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29
28화
자신이 빌려준 기타를 가리키며 계속 그것을 쓸 거냐고 묻는 재우.
‘어……. 그러고 보니 너무 오래 빌리긴 했지?’
생각해 보니 빌려 쓰는 주제에 너무 오래 붙들고 있었다.
소정의 대여료라도 지불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내가 기타가 없어서 혹시 괜찮으면 조금 더 빌려도…….”
“그건 앎. 내 말은 그거 계속 쓸 거냐는 거. 다른 거 필요 없음?”
“응?”
그런데 돌아오는 말이 이상했다.
“카본 말고 다른 거.”
알고 보니 카본 재질 기타를 고집할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어……. 음…….”
“앰프에 연결해서 쓰니까 소리가 내뻗지 않는 건 상관없긴 한데, 조금 제한적이지 않음?”
“아하.”
재우는 전부터 자기 개성이 강한 카본 기타 외에 다른 악기를 빌려줘야 하나 고민해 왔다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난 카본 좋아.”
“왜?”
“내 기타 솜씨가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잖아?”
“이응.”
“실력이 떨어지니까 환경에 따라 일정한 소리를 만들어 내기도 힘들고, 기본적으로 우리가 하는 음악이 전자 장비를 쓰는 락 음악이니까 카본 재질 기타가 가진 소리가 뻗지 않는다는 단점도 상쇄되고.”
“이응.”
“그런 점에서 따로 관리를 안 해도 언제 어디서 연주하든 일정한 퍼포먼스를 만들어 주는 카본 기타는 무안단물이나 마찬가지지.”
재우에게 내가 카본 기타를 좋아하는 이유를 말해 주었다.
카본 재질 기타의 특징이라면 내구도가 매우 뛰어나고 관리가 힘들지 않다는 점, 어떤 상황에서 두드려도 항상 일정한 소리가 뽑힌다는 점, 그리고 특유의 몽환적인 음색 정도가 있다.
이 몽환적인 음색이란, 사람에 따라 뭉개지는 소리로도 들릴 수 있기에 장점이라기보다는 개성에 가깝다지만, 항상 같은 퀄리티의 소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 맞다.
특히나 나처럼 소리 조절이라거나 세심한 연주 테크닉 관리 따위는 할 수 없는 B급 연주자라면 더더욱 말이다.
‘목재도 좋긴 하지. 근데 관리가 귀찮다고. 어디 숨겨 놓고 써야 하는 형편에 그런 건 사치지.’
물론 관리에 큰 힘을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무한한 플러스 점수를 주기도 했다.
사정상 개인 장비를 보유하고 있을 수가 없기에 사용이 용이한 것을 더 좋아할 수밖에.
“오키. 그럼 새 기타 가져다줌. 카본으로.”
“응?”
나의 말을 들은 재우가 말했고, 나는 의문을 품었다.
“이것도 좋은데? 굳이?”
재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했다.
“다른 거 있음. 커스텀. 그게 훨씬 좋음. 줄도 니켈로 갈아야 함.”
“니켈?”
“이응. 지금 건 크롬임. 장식용으로 두던 거라서 아무거나 끼워 둔 건데, 소리가 너무 부드러움. 전부터 좀 거슬렸음.”
그의 말에 의하면 전부터 재즈 음악에 많이 쓰이는 크롬 스트링을 달아 두어 소리가 조금씩 쳐지거나 과하게 부드러운 것이 마음에 걸렸다고.
그래도 밴드 사운드가 완전히 어긋나는 건 아니고 자신의 취향에서 조금 뒤틀리는 것일 뿐이기에 그냥 두고 있었는데, 오늘 가을의 향기와 Don’t be angry 두 곡을 정한 후, 확실히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다.
“어……. 그래. 알았어. 고마워.”
악기에 대해 그렇게 밝은 편은 아니지만, 스트링 재질이며 굵기 등에 따라 소리의 특색이 달라진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전문가인 재우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넘겨주셈.”
“어.”
재우는 내게 빌려줬던 기타를 회수하고 내일 새 기타를 가져다주기로 약속했다.
