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31
30화
단 다단 단 다다단…….
따뜻하고, 부드럽고, 몽환적이게.
‘음을 길게 끌어 가면서 코드 사이 연결을 빠르게…….’
감정을 표현한다는 건 기술의 영역이다.
음을 길게 늘이느냐, 잘라 내느냐, 연결부의 조정을 어떻게 하느냐.
결국 손끝 감각과 성대 움직임이 감성적인 표현의 전부인 셈이다.
두웅, 둥둥둥둥.
수현이의 베이스가 묵직하게 모든 소리를 받쳐 올린다.
‘좋다…….’
자연스럽게 기분이 좋아진다.
편곡 과정에서 가장 고심해 만졌던 것이 바로 베이스 라인이다.
곡 전체의 분위기가 따스하고 말랑말랑하다 보니 행여나 소리가 너무 떠 버리기라도 한다면 듣는 사람들의 집중력이 유지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기에 베이스 소리를 통상보다 크게 들리도록, 특히 뜯는 소리가 곡 사이사이 빈자리를 완전히 메우도록 설계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 그 결과물을 들어 보니 우리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없었다.
“Walk inside the deep of your mind.(네 마음속 깊은 곳으로 걸어가 봐.)”
나는 연주를 이어 가면서 입을 열어 가사를 뱉었다.
연구개를 확 들어 공간을 많이 만들면서 흉성으로 바람을 내는 창법으로 붕 뜨는 느낌을 만들면서도 가사가 확실히 전달되도록 소리를 단단하게 굳혔다.
“You may find a better space to play.(더 놀기 좋은 공간을 찾을지도 몰라.)”
바라는 대로 일이 이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기분 나쁘던 일을 털어 버리자고.
가까운 친구에게 전하듯, 읊조린다.
“So I’ll make a revolution from my bed. Cause you think the brains I had went to my head.(그래서 난 침대에서부터 혁명을 만들 거야. 넌 내가 오만으로 가득 찼다고 생각했지.)”
입으로 노래를 이어 나가고, 속에는 고양감이 차오른다.
지금 흐르는 이 아름다운 선율을 내가 만들어 내고 있다.
그 행복감이 목을 따라 올라가면서 쏟아졌다.
“You will never gonna hurt my heart out…….(넌 내게 절대 상처를 주지 않을 거야…….)”
퍼지는 소리를 아주 작게 성량을 줄여 끌었다.
그러자 멤버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가 정확하게 귀에 꽂혔다.
디링, 디리리리링…….
눌러 당기는 재우의 부드러운 기타 소리.
챠르르르르르륵!
빠르게 떨려 짤랑거리는 탬버린 소리.
두웅, 두둥! 둥! 둥!
고조시키듯 밀어 올리는 베이스 소리.
“후우우…….”
폐를 터뜨릴 듯 가득 찼던 숨을 살짝 뱉어 내고, 적당한 수준으로 기압을 맞춘다.
후렴을 위한 빌드업이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망치는 것이 더욱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So, she can wait. She knows it’s too late as she’s walking on by…….(그녀는 기다릴 수 있어. 그녀가 스쳐 지나갔을 때 이미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먹먹하게 우는 카본 기타의 스트로크가 넓게 퍼지는 내 목소리와 섞여들고, 묘하게 신비로우면서도 따스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처음부터 의도한 부분이었기에 생각했던 분위기가 그대로 현실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즐거웠다.
“Her soul flies away!(그녀의 혼이 떠나가도.)”
길게 끌다가 소리를 툭 끊어 버리고, 비슷한 볼륨의 작은 소리로 노래를 이었다.
“But don’t be angry about the past, I heard you say.(지나간 일에 분노하지 말라는 너의 말을 들었어.)”
좌아아앙……. 지잉, 지징…….
첫 후렴의 마지막 구절이 깔끔하게 떨어지고, 그 뒤를 이어 재우의 기타가 비어 버린 보컬의 자리를 자연스럽게 채웠다.
신디사이저가 없는 만큼 어쿠스틱 사운드의 풍성함은 원곡에 비해 모자라야 하는데, 화려한 퍼스트 기타의 솔로와 촘촘한 베이스 라인이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도록 만들었다.
“Take me to the way where you go, where nobody knows…….(네가 가는 길로 나를 인도해 줘. 누구도 모르는 곳으로…….)”
꽉 채웠다가 흩어져 사라지는 소리들 사이로, 나는 다시금 끼어들었다.
“Well if it’s day or night…….(낮이든 밤이든 말이야…….)”
응원하고 보듬어 주는 가사가 은은하게 흐른다.
