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35
34화
“와아아아아!”
“휘익! 휘이익!”
환호성, 휘파람, 손뼉.
객석은 이미 난리가 났다.
‘심사 위원들도 마음에 든 것 같고, 반응 좋네.’
따로 마련된 좌석에서 뭔가를 적고, 고개를 끄덕이고, 함박웃음을 짓는 심사 위원들을 보니 우리의 Don’t be angry가 꽤 괜찮았던 모양이다.
‘미리 힘 좀 빼고 나온 게 신의 한 수였군. 앞으로도 종종 해야겠어. 능률이 나오네.’
우리는 긴장 따위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는 듯, 오히려 연습 때보다 더 완벽한 퍼포먼스를 선보일 수 있었다.
혹여나 실수를 할까 봐 잼을 하고 나오니, 손도 풀리고 긴장도 덩달아 사라져 제 실력을 보이기 좋은 환경이 조성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앞으로도 애들이 긴장을 조금 과하게 한다 싶으면 즉흥 합주로 풀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후우우…….”
이제 두 번째 노래.
야심 차게 준비한 우리의 오리지널, 가을의 향기를 부를 차례다.
천재라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은 작곡가 이상만의 손으로 태어나 우리가 완성한 곡.
‘정확히는 나랑 수현이가 다 했고, 다른 두 놈은 입만 벌리고 앉아서 받아먹었지만…….’
뭐, 편곡 과정 중에 만들어 둔 리프나 리듬을 실연하며 현실성이 있는지 확인해 준 것도 창작에 도움을 줬다면 준 것이니 일단 ‘우리 곡’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둘, 셋, 둘, 둘, 셋, 넷.”
미리 맞춰 두었던 대로 첫 곡이 끝나고 잠깐 숨을 고른 뒤, 라희가 신호를 보낸다.
딱! 딱! 딱! 딱!
이번에는 탬버린이 아닌 드럼 소리를 시작으로 곡이 전개된다.
상만 아저씨의 멜로디 원안에서 한 키 올려 살짝 부드러우면서도 시린 맛이 살아 있는 F 코드로 시작해서 천천히 음계가 흐른다.
F, C, B♭, 다시 F.
지잉, 지이이잉…….
두어 바퀴를 돌아 기타 솔로가 날카롭고도 애달픈 울음을 천천히 죽여 갈 때, 내 노래가 시작되었다.
“함께였던 길인데, 어째서 이제 나 혼자만이…….”
노래의 주요한 테마는 애틋한 이별, 그리고 떠나가는 연인의 안녕을 홀로 기원하는 남자.
그런데 이제 그 주제 의식을 가을의 향기라는 소재로 표현하는 것이다.
“들꽃이 웃고 낙엽이 울고 나는 가만히 서서.”
이 아련함을 표출하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다만 섬세하다.
“이 가을에 쏟아지는……. 단풍잎 비에…….”
끝을 길게 밀어서 빼고, 흐리듯 숨을 줄여 뱉는다.
그저 음정을 부드럽게 연결하고, 잘게 비브라토를 섞어 애절하게 부른 전생의 레드버드와는 다른 럭키데이 버전.
섬세한 보컬 스킬의 첨단을 달리는 곡, 그것이 우리만의 락발라드다.
“그대 미소를 그……, 려……, 요…….”
흐리게 뱉어 퍼뜨리면서도 음정은 정확하게 찍어 낸다.
너무나 편안하고 쉽게 들리겠지만 부르는 나에게는 죽을 맛이다.
순간적으로 접지를 하고, 음정을 관리하고, 박자에서 어긋나는 법이 없도록 떨림을 유지해야 하니까.
복잡한 기교나 발성을 위한 피지컬이 중요한 노래는 아니지만, 다른 의미로 굉장히 어려운 노래다.
그리고 그런 어려운 노래는…….
‘짜릿해!’
보컬로서 느낄 수 있는 쾌감의 정점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날카로우면서도 서글프고, 그 감정을 계속 곱씹게 만드는 중독성 넘치는 후렴이 시작된다.
지금 이 기분을 그대로 가져간다.
관객들도 나와 함께 이 씁쓸한 감성을 마음껏 토해 낼 수 있도록.
“둘이 함께 걸었던 시간들이 다시 흘러가네요!”
치밀하게 계획하고 계산한 그대로 멜로디가 넓게 퍼진다.
이거다.
이것이 내가 원하던 그 한순간이다.
술렁술렁…….
“호오…….”
“멤버들 합도 좋고, 퍼포먼스도…….”
“태양 고등학교 애들이네요.”
“선곡 목록도 잘 가져왔고…….”
