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32
31화
“이제부터는 촬영을 좀 해야겠는데, 괜찮지?”
“엥?”
재석 형은 앞에 있는 삼각대를 슬쩍 돌려 우리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벌써요? 아직 한 번밖에 안 했는데?”
나는 다소 당황하며 되물었다.
아직은 연습 중이고, 본방은 모든 합이 맞아떨어지고 나서 진행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아, 소리는 본격적으로 너희가 준비 다 되고 난 다음에 제일 좋은 걸로 붙일 거고, 지금은 괜찮은 것이 나오지 않을까 해서 미리 따 두는 거야.”
영상에 사용할 장면을 여러 앵글에서 계속해서 촬영하며 준비해 두고, 나중에 편집을 할 때 가장 멋지게 나올 수 있는 컷을 골라 붙인다는 말이었다.
“재우 개인 채널에 올릴 때는 그냥 연주만 똬똬똿 해서 편집도 제대로 안 하고 올리면 되지만, 기타 솔로랑 달리 밴드 채널이니까 비주얼 부분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아하.”
“괜찮지?”
재우가 개인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채널, 레이어즈 기타의 경우 그냥 연주하는 장면을 원테이크로 찍어 음향 보정이나 색감 보정 등을 제외한 별다른 편집 없이 통으로 업로드를 하고 있다.
그러나 럭키데이의 경우 재석 형의 창작 욕구가 불타올랐는지, 기타 튕기는 모습만 쭉 이어지는 재우의 영상과 달리 전체적으로 비주얼 연출을 가미하고 싶다고.
“전 좋아요.”
“저, 저도…….”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 우리 잘되라고 해 주는 일이고, 본인 시간 투자해서 일을 맡아 주겠다는데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내 채널은 왜 대충함?”
“네가 싫다며! 그냥 연주만 한다며!”
“내가 언제.”
“후……. 재우 너는 어지간하면 활동할 때 입 열지 마라. 속 터지니까.”
뜬금없이 재우가 대화에 난입하자 재석 형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음, 그 마음 잘 알지.’
평소 보여 주는 재우의 모습 그대로이기에 나는 마음 깊숙이 공감했다.
“근데 그렇게까지 해 주시는 건……. 저희야 좋긴 한데, 형이 피곤하지 않으시겠어요?”
나는 재석 형에게 물었다.
사실 말이 연출을 조금 넣겠다는 거지, 자세히 보면 중노동도 이런 중노동이 따로 없으니까.
앵글 각각 따로 잡아야 하지, 컷 따려면 모든 영상을 다 확인하면서 따로 잘라 붙여야지, 음향과 영상의 싱크로도 맞춰야 하지…….
꽤, 아니, 굉장히 귀찮은 일이라는 건 전문가가 아닌 나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에이, 그게 뭐 얼마나 걸린다고. 형이 지금은 집에서 용돈 받으면서 동생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지만, 이래 봬도 편집판에서 꽤 오래 구른 사람이야. 전문가야, 전문가.”
“오오, 전문가…….”
“님 영화 제작사 더럽다고 때려치우지 않았음?”
“조용히 하라고 했지? 폼 잡고 있는데 초 치지 마.”
“이응.”
가슴을 쭉 펴고 얘기하는 재석 형에게 재우가 공연히 시비를 걸고, 또 거기에 일일이 반응해 주는 재석 형이다.
그냥 날백수 베이비시터는 아니라며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재석 형의 모습이 또 웃기기도 하고, 재우가 굳이 말을 던지며 놀자고 덤비는 모습이 이해가 간다.
“형 영화 쪽에서 있었어요?”
“어? 응, 그렇지.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알고 보니 재석 형은 영상 연출을 전공한 후 제작사에서도 일해 봤고, 편집 전문 회사도 다녀 봤으며, 현장에서 FD로도 굴러 봤다고 한다.
“와……. 재주 많으시네요. 음향도 만지고, 연출에, 편집에…….”
“에헤이. 뭘 모르는구먼. 나만큼 하는 사람들은 천지빼까리야.”
