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23
22화
“으어……. 갑자기 떨린다.”
“나, 나도…….”
“나도.”
이제 무대에 설 생각을 하니 애들이 긴장한 듯, 한마디씩을 내뱉었다.
‘그래도 아직 고딩들이다, 이건가?’
촬영이라거나 같은 학생들 앞에서 하는 작은 규모의 연주는 거뜬하지만, 이렇게 불특정 다수 앞에서 라이브를 진행하는 것은 역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나는 그들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한테 박수를 쳐 주러 왔다는 거 아니야? 크……. 설렌다.”
“나, 나도…….”
“나도.”
‘음. 미친놈들.’
긴장의 떨림이 아니었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첫 공연인데 뭐 무섭다거나 긴장된다거나 그런 거 없어?”
“엥? 왜?”
“별로…….”
“내가 제일 잘하는데 왜 긴장을 함?”
“그래…….”
오히려 이렇게들 풀어져 있으니 내가 더욱 긴장될 정도.
참 어디서 이런 강심장들만 모아 왔는지, 그 밴드 프론트맨은 고생 좀 하겠다 싶었다.
“올라가서 인사랑 멘트는 누가 할래? 재우?”
“싫음.”
“왜?”
“말하는 거 별로임.”
“아니, 별로라는 건 또 뭐……. 아니, 됐다. 그럼 수현이는…….”
“이, 인사?”
덜덜덜덜덜덜덜덜.
“안 되겠구나, 라희…….”
“좋긴 한데, 타이거 마스크 쓴 꼴로? 드러머가? 진짜?”
“내가 할게. 그래.”
그 고생 좀 할 놈이 접니다.
사회성 바닥의 기타,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아 낼 자신은 있으면서 인사는 무서워 덜덜 떠는 베이스, 입장상 앞에 나서기는 꺼려지는 드럼.
어쩌겠는가?
‘이것이……. 업보의 맛…….’
씁쓸하지만 이런 녀석들인 것을 몰랐던 것도 아니고, 다 내가 자초한 일이다.
보컬이 밴드의 프론트맨을 맡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주도적으로 이 녀석들을 멤버로 끌어들인 것이 나이기도 하니까.
그래.
조별 과제 조장 정도는 맡아 줄 만도 했다.
“후우우……. 준비됐지?”
“이응.”
“으, 응…….”
“가자, 가자, 가자!”
우리는 손을 한데 모아 긴장을 풀어 주며 앞으로 나섰다.
버스킹을 진행하는 밴드 스트릿뮤지커의 보컬이 쉬는 시간이 되기 전 마지막 노래를 끝내고 시간을 잠깐 끌고 있는 사이 기타리스트가 다가와 김하선 선생님에게 말을 걸었다.
“하선 누님!”
“오, 김상열이 많이 늘었더라.”
“감사합니다. 여기 이 친구들이?”
“그래. 오늘 짧게 시간 메워 줄 럭키데이 친구들이야. 우리 학교 학생이고.”
“반가워요. 스트릿뮤지커 김상열이에요.”
“안녕하세요.”
나는 인사를 하는 그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비록 우리가 김하선 선생님을 통해 일감을 받아 온 고등학생 밴드이지만 같은 뮤지션으로서 존중을 해 주는 듯, 존댓말을 써 주는 것이 꽤 마음에 들었다.
“저, 그……. 학생……. 맞죠?”
아, 어쩌면 그냥 내가 겉늙어서일 수도 있겠다.
“네. 파릇파릇한 고1입니다.”
“아, 하하……. 그래요. 아무튼 오늘 공연 잘 부탁드릴게요. 원래 공연 맡아 주기로 했던 친구들이 갑자기 일이 생겼다고 해서 대타를 구했는데, 대타로 오기로 한 마술사가 병원에 실려 가 버려서 붕 떠 버렸지 뭐예요.”
얘기를 들어 보니 우리를 섭외하기 전에도 다른 대타 요원을 구했던 것 같다.
그런데 스트릿뮤지커와 그 마술사에게는 미안하게도 악재가 연이어 터졌다고.
‘뭐, 우리야 잘됐지.’
덕분에 원래라면 별난 장비도 없이 떠돌았어야 할 우리가 빵빵한 지원 받고 잘 만들어 둔 거리 무대에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분수에 맞지 않은 높은 페이는 덤이고 말이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넵, 파이팅!”
기타리스트 김상열과 짧은 대화를 마치고 잠깐 기다렸다.
잠시 후, 김상열이 관객과 마주하고 있던 보컬에게 신호를 받더니 우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나가라는 뜻이었다.
“가자.”
“이응.”
“고, 고!”