관객들은 감동을 만끽하며 팔을 좌우로 흔들고, 심사 위원들은 감탄사를 뱉으며 우리 럭키데이의 지원서를 뒤적인다.
좋은 신호였다.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퍼포먼스를 보여 주는 팀의 이름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그 인적 사항을 확인하는 행동이니, 고득점은 따 놓은 당상일 것이다.
“잘 가요, 잘 가요! 행복하세요! 이렇게 보내 줄게요!”
1절과 첫 후렴이 지나갔다.
반응은 내 예상대로 훌륭했다.
지이잉, 디리리링! 디링, 지이이이잉!
부드럽고 매끄러웠던 리프에서 다소 째지고 거친 느낌의 기타 솔로로 라인이 변화하는데도, 관객들의 반응은 여전히 서정적이고 애틋한 1절의 분위기에서 헤엄치는 듯했다.
아직 곡이 끝나지도 않았건만, 그만큼 여운이 강했다는 뜻이다.
그 말인즉슨.
‘관객들의 감성이 완전히 우리 통제 아래 놓였다.’
조금 과한 액션에 돌입해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의미다.
지이이이잉!
나는 바레 코드를 잡은 상태로 손을 쭉 당겨 올렸다.
그것을 듣고 모두가 호흡을 다잡고 변화에 대비했다.
좌앙! 좌좌좡! 부우우우웅!
아까와 같은 리듬, 아까와 같은 진행.
그리고 한 음, 두 키가 올라간 코드.
“내가 신호를 보낼게.”
“그러면 따라 올라가면서 바로 전조 들어가는 거임?”
“응. 만약 간주에서 아무 신호도 안 보내면 빌드업이 모자란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돼. 그러면 처음 시작했던 코드 그대로 계속 진행.”
“오키.”
“아, 알았어.”
경연에 임하기 전, 미리 준비해 두었던 플랜이다.
“근데 괜히 헷갈리게 그럴 필요가 있어? 전조를 하면 한다, 안 하면 안 한다, 정하고 시작하면 되는 거 아니야?”
“있지. 필요가 있지.”
곡의 조가 중간에 바뀌는 것은 의외로 노래의 분위기를 순간적으로 휙 뒤집어 버린다.
몇 음이 올라가는지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르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 행해지는지에 따라 반전인지 전환인지가 구분되기도 하지만 이 분위기 변화라는 측면에 있어서 그 역할은 명확하다.
그럼 나는 어째서 이 조바꿈 타이밍을 유동적으로 가져가겠다며 복잡하고 헷갈릴 법한 플랜을 세웠는가?
“분위기 유지를 해야 하는가, 풀 액셀 밟고 달려가야 하는가를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할 수가 있잖아? 기회가 되는데 당연히 써먹어야지.”
관객들의 몰입도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라이브 무대.
원하는 만큼, 원하는 대로 청중의 감성을 건드릴 수 있다는 것은 열심히 준비해 정해진 그대로 연주할 뿐인 팀은 갖지 못할 무기일 테니까.
후렴이 아니라 2절 진입 타이밍에 일찍 조바꿈을 해서 관객들을 조금 과하게 고양시켜도 된다.
그런 확신을 얻었으니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게 재밌잖아?”
이런 재미를 놓칠 수는 없으니까.
“낙엽이 떨어져요. 당신도 보고 있나요? 난……. 그대 미소를 그려요…….”
두 키가 올라가 금방보다 조금 더 얇고 날카로운 멜로디가 되었다.
2절은 그저 재진입의 과정으로 설정했다.
그렇기에 딱 4마디로 짧게 보내고, 다시 후렴에 돌입했다.
조금 더 시원한 느낌으로.
“둘이 함께 걸었던 시간들이 다시 흘러가네요!”
찌르는 고음이지만 그 흐름 자체는 잔잔하다.
귀에 잘 스며들고, 입에 달라붙는 중독성에 집중해 만든 멜로디이니 부담스럽지 않게 들릴 것이다.
‘확실히 상만 아저씨가 천재는 천재인 것 같아.’
나는 원곡 멜로디를 만들어 낸 상만 아저씨의 재능에 새삼 감탄하며 소리를 이어 갔다.
“잘 가요, 잘 가요! 행복하세요! 이렇게 보내 줄게요!”
이제 좀 따라 부르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하는 타이밍에 넘실거리는 악기 소리 사이로 사라지는 짧은 후렴.
자, 이제 집중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릴 시간이다.
가을의 향기의 하이라이트는 두 번째 후렴이 지나가고 나오는 브릿지 멜로디.
