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34
33화
“루치 몫이요?”
“네. 계약을 중계해 준 것도 그렇고, 이렇게 도와줬는데 루치도 뭔가 챙겨 가는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요.”
“아하…….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실은…….”
갑작스러운 다래 누나의 말에 재석 형이 천천히 설명으로 답했다.
다중 채널 네트워크 사업의 초안을 제시한 것이 나이며, 여러 사람들을 소개해 주고 자문 행위로 해석될 수 있는 조언들을 지속적으로 해 준다는 조건하에 주식을 일정 부분 양도받기로 한 것.
그리고 스카우트와 컨설팅 도움 이외에도 아티스트로서 다래 누나처럼 재석 형의 MCN에 소속되어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 등.
내 몫을 챙겨 달라는 그녀의 요구에 대한 답변으로는 충분했다.
“아하…….”
“그래도 다래 씨가 주문하시는 바가 있으니, 루치의 공적에 대한 평가를 조금 더 후하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우로 번질 수 있도록요.”
“아, 고맙습니다.”
“그럼 계약서 작성하실까요?”
“네.”
“자……, 우선 이것부터…….”
단순히 평가가 높아졌다, 주식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 등의 이득만은 아니다.
‘영향력이 생각보다 더 올라가겠는데?’
첫 영입 대상부터 내게 친근함을 대놓고 표시하고, 그런 그녀의 자세를 사업주가 긍정했다.
이것은 앞으로 이어질 사업에서 내 중요도가 그만큼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쁘면서도 조금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날로 먹기에는 너무 큰 걸 받아 버렸네……. 이거 열심히 해야겠는데.’
“앗, 거기 말고 바로 밑에 서명하셔야…….”
“헛? 한 장 더 있나요?”
“잠시만요. 금방 복사해 오겠습니다.”
그렇게 그날의 회담은 계약서 한 장, 아이스티 한 잔, 감동받은 내 마음 한 줌을 남기고 끝이 났다.
매우 성공적인 마무리였고, 다래 누나와 재석 형이 마음을 곱게 써 준 덕에 나 역시 충분한 이득을 볼 수 있었다.
* * *
‘이렇게 잘 풀릴 줄은 몰랐는데…….’
생각한 것보다 더 일이 잘 풀렸다.
너무 잘 풀렸다.
요 며칠 사이 다래 누나를 필두로 한 세 명의 음악 너튜버를 재석 형이 설립한 다중 채널 네트워크, 채널링에 영입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다래 누나 다음으로 채널링과 계약한 내 지인. 동우 형도 직전의 사례와 같이 계약을 진행할 때 나에 대한 보상을 언급해 주었고, 나는 그 공을 인정받아 채널링의 주식을 15퍼센트나 양도받을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나를 존중해 주고 위해 준다는 것이 참 기뻤다.
“이 사업 시작하려면 인력이 가장 중요한데, 첫 영입 아티스트들이 너를 그렇게 높게 평가한다면 그게 맞는 거겠지. 앞으로도 많이 도와줘.”
사실 계약을 볼모로 잡고 지인인 나를 챙겨 주려는 다래 누나나 동우 형이 고까울 수도 있었을 텐데, 재석 형은 그게 정당한 지출이라는 듯, 쿨하게 내 공로를 인정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 편한 방향으로 모든 것들이 맞물려 잘도 굴러갔다.
……
역시 나의 치명적인 매력 탓인가?
“야, 뭐 해?”
“응?”
그때, 라희가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11번부터 15번까지 무대 뒤 대기실로 오라고 했어.”
“아. 가자, 가자.”
나는 상념에서 빠져나와 정신을 차리고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계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후 시간이 꽤 지났고, 우리는 마침내 결전을 목전에 두고 있다.
“고, 공연은 해 봤어도 이런 대회 같은 건 처음인데…….”
“나도.”
청소년 대상 밴드 경연 대회.
우리는 대회가 펼쳐지는 퇴계 아트센터에 와 있다.
“나는 무용 대회 같은 거 많이 나가 봤어. 긴장만 안 하면 돼.”
“맞지. 나도 중학교 때부터 성악 콩쿠르 같은 곳 많이 가 봤는데, 잘해야겠다는 마음가짐보다는 평소 하던 대로 하고 나오겠다는 생각으로 연주하는 게 속 편하고 좋더라.”
벌벌 떠는 수현과 재우를 라희와 함께 안심시켰다.
실용음악 전공에도 대회나 경연 참여 기회는 꽤나 있을 텐데 참가해 본 적 없는 수현과 재우가 더 신기했다.
“몸에서 힘 쭉 빼고, 여기가 우리 연습실이라고 생각하면서 좀 풀고 있어.”
“간장 안 했음.”
“긴장이겠지.”
띠롱, 디로롱…….
입으로는 자신이 태연하다며 허세를 부리지만, 왼손으로 연신 지판을 짚으며 기타 줄을 딩딩 울려 대는 것이 분명 긴장감이 극도로 올라온 상태다.
‘긴장 좀 풀어 줄까?’
