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26
25화
‘참견해? 말아? 참견해?’
오지랖을 부릴지 말지의 갈림길에 서 있던 상황이었다.
‘아, 이건 아니다.’
참견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더 정확히는 상황을 짚어 주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아저씨.”
나는 조용히 그를 불렀고, 그는 무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형.”
“네?”
“형이라고 불러. 형 아직 서른이라고.”
“원래 10대한테는 군대 다녀왔으면 전부 아저씨…….”
“스읍!”
“네, 형.”
형이라고 부르라는 상만 아저씨의 요구를 수용하고 말을 이었다. 물론 속으로는 계속 아저씨라고 부를 생각이지만.
“아무튼. 부담되면 계약서는 천천히 쓰고 일부터 해도 된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그런 게 어딨어요?”
“응? 그게 왜?”
내 지적에 상만 아저씨는 뭐가 문제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 정산 비율도, 계약금도, 계약 기간도 안 정한 상태인데 활동부터 시작하면 이득은 누가 보는데요?”
“응?”
“막말로 공연 열 번 뛰었는데 수수료라고 반 토막 친 돈만 덜렁 던져 주면서 우리는 계약한 관계도 아니고 너희는 단순 용역이다. 이러면?”
“어…….”
“힘들게 앨범 준비한다고 녹음까지 다 해 놨는데 저쪽이 빼돌려서 후루룩 처 잡숫고 자기가 만든 곡이라 우기면요?”
“에이……. 설마…….”
내 말을 듣고 기분이 이상했는지, 상만 아저씨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게. 뭔가 좀 그렇다? 계약 전에 활동 어쩌구 하는 얘기는 누가 꺼냈는데?”
“어……. 이야기 시작은 내가 하긴 했는데…….”
“네가 직접 계약하기 전에 활동부터 하겠다고 했어? 사람 붙여 달라고?”
“아니. 계약서 빼 들고 도장 찍자고 하니까 나는 당장 계약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했고…….”
“그러니까 그쪽이 먼저 꼬드겼다?”
“응……. 그 스카우트 팀장님이 내 얘기를 잘 들어 주다가, 길거리 공연이나 다니면서 돈은 많이 못 벌었겠다, 사람 구하기도 힘들겠다, 일정 관리는 잘되냐, 뭐 그러더니 우리 정도 인지도랑 벌이로는 당장 일 맡아 주는 사람 찾기도 힘들 테니까 자기들이 처리해 주겠다고…….”
얘기를 들어 보니 상만 아저씨가 바보인 것은 아니었다.
‘가스라이팅.’
처음부터 속이려고 마음을 먹고 왔든, 와서 보니 사람이 순수해 보이니 속이려는 의도를 갖게 되었든, 그 배경은 모르겠지만 결국 스카우트 팀장이라는 작자가 문제였다.
간섭하고, 깎아내리고, 의존도를 높이고, 이용해 먹는 행위.
‘교묘한 말솜씨로 스트릿뮤지커와 상만 아저씨의 격을 깎아 놓고, 같이 갈려 나간 상만이 형의 자존심을 밟아 빨아먹으려 했겠지.’
그는 우선 스트릿뮤지커의 가치를 잔뜩 폄하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먼저 명함을 건네고 콘택트를 시도한 쪽이 CMYK였다는 점에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길거리 버스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미리 알고 있었겠지? 그러니 버스킹 자체의 가치와 중요도를 깎아내렸을 테고.’
작게는 상만 아저씨 개인, 크게는 스트릿뮤지커와 그들이 사랑하는 버스킹 시장 전체를 싸잡아 끌어내렸을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돈도 못 버는 가치 없는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고, 그 일을 하는 자신 역시 무능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식이다.
“그 팀장은 몇 번이나 만났는데요?”
“서너 번 봤지……. 처음엔 그냥 얼굴 익힌다고 만나서 커피랑 밥이랑 얻어먹었고, 그다음엔 우리 공연 보러 온다고 해서 보고, 끝나고 얘기 좀 하고…….”
“그때도 막 돈 얼마나 버냐고, 버스킹 하지 말라고, 그런 식으로 얘기했어요?”
“어……. 생각해 보니 처음엔 아니었는데 언젠가부터 얘기가 그렇게 흐르긴 했어. 돈벌이 얘기부터 우리 인지도가 버스킹 때문에 안 올라간다는 양…….”
한 번으로는 역시 힘들다.
여러 차례 상만 아저씨의 마음을 확인하고,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흔들었을 것이다.