집에는 내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숨기고 있는 형편인지라 나만의 장비를 보유할 수가 없는데, 그 사정을 이해해 주고 도움까지 주는 친구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재우, 재우. 저것도 비싼 기타 아니야? 더 좋은 기타가 있어?”
그때, 가만히 앉아서 탬버린에 달린 징글을 손가락으로 굴리고 있던 라희가 그것을 툭 놓으며 재우에게 물었다.
그러자 재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응. 많음.”
“오오? 얼마나?”
“모름. 되게 많음.”
‘되게 많다고?’
그 얘기를 들으니 나도 마침 궁금해졌다.
“내가 알기로 이 맥맨 기타도 가격대가 꽤 나갈 텐데…….”
“이응. 외국 거라 바가지 좀 쓴다고 치고 사면 400 정도 된다고 했음.”
“이것보다 좋은 걸 빌려준다고?”
“이응. 커스텀 되게 비쌈. 비싼 만큼 좋음. 개쩜.”
그는 내 물음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돈 400이 애 이름도 아니고…….’
그런 재우 탓에 내 경제관념까지 이상해지는 기분이다.
내 표정이 이상해 보였는지 그가 말을 이었다.
“내 건 아니고 아빠 거임. 아빠가 악기 좋아해서 집에 많이 모아 둠.”
“아버지? 기타 마니아셔?”
“기타도 좋아하고 바이올린 그런 것도 좋아하심. 집에 엄청 많음. 비싼 것도 있고, 구하기 힘든 한정판도 있고. 악기 회사 사장님이라서 그런가?”
그런데 그 말이 또 심상치 않다.
“악기 회사?”
뭔가 현금 냄새 물씬 풍기는 익숙하면서도 익숙지 않은 단어.
분명 부모님의 직업을 묻는 일이 어떤 의미로는 상당히 무례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흔치 않은 악기 마니아시라니 그 정체가 매우 궁금해졌고, 재우라는 특출난 연주자의 배경도 알고 싶은 마음에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어딘데?”
“우영 뮤직. 들어 봄?”
그리고 굉장히 놀라운 답변이 돌아왔다.
“헐? 우영? 피아노, 기타 만드는 그 우영?”
“이응.”
우영 뮤직. 옛날 사명은 우영 악기.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악기 제조사로, 피아노와 기타 등의 악기를 생산하는 회사였다.
한국 본사인 우영 뮤직에서는 중저가형 모델들을 양산하며, 한국 자본으로 인수한 해외의 네임드 브랜드들에서는 잘 알려진 명품 악기들도 만든다.
양산형 중저가 모델들은 최고의 가성비로 세계 연주자들의 첫 기타, 첫 피아노로 이름이 높고, 브랜드 고가형 악기들은 훌륭한 퀄리티로 유명했다.
“아니, 그럼 재우가 우영 뮤직 아들내미라는 거야?”
“이응.”
“와! 그럼 나중에 사장님 되는 거고?”
“그건 모름. 난 관심 없으니까 동생이 하겠지. 참고로 동생 이름은 재영이임. 회사 이름에서 따왔음.”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뜬 채 물어보는 라희에게 재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어쩐지…….’
시설 좋고 쾌적한 환경의 스튜디오부터, 학생 신분에는 어울리지 않는 고가의 장비들까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상상 이상으로 상당한 금수저였다.
“허……. 대박이네.”
이러면 그의 재능이나 음악에 대한 열의도 이해가 간다.
어릴 때부터 거의 숨 쉬듯 음악을 접해 왔을 것이고, 악기를 만질 기회도 많았을 테니 자연스럽게 기타를 가지고 놀며 실력을 쌓을 수 있었겠지.
참으로 부러운 환경이었다.
“암튼 기타 다른 거로 바꿔 드림. 오키?”
“어, 그래. 고마워.”
“고맙다는 말은 한 번만 하셈.”
“그래.”
물론 부럽다고는 해도 그게 거리감이 느껴진다거나 하는 방향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우리 집도 못 사는 편은 아니고, 수현이랑 라희도 꽤 좋은 집 애들인 것 같으니…….’
나름 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성악가 두 분 밑에서 자라며 유복한 생활을 했던 나.