우리 순서는 14번.
무대에서는 아직 9번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으니 시간은 충분히 남아 있다.
다른 밴드 학생들도 제각기 떠들고 있겠다, 이상한 짓 조금 한다고 해서 이목을 끌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자리에 앉은 채로 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내 손에 들고, G 코드를 잡아 살짝 손가락 끝으로 긁었다.
드르르릉…….
그러자 소리에 반응한 재우가 하던 손장난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뭐임?”
나는 녀석의 말에 답하지 않고, 바레 코드를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을 살짝 풀어 뮤트 소리를 만들어 리듬을 맞췄다.
드륵, 드륵, 드륵, 득득득! 드륵, 드륵, 드륵, 득득득…….
나는 갑작스러운 연주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재우에게 말했다.
“들어와.”
멈칫!
재우는 짧디짧은 내 말을 듣고 잠깐 멈칫하더니 곧 그 의미를 깨달은 듯 씩 웃고는 기타를 움켜쥐었다.
‘긴장은 음악으로 풀어야지. 연주자잖아?’
이 친구들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한 극약 처방.
바로 ‘잼’이다.
잼이란 밴드의 즉흥 합주.
재즈 밴드를 하는 뮤지션들이 공연을 하기 전에 서로 코드 진행을 대충 들어가며 호흡을 맞춰 연주하던 것.
보통 작곡을 하기 위한 영감을 주기도 하고, 합주 전의 워밍업으로 진행하기도 하며, 그냥 즐기기 위해 하기도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힙합 식으로 말하자면 밴드 버전 프리스타일인 것이다.
디이이잉! 띠리링, 디이이잉…….
G로 시작해 캐논 코드를 쭉 따라가는 내 반주에 맞춰 재우가 즉흥 멜로디를 입히기 시작했다.
조금은 재즈스럽기도 하고, 끈적끈적한 흐름이다.
재우의 연주가 두 마디를 돌고, 나는 수현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수현, 가만히 있을 거야? 견적 다 나왔을 텐데?”
“앗……. 나, 나도?”
“당연하지!”
“으, 응…….”
그러자 수현이도 자신의 베이스를 들어 올리며 천천히 박자를 맞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리고…….
둥, 두둥, 두 두루룽 둥.
“딴, 따단, 단단단…….”
수현이가 낮은 목소리로 리듬을 맞춰 흥얼거리고, 조심조심 부드러운 핑거 피킹이 이어진다.
그녀가 평소에 좋아하는 강하고 경쾌한 연주가 아니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두 기타의 사운드를 받쳐 주는 베이스 소리가 울렸다.
그때.
두구두구, 탁! 투둑! 탁! 탁!
딱딱 맞아떨어지는 리듬이 소리의 근간을 잡아 들어간다.
원래였으면 잼의 시작을 맞추며 먼저 나섰어야 했을 드럼, 아니…….
“오, 의자로 그게 돼?”
“아하하! 되네, 이게?”
의자 비트 소리다.
다가각! 투둑! 탁! 탁! 타닥!
등받이가 널따란 나무 의자에 거꾸로 앉아 양팔을 옆으로 둘러 두드리는 라희.
드럼도 아니고, 하다못해 흔한 퍼커션 악기도 아닌 의자를 뚱땅뚱땅 휘둘러 때리고 있는데 그 소리가 꽤 명쾌하고 시원해서 듣는 맛이 있었다.
“좋다!”
좌아앙! 좌좌좡! 좡!
나도 흥이 진하게 올라 기타 줄을 후렸다.
밑에서 맞춰 주는 리듬 기타 역할이지만, 주법도 바꿔 보고 내 맘대로 박자도 꼬면서 멤버들이 각자 실력을 다해 따라오도록 만든다.
디이잉! 지지지지지지!
이에 재우가 속주로 맞불을 놓고, 소리가 더욱 복잡해진다.
물론 베이스와 드럼은 굳건하게 서서 서로의 연주가 어긋나는 것을 단단히 막아 줬다.
3분 정도 우리는 계속해서 합을 맞췄고, 얼마간 손을 풀며 적당히 긴장이 사라졌다 싶을 때 마무리했다.
“훠우!”
“시원하네!”
흥분을 가라앉히고 열이 화닥화닥 오르려는 손끝을 문질러 진정시켰다.
수현이와 재우도 숨을 내쉬면서 자리에 앉아 쉬는데, 아마 금방까지 그들을 찍어 누르던 긴장감은 꽤 줄었을 것 같았다.
“이제 안 떨리지?”
“원래 안 떨었음.”
“허. 그래.”
“진짜임.”
“아, 알았다고.”
사실 아까처럼 긴장한 상태로 무대에 오른다고 해도 연주를 망칠 것이라는 안 좋은 확신 같은 건 없지만, 기왕이면 안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올라가는 것이 훨씬 편하고 좋을 것…….
“아, 대기실 지들만 쓰나.”
그때 내 귀를 울리는 누군가의 목소리.
“큭큭큭큭.”