“그러게……. 난 왜 그런 제안이 우리한테 배려를 해 주는 거라고 생각했지?”
그나마 지금이라도 인지했으니 다행이다.
만일 그들의 마수에 완전히 빠진 이후였다면 이미 무기력이 그들의 마음속에 뿌리 깊이 박혀 반쯤 노예가 되었을 것이다.
밀접한 관계라고 생각했던 그것은 지속적으로 자존감을 깎아 내기 위한 족쇄고,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가해자들에 의해 부풀려진 사소한 실수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는 단계까지 나아갔겠지.
“됐어, 됐어. 너 당장 그 새끼 번호 지우고 계약 물러. 아니, 차단해. 잠수 타 버려.”
“그래야겠다. 근데 계약 안 한다고 언질 정도는…….”
“야! 사기꾼 새끼한테 나 도망치겠소, 하고 미리 알려 주려고?”
“아, 알았어.”
“혹시나 그 인간한테 연락 오면 누나한테 먼저 알려. 내가 주둥이를 그냥 갖다가 꿰어 버릴 테…….”
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것은 다시 말하지만, 상만 아저씨가 멍청한 탓이 아니다.
다만 대화의 당사자가 되면 홀린 듯 속아 넘어갈 법한 매끄러운 상황들이 옆에서 볼 때는 훨씬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게 말이 쉬워서 가스라이팅이고, 교묘한 협잡이지, 그렇게 직접 간파하고 판단하기 쉬운 짓거리라면 훗날에도 여러 유망한 음악가들이 악덕 소속사에 묶여 착취를 당했을 리가 없다.
‘어쨌든 상황은 명명백백하네.’
그럼 이 정황으로 따져 나는 모든 것들의 아귀가 딱 들어맞음을 알 수 있다.
‘애초부터 단물만 빨고 쳐 낼 생각이었어. 아저씨들의 음악적 능력을 꽁으로 이용한 후에 자기들이 준비하던 아이돌 밴드에 넘겨주려고.’
작곡도 잘하고, 주변 사람들한테도 시원시원하고 좋게 대하고, 무대 만드는 능력도 뛰어난 상만 아저씨다.
열심히 능력을 발휘해서 만든 모든 것을 빼앗겼으니, 후에 유명한 밴드가 되기는커녕 음악 그만두고 폐인이 되지나 않았으면 다행.
‘이러니 내가 스트릿뮤지커를 아예 몰랐지.’
이제 모든 진실이 드러났다.
‘눈물만’은 ‘주룩주룩’이 맞고, CMYK는 상종도 못 할 양아치 회사라는 것.
재능 있는 뮤지션들 ‘스트릿뮤지커’는 CMYK의 협잡에 당해 ‘피넛버터’에게 자신들의 업적을 모두 넘겨줄 수밖에 없었던 것.
아마 그들은 불공정한 계약으로 스트릿뮤지커의 단물을 쪽쪽 빨고는 그들이 만들어 둔 곡이며 실적들을 싹 긁어 남의 것인 양 포장했을 것이다.
그 수혜자가 바로 아이돌 밴드, 피넛버터였던 것.
아니, 혹시 몰랐다.
‘그럼 젤리건, 엔젤릭, 레드버드 같은 그룹도 그런 식으로 성장한 건가?’
스트릿뮤지커 이외에도 피해자가 더 있을지 몰랐다.
“아예 잠수부터 타고 그러면 찾아올지 몰라요. 일단은 그 스카우트 팀장에게 만나자고 약속 한번 잡았다가 약속 당일 급한 사정으로 못 나간다고, 다음에 연락드린다고 하시고 차단 걸어 버리세요.”
“오, 그거 좋다.”
“나름 복수도 겸하고 인연도 끊고.”
어차피 계약도 안 한 상태고 바로 끊어도 상관없을 테지만, 혹시나 끝이 안 좋을까 엿도 먹이고 비교적 부드럽게 멀어질 대안을 제시했다.
내 말이 그럴싸하게 들렸는지 상만 아저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겠노라 답했다.
“야, 우리 진짜 큰일 날 뻔했다.”
“후우우……. 그러게……. 내가 멍청해서 애들 인생까지 다 망칠 뻔했네.”
“아이고, 됐다, 됐어. 그런 것 가지고 뭘……. 속이려 한 놈들이 잘못한 거지 그게 왜 속을 뻔한 놈 잘못이냐? 그리고 나쁜 놈들 한번 잘못 만났다고 우리가 무너지기라도 했겠냐?”
무너졌겠지.
회귀 전의 나처럼.
처참하게.
