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3
2화
“덩치 큰 꼬맹이들 어서 오고.”
“안녕하세요.”
나와 태호는 좁아 터진 반지하 자취방을 나와 오늘의 멘토, 동네 형 나선우와 그의 밴드 스코프가 합숙하며 음악을 하는 연습실로 찾아왔다.
여기도 태호의 자취방과 마찬가지로 퀴퀴한 냄새로 가득한 반지하 방으로 평수는 조금 더 넓었지만, 그나마도 드럼이며 앰프 같은 자리 차지하는 밴드 장비가 들어와야 했기에 오히려 좁은 느낌이었다.
“어휴, 담배 냄새.”
계단을 폴짝 뛰어 내려간 태호가 코를 부여잡았다.
그럴 만도 했다.
무슨 홀아비 소굴이라도 되는 듯 담배 쩐내와 쇳줄 냄새가 가득하면서 벽에는 싸구려 방음재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으니까.
‘가난한 인디 밴드가 다 그렇지 뭐.’
미래에는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차트 위에 폴짝 올라타 지상파에도 심심찮게 얼굴을 비추는 밴드이지만, 지금은 그저 홍대와 신촌을 전전하는 인디 아티스트들이다.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살 만한 환경을 구축할 돈이 어딨겠는가?
“음료수 줄까?”
“뭐 있는데요?”
“삼X수랑 아이X스.”
“그게 음료수예요?”
“수 붙잖아, 수.”
“어휴……. 저는 삼X수요.”
태호와 농담을 나누는 선우 형의 모습이 꽤 신선하다.
미래의 카리스마 락 보컬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친근하다고 해야 하나?
“파바로티는?”
그때 이제는 안 받으면 섭섭한 이름 농담이 내게 날아왔다.
예명이 별로라는 둥, 왜 파바로티가 아니라 루치아노냐는 둥 하는 것이 내 이름을 가지고 놀리는 사람들의 주된 패턴이다.
“루치아노거든요?”
“그거나 그거나. 그래, 우리 김루치 학생은?”
“저도 같은 걸로요.”
“오케이.”
썩 좋아하지는 않는 그 장난을 재빨리 받아치고, 그가 던지는 생수를 받아 마셨다.
‘동생 이름은 호세 딱 두 글자라서 괜찮은데, 난 왜 루치아노냐고?’
아직도 부모님의 작명이 원망스럽다.
위대한 성악가로부터 이름을 따왔다는 것은 알겠는데, 동생처럼 위화감 없는 이름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적어도 김플라시도는 아니니까.’
수십 년을 김루치아노, 줄여서 김루치로 살아왔기에 이제 와서 개명을 해도 익숙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름 탓에 끓는 속을 다스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게 합리적이다.
벌컥! 벌컥!
목을 촉촉히 만들어 두는 것도 나름 중요한 일이다.
‘지금 시기에 내 목의 내구도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으니 잘 관리해야지.’
고음 편하게 잘 올라가고 소리 깨끗한 것까지 확인했지만 아직 여러모로 내 목 상태와 구사 가능한 기술의 한계를 파악하지 못했다.
때문에 오늘 멘토링에서 많은 것을 점검해 볼 예정이었다.
‘원래 이때 내가 무슨 노래 부르기로 했더라?’
이 음악 선배와의 멘토링이라는 동네 모임은 피드백 형식으로 진행된다.
애들이 노래를 부르고, 형은 그걸 듣고 평가와 조언을 건네주는 식.
한참 전의 일인지라 자세히 기억은 나질 않지만, 당시 선우 형의 조언이 나름 충격적이었기에 피드백 자체는 매우 생생했다.
‘천만 원짜리 컴퓨터로 단풍잎 스토리를 하는 기분이다.’
성악만 쭉 배워 와서 대중음악의 보컬 스킬에 익숙하지 않았던 때였기에 애초에 조언이고 평가고 불가능했던 것이다.
당시 함께 멘토링을 진행했던 다른 아이들의 비웃음 가득한 눈빛이 잊히질 않는다.
오늘은 다를 테지만.
“루치. 마이크 안 건드려 봐?”
“응? 난 됐어.”
“오케이. 그럼 나 톤 좀 만지고 있는다?”
“응.”
내가 한참 고민에 싸여 있을 무렵, 태호가 먼저 앰프와 이펙터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지이이잉! 지이잉, 좌자자장!
