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28
27화
“그냥 럭키데이로 하기로 했어요.”
“엥? 그래?”
우리는 이전에 급하게 정했던 밴드 이름, 럭키데이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진짜 이것밖에 없어? 진짜로? 후회 없어?”
“이응.”
“으, 응…….”
“솔직히 더 좋은 걸 떠올릴 자신이 없다, 야.”
아이러니하게도 음악적인 재능과는 달리 작명 센스는 멸망 10초 전 수준인 우리 멤버들은 괜찮은 이름을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사실 럭키데이도 그렇게 나쁘진 않다.
귀에 쏙 들어오고, 입에 착 달라붙고, 먼 미래에는 어쩌면 해외 진출을 하더라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이름이니까.
‘급조해서 대충 지은 이름이라는 게 걸리기는 하지만……. 뭐 어때.’
대충대충 빨리빨리 졸속 행정이 생각나기는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것이니 그냥 안고 가기로 했다.
“그래, 뭐……. 사실 너희만 좋으면 무조건 오케이지. 럭키데이 괜찮긴 해. 무슨 말인지 알지?”
“네, 네.”
이렇게 밴드의 이름을 정식적으로 남에게 알리며 확정 지은 후, 나는 멤버들과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두 곡을 준비해야 하니까……. 다들 알지?”
“이응.”
“기성곡 하나, 오리지널 하나.”
“그렇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우리의 첫 오리지널 곡을 선보일 기회가.
“우선 오리지널은 지금까지 만지고 있던 가을의 향기를 써먹고 싶어. 어때?”
반쯤 강제로 밴드의 프론트맨이 되어 버린 나인지라,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도, 모두의 의견을 듣고 모으는 것도 내 역할이었다.
“괜찮.”
“나도.”
“대중성도 어느 정도 있는 노래기도 하고, 사실 그거 외에는 우리 곡이 없기도 하지. 하핫!”
“그건 그렇지. 그럼 거기에 더해 부를 기성곡은? 뭐가 좋을까?”
일단 대회에 나가 부를 두 곡의 노래 중 하나는 가을의 향기로 결정.
그리고 두 번째 노래를 고르기 위해 모두가 머리를 맞댔다.
“부두의 설움은?”
“가, 가을의 향기가 가사도 부드럽고, 대중적인 맛이 인상적인 락발라드라 난잡하고 화려한 부두의 설움은 안 어울릴 것 같아…….”
아쉽게도 우리가 연주했던 곡들 중 가장 반응이 좋았던, 그리고 각각의 매력을 보여 주기 쉬웠던 곡인 부두의 설움은 이미 레퍼토리로 확정된 창작곡 가을의 향기와 어울리지 않는다.
여러 곡을 줄창 부르는 무대였다면 거리를 띄워 서로 분위기에 간섭하지 못하게 배치를 할 수라도 있었겠지만, 단 두 곡이 필요한 자리이기에 아예 포기하는 쪽이 옳았다.
이후로 우리는 여러 노래들을 거론했고 갑론을박이 오고 갔다.
괜찮나 싶은 픽이 나오면 멤버 개개인이 각기 이유를 들어 쳐 내는 과정이 꽤나 길었다.
“집시 랩소디?”
“너무 길잖아. 그거 한 곡에 6분인가 되지 않아?”
“나, 나는 스윙 곡 같은 것도 우리 밴드의 테크닉을 보여 주기에는 좋을 것 같…….”
“스윙이라……. 흥미롭기는 한데 이미 골라 둔 0가을의 향기랑은 어울리지는 않는 장르 아닌가?”
“런 치킨 런?”
“그건 구림.”
“그 노래는 좀 아니야.”
“나, 나도 그건 좀…….”
“힝.”
그렇게 몇 시간 동안이나 설왕설래하던 와중, 재우가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님들 브릿팝 좋아함?”
“브릿팝?”
조금은 뜬금포였지만, 어떤 곡을 제시하려는지는 대충 감이 올 것 같았다.
“브, 브릿팝 좋아……. 그 특유의 정서도 좋고, 그 문화의 중흥을 필사적으로 노리고 있다는 분위기가…….”
“브릿팝? 영국 음악이야? 비틀?”
나와 수현이는 대강의 개요를 알고 있었지만, 라희는 아는 바가 적어 그게 뭔지부터 되물어야 했다.
“대충 그렇게 생각하면 됨. 영국 음악이라고 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잖음.”
“어……. 잘은 모르겠다.”
“좋아하는 영국 밴드 없음?”
