낸 건 아닐까?’
허무맹랑한 상상이었지만 이미 회귀라는 말도 안 되는 사건을 겪은 나이기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재능 넘치는 원석들.
어쩌면 이 회귀라는 것은 재우, 수현, 라희라는 세 천재가 빛을 못 보고 묻히는 것이 안타까웠던 음악의 신께서 나라는 견인차를 보내 이들을 부와 명예의 땅으로 이끌어 가라는 계시가 아닐까?
“좋아. 아주 좋아.”
잘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제대로 달려 보자고.”
이들과 함께라면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최선을 다해 음악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어떤 거대한 존재에 의해 내가 과거로 되돌아온 것이든, 이과적 지식이 없는 내가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에 의한 것이든, 나는 음악만 하면 된다.
“그럼 이제 연습 좀 해 볼까?”
그토록 원하던 기회가 왔으니까.
“오키.”
“고!”
“부르고 싶은 거 있어?”
우리는 밤이 늦을 때까지 서로의 음악 취향을 공유하고, 모두의 기호를 만족시킬 수 있는 곡을 골라 레퍼토리에 넣었다.
어떤 편곡이 필요할지 탐색해야 했기에 몇 곡을 꽤 여러 번 반복해 불렀고, 이후에는 각자 의견을 제시하며 포인트를 짚었다.
어떤 곡은 키를 좀 바꾸면 어떻겠는가. 어떤 곡은 베이스 솔로가 들어가면 참 좋을 것 같다. 나는 어떤 곡이든 좋은데 빠른 진행이 있으면 더 좋겠다.
음악 욕심은 있어도 의견 제시는 지지부진했던 전날까지와 달리 이야기가 계속해서 돌아 많은 의견이 모였다.
‘이건 라희 덕이네.’
마이 페이스 하나, 소심쟁이 하나, 정상인 나 하나.
제대로 말이 통하지 않던 밴드에 적극적이고 활발한 라희가 투입되니 대화의 균형이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다.
‘멤버 진짜 잘 받았다.’
이제 달릴 일만 남았다.
“그럼 방금 얘기한 부분 바꿔서 다시 해 보자.”
“나부터?”
“응. 재우 솔로 들어가는 부분부터 쭉 이어서.”
“오키. 박자 좀 잡아 주셈.”
“응. 완 투 뜨리 뽀!”
두둥! 둥…….
그렇게 열의를 불태우던 때.
“내 새꾸들! 아직까지 연주하고 있니!”
불청객이 찾아왔다.
“방해하지 말고 좀 나오라니까. 애들 열심히 연습하는데 선생이라는 놈이…….”
“아 놔 봐요! 우리 애기들이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쌤이 돼서 치킨 정도는…….”
김하선 선생님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치킨 박스를 든 채 문을 열었고, 윤영현 선생님이 그런 그녀를 붙잡아 당기고 있었다.
“어…….”
나는 잠깐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치킨은 언제나 환영이지.
* * *
“버스킹이요?”
“그래. 버스킹.”
연습실에 불쑥 찾아와 치킨이라는 거대한 은총을 선사하신 김하선 선생님은 우리에게 조금은 특별한 제안을 해 왔다.
“내가 아는 후배들이 혜솔 공원에서 정기적으로 버스킹을 하거든? 근데 오래 하다 보니 점점 러닝 타임이 길어지고, 길어지다가 두 시간을 채우게 됐다지 뭐야?”
그러니까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이 밴드를 하는데, 버스킹 중 쉬는 시간을 가질 때 남는 타임을 몇 곡 정도 연주하며 채워 줄 사람이 하루 필요하다고 한다.
“고정은 아니고 당일 딱 하루야. 원래 맡아 주던 친구들이 있는데, 큰 행사가 잡혀서 거의 한 달을 돌아다녀야 한다네. 너희한테 좋은 기회일 것 같아서 잠깐 기다려 보라고 했는데, 어쩔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 보니 악기사, 의류 쇼핑몰 등과 협찬 계약도 깔려 있는, 밴드 입장에선 나름 중소규모의 중요한 행사인 것 같았다.
‘하긴. 밴드 입장에서도 어지간하면 조금이라도 흠결이 생기는 건 꺼림칙할 테니까.’
쉬는 시간이래 봐야 10분에서 15분 남짓이겠지만 그사이에 관객들이 얼마나 떨어져 나갈지 불안하긴 할 것이다.
그러니 게스트 가수를 데려다 놓고 비는 타임을 만들지 않으려는 것.
‘나쁘지 않아.’
우리 같은 햇병아리들에게는 꽤 귀중한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