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36
35화
“기성곡 하나, 자작곡 하나. 원래 해석이 다양하고 널리 알려져 있는 Don’t be angry와 자신들만의 색으로 당차게 꾸민 이 가을의 향기라는 곡의 조화가 너무 좋았습니다.”
꾸벅.
칭찬으로 시작되는 심사평에 나는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여기 두 번째 곡 가을의 향기의 작곡가란을 보면 이상만, 김루치아노, 진수현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상만 씨는 누구죠?”
안경 쓴 심사 위원 아저씨가 물었고 우선은 마이크를 잡고 있는 내가 대표로 답했다.
“이 노래의 후렴 멜로디 원안을 만들어 주신 분입니다.”
“아하…….”
그러자 심사 위원이 놀란 듯 잠시 입을 벌리고 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면 후렴 멜로디를 제외한 나머지는 루치아노 학생과 수현 학생이 만들었다는 뜻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대단하네요.”
아무래도 자작곡 부분에서 큰 점수를 딴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여기 이상만이라고 명시된 작곡가가 대부분 만들고 우리 학생들은 조금 거든 정도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대단하네요. 아주 자연스럽고 적절한 기술 배치가 인상적인 곡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기성곡이 아닌 자작곡을 들고 온 밴드 중에 가장 좋았다고 생각해요. 밴드가 소화할 수 있는 고난도의 기술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었고, 앞서 부른 Don’t be angry라는 곡과의 조화도…….”
심사 위원의 극찬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멤버 개개인의 연주 실력도 칭찬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겠습니다. 우선 기타리스트의 테크닉이…….”
“베이스 담당 역시 탁월한 그루브와 테크닉으로…….”
“드러머분은 인간 메트로놈이라는 별명이 붙어야 할 정도로 박자가 정확…….”
선곡, 작곡 능력, 연주 실력, 밴드의 화합 등.
거론할 수 있는 대부분의 영역에서 우리는 심사 위원들의 좋은 평가를 이끌어 냈다.
‘칭찬을 안 할 수가 없는 실력들이긴 하지.’
지금까지 무대에 올랐던 팀들 중 우리보다 더 짜임새 좋은 무대를 보여 준 밴드는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특히나 보컬 김루치아노 학생은 밴드를 이끌어 가는 능력이 굉장하시네요. 리듬 기타의 퀄리티는 평범한데, 자연스럽게 따라오도록 조율하면서 노래를 완벽하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이어지는 나에 대한 칭찬.
조금은 낯이 뜨거웠다.
‘원래 하던 일인데 뭐.’
나는 밴드 경험이 있고, 다른 멤버들은 없다.
재우는 솔로 뮤지션을 생각하고 있었고, 수현이는 조금 더 공부를 하다가 밴드를 하려고 했으며, 라희는 아예 아무 생각이 없었으니 경력자는 나뿐인 셈이다.
결국 경험 차이가 있어 애들이 할 줄 모르는 일을 도맡아서 하고 있을 뿐인데 이리 고평가를 받으니 뭔가 간질간질한 느낌이다.
물론 그렇게 밴드 사이의 화합을 이끌어 내고 공연을 조율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나름 능력이고, 내 영역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밴드 안에는 없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야말로 완성된 팀워크. 아주 독보적인 무대였습니다.”
뭐, 어찌 됐건 칭찬은 칭찬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잘 봤다는데 그걸 손을 내둘러 거절할 것도 아니고.
애들 싸움에 끼어들어 양민 학살을 한 것은 아닌가 싶어 갑자기 들이닥친 태풍에 휩쓸린 그들이 조금 안쓰럽기는 해도, 우리 팀 친구들 역시 소중한 미래를 투자하고 있으니 이 경쟁 체계를 탓하라고 해야지.
“럭키데이, 이름 꼭 기억하겠습니다. 평범한 스쿨밴드로만 남지는 않을 것 같아요.”
비교적 젊은 인상의 심사 위원이 밝은 미소와 함께 심사평을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좋은 이야기만 잔뜩 듣고 우리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한 후 무대 뒤로 내려왔다.
“하……. 이거 우승은 확정이겠지?”
“당근.”
“우, 우리만큼 만들어 온 팀은 없었던 것 같아.”
“혹시 모르지. 우리 뒤에 베리로켓 같은 밴드가 있을 수도?”
“와, 언제 적 베리로켓이야.”
“옛날 밴드야? 나는 얼마 전에 처음 들었어!”
우리는 직접 얻어 낸 성과에 만족하며 잡담을 나눴다.
럭키데이가 만든 무대가 최고였다는 둥, 우리 전에는 만족스러운 무대가 없었다는 둥,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둥.
상을 받는다거나 관객들에게 환호를 받아 내는 것 외에도 멤버들의 자신감이 확 오른 것 같아 나름의 목적 달성은 해낸 것 같았다.
