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202
201화
What if?(1)
“능헑!”
루치아노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뜨헣?”
“뭐야? 악몽이라도 꿨어?”
방금까지 있었던 일이 꿈인지 아닌지를 생각하는 그에게,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형.”
“왜 그래?”
운전대를 잡고 전방을 주시한 채, 일일 매니저 유성 형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루치는 잠깐 눈가를 손으로 지그시 누르고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꿈을 좀 꿨어요. 조금 긴 꿈.”
자세한 내용이 전부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대강의 줄거리는 생각이 났다.
차가 뒤집히고, 과거로 돌아가고, 락스타가 되는 꿈.
그렇다.
개꿈이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오늘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지상파 입성의 날.
오랜 무명 생활을 벗어나 김루치아노라는 가수의 새 인생이 시작되는 날이다.
“한나 씨한테 연락은 받았어?”
“어제 따로 이야기했어요. 방송 출연 잡힌 거 사이에 라디오 게스트 잠깐 들어가기로.”
“크……. 은혜 제대로 갚아야 한다.”
“그래야죠. 그 늪에서 꺼내 주신 분인데.”
10년을 훌쩍 넘긴 김루치아노의 무명 생활의 끝을 보여 준 사람은 국민 싱어송라이터 한나.
그녀는 생 무명인 루치아노의 노래를 감명 깊게 듣고는,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소개했다.
결과는?
‘펑. 제대로 터졌지.’
퇴물 가수이자 명성 있는 보컬 트레이너가 아니라, 제대로 된 대박 작품을 가진 히트곡 가수 김루치아노가 되었다.
간혹 묻혀 있던 노래의 급격한 차트 등반 탓에 순위 조작이 아니냐는 의혹이 올라오기도 했으나, 워낙 곡의 퀄리티가 좋았기에 논란은 금방 잔잔해졌다.
오히려 이런 노래가 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냐는 평가가 대다수였다.
고난과 역경만 가득 차 있던 가수 인생에 드디어 꽃이 핀 것이다.
“프르르르! 프르르르르르! 아아. 아.”
“좀 괜찮아?”
“나쁘진 않아요.”
금방 잠기고, 갈라지고, 쉬어 버리던 성대도 오늘은 좋은 컨디션을 보여 주고 있다.
‘좋아. 제대로 하자.’
인디, 무명 솔로, 보컬 트레이너 생활을 하던 김루치아노의 음악 인생 최초로 지상파 음악방송 출연.
인디 밴드 시절에는 작은 프로그램에 연주를 하러 간 적도 있긴 하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큰 무대에 서는 것은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이건 꼭 제대로 해내야 했다.
“파이팅, 파이팅!”
그는 의지를 다지며 차 안에서 힘껏 소리쳤다.
* * *
“반갑습니다. 오늘 공연하게 될 김루치아노입니다.”
“오우, 좋은 하루 맞죠?”
“네, 좋은 하루 부른 김루치아노입니다.”
“반갑습니다! 오늘 잘 부탁드려요!”
루치는 방송국 바닥이 뉴비에게 엄격한 곳이라고 들었는데, 그가 젊은 신인이 아니기 때문인지 나름 예의를 갖춰 주는 스태프들 덕에 마음 편하게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했다.
“긴장은?”
“전혀.”
방송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고, 올라 본 무대라고는 대학 축제나 인디 공연 무대 정도가 전부였지만, 루치는 묘하게 긴장이 되지 않았다.
‘오늘 유난히 마음이 편안하네?’
당연히 긴장이 될 법도 한데 오히려 컨디션은 짱짱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 빨리 무대에 오르고 싶은 심정이다.
그는 차에서 잠깐 졸며 꾸었던 그 락스타가 되는 꿈 덕분인가 싶어 괜스레 거울을 보며 웃었다.
‘잘되려나 보다.’
그렇게 잠시 오늘에 대해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스태프 한 명이 노크를 하고 대기실로 들어와 그에게 공지했다.
“루치아노 씨?”
“아, 네.”
“지금 리허설 올라가시면 될 것 같아요. 반주 전체 라이브로 하시니까 세션이랑 소리도 맞춰 보시고 해야 할 테니 시간은 조금 길게 잡았어요.”
“아아. 감사합니다.”
“넵. 화이팅입니다.”
“네.”
사소한 배려가 가득한 첫 솔로 음악 방송 출연이다.