“갤러거즈 정도?”
“그거면 됐음.”
라희는 자신이 들어 본 영국 밴드 중 가장 유명한 한 그룹을 골라 말했고, 재우가 끄덕였다.
사실 브릿팝이라는 그 용어 자체가 너무나 모호하다.
장르보다는 일종의 문화 현상, 문화 운동에 가깝다는 해석도 있고, 이미 하나의 장르로 고정된 것으로 인식되기도 하는 개념이다 보니 명확하게 이거라는 설명이 귀찮아진다.
그래서 우리는 라희에게 깊게 설명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음악을 계속해서 듣다 보면 대충 알게 되니까.
“잉.”
“그 갤러거즈 노래 중에 Don’t be angry 하자고 하려 그랬음.”
“아, 나 그 노래 알아!”
굉장히 유명한 노래였기에 라희도 손뼉을 짝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브릿팝의 정수.
90년대 영국 락 장르의 선두 주자이자 대표인 갤러거즈의 킬러 트랙 중 하나.
“돈 비 앵그리 투 머치, 아이 헐드 유 세드!”
“맞음. 그 노래.”
“Don’t be angry라…….”
뜻밖의 선곡에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이런 선곡은 분배된 레퍼토리의 전체적인 분위기, 연주의 완성도, 관객들의 호응 계산 따위보다 훨씬 무겁게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이걸 불러도 잡아먹히지 않을 수 있을까?’
남의 곡을 부르는 게 이래서 무섭다.
원곡이 유명하면 유명할수록, 원곡자가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비교가 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설령 내 식대로 잘 소화해도 원곡과 다른 해석이나 분위기에 반감을 느낀 청자는 그것을 거부하기도 한다.
“확실히 앞뒤로 분위기가 연결되고 통일된 느낌이 있어서 좋기는 한데…….”
나는 잠깐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 보았다.
곡의 난이도라거나 유명세 같은 불안 요소는 잠시 접어 두고 그냥 어울리는지만.
‘앞에 처음부터 끝까지 부드럽고 서정적인 Don’t be angry를 부르고 뒤에 부드럽다가 확 터지는 고음이 있는 가을의 향기를 부르면……. 아니, 두 곡의 일체감보다는 터지는 느낌에 집중하자면 Don’t be angry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부르는 것도…….’
의외로 그림 자체는 좋았다.
“좋기는 한데…….”
“어려움?”
“그렇지, 아무래도?”
나는 조심스럽게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재우가 내게 말했다.
“부두의 설움이나 Stair to heaven은 쉬웠음?”
“어?”
꽤 정곡을 찌르는 지적이었다.
“그러게…….”
얼마 전 버스킹에서 불렀던 부두의 설움, 그리고 재우와 처음 만나서 부르고 재촬영까지 해서 너튜브 채널에 올렸던 Stair to heaven.
둘 모두 명곡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는 노래들이다.
‘내가 너무 겁을 먹었나?’
아무래도 넷이 밴드로 나가 남의 평가를 받고 상을 분배하는 대회에 임한다는 생각 탓에 괜히 겁을 집어먹은 것 같다.
이런 태도는 락스타에게 어울리지 않지.
“그래. 지르자.”
기타 잘 치고, 베이스 끝내주고, 드럼 대단하다.
나 역시 어디 가서 노래 못한다는 소리는 듣지 않는다.
우리 밴드는 훌륭하다.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나도 Don’t be angry 좋아. 괜찮을 것 같아.”
“나도 찬성!”
내 뒤를 이어 수현이와 라희도 찬성 의견을 표했고, 만장일치로 기성곡 한 자리는 Don’t be angry로 확정되었다.
우리는 경연에 써먹을 레퍼토리가 정해지자마자 제대로 된 디테일 구축에 돌입했다.
“오케이, Don’t be angry랑 가을의 향기로 결정. 아, 개인적인 의견인데, Don’t be angry는 원곡보다 어쿠스틱 편곡 버전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오옹, 어쿠스틱……. 그러면 드럼도 수작을 조금 부려야 할 것 같은데?”
“수작?”
“응. 재우, 거기 가방 좀!”
라희가 재우에게 손짓해 자신의 가방을 받았다.
그리고 잠시 뒤적거리더니 두 개의 물건을 꺼냈다.
차라락! 촤륵!
“탬버린?”
“셰이커?”
탬버린과 셰이커.
흔들어 소리를 내는 작은 타악기 두 개였다.
“그건 갑자기 왜?”
“어쿠스틱으로 간다며?”