“어쨌든 여기 루치 덕에 살았잖아. 그럼 된 거지. 사건 터지기 전에 막았으니까.”
“그래, 고맙다 루치야.”
기타리스트 김상열, 보컬 이상만을 필두로 스트릿뮤지커의 아저씨들이 내게 고개 숙여 인사하기 시작했다.
조금 부담스러워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이고……. 괜찮아요. 별것도 아닌데…….”
그냥 보고만 있기에 안쓰러워 입 좀 놀린 것이 무슨 큰 은혜라도 된다는 듯 대하는 것은 낯부끄러워서 싫다.
“그냥 돌부리 밟고 넘어졌는데 붕대 감아 줬다고 생각하시고 나중에 고기나 더 사 주세요.”
“암, 그래야지. 몇 번이고 사 줘야지.”
적당히 별것 아닌 듯 흘려넘기고 싶은데 은인 보듯이 보는 눈빛이다.
하긴, 지옥 입구까지 발을 들이밀었다가 빠져나온 기분일 테니 무리도 아니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니 능력 있는 아저씨들과 친분 한번 거하게 다졌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은 내가 쏜다!”
“고기 뷔페지만!”
“푸하하하! 젓가락 들어! 미친 듯이 먹어 보자고!”
어느새 침울함과 답답함을 벗어던지고 모두가 일이 잘 풀렸다고 좋아라 놀기 시작했다.
늦게까지 굽고 먹고 굽고 먹고.
공연으로 열기를 잔뜩 터뜨린 뒤이기도 하고, 금방까지 긴장된 분위기 아래서 모두가 속을 썩이며 머리를 굴렸던 차라 다들 뱃가죽이 등에 붙는 기분일 것이다.
불판이 뜨겁게 타오르고, 고기가 몇 번이나 올라간 지 모를 때쯤 우리는 만면에 웃음꽃을 피웠고.
“수, 술은 더 안 시키나요, 손님들?”
“앗 괜찮습니다. 하하하. 고기가 맛있네요!”
고기 뷔페 사장님의 턱 끝에는 눈물만 주룩주룩 흘렀다.
* * *
상만 아저씨 : 샘플 목록. 알려 준 메일로 보내 뒀어. 혹시 마음에 드는 게 없으면 말해. 새로 만들어서 보내 줄게.
상만 아저씨의 메시지가 휴대폰을 울렸다.
‘오, 왔다.’
스트릿뮤지커는 결국 CMYK와의 짧고 얇았던 연줄을 끊어 버리고 크림도넛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들은 내게 고맙다며 계속해서 보답을 하려 했고, 나중에 비싼 고기를 사 주겠다는 약속과 더불어 곡을 하나 만들어 주기로 했다.
‘음원 깡패 주룩주룩의 원곡자이신데 이만큼 믿음직할 수가 없지.’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안 받는 것도 예의가 아니기도 하고, 능력 있는 작곡가가 도움을 주겠다는데 내 처지에 그걸 거절하기도 좀 그랬다.
나는 상만 아저씨에게 이미 만들어 두고 쓰지 않는 멜로디 라인이 있다면 그거나 좀 보내 달라고 요청했고, 아저씨는 내게서 메일 주소를 받아 갔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안_쓰는_곡_모음.zip (45MB)]약 50개의 mp3 파일이 압축된 파일이다.
‘이게 다 뭐야…….’
입이 떡 벌어지는 작업량이다.
‘이걸 다 들어 볼 수는 있을까?’
아이디어 스케치 단계로 그 길이가 짧은 것들도 있지만, 탑 라인, 보조 선율 및 신디까지 모든 것들이 완비된 완성본 인스트루멘탈도 상당량 섞여 있었다.
이걸 다 들어 보고 하나만 고르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두려울 정도.
‘그래도 신경 써서 넘겨준 곡들이니 전부 확인하고 꿀꺽 삼키는 것이 도리겠지?’
그저 상만 선생님의 압도적 은혜에 감사할 뿐이었다.
“오케이, 가 보자고.”
나는 음원 파일들을 모두 핸드폰에 옮긴 후, 침대에 누워 이어폰을 꽂은 채 감상했다.
그리고 약 1시간 후.
“와, 씨. 이것도 상만 아저씨 노래였다고?”
나는 그저 충격에 빠져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CMYK가 아저씨들을 붙잡고 늘어진 이유를 알겠네. 완전 황금 고블린이잖아?”
나는 이 최고의 재능이 최악의 계약을 만나 낳았던 결과물이 다시는 세상에 모습을 비추지 못할 것에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