몇 번 기타 줄을 후려갈기며 스위치를 이리저리 돌리는데 제법 멋들어진 소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귀는 좋아, 귀는.’
똑같은 보컬 지망이라 같은 밴드를 한다든지 하는 일은 없었지만, 나는 나이를 꽤 먹고도 태호와 음악적 교류를 지속했다.
결국 가수가 되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나름 국내 최대의 음반 가게 사장이 된 녀석은 뜰 곡과 못 뜰 곡을 귀신같이 알아보고는 했다.
아쉽게도 보컬로서는 한 끗이 모자랐지만, 제 재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업계에서 나름 성공을 했다는 점이 미래의 나와 꽤 비슷하기도 했고 말이다.
“오빠! 저 왔어요!”
“안녕하세요!”
잠깐 기다리고 있자니 몇몇 학생들이 줄을 지어 연습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 왔냐?”
“넹!”
“잠깐 앉아 있어. 조금만 있다가 시작하자.”
오늘 선우 형에게 함께 멘토링을 받을 다른 학생들이었다.
“자, 다들 왔구나.”
애들에게 물을 한 병씩 주고서는 전화기를 들고 자기 일을 보고 온 선우 형이 다시 돌아와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
학생들이 하나둘 늘어나니 그렇지 않아도 좁아 터진 연습실이 더욱 좁게 느껴졌다.
오늘의 멘토 나선우와 다섯 명의 학생들.
‘쟤네 셋은 예고 실음과 다니는 애들이었고, 쟤는 어디 연습생으로 가던가?’
면면들을 보니 당시 기억들이 하나둘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 중 제대로 가수의 길을 걸었던 사람은 나 빼고 없다.
아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뿐 혹시 모르는 일이지만, 적어도 TV에 심심하면 얼굴 비칠 정도로 성공한 녀석들은 없다.
음악이라는 게 쉽게 진입하고 시간 지나면 잔뜩 떨어져 나가는 경향이 있어 그럴 만도 했다.
“오늘은 준비한 노래 듣고 피드백을 하는 시간을 좀 가져 보려고 해. 실음과 다니는 애들이나 회사에 들어간 애들은 알 텐데, 보통 노래 연습을 하고 가창 평가를 가지잖아? 다만 나는 점수를 매기는 건 아니고…….”
그는 옹기종기 모인 학생들에게 오늘 진행할 멘토링을 친절하게 설명했다.
자유곡 한 곡을 부르고, 좋았던 부분, 부족했던 부분, 그가 캐치할 수 있는 개선점 등을 말해 주는 구조.
쉽게 말해 부르고, 듣고, 평하는 피드백 과정이다.
“그럼 세영이부터 해 보자.”
“네.”
선우 형의 지목을 받은 여학생이 가져온 USB를 이용해 MR을 틀고 노래를 불렀다.
썩 괜찮은 노래였다.
“다시 돌아올까? 네가 나의 곁에 올까? 믿을 수가…….”
중고등학생 또래치고는 말이다.
“나쁘진 않았어. 근데 선곡도 그렇고, 노래의 표현 자체도 그렇고 조금 안일한 맛이 있다. 실음과 선생님이 이거 입시곡으로 좋다고 추천해서 그냥 별생각 없이 연습한 느낌? 일단 즐기는 게 우선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은 게, 가사의 해석 방식부터 시작해서 접근이 달라…….”
선우 형의 날 선 지적과 정확한 조언이 이어졌다.
“아하…….”
세영이라는 친구는 조금 기가 죽은 듯했지만 나름 열심히 선우 형의 피드백을 받았다.
동네 고수의 이름값이 상당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 내용이 너무나 자세하고 정확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 학원 차려도 되겠는데?’
그의 설명은 혼자 익혀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을 절묘하게 파고들면서, 학원 강사들 특유의 전문 용어 범벅 교육보다 듣기 쉬웠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 저러면 안 되는 이유를 풀어서 말해 주니 몰입해서 받아들이기 좋다는 뜻이다.
만일 내가 아직도 학원을 운영하는 보컬 트레이너라면 웃돈을 주고서라도 모셔 오고 싶은 인재다.
물론 노래 부르는 데에 인생 다 바친 앞길 창창한 인디 밴드 프론트맨이 갑자기 학원 강사로 변신할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애들이 이렇게 몰려온 이유가 있었네.’