“어, 그렇지.”
“음악 틀어 봐. 이건 들어 봐야 알아.”
“쌤이 틀어 줄게!”
라희가 오른손엔 탬버린, 왼손에는 길쭉한 셰이커를 나눠 들고 음악을 요구했다.
이에 김하선 선생님이 자신의 핸드폰을 스피커에 연결해 Don’t be angry를 찾아 재생했다.
단 단 단 단 단 단 단 단…….
익숙한 신디사이저 전주가 흐르고, 라희가 부드럽게 음악에 편승했다.
차륵, 차륵, 딱, 차라라락. 차륵, 차륵, 차라라락!
탬버린을 두 번 흔들고, 세 번째 박자에서 셰이커로 탬버린을 살짝 두들겨 드럼 연주였다면 스네어가 들어갈 자리에 리듬을 묶는다.
“오?”
“흠.”
“와아…….”
꽤 독특한 맛이다.
전주부터 쭉 끌어오는 그 박자가 탬버린이 흔들리고 두들겨지는 표현 방법이 섞이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유지되는데, 이게 타악기 주제에 부드럽고 따뜻하다.
차륵, 차륵, 차륵, 차륵, 촤르르르륵…….
후렴 돌입 직전에는 양손의 리듬 악기 둘을 촤르르 떨어 주면서 천천히 소리를 줄이는데, 그게 참 아련하면서도 이후 나올 노래에 집중하기 좋은 분위기를 잘 만들어 준다.
“And so she must wait. She knows it is late…….(그래, 그녀는 기다려야 해.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지만…….)”
자연스럽다.
원곡이 크게 들리는 와중 거기에 탬버린과 셰이커 흔드는 소리만 입혔을 뿐인데 이렇게 분위기가 묘해지는 것이 참 신기했다.
“허, 참…….”
나는 새삼 그녀의 재능에 감탄했다.
“이제 편곡할 때 특별히 배려해 줄 필요 없겠는데?”
“그, 그러게…….”
나와 수현이는 소리가 묻히지 않도록 조심히 말했다.
과하게 어지러운 테크닉이나 편곡 의도 해석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연결이 힘든 리듬 구성 등을 지금까지 의식적으로 회피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얼마 안 있으면 어지간한 프로는 양쪽 뺨을 후려치고 남은 한 대는 다음에 때리겠다고 킵 해 놔도 되겠어.”
그녀의 성장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빨랐기 때문이다.
‘라희가 기본기가 모자란 거지, 박자 감각이야 원래 특출났다지만…….’
원래 기본적인 피지컬과 재능을 타고났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작 몇 주 만에 이렇게 곡 해석 능력과 표현법 개발에 익숙해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물론 드럼과 달리 탬버린과 셰이커는 그냥 들고 흔들면 되는 비교적 작은 악기이긴 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주법, 테크닉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떤 소리를 내야 어떤 뉘앙스가 만들어지는지, 어떻게 흔들어야 어떤 소리가 나는지 따위가 수학 공식처럼 만들어져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라희는 우리에게는 연주하는 모습을 처음 보여 주는 두 악기를 손발처럼 다루면서 완벽하게 리듬을 만들고 있었다.
“히야…….”
천재가 왜 천재인지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어때? 어때? 괜찮지?”
1절이 끝나고 후렴까지 연주를 마치고 활짝 웃으며 물어오는 라희의 모습이 매우 상큼해 보였다.
“괜찮냐니.”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수현이에게 말했다.
“탬버린, 셰이커에 맞춰서 편곡 진행하자.”
“응.”
이건 대박이 나지 않을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오우 예!”
자신의 제안이 먹혔다는 것에 기뻐하며 라희가 만세를 불렀다.
“원곡 코드나 구성은 뒤집을 필요 없고, 쭉 유지하면서 조금 단순화시켜 보자.”
“수수하게?”
“수수하기보다는 부드럽게. 기타 솔로를 뺀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사이사이 쉬는 공간을 만든다는 느낌이지. 그저 수수하고 밋밋하게만 가면 너랑 재우는 지루해서 죽을걸?”
“그건 그래……. 그러면 세컨드 기타만 어쿠스틱으로 바꾸고, 나랑 재우는 쓰던 걸로…….”
우리 밴드의 편곡조, 수현이와 내가 대화를 나누며 편곡 방향을 정하기 시작하는데…….
“님, 님.”
재우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응?”
그가 내게 빌려준 까만 풀 카본 바디 기타를 가리키며 말했다.
“님 그거 계속 쓸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