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25
24화
‘저거 피넛버터 노래 아닌가?’
순간 익숙했던 노래의 멜로디의 출처가 퍼뜩 떠올랐다.
미래에서 상당한 대박을 터뜨렸던 아이돌 밴드, 피넛버터의 ‘주룩주룩’이라는 곡.
당시 국민 이별 노래로 꽤나 유행을 끌었던 만큼 모를 수가 없는 노래였다.
‘아니, 아닌가? 멜로디 라인이 조금 다르긴 한데……. 따란, 따라란……. 아니다. 아닌 게 아니야. 미세하게 차이가 있을 뿐, 같은 곡이 맞아.’
놀랍게도 스트릿뮤지커가 얼마 후에 공개될 신곡이라며 가지고 나온 노래, ‘눈물만’은 그 미래의 노래 ‘주룩주룩’과 너무나 흡사했다.
마치…….
‘보고 베끼기라도 한 것처럼.’
이렇게 비슷한 음악은 시장에 수도 없이 많다.
작곡가가 같은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니면 흔한 머니 코드를 따라 만들어졌을 수도 있으며, 가끔은 리메이크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합리적인 추측을 미리 하지 않는 이유는.
‘현태섭이었나? 그 사람 분명 토크쇼에 나와서 자기가 직접 작곡한 노래라고, 1위 해서 기쁘다고 열심히 떠들었는데……. 질릴 때까지.’
그 아이돌 밴드, 피넛버터의 리더이자 보컬이었던 사람이 음악방송 1위와 차트 1위를 기록하고 나서 어찌나 자랑을 해 대던지, 주룩주룩이란 노래를 들어 본 사람들 중 그것을 작곡한 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그냥 자기가 만든 곡이 처음 1위를 했으니 기쁜 마음을 주체할 수 없겠지 싶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뭔가 섬뜩함이 스쳐 지나간다.
“쌤, 혹시 상만 아저씨 작곡도 해요?”
“상만이? 하지. 지금 부른 노래도…….”
“아, 그……. 곡 만들어서 팔고, 뭐 그런 느낌으로다가요.”
나는 혹시 싶어 선생님에게 스트릿뮤지커의 작곡을 맡고 있는 상만 아저씨가 전문 작곡가로 일하고 있는지를 넌지시 물었다.
“아니? 내가 알기로 자기들 부를 노래만 조금 만들고 마는 정돈데? 왜? 곡 맡기려고?”
그럼 판매는 아니다.
결국 리메이크나 표절이라는 뜻인데, 자랑스럽게 자기 스스로 작곡을 했다고 떠들어 대던 걸 생각하면 리메이크는 아닐 성싶고…….
‘절도라고? 그게 되나?’
그렇다고 표절을 확신하기에는 일이 너무 성대하게, 대놓고 벌어진 느낌이라 쉬이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나쁘지 않지. 쟤네가 인기도 없고 실력도 어정쩡하고 뜨는 방법은 모르는 주제에 공연만 좋아해서 시간 아깝게 돌아다니는 애들이긴 한데, 곡 하나는 기가 막히게 뽑거든. 이따가 쟤네 노래 중에…….”
내 질문의 의도를 오해한 선생님은 좋은 선택이라며 스트릿뮤지커가 풍기는 음악의 분위기며, 상만 아저씨가 만들 수 있는 곡의 스펙트럼 따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만 내 정신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뭔가 꼬롬하기는 한데……. 파고들 가치가 있을까?’
의문은 새싹 자라듯 솟고 있지만 굳이 발을 들일 필요가 있나 싶었다.
‘굳이?’
깊게 관여할 필요를 의심하는 첫 번째 이유는 고작 고등학생일 뿐인 내 신분.
음악계에서 영향력이 큰 것도 아니고, 무슨 수를 쓸 수 있을 정도로 경력이 쌓인 것도 아니다.
괜히 벌집 쑤셨다가 낭패나 보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
혹여나 그들이 표절을 당해 곡을 뺏겼다 한들 내가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두 번째 이유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것.
‘곡을 파는 작곡가는 아니라고 했지만 혹시 몰라. 나중에 돈이 급해져서 넘겼을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전업 작곡가가 되었을 수도 있고…….’
괜히 알아본답시고 끼어들었다가 개망신을 당하는 것은 아닐지 염려되었다.
“후우! 오늘 분위기 죽이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사이 어느새 버스킹이 성황리에 종료되었고, 무대를 마치고 돌아온 스트릿뮤지커 아저씨들이 우리와 선생님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고생했다. 많이 늘었던데?”