자기 스스로는 티를 내지 않으려는 것 같기는 하지만 사용 중인 최신 스마트폰, 브랜드 신발, 그리고 500만 원을 호가하는 베이스 기타로 재력 유추가 가능한 수현이.
그리고 돈 많이 들기로 유명한 무용, 바이올린 같은 종목의 교육을 어릴 때부터 받아 온 라희까지.
어째 예사롭지 않은 학생들만 모여 있는 밴드가 되었다.
물론 7년 후의 나는 재벌이 되어 있을 테니 만약 내가 길거리에 나앉게 되더라도 어색할 일은 없고 말이다.
“그래서 연습 더 안 함?”
“두, 두어 번만 맞춰 보고 편곡 지점 잡으면 될 것 같은데…….”
“그럼 어서 일어서! 늦었으니까 빨리빨리 하자 거북이들!”
아무튼 그건 그거고, 다시금 연습벌레들 연습 욕구에 불이 붙었다.
우리는 두 번이라고 쓰고 만족할 때까지라고 읽는 연습을 계속했다.
‘이젠 좀 익숙한 느낌인데…….’
그리고 우리가 한참 얘기하는 동안 끼어들지 않고 기다리다가 연습까지 구경하는 김하선 선생님이 코피를 줄줄 흘리는 것은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 * *
길고 긴 연습을 끝마치고 우리는 학교에서 나왔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용!”
연습을 지켜보시고는 벌게진 얼굴로 코피를 닦는 김하선 선생이 음료수도 사 줬겠다, 아주 후련하게 해산할 수 있었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감사하지…….”
영문 모를 소리를 하며 카드를 지갑에 넣는 선생님의 얼굴은 경건해 보이기까지 했다.
‘정말 중증이시구나…….’
마니아 기질도 저만하면 병이다.
음악 전공자에 현직 음악 과목 교사이니만큼 좋은 음악, 잘하는 밴드를 접할 기회는 꽤 많았을 텐데 겨우 고등학생 밴드 모임인 우리를 이렇게 아껴 주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뭐, 세상은 넓고 변태는 많으니 그러려니 했다.
“아, 수현아. 아까 적었던 편집 포인트 좀…….”
“메신저로 공유해 줄게.”
“땡큐. 이따가 아까 말한 부분만 찍어서 보내 볼게.”
“응.”
편곡은 평소처럼 나와 수현이가 따로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며 진행하기로 하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
‘중간 부분 기타 솔로를 최대한 끈적끈적하게 다듬어 볼까?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곡을 어떻게 만지작거릴지 여러 생각이 떠오르며 머리가 팽팽 돌았다.
어서 집에 가서 가방을 집어 던지고, 가상 악기로 방금 떠올린 모든 아이디어들을 직접 검증해 볼 생각이 가득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현관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가로막혔다.
“요즘 나쁜 친구들이라도 만나니?”
“예?”
너무 잦아진 늦은 귀가 탓에 어머니께서 벼르고 벼르다 나를 붙잡은 것이다.
“아니, 이상하잖아. 일찍 일찍 다니던 애가 밤 열한 시가 되어서야 돌아오지를 않나, 심부름을 보내 놨더니 한참 지나서 동네 마트 빵을 사 오질 않나. 혹시 담배 태우니?”
“예?”
담배는 예전에도 지금도 태우지 않는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리고 지난번에는 밤늦게까지 친구랑 전화 통화나 하고.”
아마 새벽에 수현이와 대화하며 편곡 얘기를 한 것을 들으신 모양이다.
“레슨은 제대로 받고 있는 거야? 집에서 연습하는 꼴을 못 봐, 요즘.”
안 받고 있다.
밴드 실습이나 기초 발성 같은 강의를 학교에서 듣기는 한다만, 실용음악 수업이라 밝힐 수도 없다.
‘어, 어쩌지…….’
나는 덫에 걸린 생쥐처럼 굳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혹시나 짧은 생각으로 잘못 입을 열었다간 내가 하라는 성악은 안 하고 딴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들통날 테니 쉽게 답을 내놓을 수가 없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위기 상황이다.
끼이익.
“잉? 뭐 해?”
그런 나를 구해 준 것은 나를 가로막고 선 어머니의 뒤편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