손은 코드를 잡으며 바쁘게 움직이고, 입으로는 가사를 뱉으면서 스피커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듣고 세밀하게 조정해야 했기에 정신이 없었다.
간혹 리듬 기타의 박자가 살짝 밀리려고 할 때도 있고, 다른 곳에 신경을 기울이다가 호흡 타이밍을 놓치기도 했다.
하지만 기분만큼은 끝내줬다.
‘2절 진입 후에 단어 끊어 뱉는 것 조심. 좀 더 레가토 느낌으로…….’
고칠 부분을 완벽하게 짚어 낼 수 있다는 건 연습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잠깐씩 튀어나오는 실수 외에도 구조적으로 제대로 어울리지 않는 파트를 찾아내고, 혹시나 보컬 선에서 덮을 수 있는 부분도 똑똑히 기억했다.
이렇게 장단점을 탐색하는 과정 자체가 훌륭한 오락이나 다름없었다.
지이잉, 지징……. 차르륵! 차륵!
다른 멤버들도 집중력을 흐리게 놓지 않고 연주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 완벽하게 몰입하고 있는 것 같았다.
“And so, she can wait. She knows it’s too late as she’s walking on by…….(그리고 그녀는 기다릴 수 있어. 그녀가 스쳐 지나갔을 때 이미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연습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보다 더 기쁜 것은 우리의 실력이 더욱 올라갔다는 것이 체감되고 있다는 점이다.
‘허……. 지난번 버스킹은 물론이고 어제보다 훨씬 나은 것 같은데?’
이 괴물 같은 놈들은 원래부터 출중한 연주 능력이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는 것인지, 하루하루 나아지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재우의 경우 흥에 겨워 연주에 제대로 몰입하면서도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는 법이 없이 자기 음정과 박자를 제대로 지켰고, 수현이는 과하게 딱딱 맞추기만 하려던 버릇을 완전히 버리고 특유의 그루브를 더욱 살려 냈다.
그리고 그 성장이 가장 두드러진 라희는 연주의 강약 조절이 전보다 백 배, 천 배는 더 좋아졌는데, 오로지 화끈하고 화려한, 그저 다이내믹한 리듬 놀이를 즐기던 모습에서 부드럽고 여린 소리를 만들어 내는 법을 터득했다.
‘이거 긴장해야겠는걸.’
자칫하면 보컬 빼고 다 완벽한 밴드 소리를 듣게 되지 않을까 무서운 성장.
그야말로 괄목상대라는 말이 어울리는 친구들이다.
“And so, she can wait!(그리고 그녀는 기다릴 수 있어.)”
나도 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더욱 힘을 내서 소리를 가다듬었다.
성장이라는 것이 말처럼 쉽게 찾아오지는 않겠지만, 최선을 다해 연습에 임하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니까.
끈적끈적하면서도 멋들어진 간주의 기타 솔로를 지나 세 번째 후렴을 부른다.
“Her soul flies away. Don’t be angry about the past, I heard you say.(그녀의 혼이 떠나가도. 지나간 일에 분노하지 말라는 너의 말을 들었어.)”
조화롭게. 튀지 않게.
이번 곡은 부드러운 분위기와 비교적 수수한 기술의 연계 아래 우리 밴드의 매력을 통으로 표현하는 방향으로 편곡을 진행했다.
개개인의 연주 퀄리티와 난이도는 상당하지만, 그 조화로움을 해치지는 않게끔 되어 있다.
밴드는 단순히 세션과 보컬들의 모임이 아니다.
여러 연주자들이 한곳에 모여 함께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고, 그것을 하나로 묶어 모두 같은 감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명제 아래 구성한 곡이 럭키데이 버전의 Don’t be angry.
물론 어떤 한 파트의 기술을 자랑하거나 부분적으로 띄워 주는 곡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청소년 밴드 경연의 특성을 짚을 때 멤버들 전원의 실력을 강조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 내린 결정이었다.
“So, she can wait. She knows it’s too late as she’s walking on by…….(그녀는 기다릴 수 있어. 그녀가 스쳐 지나갔을 때 이미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리고 그 결정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따스한 선율 안에서 끝까지 집중력을 놓지 않도록 만드는 아주 좋은 선택이 되었다.
“와……. 화아…….”
우리가 연주하는 것이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에서 카메라 앵글을 조절하던 재석 형이 감탄사를 쏟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 리액션 맛집이네.’
어떻게든 연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움직이려 노력하는 것이 보이지만, 오른손으로는 가슴께를 부여잡고 연신 황홀하다는 듯 감탄을 토하는 모습이 노래 부르는 사람마저 기쁘게 만들었다.