“오, 누님! 아직 안 가고 있었어?”
“가긴 어딜 가? 우리 애들 페이 받아야지.”
“앗차차. 봉투만 준비해 놓고 주는 걸 잊어먹었구나. 미안, 학생들.”
“괜찮습니다. 액수만 정확하다면야……. 흐흐흐…….”
“이야, 이 친구 물건이네. 네가 리더지? 키 큰 거 보니 3학년이야?”
“1학년인데요?”
“앗, 아아. 좋은 거 많이 먹고 자랐구나. 응.”
역시 이번에도 빠지지 않는 키와 덩치에 관한 얘기.
청소년 시기 나를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는 말들이라 이젠 콤플렉스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음……. 4cm 정도만 더 작았으면 편했을 텐데.’
고등학교 1학년인 지금 신장이 189cm로 이미 성장이 모두 끝난 시기인데, 조금만 일찍 태어났으면 밤도 새고, 키 크는데 좋은 음식들을 멀리하며 조금 더 사이즈를 줄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사실 정말 그랬다면 성악을 위해 찌운 살을 감당하기 힘들었겠지만 말이다.
“상만아, 돈부터.”
“아, 맞아. 자, 친구들. 여기 당신들의 노고에 대한 보상이 있소이다!”
“와아아아.”
“와…….”
곧 선생님이 상만 아저씨의 옆구리를 쿡 찔렀고, 그가 정신을 차리고는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들었다.
다들 환호는 하는데 자리에서 꼼짝 않는 걸 보니 이것도 내가 받아야 되는 것 같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우리가 감사하지. 생각보다 훨씬 잘해 줘서 쉬고 왔는데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 있더라.”
나는 얇은 봉투를 챙겨 기타 가방에 넣었다.
총액 10만 원이니 2만 5천 원씩 분배를 하든, 회식을 하든, 상의해서 정하면 될 것이다.
“자, 자, 자. 공연도 성공적으로 끝났고, 회식이나 갈까? 한잔 고? 고?”
“좋……. 아니, 안 되겠다.”
“엥? 누님이 어쩐 일로?”
“애들 데리고 무슨 술이야, 인마.”
“아하. 이런.”
힘들게 버스킹 공연을 마친 후 광란의 알코올 파티를 벌이려던 그들의 계획은 고딩 넷에 의해 좌초되고 말았다.
“그래도 오늘같이 마이크 잡은 사이에 그냥 보낼 수도 없고. 밥이라도 먹자. 형이 쏜다.”
“와아아아!”
* * *
그렇게 술 대신 고기 뷔페로 향하게 된 스트릿뮤지커와 럭키데이, 그리고 그들의 보호자 한 명.
“오, 그러면 차라리 싸구려라도 레스 폴을 써라? 하이엔드 대신? 그렇게 이해해도 될까?”
“니은니은. 고성능 솔리드 기타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레스 폴이 있는데 굳이 SG를, 그것도 스탠더드를 큰돈 들여서 추가할 필요는…….”
“정말? 그럼 중간에 베이스 메인으로 넘어간 것도 네 아이디어야?”
“네, 네……. 아, 근데 원래 루치는 아예 솔로를 길게 먹자고 했는데 저는 차라리 곡 전체 분위기를 살리는 쪽의 편곡을 하는 쪽이 낫다고 했거든요? 두 버전을 다 찍어 보니까 제 쪽이 근소하게…….”
“삼대 몇?”
“저 운동 안 하는데요.”
“까비.”
그들은 기타는 기타와, 베이스는 베이스와, 드럼은 드럼과 앉아 서로 이야기를 꽃피웠다.
“어……. 근데 그 가면은 계속 쓰고 있을 거야?”
“움뇸……. 넹. 왜요?”
“어……, 아니야. 먹어, 먹어.”
가면은 안 벗냐고 묻는데 타이거 마스크를 코까지만 들어 올리고 그대로 고기를 섭취하는 라희의 모습만 빼면 평소에도 어울려 다닌 듯 자연스러운 광경이다.
‘가면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군.’
처음엔 정체를 숨기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뒤집어썼던 검은색 타이거 마스크에 제대로 꽂힌 듯했다.
“자, 자, 자. 거국적으로 한 잔!”
“어른은 맥주!”
“애들은 콜라!”
“짜아안!”
꽤 많은 인원수의 사람들이 잔을 마주 대고는 벌컥벌컥 마신다.
술을 마실 수 없는 미성년자들은 기분이라도 내기 위해 음료수를 잔에 채웠고, 나는 그 와중에 콜라 대신 물을 담아 마셨다.
