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30
29화
“호세야. 너네 형 좀 봐라. 지금 시간이 몇 시니? 어제고 그제고 매일 이 시간에 들어오는데, 혹시 너희 형 요즘 이상한 친구들이랑 어울리니? 너 알아?”
“아아.”
뒤에서 무차별 폭격을 끊으며 등장한 인물은 다름 아닌 내 동생, 김호세.
다른 곳에 인생을 건 나와는 달리 아버지 어머니를 본받아 열심히 성악의 길을 걷고 있는 녀석이다.
물을 마시러 나왔는지 한 손에 컵을 쥔 채 녀석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형 요즘 늦게까지 학교 연습실에 남는다고 했는데.”
“으, 응?”
어머니가 순간 눈을 크게 뜨고 반문했다.
“친구들이랑 서로 연습 봐준다고.”
아주 자연스러운 실드!
딱히 나를 두둔하려는 건 아니고 전에 들었던 얘기를 전달한다는 듯 천연덕스러운 저 말투!
나는 그냥 물을 마시러 왔다가 소란스러워서 들렀다고 알리는 저 자세!
‘나이스, 동생!’
곤란한 상황에 불쑥 튀어나온 정말 훌륭한 어시스트였다.
“그, 그래?”
“응. 개인 레슨 시간을 뺀 만큼 혼자 뭔가를 시도해야겠대.”
연이은 동생의 언급으로 어머니는 더 혼낼 의지를 잃어 갔다.
이렇게까지 도와주는 말을 해 주는데 계속 잔소리를 날리는 것도 어머니 입장에서는 조금 그럴 것이다.
결국 어머니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내게 말했다.
“쯧……. 그래도 일찍 일찍 다녀. 너무 늦게까지 하지는 말고.”
“넵!”
“어서 씻고 자.”
“안녕히 주무세요.”
“배고프면 우유 꺼내 먹고.”
“넵넵!”
아직 미심쩍다는 표정이었지만 어려운 난관은 지나칠 수 있었다.
나는 진심을 담아 동생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고맙다, 브라더…….”
“됐어.”
녀석은 감사하다는 내 말에 톡 쏘더니 자기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은인을 쓸쓸히 보내 줄 수는 없지!’
나는 호세의 뒤를 쫓아 방까지 따라 들어갔다.
“아, 뭔데.”
“안 자고 있었냐?”
“응.”
“일찍 자야 키 큰다.”
“형이나 아빠처럼 클 생각은 없는데.”
“그게 네 맘대로 되는 게 아니란다.”
지금 동생의 키는 대강 180이 조금 안 되거나 딱 180 정도 되어 보였다.
너무나 다행히도 17살에 189cm에서 성장이 멈춘 나와 달리 호세는 고등학교에 가서도 키가 쑥쑥 크더니 190cm의 고지를 넘어서게 된다.
거기에 머리를 길게 기르고 수염까지 다듬으니 나보다 형처럼 보인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으으. 너무 크면 그것도 불편할 것 같은데…….”
“왜?”
“증량할 때 힘들잖아.”
“아.”
성악가들은, 특히 남성 성악가들은 보통 덩치를 키우고 살을 찌우는 경우가 많다.
노래라는 것이 가만히 서서 입만 놀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전신 근육으로 힘을 쥐어짜야 하기에 무대에 한 번 설 때마다 체력이 엄청 소모되기도 하고, 뱃심으로 호흡을 밀어내는 감각을 유지해야 하기도 하고…….
어쨌든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데 특히나 키가 큰 사람들은 살을 찌우는 것이 고역일 수밖에 없다.
“운동 열심히 하고 식단 지켜서 먹다 보면 될 거야.”
“하……. 다른 관리 없이 노래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동감.”
이후에 타고난 근성으로 덩치도 잘 키우고 실력도 가꿔서 끝내 젊은 신성으로 이름을 날리게 될 호세인지라 따로 걱정하지는 않았다.
‘알아서 잘하겠지.’
미래를 알고 있기에 무한한 신뢰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조금 이상한 기분이기는 했다.
“아무튼 금방 도와줘서 고맙다. 귀찮을 뻔했는데.”
“됐어. 나도 나중에 늦게 들어올 때 있을 텐데 뭐.”
“그래. 그땐 내가 도와줄게.”
서로 돕고 사는 게 좋지, 암.
“레슨은 잘 받고 있고?”
“어. 정 교수님한테 배우는 게 오히려 아버지랑 할 때보다 낫더라.”
“그렇다니까. 진작 그래야 했어.”
“형은 어때? 성과 좀 있어?”
“얼마 전에 돈 받고 버스킹도 갔다 왔고, 조금 뒤에 학생 밴드 대회도 나갈 예정이다.”
“들키는 것도 얼마 안 남은 것 같은데?”
“그쯤 되면 어머니 아버지도 허락해 주시지 않을까?”
“글쎄…….”