감탄하는 내게 재석 형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조연출이 말이 거창해서 조연출이지, 사실 현장 들어가면 만능 시다테이너라고. 연출 보조도 해야지, 촬영 보조도 잡아야지, 음향 만져야지, 조명 봐야지, 편집해야지……. 어휴……. 사람 할 일 아니다, 그거.”
말을 들어 보니 그쪽 일을 할 때 고생이 꽤나 심했던 듯하다.
이를 갈며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데, 이전 직장에 대한 증오가 상당해 보였다.
‘어, 그러고 보니…….’
그때 나는 뭔가가 퍼뜩 뇌리를 스치고 가는 것을 느꼈다.
‘재석 형 정도면 여러 채널 관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아직 한국 시장에서는 생소한 개념, 다중 채널 네트워크, MCN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실시간 스트리밍과 너튜브 콘텐츠 생산을 주로 하는 사람들을 매니징 하면서 채널 관리와 콘텐츠 제작에 도움을 주는 기업들.
아직은 실생활 속에 뿌리 깊게 박히지 않은 너튜브이지만, 미래에는 온갖 정보와 즐길거리가 넘쳐나는 사회에서 나름 자기들 역할을 수행하며 많은 자본을 다룬 시장이다.
‘한국에서 제일 먼저 발을 들이밀었던 곳이 디아모 TV……. 아마 내년쯤에 본격적으로 시장 개척을 시도할 텐데, 이거 사업만 벌일 수 있으면 어쩌면 시장 선점도 가능한 거 아니야?’
다루는 일들이 많은 만큼 인력이 많지 않은 초기 진입자들은 여러 분야의 일에서 능숙할수록 유리한데, 재석 형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에 큰 회사를 떡하니 만들어 낼 수는 없겠지만, 미래에 크게 성공할 사람들을 미리 영입해 키운다면?
특히 음악 분야의 아티스트들은 내 기억에도 톡톡히 남아 있다.
만약 인력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음악 영역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재석 형이랑 따로 얘기를 해 봐야겠어.’
나는 우선 연습을 진행하고, 오늘 일정을 전부 마친 후 재석 형에게 넌지시 언급해 보기로 했다.
“오케이, 오케이. 연습 한두 번만 진행하고 바로 본방 들어가자. 피드백 다들 숙지했지?”
“이응.”
“으, 응!”
카메라 세팅도 모두 끝났겠다, 우리는 다시 연습에 몰두하려고 했다.
그때.
“앗! 맞다!”
라희가 갑자기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뭐야?”
우리는 화들짝 놀라 바라봤고, 라희는 자신의 가방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며 말했다.
“잠깐만! 나 마스크 좀…….”
“아.”
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니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던 것이다.
“짜잔! 블랙 더 드러머 타이거 등장!”
“알았으니까 일단 앉아.”
“좀 받아 줘라, 좀.”
“예, 예. 타이거 양반, 스틱 잡고, 앉아서 연주 준비하시지요.”
“어흐흐헝!”
그렇게 잠시 있었던 소란이 지나가고, 연습이 계속되었다.
* * *
“그러니까 복수의 채널을 위탁 운영해 볼 생각이 있냐는 뜻이잖아?”
“그……. 조금 다르긴 한데, 얼추 비슷해요.”
“흠…….”
나는 재석 형에게 MCN의 개념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을 해 주고 사업을 해 보면 어떻겠냐고 운을 뗐다.
형은 얘기를 듣고는 잠시 고심하다가 말했다.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인 것 같기는 한데…….”
조금은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는 초기 자금의 문제도 있고, 여러 채널의 편집 작업을 모두 진행하기에는 버거울 것 같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하긴 자기 사업체를 차려 경영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니 그럴 만도 했다.
나는 천천히 부족했던 설명을 보충해 주었다.
편집은 편집자를 추가로 구하고, MCN은 프로모션, 저작권 관리, 스폰서 중개 등 방송인이 혼자서 처리하기 힘든 일들을 맡아 해결해 주면 된다는 말이었다.
그러자 재석 형은 그 설명에 나름 뭔가가 이어지는 바가 있는지 잠시 침묵을 지키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그가 말했다.