“Her soul flies away…….(그녀의 혼이 떠나가도…….)”
스르륵 손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끝을 흐려 여운이 남도록 소리를 자연스럽게 죽였다.
곡의 끝이 다가온 것이다.
“But don’t be angry, don’t be angry…….(분노하지 말라고, 분노하지 말라고…….)”
살짝 위로 치닫는 가성.
내가 생각해도 깔끔하게 잘 뽑힌 공명에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치솟는다.
단, 다단단…….
“I heard you say.(너의 말을 들었어.)”
차르륵! 다라라라란! 지이잉! 지지징…….
대미를 장식하는 기타 솔로가 이어진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그 소리가 아름답다.
하지만 진짜 끝은 내가 맺는다.
“Not a bit today…….(적어도 오늘만큼은…….)”
차르르르르륵!
모든 세션이 빠져나가며 탬버린 흔들리는 소리만 남는다.
금방까지 끌어올렸던 감정들을 전부 털어 내듯 울리고, 곧 정적이 이어졌다.
잠시 후.
“후!”
“어때? 어땠어? 괜찮아? 난 좋았는데.”
“나쁘지 않았음.”
내가 깊게 담아 두었던 숨을 내쉼과 동시에 아이들이 폭발적으로 자기 감상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나 일단, 크흠! 물 좀 마실게.”
미리 꺼내 두었던 생수병으로 성대를 흠뻑 적셔 주었다.
맹물이 꿀물처럼 느껴지는 기적.
최선을 다했음이 기뻐지는 시간이다.
“후우! 살겠다.”
마른 목도 축였겠다, 이제 수백 년 전통 종갓집 시어머니에 빙의할 시간이다.
“이제 피드백 시작해야지?”
“잉.”
“가, 갑자기?”
“뭘, 이러려고 연습을 하는 거지. 우선 재우. 솔로 파트 들어갈 때 힘 분배에 신경을 좀 써야할 것 같아. 예를 들면…….”
대개 연습 중이기에 소리를 확인하느라 집중력이 흐트러져 생긴 실수들이지만, 실전에서도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기에 주의를 하기는 해야 했다.
“다음은 수현. 무조건 정박에 맞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루브감을 살리려고 박자를 무너뜨릴 때가 있더라고…….”
나는 입에 모터를 단 듯 따로 기억해 둔 피드백을 쏟아 냈다.
처음엔 재우, 그다음은 수현, 다음은 라희.
연습 내내 신경을 기울여 소리를 들었기에, 지적할 것은 꽤나 많이 있었다.
각자 나름 열과 성을 다했기에 듣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모두의 성장을 위해 잔소리 타임이 길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이제 내 차례. 수현이는 2절 들어갈 때 음 쭉 당기는 거 탬버린 소리에 맞춰서 해 줄 수 있음?”
“으, 응? 아, 아래로 당겼다가 올리는 거 말하는 거라면…….”
“이응. 탬버린 촤좌좍 흔드는 박자랑 딱 합쳐지면 좋을 것 같음.”
“해, 해 볼게. 다시 맞춰 볼 때 신경 써서…….”
“라희. 님도 탬버린 소리 죽일 땐 죽여 주는 거 좋은데, 셰이커도 따라가야 됨. 잘못하면 저거 쇳덩이 저거 뭐임?”
“징글?”
“이응. 징글 소리 전부 묻히고 셰이커랑 북 두드리는 소리만 남을 수 있음.”
“알았어. 조심해 볼게!”
“그리고 루치는…….”
내 뒤를 이어 피드백을 이어 가던 재우는 잠시 나를 노려보며 뭔가를 생각하다가 말했다.
“물 많이 마시셈.”
“어, 그래.”
“건강에도 좋음.”
“……그래.”
아무래도 지적할 사항을 못 찾아낸 모양이었다.
“그, 그럼 나도……. 재우가 첫 솔로에 들어갈 때 톤이…….”
피드백은 꽤 길게 이어졌다.
체감상 오히려 연습 시간보다 더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피드백이 모두 끝났고, 모두는 서로가 지목한 지적 사항의 펀치 세례에 정신을 못 차렸다.
나만 빼고 말이다.
“오케이. 이제 피드백은 얼추 다 끝난 것 같고, 다음 연습 들어가 볼까?”
“으윽……. 귀에서 피가 나오는 것 같아…….”
“닦아.”
라희가 징징댔지만 가뿐히 무시하고, 우리는 다시 연주를 할 태세에 돌입했다.
그때 재석이 형이 잠깐 멈추라며 우리를 불렀다.
“얘들아, 얘들아.”
“넹?”
“이응.”
“네?”
우리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