우리는 함께 준비된 공연 자리로 걸어가 악기를 세팅했다.
여전히 스트릿뮤지커의 보컬 아저씨가 시간을 끌고 있는 채였다.
“라희 햇 조금만 줄여 줘.”
“나 이거 드럼 맘대로 만져도 돼?”
“괜찮다더라.”
“오케이.”
“수현. 재우 볼륨 괜찮아? 네 소리 안 묻혀?”
“괜찮을 것 같아. 잠깐만, 재우야 이펙트 걸어서 한 번만 쳐 줄래?”
지이이잉!
“이 정도면 괜찮아.”
“오케이.”
사운드 체크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멤버들이 모두 귀가 예민한 편인지라 소리가 큰지 작은지, 튀는지 묻히는지쯤은 금방 잡아내는 편이었기에 어려운 점이 없었다.
그리고 스트릿뮤지커의 보컬, 이상만이 대충 준비가 끝난 것을 눈치챈 듯 진행을 멈추고 우리를 소개했다.
“자, 어느새 오늘의 버스킹도 중반부에 들어왔군요. 그 뜻은 뭐다? 지금까지 몇 곡이나 스트릿뮤지커의 음악만 듣느라 지친 여러분들께 게스트 소개해 드릴 차례다.”
“와아아아!”
그는 가수보다는 MC, 사회자 같은 능숙한 진행을 보여 주었다.
“그럼 오늘의 게스트! 첫 곡으로 바로 모시겠습니다!”
사전에 이야기를 나눈 대로 첫 곡은 소개 없이 진입했다.
끄덕.
대화는 필요 없었다.
나와 멤버들은 한 번씩 눈을 맞추고 바로 연주에 진입했다.
디잉! 딩! 딩! 딩…….
첫 곡은 얼마 전에 합주 수업에서 불렀던 Come to the black parade.
음울하게 시작해 화끈하게 끝나는 곡이니 분위기 띄우기에는 최적인 곡이다.
이 첫 노래가 끝날 때, 역시나 사람들의 반응은 우리의 예상대로.
“와…….”
“끝내주네.”
“멋지다!”
“노래 제목이 뭐라고?”
“Come to the black parade. 메커니컬 로맨스 노래.”
“크……. 밴드는 이런 맛이지. 스뮤랑은 색깔이 완전히 달라서 보는 맛이 있잖아?”
좋을 수밖에 없었다.
‘전에 학교에서 했던 것보다 훨씬 잘한 것 같은데?’
그간 연습을 진행하면서 원래도 좋았던 합이 더 잘 맞게 된 것은 물론이고, 쉬는 시간이 오기까지 호스트인 스트릿뮤지커가 비교적 잔잔한 노래를 불렀던 덕을 본 것도 있다.
“후우우…….”
첫 곡을 깔끔하게 마무리한 후, 관중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밴드 럭키데이입니다. 원래 현행 영어 표기법에 따르면 러키 데이라고 해야겠지만, 럭키, 러키. 기역 받침이 붙는 편이 더 찰진 것 같아요.”
하하하하.
아주 살짝 분위기를 풀어 줄 수 있는 멘트와 함께 천천히 말을 이었다.
소개와 대화. 너무 길어도, 짧아도 안 된다.
적당히 스트릿뮤지커가 편하게 쉴 시간을 벌면서도 우리 곡은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옛날 생각이 나네.’
나 역시 환생 전에 거리 공연을 다녔던 경험이 여럿 있다.
앨범을 내고, 회사에서 받아다 주는 공연을 뛰기 전까지지만, 굳이 말하자면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다.
“버스킹을 하다 보면 가끔 앞에서 통화하시는 분들도 있고, 거리가 텅 비어서 우리끼리 노래만 하다 가는 경우도 있는데, 오늘 무대는 여러분 반응이 너무 좋아서 저희도 연주할 기분이 나네요. 크……. 이런 공연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관객들과 소통하며 마음을 나누면서 동시에 스스로도 긴장을 푸는 과정.
꽤 익숙했다.
그리고 자연스러웠다.
“첫 곡은 Mechanical Romance의 Come to the black parade였습니다.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우리 밴드가 이 마음 그대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불러 봤는데, 어떻게 좋게 들렸을까 모르겠네요.”
첫 무대인 만큼 신경도 많이 썼고, 가능하면 관객들의 기억에 남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말한다.
아마 그대로 이뤄질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노래가 쩔었기 때문이다.
“오늘 세 곡을 준비했는데, 모두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노래 Don’t care about devil 들려드리겠습니다.”
와아아아아!
잘 알려진 노래를 부르면 이래서 편하다.
“와, 이거 어려운 노랜데.”
“나 김현호 콘서트에서 듣고 처음 듣는 거야.”