“올라갈게요.”
“거기 조심하고. 넘어지지 마.”
“이쪽?”
“응.”
루치는 방송국 지리 따위는 잘 몰랐지만, 오랜 매니저 활동으로 꽤나 익숙했던 유성 형이 그를 잘 이끌어 주었다.
덕분에 꼴사납게 촬영장을 헷갈리는 일 따위는 없이, 그는 리허설이 진행될 무대를 미리 살필 수 있었다.
“오?”
무대 너비를 미리 살피고, 관객석과의 거리를 재는 등 주변을 보는데 루치의 눈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다소 작아 보이는 키와 마른 몸, 그리고 여리여리한 외모를 지닌 기타리스트.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 뭔가 익숙함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아, 세션 분이시구나. 반갑습니다.”
“네.”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남자는 그냥 인사를 받을 뿐, 딱히 반가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나는 너와 친해질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거리감이 심히 느껴지는 태도였다.
‘음……. 조금 마이 페이스 스타일인가?’
음악을 하다 보면 꽤 많이 보이는 타입이다.
일을 맡았으니 열심히는 하겠다만, 딱히 교류는 생각 없다 하는 부류.
루치는 굳이 그를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괜히 들이대면 서로 피곤하지.’
딱히 상대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데 친해지자고 밀어 댈 필요는 없다.
말을 들어 주지 않는 모습에 자신도 지치고, 싫다는데 계속 접근하는 행동에 상대도 지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유 모를 친근감 같은 것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상대가 거부하는데 굳이 다가서고 싶지는 않았다.
그 나름의 배려였다.
“아, 아, 아. 볼륨 먼저 봐도 될까요?”
루치는 우선 마이크를 붙잡고 소리를 확인했다.
적당히 체크를 하는 정도로는 무대 끝까지 딱 적당한 볼륨으로 소리가 전달되는지를 확인할 수 없어서, 그는 아예 반주 없이 노래를 불러 버렸다.
“오늘 이 하루가! 영원했으면 좋겠어! 당신과 내가, 끝까지 행복할 수 있도록! 오오오!”
오늘 방송 무대에서 선보일 김루치아노 인생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히트곡 좋은 하루가 넓게 울려 퍼졌다.
과연 방송국 음향 스태프는 다르다고 해야 할지, 소리는 금방 조율이 되었다.
볼륨, 이펙트, 마스터 사운드의 볼륨.
모든 것의 정비를 빠르게 끝마치고 그는 무대 아래로 내려가 대기실로 돌아갔다.
아니, 돌아가려 했다.
“저기요.”
“네?”
아까 그의 인사를 듣는 둥 마는 둥 밀어내던 그 기타리스트가 그를 붙잡기 전까지 말이다.
“저희 어디서 본 적 있어요?”
“네?”
루치는 대체 이게 뭔 소리인가 싶었다.
‘쌍팔년도 헌팅 멘트도 아니고…….’
어디서 본 적이 있냐니?
오늘 처음 만나서 무대 한 곡 하고 작별할 사람에게 갑자기?
루치는 이 사람이 대체 왜 이러는 것인가 싶어 고민했으나, 그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다.
“그 노래…….”
“네?”
“고등학교 때 들어 본 것 같아서……. 목소리가요.”
“아아?”
고등학교?
’잠깐, 설마 고등학교 동창인가? 아니면 선후배?’
학교는 몇 달 다니지 않고 때려치웠기에 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만, 혹시 노래를 들어 봐서 익숙할 수도 있다.
태양고등학교.
한창 부모님과 마찰을 빚으며 뛰쳐나왔던 곳이기에 루치에게 그리 좋은 추억 같은 건 없는 곳이다.
그러나 인연이 있는 사람인지 싶어, 그는 기타리스트에게 물었다.
“혹시 태양고…….”
“네.”
“아아아. 동문이었구나…….”
의외의 곳에서 의외의 인연을 만났다.
* * *
첫 방송 촬영을 마치고, 루치아노는 그곳에서 만난 세션 기타리스트 형재우와 술잔을 기울였다.
둘 다 술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었다.
루치는 목 건강을 위해 술을 마시지 않았고, 재우는 잘 마시지 못했다.
때문에 그냥 맥주 한 잔씩을 컵에 따라만 두고 음료수를 따로 시켜 마시고 있었지만, 흐르는 음악 이야기와 과거사에 대한 언급은 분위기에 취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야……. 그러면 채널 운영 계속하면서 세션 일만 하는 거야?”