“콜라 안 먹어도 돼?”
“아, 물이면 돼요.”
탄산음료는 위산 역류를 일으킬 수 있고, 이뇨 작용을 활발하게 하니 성대 점액질 분비의 방해물이 될 수도 있다.
혹시나 모를 부상을 막기 위한 조치다.
‘어……. 그러고 보니 커피도 끊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해 보니 카페인이 든 음료 역시 마찬가지.
앞으로는 커피나 에너지 드링크 같은 것들도 멀리하기로 마음먹었다.
“크으……. 아무튼 상만이. 그 계약 얘기나 다시 해 봐.”
“오, 맞아. 누님은 아직 우리의 파란만장한 항해 썰을 다 못 들었지?”
‘계약?’
김하선 선생님이 원샷 이후 대화의 포문을 열었고,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던 부분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나는 귀를 기울여 상만 아저씨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처음 콘택트가 들어왔을 때부터 차근차근 명함만 쌓아 두다가 아, 이제는 둥지를 틀고 돌아다닐 필요가 있겠구나 싶었지.”
“그 얘기는 이미 했고.”
“들어 봐. 그래서 너무 영세해서 아티스트를 보조할 여력이 없는 곳, 좋지 않은 소문이 도는 곳, 소속 아티스트를 제대로 케어하지 않는 곳을 골라내고 남은 곳이 두 곳이야.”
“CMYK랑 크림도넛이라고 했나?”
“응.”
‘어라?’
나는 뭔가 싸한 것을 느꼈다.
‘CMYK면 거기잖아?’
CMYK 엔터테인먼트.
유명 작곡가였던 안석호 대표가 설립한 연예 기획사로, 훗날 젤리건, 엔젤릭, 레드버드, 그리고 피넛버터라는 아이돌 그룹, 아이돌 밴드를 성공적으로 데뷔시키며 몸집을 불린 회사다.
피넛버터.
그 피넛버터를 만든 그 회사다.
‘이것 좀 봐?’
뭔가 깊고 구릿구릿한 향기의 뒷배경이 손에 잡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두 회사를 개인적으로 좀 알아보고, 각각 회사 측 인물들도 만나서 얘기를 좀 해 봤지. 근데 이게 또 아다리가 안 맞는 부분이 생긴 거야.”
“뭐가?”
“누나도 알다시피 우리가 라이브를 좀 좋아하잖아?”
“그치. 그래서 남들 다 나가는 EBC 한 번 안 나가고 라이브만 다니지.”
“그렇지. 그런데 얘기를 들어 보니 CMYK는 음악 축제부터 대학교 행사 섭외까지 신경을 많이 써 주겠다는 반면, 크림도넛 쪽에서는 일단 음반 출시가 시급하다는 걸 어필하더라고.”
그는 고민이 많았던 사정을 천천히 늘어놓았다.
“회사 규모는 비슷하긴 한데 분위기도 또 달라. 크림도넛은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 모여서 열심히 노는 느낌이고…….”
“CMYK는 전문 인력이 잘 깎고 다듬어서 시장에 내놓는 그런 회사지.”
“그렇지. 둘 다 건실하기는 한데, 우리가 원하는 도움이라는 건 또 CMYK처럼 뭔가 각이 딱 잡힌 그런 게 아닐까 싶었어.”
“그래서?”
“계약 얘기를 좀 해 봤지.”
그의 이야기는 이랬다.
CMYK와 크림도넛 사이에서 줄을 타다가 CMYK 쪽으로 마음이 조금 더 기운 상황.
일단 계약 관련 사항을 알기 위해 CMYK 쪽 인물을 만나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스카우트 팀장이라는 사람의 말이 바깥 사람이 듣기에는 조금 이상했다.
‘뭐야, 이게? 말이 돼?’
공정 불공정을 떠나 있을 수 없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계약서는 부담이 될 테니까 천천히 써도 되고, 녹음이랑 공연 같은 활동부터 미리 시작해도 된다고 하더라고. 당장 우리끼리 일을 진행하기엔 힘이 들 테니까 매니저랑 뭐 인력도 붙여 주겠다고.”
“흠?”
“사실 지금까지 버스킹이나 라이브 공연 무대에 서면서 계약도 그렇고, 이리저리 치이는 게 지치던 참이거든. 매니저가 절실하기는 했지. 그렇다고 우리 밴드 수준에서 일 맡아 줄 사람 찾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나는 그의 얘기를 끊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잠깐만요. 상만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