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21
20화
밴드의 첫걸음은 너튜브 채널 개설 및 운영으로 시작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던 차.
오프라인 무대를 통해 홍보 기회를 잡는 것은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직은 사람들이 너튜브의 망령이 되기 전이니까.’
지금도 많은 구독자 수를 보유하고 큰돈을 끌어모으는 채널들이야 꽤나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집에서,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직장에서 간편하게 스마트폰으로 찾아보는, 필요한 모든 정보와 꿀팁들이 넘쳐나는 그 미래의 너튜브와는 아직 큰 차이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이라도 뜨기 위한 발악은 필수인 것이 현실.
‘디딤돌을 밟고 시작하는 셈인데, 그러면 우리야 땡큐지.’
새벽 내내 채널을 검색하고, 온갖 장르의 팬들이 자신들을 만족시킬 콘텐츠를 찾아다닐 정도가 아닌 지금, 우리는 외부 홍보를 통해 초반부터 비약적인 성장을 꿈꿔야 했다.
채널을 개설한 후 재우의 레이어즈 기타 채널에 홍보 문구를 남기고, 합주 영상을 올리는 정도로 시작하려고 했는데, 버스킹 게스트 참여로 얼굴을 알리고 시작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아직 모인 지 얼마 되지 않은 너희들끼리 친목 강화도 하고, 협동력도 기르고. 괜찮지 않아?”
거기다가 실전 라이브로 호흡을 맞추는 연습을 겸하는 것은 덤이다.
여러모로 놓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나는 멤버들을 보며 말했다.
“나는 좋을 것 같은데, 너희는?”
“나도 좋음.”
“나도…….”
재우와 수현이는 쉽게 동의했고, 라희만 살짝 조심스럽게 의견을 보탰다.
“연습 삼아서 해 보는 건 찬성이긴 한데, 전부 모일 수 있는 시간인지, 페이는 어떻게 되는지 정도는 따져 봐야지.”
“아, 맞는 말이야.”
라희가 좋은 지적을 했다.
우리의 시선이 그대로 김하선 선생님에게 집중되었고, 그녀가 답했다.
“공연 예정일은 다음 주 금요일. 페이는 10만 원이야. 아마 현금으로.”
길면 15분 남짓 되는 파트타임치고는 꽤 큰돈이다.
그것도 우리가 아직 프로가 아닌 고등학생 아마추어 밴드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좋은 대우라고 볼 수 있다.
“어때?”
“금요일이면 좋아. 학원 핑계로 집에 늦게 들어가도 되고.”
“난 언제든 괜찮.”
“나, 나도…….”
끄덕.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럼 하는 걸로.”
“좋은 선택이야.”
우리의 의견이 모이고, 대답을 들은 김하선 선생님이 환하게 웃었다.
“흐흣, 흐흐흣……. 카메라부터 준비하고, 녹음도 퀄리티가 떨어지면 안 되니까 강 선생님한테 마이크 하나 빌리고…….”
아니.
환하게가 아니라 음침하게 웃었다.
‘저 선생님은 왜 저러는 거지?’
뭐, 어쨌든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시는 분이니 좋게 좋게 생각하는 게 좋을 것이다.
‘무슨 문제가 있으신가 보다.’
그녀는 우리와 다른 것이다.
결코 틀린 것이 아니다.
이해심을 넓게 가지기로 했다.
* * *
버스킹 공연의 게스트 자리를 맡기로 결정한 후, 우리는 다음 날부터 매일 모여 머리를 맞대고 세트 리스트를 만들었다.
“일단 연습할 시간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은 편이니까 우리가 맞추기 편한 노래로 가자.”
“그럼 Come to the black parade는 확정.”
“그렇지.”
우선 첫 곡은 분위기 살리기에도 좋고 이미 라이브를 통해 합을 맞춰 본 Come to the black parade로 골랐다.
편곡도 이미 해 두어서 공을 들일 필요가 크게 없을 테니 좋았다.
“그러면 첫 곡에 맞춰서 두 번째 곡도 조금 빠르고 격정적인 노래를 고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인정.”
수현이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고 재우가 동의했다.
그렇게 잠시 몇몇 곡을 입에 올렸다가 최종적으로 선택된 것은 The Stripes의 Don’t care about the devil.
멜로디컬하면서 묘하게 착한 가사가 특징인 메탈 노래다.