우리는 레슨은 잘 받고 있느냐, 하는 음악은 잘되느냐 따위를 물어보며 잠깐 동안 대화를 나눴다.
배우고 하는 것이 전부 음악뿐이라 할 얘기도 음악밖에 없었지만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다.
“나 이제 잘 거야. 나가.”
“그랴. 잘 자라.”
“응.”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동생이 물컵을 테이블에 올려 두고는 드러눕는다.
“불 끄고 가.”
나는 방 불을 꺼 주고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나왔다.
‘미래에 크게 성공하는 성악 유망주라……. 그러고 보니 미래 계획을 아직 어설프게 짜 놨는데, 오늘 날 잡고 큰 그림 한번 그려 봐?’
생각이라는 것이 가끔 그런데, 한 주제에 관해 고민하다가 옆으로 흐르는 경우가 꽤나 많다.
이번의 경우에는 동생이 성공적인 커리어를 만들게 되는 미래에서 나의 미래 설계로 옮겨 간 것이다.
‘열심히 음악을 한다. 즐겁게 한다. 그리고 암호 화폐를 산다. 이걸로는 부족하지.’
지금까지 생각해둔 미래 계획이란 피상적이기 짝이 없다.
예전보다 더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밴드를 하면서 실력을 키운다.
그리고 얼마나 될지 모르는 수익으로 안정적이면서 높게 성장하는 주식과 암호 화폐에 투자한다.
확실히 성공을 자신할 수는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어설프고 헐거운 계획이다.
“흠……. 조금 구체화할 필요는 있을 것 같아.”
어차피 밤은 길다.
편곡 작업도 해야 하겠다, 밤을 새우는 것은 확정이니 수현이가 메신저에 접속하기 전까지 차근차근 미래를 떠올리며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고점이 높은 주식이 뭐가 있더라……. 평소에 잘 살피지 않았던 분야라서 애매하네. 그럼 차라리 어떤 노래가 대박을 쳤는지를 기준으로 주변 상황을 떠올려 보자. 그러면 적어도 엔터주는…….’
* * *
시간은 너무나 빨리 흘러 벌써 토요일이다.
“와, 여기가 스튜디오야? 역시 부잣집 아들!”
“그 정도는 아님.”
“금수저, 금수저!”
“아빠가 부자인 거지 내가 부자인 게 아님.”
학교가 쉬는 날이라 연습실을 빌릴 수 없었기에 우리 럭키데이 멤버들은 재우의 스튜디오에 다 함께 모여 연습을 진행하기로 했다.
“저건 뭐야? 뭔가 되게 커다란 장비가…….”
“어, 어? 그거 만지지 마셈! 노 터치! 노 터치!”
생각보다 훨씬 쾌적한 환경에 감탄하며 라희가 이것저것을 건드리며 돌아다녔고, 재우는 혹시나 세팅해 둔 장비를 어떻게 잘못 만지진 않을까 그 뒤를 쫓아다녔다.
“와, 진공관…….”
수현이는 한쪽에 놓인 앰프를 만지며 자기 베이스 사운드를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고…….
스윽.
“개판이네. 음.”
나는 그것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저, 얘들아? 너희 연습 겸 촬영하러 온 거 아니었어?”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 모습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서 있던 재석 형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고, 나는 놓았던 정신줄을 붙잡을 수 있었다.
“아, 맞다. 자, 자. 집중, 집중! 모여 봐!”
나는 무슨 풀어 키우는 양 떼처럼 자기들끼리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친구들의 이목을 모았다.
곧 애들은 하던 것을 멈추고 내 주변에 모였다.
“크흠. 이제 슬슬 연습 시작해야지?”
“이응.”
“그래. 기계들은 끝나고 나서 만져도 되니까!”
“그만 좀 만지셈, 제발.”
“자, 자.”
또 이야기가 옆으로 흐르려는 것을 막고, 나는 설명을 이었다.
“우선 오늘은 편곡이 전부 끝나지 않은 가을의 향기는 치워 두고 Don’t be angry를 완벽하게 맞춰 볼 거야.”
“가을의 향기는?”
“펴, 편곡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조금만 더 만지면 될 것 같아…….”
“얼마 안 걸려. 일단 오늘은 Don’t be angry부터.”
“오케잉.”
오늘 우리의 목표는 Don’t be angry를 완벽한 합으로 연주하는 것.
“참고로 오늘 연습은 전부 촬영해서 당장 다음 주에 개설할 예정인 럭키데이 너튜브 채널의 첫 영상으로 올라갈 거야.”
“오우! 드디어!”
“기, 긴장돼…….”
“님도 너튜브 해 봤잖음?”
“그, 그거랑 다르지……. 그건 그냥 취미로 한 건데…….”
그리고 너튜브 채널에 올릴 영상을 찍는 것.
“별거 없음. 그냥 연주만 잘하면 재석이 형이 알아서 편집해서 올려 줌. 개쉬움.”
