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22
21화
우리는 재우와 수현이를 먼저 보내고 학교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았다.
라희는 내게 자신이 품고 있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모여서 같이 연주도 하고, 음악 얘기도 할 수 있어서 기분은 좋은데, 부모님한테 걸릴까 봐 무서워.”
정말 다행히도 심상치 않은 고백 따위는 아니었고, 당장 밴드 활동을 하는 것은 너무 좋은데 부모님께 자신의 전공과 진로에 대해 비밀로 하고 있다 보니 걱정이 된다는 얘기였다.
지금은 즐겁지만 혹여나 함께하기로 이미 약속했음에도 나중에 밴드를 그만두고 나가게 되는 것은 아닐지.
또 그로 인해, 아니면 그 이외의 상황에서 자신 때문에 우리가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은 아닐지.
그녀 나름은 심각한 고민이었다.
“너도 나랑 비슷한 상황이니까 털어놓기 편할 것 같아서.”
집안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음악을 하고 있는 재우, 친오빠부터가 인디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수현이와 달리 나 역시 라희처럼 집안에는 숨기고 밴드를 하는 형편이다.
그래서 속내를 미리 알리고 싶었다고.
“흠……. 그렇구나.”
“앞으로 우리 너튜브 채널도 운영할 거고, 당장 며칠 뒤면 버스킹 공연도 가야 되는데……. 혹시 누가 내 얼굴 알아보고 부모님께 알리기라도 하면…….”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나 역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귀중한 드럼님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 드릴 수는 없는데.’
쇠 보컬, 동 기타, 은 베이스, 금 드럼.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드러머를 구하는 것이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라희만큼의 음악적 재능이 있는 사람 역시 흔치 않다.
이렇게 보내 줄 수는 없다는 말이다.
“라희야.”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응?”
대답하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너 혹시 프로 레슬링 좋아하냐?”
“어……. 어?”
* * *
“라, 라희야……. 어……. 그건…….”
“님 그거 뭐임? 얼굴.”
대망의 버스킹 당일.
재우와 수현이가 당황한 모습으로 라희를 바라본다.
“아핫. 아하하핫……. 나를 블랙 더 드러머 타이거라고 불러다오.”
무슨 멕시코 프로 레슬러들이나 쓸 법한 검은색 타이거 마스크를 뒤집어쓴 그 모습이 조금 당황스럽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야 들킨다거나 하면 가출하면 그만인데, 라희는 그럴 수가 없으니까.’
최악의 경우 뒤가 없는 것처럼 행동해도 되는 나와는 이야기가 다르니, 차라리 애초부터 들킬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특단의 조치란, 얼굴을 모두 덮는 마스크로 정체를 완전히 숨기는 것!
“야, 근데 이거 숨쉬기 되게 불편해. 덥고, 답답하고.”
“참아.”
“아힉! 못 참겠어, 루치야! 나 벗으면 안 돼?”
“말도 좀 조심하고.”
“쳇.”
야리꾸리한 농담으로 대놓고 놀리려 드는 라희의 말을 가뿐히 무시하고, 나는 장비를 점검했다.
그러고는 다른 팀원들에게도 장비 관리의 중요성을 설파하려고 했다.
“아직 우리가 프로인 것도 아니니까, 서브 장비까지 잘 챙기고 다니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개인 장비 관리는 철저히 해야…….”
“나 서브 기타 들고 왔음.”
“나, 나도…….”
“난 어차피 거기 밴드가 쓰는 드럼 쓰면 돼.”
“아…….”
더러운 세상.
집안에서 지원 빵빵하게 받는 두 놈, 현실적으로 악기를 들고 다닐 수 없기에 정비가 필요 없는 한 놈.
세상은 불합리하다. 음.
‘내 친구는 너뿐이구나.’
나는 혼자서 재우가 빌려준 카본 기타와 커스텀 마이크를 정비해야 했다.
오늘따라 빤딱빤딱한 올블랙 마이크가 서글프게 예뻤다.
“짠! 준비는 잘들 했니?”
그때, 공원 구석에서 버스킹 공연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우리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당연히 이번 게스트 공연 기회를 물어다 주신 김하선 선생님이었다.
“당연하죠.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흐흐…….”
나는 지난 한 주의 강행군을 떠올렸다.