“그래. 솔직히 인력이야 뭐, 편집 외주 맡기고, 노는 친구 몇 명 데려와서 쓰는 걸로 해결은 될 것 같아. 스폰서 중개, 저작권 관리도 말이 어려워서 그렇지, 그냥 노가다 작업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는 거고. 근데 제일 큰 문제는 이게 사람 장사라는 점이야.”
“사람 장사요?”
조금은 이해가 힘든 말에 내가 되묻고, 재석 형이 그것을 풀어 말했다.
“음……. 좋은 가게를 얻고, 인테리어 죽여주게 해서 싼 가격에 팔아. 근데 상품이 없잖아? 결국 이 다중 채널 네트워크라는 개념이 맡아서 키우고 일을 맡길 창작자가 필요한 건데, 지금 시장의 풀이 그렇게 넓은 것도 아니고, 내가 그쪽에 인맥이 넓은 것도 아니라서 말이야.”
사실 재석 형도 원래 하던 일을 그만둔 이후 재우의 보호자 겸 도우미로 소일이나 하면서 지내고 있지만, 나름 사업을 벌일 속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제 20대 후반에 서른이 목전인데 이렇게 자리만 뭉개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든 좋은 기회를 찾아보려고 하던 차에 내가 언급한 MCN이라는 개념이 딱 와닿은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가장 큰 변수는 시장 자체가 너무나 불투명하며, 이 사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재풀이라는 것이 자신의 능력 밖에 있다는 것.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충분히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기도 했다.
“그럼 데려올 사람들이 충분히 확보되면 괜찮다는 말이죠?”
“응?”
“잠깐 이것 좀 봐주세요.”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미리 생각해 두었던 너튜브 채널을 검색해 틀고 재석 형에게 넘겼다.
“이게 뭐……. 오.”
화면 속에서는 여자 보컬 한 명이 만인의 노래방 애창곡, ‘잔인한 여자’를 부르고 있었다.
“이야…….”
굉장히 깔끔한 고음과 매끄러운 끝음 처리가 인상적이었는데, 정말 프로라고 말해도 믿을 정도의 실력이었다.
“이 정도면 조회 수는……. 응? 500도 안 되잖아?”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화면을 내리다가 이런 실력자의 영상이 조회 수 1,000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당황하며 고개를 들었다.
“이분 말고도……, 이것도 봐 주세요.”
이번에는 한 남자 보컬의 영상을 틀어 보여 주었다.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데, 편곡도 수준급이고 연주와 노래의 조화가 매우 아름다웠다.
“이, 이 사람도 조회 수 300? 이게 맞아?”
“형이 봐도 좀 그렇죠?”
“와……. 너튜브 시장이 작기는 작구나.”
“그게 아니죠.”
나는 재석 형과 눈을 마주쳤다.
사람이 이렇다.
하나를 보고도 의견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니 말이다.
누군가는 시장이 작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안목이 떨어지는 너튜브 이용자들에 탄식을 뱉을 것이다.
내 생각은 다르다.
“아직 제대로 된 매니지먼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원석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거예요.”
나는 소매를 걷어 붙이고 주워 담아야 할 금덩이들이 사방에 넘쳐난다는 사실을 어필했다.
그렇지 않은가?
이렇게 잘 부르는 사람들이 고작해야 조회 수 1,000 아래에, 구독자 수는 그래 봤자 100명 언저리다.
이 말은 잘 포장해서 팔 상품이 충분히 시장 안에 있다는 뜻이 아닌가?
꿀꺽.
재석 형은 멍하니 나를 보고 있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말했다.
“오케이. 좋아. 소매 걷어 붙이고 주워 담아야 할 금덩이들이 널려 있다는 사실은 잘 알았어. 그런데 루치 네가 이 사람들을 연결해 줄 수 있다는 거야?”
재석 형이 중요한 점을 잘 짚었다.
매니지먼트가 필요한 콘텐츠 제작자들이 많다는 사실은 적은 조회 수를 얻고 있는 실력자들을 보여 주는 것으로 충분히 증명이 되었다.
하나 그것과는 별개로 그들을 끌어들일 수 있느냐는 문제가 남아 있다.
하지만 걱정은 없다.
“확실히 데려올 수 있다고는 장담 못 하지만, 연결은 시켜 드릴 수 있죠.”
“응?”
나는 웃으며 말했다.
“누구부터 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