“부를 수 있을까?”
“첫 곡도 높은 노래라서 괜찮을 것 같긴 한데 노래가 워낙 초고음이라 불안하다.”
“잘하니까 골랐겠지. 일단 들어 보자.”
사람들의 기대감을 올리기가 수월하다.
어떤 노래인지를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기대하는 바가 명확해지는 것이다.
끄덕.
이번에도 시선을 맞춘 후, 연주를 개시했다.
챙! 챙! 챙! 챙!
라희가 심벌을 두들겨 진입 타이밍을 맞춰 주고, 재우의 기타와 수현이의 베이스가 거친 소리를 토해 낸다.
지이이잉! 둥둥 둥! 둥둥 둥!
묵직하면서도 시원시원한 메탈 사운드가 공원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인트로에서 빠지면 섭섭한…….
“워어어어……. 워어어어어어!”
아래서 쭉 잡아 끌어 올리는 듯한 3옥타브 솔#의 초고음 샤우팅.
“와아아아아!”
“미친!”
“와, 소름.”
스크래치 창법으로 거칠게, 그리고 날카롭게 긁어 내는 이 샤우팅은 듣는 사람의 속을 뻥 뚫어 줄 정도로 시원하다.
인트로에 들어서자마자 악을 질러도 나름 잘 어울린다는 점이 내가 이 노래를 즐겨 부르는 이유이기도 했다.
“Let’s talk about the devil! It’s not a friend of mine!(악마에 대해 얘기해 볼까? 그것은 내 친구가 아니야!)”
메탈이라는 장르의 노래치고는 너무나 착하고 신성한 가사를 힘 있게 눌러 발음한다.
기독교적 메시지를 표현하면서도 거칠고 빡센 노래의 그 언밸런스 한 시너지가 관객들을 압도했다.
“To run from it is the thing that we have in mind!(그것에게서 벗어나는 일을 우린 언제나 생각하지!)”
초고음의 노래가 그렇다.
듣는 사람도 절로 발을 구르고 고개를 까딱이게 되며, 부르는 사람 역시 가슴이 뻥 뚫리는 쾌감에 전율하게 된다.
“We have to make him know where he can be!(우리는 그에게 그가 있어야 할 곳을 알려 줘야 해!)”
두두두두두두 둥!
잠깐 뮤트가 걸린 상태로 드럼이 길을 만든다.
이에 맞추어 바람을 강하게 뿜어내며 성량을 늘려 후렴에 진입했다.
“Don’t care about the devil!(악마 따위는 신경 안 써!)”
여기서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 볼륨 조절인데, 공명을 높여 그 시원함은 배가하면서도 귀가 부담스러우면 안 된다.
스으윽.
입 앞에 위치했던 마이크를 살짝 내려 멀리 떨어뜨린 채 후렴을 이어 나갔다.
귀는 계속해서 민감한 상태를 유지해 소리를 확인하는 채였다.
“Don’t care about the devil!(악마 따위는 신경 안 써!)”
딱 알맞은 소리가 나오도록 위치를 조정하고 보니 어느새 마이크가 배꼽 바로 위까지 내려가 있었다.
“이야, 성량 미쳤다.”
“저러면 마이크에 소리가 들어가긴 해?”
“마이크 없어도 잘 들릴 것 같지 않냐? 하하하!”
“성량도 성량인데 노래 자체를 잘해. 프로네, 프로야.”
“럭키데이? 검색해도 안 나오는데 공연만 하는 애들인가?”
소리를 다루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본의 아니게 성량을 자랑하는 퍼포먼스가 되었다.
‘뭐, 다들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상관은 없었다.
“Don’t care about the devil! Devil! Devil!”
모두가 무대를 즐기고 있는 듯하니까.
“Deviiiiiilllllll!”
원 없이 목청껏 샤우팅을 내질렀다.
비강을 긁고, 성대를 바짝 붙이고, 바람을 힘차게 내뱉는다.
“캬아아아!”
“장난 아니네!”
“미쳤다, 진짜.”
시원한 고음에 사람들이 분위기를 타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겨우 이 정도로 만족하면 섭섭하다.
‘제일 힘들여서 준비한 다음 곡이 남아 있거든.’
마지막 곡의 임팩트를 더 키우기 위해 지금은 지를 때다.
지르고 달리고 열심히 불태운 뒤, 시원하게 한 방을 날릴 것이다.
그러니 나는 최선을 다하는 듯, 열심히 노래를 하면서 다음 곡의 감성 폭발을 위한 힘을 비축했다.
그리고 절정의 마지막 파트가 끝난 후, 나는 땀을 닦으며 목에 힘을 풀고 관객들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