“부두의 설움은 원곡의 색을 최소한으로만 유지하고 모든 포지션에서 기교를 뽐낼 수 있는 방향으로 편곡해야 할 것 같아.”
“근데 그러면 이 노래를 선택한 이유가 흐려지지 않을까?”
“어쩔 수 없다고 봐. 게다가 올드팝을 선곡할 때는 그 감성을 살리는 게 중요하지, 다소 구식인 기술까지 그대로 가져갈 이유가 없기도 하고…….”
나와 수현이는 머리를 맞대고 편곡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
곡의 텐션을 떨어뜨리지는 않으면서 각기 포지션별 어필 포인트를 살리는 데에 최선을 다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바로 드럼 루프였다.
“라희가 소화하기는 편하게, 부족한 것을 감출 수 있게 만들어야 해.”
사실 요 며칠 봐 온 바로는 타고난 박자 감각과 재능으로 부족한 테크닉을 보완하는 라희에게 있어서 이런 식의 배려 따위는 별로 필요할 것 같지 않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눈에 보이는 부분도 소위 말하는 간지를 의식해야 했다.
스틱이 휘둘러지는 동선의 맵시가 너무 심하게 무너지면 보는 사람에게 있어서도 부담이 될 수 있고, 기분 나쁜 평가를 듣기도 쉬우니까.
“여기서 그대로 진행?”
“아니, 루프 돌리는 게 좋을 것 같아.”
“왜? 전조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평이하게 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찍어 줄게 들어 봐. 아무래도 변주 넣으면서 분위기가 싹 변하는 느낌이…….”
그렇게 수현이와 메신저를 통해 대화를 나누며 편곡을 진행했고, 우리는 거의 나흘 동안 한 곡에만 매달려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것으로 깨달은 건 수현이와 나의 작편곡 방향성이 상당히 다르다는 점과, 생각보다 그런 상반된 성향이 서로의 작업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잘 몰랐는데 내가 곡을 좀 안일하게 만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나도……. 현실이랑 동떨어진 시도를 자꾸 넣으려고 했어. 루치 너 아니었으면…….”
내 경우 검증된 방향성으로 분위기를 이끌려 하고, 수현이는 조금 더 다이내믹한 진행을 선호한다.
극단적인 말로 바꾸면, 나는 하나의 텐션을 끝까지 끌고 가기에 자칫하면 곡이 평이해진다는 위험을 품고 있고, 수현이는 연주자를 배려하지 못하거나 다소 실험적인 분위기에 청자가 지칠 수 있다는 위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뭐, 서로 쌤쌤인 걸로.”
“헤, 헤헤헤…….”
며칠째 새벽 작업을 진행하고 드디어 쉴 수 있게 된 수현이가 헤실헤실 웃었고, 우리는 겨우 편곡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세트 리스트가 확정된 다음 날부터는 연습에 연습의 반복.
본래는 차근차근 쌓아 올리려고 했는데 묘하게도 몇 년은 손발을 맞춰 본 팀처럼 합이 좋아서 순풍에 돛 단 듯 숙련도가 늘어났다.
“재우 방금 삑났다.”
“들었음. 지송.”
“라, 라희야……. 햇 소리 조금만…….”
“응? 줄일까?”
“응…….”
“오케이. 그런 거 있으면 금방금방 말해 줘. 듣고 기억해야 돼.”
“알았어…….”
Come to the black parade, Don’t care about the devil, 그리고 부두의 설움.
빠르게 격정적으로 달리는 두 곡에 이어 다소 우울한 선율을 가진 오래된 가락이다.
확 띄워 놨던 분위기가 죽을 수도 있는 배치였으나, 막상 연습을 진행해 보니 또 그렇지도 않았다.
“이게 의외로 괜찮네.”
“인정. 막곡이 확확 터지는 것도 있고, 암울하게 가는 부분도 있고 다채로워서 분위기 깨질 걱정은 안 해도 될 듯.”
파격적인 편곡에 힘입어 전혀 지루할 틈이 없는 라인업이 되었다.
오히려 걱정이랄 것은 우리가 너무 쩔어서 버스킹의 원래 주인공인 김하선 선생님의 후배분들이 묻히진 않을까 싶다는 점!
“기대하셔도 좋음.”