“내 노력이 그렇게 쉽게 느껴지냐…….”
“돈 받잖음.”
“아직 땡전 한 푼 안 나오거든! 수익 생기려면 한참 걸려!”
다행히도 재우의 기타 채널을 실질적으로 운영 및 관리하고 있는 재석 형이 영상 편집을 맡아 주기로 했다.
채널 관리와 댓글 확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지만, 편집이나 영상에 관해서는 문외한이기에 전문가의 인력이 필요했던 차에 잘된 일이다.
“악보는 다들 숙지하고 왔지?”
“이응.”
“엉.”
수현이는 애초에 나와 함께 악보를 만들었으니 예외고.
“그럼 연습 몇 번 맞추고 바로 촬영으로 들어가자.”
“님, 님. 잠깐만.”
“응?”
그렇게 흩어지려던 순간, 재우가 내게 뭔가를 건넸다.
“아. 기타.”
전에 빌려주기로 했던 커스텀 기타였다.
“걸고 쓸 거임?”
“스트랩?”
“이응.”
“그래야겠지?”
“이거 쓰면 됨. 줄은 니켈로 걸어 뒀는데 전처럼 부드럽게 하고 싶으면 크롬으로 바꾸고, 어쿠스틱 냄새를 더 넣고 싶으면 브론즈로 갈면 됨.”
“호오…….”
나는 그것을 받아 들고 천천히 살폈다.
‘뉴 아이템이라니! 이건 못 참지!’
제멋대로 떠들고 놀던 멤버들을 말리고 주목을 요구한 것이 나였지만, 새로 얻은 장비를 눈앞에 두고 기쁜 마음을 꾹 참을 수는 없었다.
스으윽.
꺼먼 카본 바디를 살짝 훑으니 먹먹한 진동과 함께 매끄럽게 쓸리는 촉감이 느껴졌다.
“와……. 마감 봐…….”
과연 고가를 자랑하는 커스텀 악기.
하자 없이 매끈한 몸은 물론이고 툭툭 건드렸을 때의 묵직함이 예사롭지 않았다.
디이잉.
6번 줄을 살짝 튕기니 기타가 몽환적인 음색을 자랑했다.
“크으으…….”
좌아앙!
이번에는 G 코드를 잡고 한번 후려 보았다.
재우가 미리 튜닝을 해 둔 것인지 어긋나는 음도 없고, 쫙 퍼지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좌아아앙!
직진성이 떨어져 소리가 쭉 뻗지 못하고 맴돈다는 것이 카본 기타의 특성인데도 소리가 나름 짱짱한 것이 아주 좋았다.
어지간한 마호가니 기타나 코아 기타보다 훨씬 명료한 소리.
과연 비싼 값을 하는구나 싶었다.
“흐…….”
새 장비의 뛰어남이 기쁜 동시에 이게 빌린 기타라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었다.
“좋아. 그럼 이제 연습을……. 응?”
아주 짧게 새로 빌린 기타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진 후, 나는 앞을 보며 연습 시작을 논하려고 했다.
“아니 그거 만지지 말라니까!”
“왜? 이게 무슨 장빈데?”
“기타에 쓰는 거임! 드러머가 이펙터를 왜 자꾸 만짐!”
“딱 봐도 나 돌려 달라고 생긴 스위치잖아! 그럼 돌려 봐야지! 흐힛!”
“와……. 파워드 스피커……. 이건 얼마짜리지…….”
어느새 뿔뿔이 흩어져 따로 노는 애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얘들아?”
“이 선은 뭐야?”
“마이크에 꽂는 거. 진정하고 그것 좀 내려놓으셈.”
“뭐를? 이거? 아니면 이거?”
“둘 다!”
“이러면 중음역이 얼마나 깎이는 거지……. 톤을 들어 봐야 알 것 같은…….”
“얘들아! 잠깐만!”
이미 잃어버린 집중력을 되찾기 위해 우리는 꽤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다 내 탓이다.
“좋아. 이제 다 됐지? 연습 시작해도 되지?”
“이응.”
“아, 알차게 놀았다!”
“저 스피커 톤을 못 들어 봐서 아쉬운데…….”
그저 자기 호기심을 표출함과 동시에 재우를 놀리고 싶었던 것이 전부인 라희와 달리 여기저기 놓인 장비들의 특성이 궁금했던 수현이는 아직 만족하지 못한 것 같다.
“좋아. 연습으로 두 번만 연주하고 잠깐 쉬자. 응? 그때 놀면 되잖아?”
“알았어.”
미끼랄 것도 없는 미끼를 걸고 나서야 우리는 연습에 돌입할 수 있었다.
“핫 둘 셋, 둘 둘 셋!”
챡! 챠챡 챡! 챡! 챠챡! 챡!
경쾌한 탬버린 소리가 돌입 타이밍을 맞춰 주고, 그 뒤를 따라 내 리듬 기타가 곡의 시작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