사람들의 마음을 단숨에 걸어 낚아채는 훅(Hook)을 그렇게 잘 만들어 두고 브릿지가 하이라이트라고 하면 조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곡의 최고음도 브릿지에 있고, 다소 잔잔하게 흐르는 후렴에 비해 훨씬 격정적인 부분이니까.
다만 고음은 고음대로 올려야 하고, 이 노래를 부르는 내내 집중해서 이끌어 오던 섬세한 소리 관리도 유지해야 하니 그 난도가 무지막지하다는 게 흠이긴 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공기를 비축한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이 나를 이끌어 주기를 기다린다.
따, 단!
짧게 끌어 올리듯 노트를 밟아 주는 베이스.
그 소리를 포착하고 모아 두었던 힘을 터뜨린다.
“제발 가지 마요! 라고 외치고 싶어도!”
노래가 위쪽에서 노닌다.
높을 땐 2옥타브 시까지 닿는 고음역대 멜로디가 지속되며 이어진다.
이에 따라 내 집중력도 더더욱 올라간다.
악센트가 중요할 때는 혀를 튕겨 툭 끊어 발음하고, 끝음에서의 비브라토도 최대한 신경 써서 고저를 부담스럽지 않게 맞췄다.
락 음악보다는 발라드에 훨씬 가까운 창법이기에 오히려 더욱 힘들었다.
“떠나가는 그대 모습을 바람에 실어 보낼게요.”
음정이 2옥타브 중반대로 떨어졌다가 문장 끝에서 급작스럽게 올라간다.
마음 같아서는 샤우팅이라도 내지르고 싶지만, 곡의 분위기가 그렇질 않다.
조금은 부드럽게 가성으로 띄워 올려야 한다.
“오 우, 우우우!”
성대 상연의 가장자리를 울려 연약하고 진폭이 좁은 울림을 만든다.
진성 고음역 파트가 쭉 진행되다가 갑자기 가성이 나오니 힘이 탁 풀리는 느낌이 들 것이다.
이렇게 이완이 되었을 때, 마지막 변형 후렴이 청중들의 뒤통수를 갈긴다.
“단 한 번이라도! 돌아보려면 가지 마요!”
진성으로 재차 터뜨리는 고음.
이번에는 그간 유지해 온 뉘앙스를 뒤집는 가사와 함께, 세밀하고 얌전했던 표현을 버리고 그저 감정의 발산에만 집중한다.
당신이 그렇게 가고 싶다면 보내 주겠다.
정말 잡고는 싶지만 어쩔 수 없이 행복을 빌며 보내 주겠다.
사실 나는 당신이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화자의 마음이 흐르고 흘러 터지는 시간이다.
멜로디는 같으나 가사가 다른 후렴이 절절하게 흐른다.
“그대 뒤에서 눈물 감춘 채로 나는 그저 바라만 보네요, 우우…….”
다시 한번 가성 처리로 여운을 남긴다.
지이잉, 지이이잉…….
기타가 뒤를 아주 약한 소리로 받쳐 주며 끝이 다가온다.
그리고 여기서 한 번 더 듣는 이를 위한 선물을 던진다.
“함께였던 길인데, 어째서 이제 나 혼자만이…….”
자라라란……. 두둥! 차르르르르…….
첫 소절을 가져와서 들릴 듯 말 듯 한 반주 위에 살짝 얹어 준다.
그리고 라희가 심벌을 연속적으로 두드려 울리며 마무리.
수미상관이 제대로 나타나는 완결이다.
“후우우우!”
숨을 쭉 내뱉으며 가래가 끼지는 않았는지, 목이 붓지는 않았는지 따위를 점검하며 몸에서 힘을 풀었다.
우리만의 곡을 처음 사람들에게 선보인 무대다.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응 좋네.’
그래도 부담을 가졌던 만큼 결과가 좋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짝짝짝짝짝!
마이크와 스피커의 도움을 빌렸던 우리 노래보다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더 큰 것을 보면 말이다.
“야, 야. 저기 일어나서 손뼉 치는 분도 있어!”
“오졌음.”
“기, 기립 박수라니…….”
열심히 노력해 만든 무대에 대한 보답으로 환호와 박수가 날아든다.
라희는 호들갑을 떨고, 재우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수현이는 마치 자기가 이 선물을 받아도 되는지를 고민하는 아이처럼 좌불안석이다.
“인사나 하자.”
“앗, 그렇지.”
우리는 함께 관중석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박수와 함성이 더더욱 커졌고, 심사 위원들의 평가가 시작되기까지 시간이 꽤 소모되었다.
“우선 우리 럭키데이 팀 칭찬부터 하고 시작해야겠네요.”
제일 왼쪽에 앉은 안경 쓴 심사 위원 아저씨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