“두 곡으로 분위기는 확실히 띄우겠네.”
“아마도?”
“이거 카피하기 너무 좋다. 박자 맞추기 쉬운 흐름이야.”
“오. 축하해.”
모두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첫 곡의 분위기를 그대로 받아 이어 가기에도 좋고, 아직 인풋이 많이 부족한 라희가 커버하기에도 좋다.
“나름 락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이들 알기도 하고, 고음이 연속적으로 나오는 노래니까 호응도 기대할 수 있을 거야.”
“근데 소화 가능?”
“날 뭘로 보고. 당연히 되지.”
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세 번째 곡.
“마지막은 흐름 생각 없이 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때?”
“신나는 게 좋지 않겠음?”
“두 곡 땀 빼고 놀았으면 마지막에 식혀도 좋지. 나는 찬성.”
“아, 으으……. 응…….”
이번에는 직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어떤 노래를 부를지를 정하는 것에 꽤 많은 고민이 필요했기 때문인데, 아무래도 임팩트가 가장 크게 남는 마지막 곡이다 보니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했다.
기껏 쌓아 둔 좋은 분위기를 무너뜨리지는 않을지 고민되고, 밴드의 색이 잘 드러났으면 좋겠기도 하고, 연주하며 즐길 수 있는 좋은 노래라면 더욱 좋다.
그때 내 머릿속에 아이디어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옛날 노래 하나 조져 볼까?”
“옛날 노래?”
언제인지 그 시기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지만, 대강 이맘때쯤 복고 열풍에 힘입어 올드팝의 재해석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가수들 잔뜩 나와서 경연하는 프로그램도 많았고, 사람들이 옛 노래 발굴에 맛을 들이기 시작한 시점. 그게 지금쯤이었던 것 같아.’
짧게는 수년 전 반짝 인기를 끌었던 노래들부터 길게는 강점기나 전후 명곡들까지 대중들에게 새 모습을 선보이는 것이 좋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굳이 유행에 편승하는 것만을 무기로 삼고 싶지는 않지만, 시류를 잘 타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
꽤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았다.
“왜, 있잖아. 오디션 프로그램들 보면 주제 정해서 커버 무대 펼치고 투표 들어가고. 조금 시기를 앞으로 당겨 보는 거지.”
“흐응……. 괜찮을 것 같긴 한데…….”
애들은 약간은 현혹된 것 같지만 아직 확신을 갖기에는 모자란 듯했다.
“재우, 거기 기타 좀 줘 봐.”
“이거?”
“아니, 그거. 응, 까만 거.”
“카본이라고 하셈.”
“그래, 카본.”
나는 재우의 기타를 빌려 들었다.
“푸후우우우우……. 크흠!”
이미 여러 곡을 연속으로 부른 상태라 혹시 목이 부었는지, 혹은 가래가 끼지는 않았는지 폐에 숨을 한가득 모았다가 뱉어 보고,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후 코드를 잡았다.
디디디딩 디디디딩, 디디디딩 디디디딩…….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기타 줄을 뜯으며 코드를 연주했다.
패턴은 5313 1323, 혹은 4313 1323.
마이너 코드가 그윽하게 울린다.
그리고 전주 코드를 모두 쓸어 낸 후, 살짝 텀을 주었다가 타이밍을 맞춰 입을 열었다.
“부두의 아가씨가……. 눈물 흘린 옷자락은…….”
구슬픈 민요풍의 가락이 흐른다.
내가 부르는 노래는 1930년대 노래인 부두의 설움.
나라를 잃은 그 한과 서글픔을 노래하는 일제 강점기의 곡이다.
“이별의 설움인가, 부두의 눈물.”
슬픈 배경이 있는 노래다.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원한이라는 가사를 의도적으로 빼고 부른다거나, 독립국의 정체성을 잃은 현실을 보다 인간적인 이별을 나타내는 가사로 비유한다거나.
구성진 멜로디 라인에 비해 훨씬 슬프게 들리는 이유는 내재된 그 뜻에 의한 것일 것이다.
“후우우우…….”
첫 구절의 뒷부분만 따서 부른 후, 잠시 쉬고.
지이이이익!
제일 두꺼운 6번 줄을 쭈욱 당겨 거칠게 울리며 연주에 들어갔다.
두우웅! 딩딩딩딩!