“응.”
“작곡이나 앨범 같은 건?”
“솔로 앨범을 낸 적은 있음. 아니, 있어. 작곡은 따로 곡을 팔지는 않고.”
“아하.”
루치아노는 학생 시절에는 알지도 못했던 이 동문 친구가 마음에 들었다.
아니, 자퇴로 학창 시절을 마무리했으니 동문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지만, 아무튼 같은 공간을 공유했던 음악가를 만났다는 사실은 그에게 꽤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그런데 처음엔 그렇게 냉랭하다가 왜 갑자기 붙잡았어? 리허설할 때.”
“아.”
루치는 재우에게 아까 전부터 궁금했던 것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재우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그에게 답했다.
“노래 잘해서.”
“어?”
“노래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거든.”
“아아……. 하하하…….”
조금은 부끄러운 말이었고, 역시나 이상한 녀석이다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답변이었다.
‘대화할 자격을 갖추려거든 실력을 보여라, 뭐 그런 거야?’
생활도 음악이고, 직업도 음악이고, 취미도 음악이고, 인간관계마저도 음악이라니.
대단하다면 대단한 사람이었다.
“와, 그래도 태양고 나와서 음악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 보니까 되게 반갑고 그렇네. 난 중간에 그만둬서 잘 모르긴 하지만.”
“꽤 있음……. 있어. 베이스 치는 친구도 있고, 드럼 친구도 있고.”
“태호라는 친구가 있는데, 걔는 음악 그만두고 음반 가게를 하고 있어서 다들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했거든.”
“음악은 시작하는 것보다 그만두는 게 더 어렵지.”
“하하. 맞는 말이야.”
레이어즈 기타라는 채널을 운영하며 몇 차례 솔로 기타 앨범도 냈다는 이 재우라는 친구는 루치아노와 무슨 십년지기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 잘 통했다.
음악관도 잘 맞았고, 음악에 대한 지식도 넓고 깊었으며, 무엇보다 그 음악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꽤나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다.
“야. 루치…….”
“응.”
한참 이야기를 나누면서 음료수를 마시다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음료수로 배를 채우다가 맥주 한 모금 마시기를 반복하며 어느새 살짝 취한 재우가 루치에게 말했다.
“노래를 그렇게 잘하는데……. 밴드 다시 할 생각은 없음?”
“밴드라…….”
생각해 본 적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지금은 솔로로서 커리어를 이어 나가고 있지만, 엄연히 데뷔를 밴드로서 하기도 했고, 여러 사람이 한 밴드로 뭉쳐 음악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그 모습을 꽤나 동경하고 있는 루치였다.
망할, 망한, 망해야만 했던 옛 회사 탓에 그만두어야 했지만, 인디 밴드 시절 역시 그에게는 좋은 추억이 많았고 말이다.
“할 수 있으면 하고는 싶은데……. 나이가 나이라서 모집도 힘들고, 어느 정도 쿵짝 잘 맞는 멤버들을 모으는 것도 힘들고 하니까…….”
“내 친구들 한번 만나 보실?”
긴장이 풀려서인지, 어느새 정상적인 일상 말투에서 인터넷 채팅 어투로 문장을 바꾼 재우가 루치에게 제안했다.
“흠…….”
끌리는 얘기였다.
‘재우 이 친구도 꽤……, 아니, 정말 잘하는 기타리스트였고…….’
오늘 무대를 겪어 보니 이 재우라는 친구도 상당한 실력자였고, 그런 그가 자신 있게 들이미는 것을 보면 그 친구라는 사람들도 꽤 괜찮은 연주자가 아닐까 싶었다.
당장은 솔로 활동으로 조금 바빠서 밴드 활동에 집중할 여력이 없겠지만, 만나 보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루치에게 들었다.
“뭐, 그래. 지금 당장은 열심히 돌아다녀야 해서 좀 그런데…….”
“일단 만나 보기만 하고 밴드 결성은 나중에 결정하면 됨.”
“그러지 뭐.”
루치는 재우의 제안을 가볍게 수락하고 다시금 건배를 제안했다.
짠 하는 소리와 함께 청명한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다음 날.
“밴드. 하자.”
그는 재우가 주선한 멤버들과 함께 밴드를 결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