“야, 듣겠다.”
“들으라고 해. 더럽게 시끄럽네.”
그 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을 본능적으로 쫓아 쳐다본 후, 나는 아연실색했다.
“뭘 봐.”
한 일행이 우리에 대한 비난을 쏟아 내며 나를 향해 눈을 부라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지, 저건?’
우리 멤버들을 보며 지었던 미소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쟤네 하는 거 보고 조금 시끄럽게 굴어도 되겠다고 생각한 건데?’
오히려 우리보다 더욱 시끄러웠던, 우리가 즉흥 합주를 시작하기 전부터 자기들 악기를 꺼내 놓고 가장 시끄럽게 놀고 있던 놈들이기 때문이다.
저 녀석들이 시끌시끌 떠들고 있기에 우리도 작은 소리로 즐기는 것 정도는 큰 민폐가 되지 않겠다 싶어 놀아 봤는데 그들이 앞장서서 지적을 날리다니.
어이가 없을 노릇이다.
‘흠…….’
나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그냥 받아 주고 있으면 경연 내내 떠오를 것 같은데…….’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벅저벅…….
“어디 학교 애들인지는 모르겠는데 남들 다 쉬는 곳에서…….”
저벅저벅.
“야, 야……. 성주야…….”
“왜? 들으라고 하라니까?”
저벅.
“야…….”
“왜……. 어, 어?”
나는 시끄럽게 시비를 걸던 놈들의 앞에 허리를 쭉 편 자세로 서서 내려다보았다.
처음에는 당당한 모습으로 계속해서 지껄이던 놈들이 갑자기 조용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윽고 그들의 앞에 다다랐을 때.
“멀어서 잘 안 들렸는데, 뭐라고?”
사방이 적막에 휩싸였다.
* * *
“오오, 김루치. 오오오.”
“아, 그만해.”
“막 안 들리는데! 뭐라고! 그러니까 바짝 쫄아서 막 눈 깔고 막! 오오오!”
“그만, 그만.”
라희가 내 뒤에서 호들갑을 떨고,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그것을 무시한다.
누가 봐도 놀리는 투였기에 반응을 안 하는 쪽이 더 빨리 끝날 것 같았다.
“그냥 참지 그랬어…….”
“그러면 우리 대기실 나가기 전까지 계속 시비 걸었을걸? 괜히 참아 주면서 걔네 기는 살려 주고 우리는 불편하게 있을 필요 없지. 굳이 그런 소리 계속 듣고 싶지도 않았고.”
애들이란 원래 그렇다.
자신을 과시하는 법을 모르니 괜히 다른 사람을 누르는 방식으로 당당함을 내세우려고도 하고, 돌이켜 생각하면 참 보잘것없는 힘의 논리란 것을 맹신하기도 한다.
아마 190cm 살짝 안 되는 키에 100kg에서 3kg 모자라는 무게를 자랑하는 내가 눈앞까지 터벅터벅 걸어가 깔아 보니 괜히 겁이 났을 것이다.
“크으……. 역시 밴드 리더야. 멋져, 멋져.”
계속해서 라희 녀석이 놀리듯 추켜세우지만 부끄러울 뿐이었다.
‘어린애들을 덩치로 눌러 버린 꼴이니……. 그래도 순박한 녀석들이라 다행이야.’
내가 약간 위협적으로 생기기도 했고, 시비를 걸던 녀석들이 지레 겁을 먹고 꼬리를 말아 줬기에 다행이지, 혹여나 싸움이라도 일어났으면 대회는 나가리였다.
일이 잘못 풀렸다면 밴드에 큰 손해를 끼칠 수도 있었을 대처.
앞으로는 참을성과 냉정을 유지하고 더 어른스러운 대처를 찾겠다고 스스로 반성하고 다짐했다.
그 상황에서 내 덩치로 위협해 다툼 자체를 흐지부지한다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를 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14번 무대로 올라갈게요! 15번, 16번은 여기까지 와서 대기해 주세요!”
“가자.”
마침내 우리 차례가 왔다.
“오우오우!”
“화, 화이팅!”
“다 조지고 오자!”
우리는 콜로세움에 들어서는 검투사처럼 각자의 무기를 꽉 움켜쥐고 앞으로 나아갔다.
사전 리허설에서 현장 장비를 모두 만져 보고 최적의 톤을 찾기 위한 수치를 기록해 놓았기에 정비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많다. 사람.’
고작해야 청소년 밴드 대회일 뿐인데 심사 위원석 너머로 관객석이 꽤나 차 있는 것이 어디 공연이라도 나온 기분이다.
끄덕.
저 많은 사람들에게서 감동을 얻어 낼 시간이다.
“핫, 둘, 셋, 둘, 둘, 셋.”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라희가 내 주는 작은 소리의 구령을 따라 연주를 시작했다.
차륵, 차르륵……. 단 다단 단 다다단…….
따뜻한 반주가 크게 흐르고, 그에 편승한다.
“Walk inside the deep of your mind…….(네 마음속 깊은 곳으로 걸어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