멜로디를 받쳐 주기 위한 역할에 충실하던 기타 사운드를 조금 튀게 만들었다.
잡은 줄을 억지로 당겨 올려 비브라토를 넣고, 종전보다 강하게 뜯어 강렬하게 연주한다.
“깊은 밤 초승달은 흘러가는데…….”
발성은 목을 확 열어 두껍고 거칠면서도 슬프게.
이를 통해 한스럽고 원통한 마음을 표현한다.
겨우 이 정도 편곡만으로도 곡의 포인트가 확 변한다.
“와…….”
라희가 입을 열고 감상하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당연했다.
‘풍금 소리가 메인으로 깔리던 옛 노래를 현대적인 기법으로 재현하기만 해도 느낌이 꽤 많이 변하지.’
옛날 노래가 촌스럽게 들리는 것에는 큰 이유랄 것이 없다.
당시 흔히 사용하던 악기, 당시 많이 쓰이던 주법, 정석으로 받아들여지던 발성.
그것들이 보다 다양화되고 변화한 현대 음악과는 차이를 가지기 때문이지, 곡들이 애초에 촌스럽게 디자인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못 오는 당신이면 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뱉는 절개, 부두의 사랑…….”
마지막 부분은 다소 허무하게 흘렸다.
아직 완성된 편곡이 아니기도 하고, 내가 해석한 곡의 느낌은 기타 한 대에만 기대 표현하기에는 모자람이 있었으니까.
나는 대강 기타를 갈무리하고 애들에게 물었다.
“어때?”
“당장 하자.”
수현이가 눈을 반짝이며 성큼 다가왔다.
“첫 소절 넘어가고 쉰 부분. 심벌 한 번 크게 친 다음 기타 리프를 조금 찢어지게 넣으면 좋을 것 같고, 가사를 뒤로 넘기기보다는 차라리 그 느낌을 그대로 가져가서 첫 가사부터 다시 시작을…….”
갑자기 애가 무척이나 적극적으로 변한 느낌이다.
“어, 나 이거 본 적 있어.”
라희가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우리 집 뽀삐가 목줄만 보면 저래. 응. 진짜야.”
그 와중에 재우는 인상을 찌푸린 채 나를 노려보면서 자기 기타를 두들기고 있었다.
지이이잉!
“이건 아니고.”
디잉! 디이잉!
“이런 느낌.”
뭔가 내가 들려준 음악에 맞춰 자기 스스로를 조율하는 느낌.
그리고 수현이는 여전히 속사포처럼 자기가 짚은 편곡 포인트를 뱉어 댔다.
“한번 루프 한 다음에 베이스 솔로 들어가기에도 자리가 딱 맞고 좋을 것 같아. 그다음에는 가사 되풀이 말고 그냥 아웃트로를 쭉 뽑아서 샤우팅으로……. 잠깐만, 악보 그려서 보여 줄게. 이게 어떻게 되는 거냐면…….”
정신이 없었다.
짝! 짝!
“자, 집중 집중. 그래서 오케이라고?”
나는 손뼉을 쳐서 애들의 시선을 모으고 물었다.
세 명의 답변은 당연히.
“당연하지!”
“괜춘.”
“나도 좋아. 근데 드럼 소리는 가상 악기로 찍어서 들려줄 수 있을까? 악보로 보여 주면 내가 못 칠 것 같아서.”
“그거야 해 줄 수 있지.”
오케이였다.
“좋았어. 그러면 오늘 모임은 여기까지. 수현이는 집에 가서 따로 톡으로 얘기하자.”
“앗, 그래.”
밴드를 만든 날부터 사흘 연속으로 너무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었다.
아무리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날 때까지는 연습실 사용이 허가된다지만, 그런 팩트가 내 등짝을 부모님으로부터 보호해 주지는 않는다.
“그럼 여기서 해산.”
“수고, 수고.”
“수고.”
편곡은 나와 수현이가 맡아서 할 것이고, 가상 악기 프로그램을 이용해 악보를 만들면서 진행하는 것이 편하기에 원격으로 대화하며 진행하면 된다.
고로 오늘 모임은 여기까지.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우리는 각자의 짐을 챙겨 들고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연습실 이용 종료를 알린 후, 밖으로 나섰다.
“루치야.”
“응?”
그리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학교에서 나가려던 그때, 라희가 내 팔을 잡아 세웠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