그냥 노래 잘하는 동네 선배 정도가 아니다.
아마 나 역시 이런 선우 형의 실력에 매료되어 몇 차례나 멘토링에 참여했을 테고 말이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의 밴드 스코프가 바빠지기 시작하면서 그만두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전까지 그에게 대중음악 보컬의 기본기부터 락 가수의 마음가짐 따위를 꽤나 많이 배웠었다.
“오케이. 다음은 루치, 앞으로.”
“넵.”
세영을 시작으로 세 명의 학생들의 노래가 더 지나가고,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
순간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 쟤가 걔야? 성악?”
“쉿!”
“근데 저런 애가 왜 여기서 노래 배운대?”
“그니까. 성악으로 예고 떨어졌다던데?”
“거기서 안 되니까 여기로 온다는 거야? 참나.”
배타적 감성이 좁은 지하 연습실에 넘실거린다.
그럴 수도 있다.
이들에게 나는 뭐라고 해야 하나……, 이방인 같은 느낌이니까.
‘오늘 멘토링 첫날인가? 두 번째?’
오늘 처음 본다는 듯 반응하는 애도 있고, 그런 친구에게 내가 성악과 출신인 걸 알려 주는 애도 있다.
아마 내가 한 번 정도는 멘토링에 참여해 내 정보를 알린 것 같다.
그러니 성악 유망주로 나름 이름이 있는 내가 실용음악이라는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것에 반감을 품는 것이겠지.
청소년 특유의 전공 자부심 같은 게 발동했는지 그들의 눈에 적의와 무시의 기운이 담겼다.
“아, 태호야. 기타 좀.”
“응? 응.”
나는 이미 연주와 피드백을 마친 태호의 기타를 빌려 앞으로 나섰다.
“BGM 필요해?”
“앗, 네. 니르바나의 smells like highteen spirit이요.”
“올. 그 노래 좋지. 준비되면 시작해.”
적당히 앰프와 이펙터를 조절해 기타의 톤을 만지고, 소리를 들어 봤다.
“음흠흠흠…….”
허밍으로 살짝 목을 풀어두고, 마이크를 스탠드에 꽂아 각도를 맞췄다.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할게요.”
성악이나 하던 놈이 노래를 하면 얼마나 하겠냐는 저 시선을 밑으로 처박아 버리기에 말이다.
“오케이. 큐.”
신호가 떨어졌다.
BGM의 박자에 맞춰 스트로크를 갈겼다.
좡좌좡! 좌좌좡좡! 좡좌좡! 좌좡좡!
F5, B♭, A♭5, D♭…….
락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법한 기타 리프.
시대를 타지 않는 명곡, 니르바나의 Smells like highteen spirit이다.
“I pull a gun and bring my friend. It’s fun to lose and to profess…….(난 총을 뽑고 친구를 데려와. 지고도 무심한 척하는 건 재밌지…….)”
살짝 힘을 빼고 퇴폐적인 뉘앙스를 최대한 살린다.
그렇다고 커티 코베인의 노래를 따라 하는 것은 아니다.
원곡 가사가 전달하는 가사의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느냐, 그 표현법을 빌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곡의 가사는…….
“She’s so overbored and selfencouraged. Oh no, I know a dirty world.(그녀는 무척이나 따분해했고, 자만하지. 오 이런, 난 저속한 세계를 알아.)”
아무 의미가 없었다.
“Hello, hello, hello, hallo? Hello, hello, hello, hallo?(이봐, 이봐, 이봐, 안녕? 이봐, 이봐, 이봐, 안녕?)”
그저 각운을 맞춘 단어들의 무의미한 연속.
다만 이 곡을 제대로 부르기 위해서는 가사의 뜻이 아닌 곡이 선사하는 느낌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나는 공명 조절과 거친 표현에 담긴 호소력에 집중했다.
라이밍만을 강조해 메시지는 완전히 팽개친 프리 코러스가 지나고, 곧 파사지오 구간이 반복되는 후렴이 찾아왔다.
‘여기서!’
이 고음 부분이 가장 중요했다.
나는 진입을 위해 길을 쭉 깔아 주듯 기타를 맛깔나게 후리고, 리듬을 따라 힘을 주어 가사를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