“오호……. 좋음. 기대하겠음!”
재우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선생님은 웃음을 빵 터뜨리고는 들고 온 커다란 카메라와 녹음 장비 따위를 설치하러 사라졌다.
“휴우우우……. 오케이! 너희도 조율이나 뭐 그런 거 다 끝났지?”
“이응.”
“이따가……. 연결하고 나서 사운드 체크만 조금…….”
“나는 뭐 있는 세팅 그대로 써야겠지. 볼륨은 힘 조절로 커버가 될는지 모르겠네. 흐힛.”
이제 점검은 모두 끝났다.
우리가 할 일은 조용히 팝콘이나 씹으면서 버스킹을 구경하는 것뿐.
“벌써 여섯 번째 공연인데, 오늘도 많은 분들이 보러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먼저 인사부터 올려야겠죠?”
재우가 가방에서 팝콘을 두 봉지 꺼내 넷이서 오물오물 나눠 먹고 있던 사이 공연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스트릿뮤지커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나는 중대한 사실을 깨달았다.
“얘들아.”
“응?”
“왜?”
나는 충격받은 표정을 지은 채로 애들에게 말했다.
“우리 밴드 이름 안 정했다.”
비상사태였다.
“헐.”
“어, 어? 그러게? 어라…….”
“엥? 진짜로?”
모두가 당황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생각해 보면 굉장히 멍청한 일이었다.
‘아니, 왜 생각을 못 했지?’
밴드의 이름이라 하면 그 밴드의 정체성, 지향점, 기원 따위를 읽어 낼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장치이다.
아무 의미 없는 이름처럼 보이는 이름이라면 자신들을 짧은 단어로 정의하길 거부하는 밴드라는 인식을 만들 수도 있다.
남의 이름이나 실제로 존재하는 개념에서 따왔다면 그것에 대해 존경을 표하는 밴드겠구나 하는 추측을 하게 만들 것이다.
또한 자신들을 나타내는 그 이름이 주는 무게감이 밴드 생활을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니, 사실 네 사람이 모여 팀을 꾸렸을 때 지었어야 맞는 것이었다.
“어……. 지금 정할까?”
어쩔 수 없다.
지금은 급조한 이름이라도 대고 이번 공연 넘긴 후 다시 이름을 짓든가 해야지, 이름 없이 태양고 학생 4인의 모임이라고 소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형재우와 아이들.”
“기각.”
“하, 학교 친구들?”
“너무 수수하지 않아?”
“마제스티지니어스충무공광개토밴드.”
“그건 또 뭔데?”
아이큐 100이 넘는 사람이 넷이라고 총합 400이 되지는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친구들의 작명 능력은 신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내가 해야만 해…….’
확 차오르는 부담감과 함께, 나는 어떻게든 머리를 굴려 이름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재우, 수현, 라희, 루치……. 형재우, 진수현, 지라희, 김루치……. 재, 수, 라, 루……. 형, 진, 지, 김……. 재수? 재수지김……, 재수 쥑임. 재수 죽임, 이런 느낌이라서 괜찮은 것 같은데?”
“느낌은 좋다. 조금 꼬아 봐.”
“재수지김, 운수 좋은 날?”
“오, 운수 좋은 날. 학생 냄새가 풋풋하게 풍기는 이름이야. 문학 시간에 졸지 않았구나.”
“그러면 럭키데이?”
“난 운수 좋은 날이 더 좋음.”
“운수 좋은 날이라고 하면 외국인들은 발음하기 힘들잖아. 나중에 해외 공연 가면 어떡해?”
“아, 인정.”
“벌써 해외 진출 생각이냐?”
일단 그럴싸하게 들리는 이름은 찾을 수 있었다.
수수하고 흔해 보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재우와 아이들, 학교 친구들, 마제스티 충무공……. 어쨌든 이상한 이름들보다는 훨씬 나았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몰랐다.
‘어차피 오늘만 쓰고 갈아 치울 거니까 대충 지어도 괜찮겠지.’
공연 직전에 쓸 이름이 없어 지은 이 밴드명을 얼마나 오래 짊어지고 가야 하는지를.
“얘들아. 슬슬 대기해야겠다.”
그때 김하선 선생님이 우리를 찾아와 말했다.
어느새 공연이 시작되고 시간이 꽤 지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