“아.”
그때, 내 눈에 우리 뒤를 이어 무대로 오르려는 밴드의 모습이 들어왔다.
‘성주라고 했던가?’
아까 대기실에서 우리에게 열심히 시비를 걸던 그 친구였다.
특히나 제일 공을 들여 우리를 깔아뭉개려던 성주라는 친구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푹 숙이고 앞으로만 가고 있었다.
그 팀의 다른 멤버들도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 나와 마주친 게 불편한 건지 그냥 긴장을 한 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아마 우리한테 시비를 걸면서 자기들 긴장을 풀려고 했던 것 같은데…….’
혹은 자신들은 긴장을 풀고 뜬금없는 시비에 휘말린 우리에게는 부담감을 심어 주려는 요량이었겠지.
하지만 되려 앞 순서인 우리 공연을 보고 자기들이 주눅 든 상태가 되어 있으니 우스운 모습이다.
“안됐네.”
움찔!
걸어가면서 혼자 중얼거리니 성주라는 놈이 흠칫 어깨를 떠는 것이 보였다.
아마 부담이 백 배는 늘지 않았을까 싶었다.
피식.
나는 그 꼴을 보며 비웃음을 남겨 주고 우리 팀 멤버들을 이끌어 백스테이지를 빠져나갔다.
“자, 고생들 했어. 음료수 하나씩 사서 잠깐 쉬고 있자. 결과 발표까지 시간이 꽤 걸릴 거야.”
우리는 대회가 한창인 아트센터 메인홀에 나와 의자에 널브러졌다.
노래 두 곡을 부르고 이렇게 진이 빠지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만큼 집중해서 최선을 다했다는 뜻이다.
“난 마키아토!”
“나는 아이스티…….”
“나도.”
“뭐야, 내가 사는 거야?”
“네가 리더잖아?”
“언제부터?”
당연한 듯 메뉴를 고르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 멤버들이 그리 밉지 않게 느껴졌다.
사 달라는 거지, 이건.
“에휴……. 마키아토 하나 아이스티 둘. 오케이.”
“오오, 루치 짱짱!”
라희는 캐러멜 마키아토, 재우와 수현은 아이스티, 나는 유자차.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넘겨 계산하고, 건조 오징어가 되어 가는 친구들에게 각자 고른 음료들을 넘겼다.
“쌩유!”
“잘 먹겠음.”
“도, 돈은…….”
“됐어. 내가 사는 거야.”
“고마워…….”
모두에게 사 온 음료와 함께 쿠키 하나씩을 넘기고 나도 자리를 잡아 앉았다.
얼음이 들어가 시원한 유자차로 달궈졌던 성대를 식히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급하게 추진한 감이 없잖이 있긴 했지만, 일단 대회는 잘 마무리된 것 같고……. 이제 슬슬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야 할 것 같은데…….’
예정에 없던 청소년 대상 밴드 대회.
김하선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참여하게 되었고, 나름 손발을 잘 맞춰 충실히 준비해 좋은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아마 결과도 좋을 것이 분명했다.
‘EP를 낸다거나, 버스킹을 조금 크게 한다거나, 아니면 공연 꼽사리를 들어가도 괜찮을 거야. EP는 돈이 좀 들 테니 조금 미룬다고 치면 남은 건 공연인데…….’
나는 대회 이후 우리 럭키데이가 나아갈 방향성을 고민했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할 수 있는 것도 많다.
원래였다면 연습과 합주를 반복하며 호흡을 완전히 맞추고 실력을 끌어올린 후 실전에 나서고자 했을 텐데, 이번 대회 참여로 확실히 깨달았다.
“너희 하고 싶은 거 다 해.”
“응?”
“뭔 솔.”
“아니야.”
이 녀석들이라면 그런 긴 준비 기간 따위는 필요 없다는 것을 말이다.
‘천재가 왜 천재겠냐. 쯧.’
부족한 경험을 재능으로 메울 수 있는 친구들이다.
애초에 일반적인 영역에서 접근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학생들이라 선입견을 가졌는데……. 더 적극적이고 과감하게 해 볼 필요도 있겠어.’
아무래도 보컬 트레이너였던 전생의 경력 탓에 일반적인 학생들을 대하듯 이 친구들을 대했나 보다.
그러나 재우, 수현, 라희 세 사람은 성장할 시간 따위는 필요 없는 진짜배기 천재들이다.
무슨 실전을 통해 성장하는 만화 주인공처럼, 어느 순간 보면 이들 역시 금방금방 훌쩍 자라 있었다.
그러니까 급하게 일정을 잡아 도전을 강요한다고 해도 이들은 짧은 연습과 실전 경험을 통해 든든하게 성장해 역경을 이겨 낼 수 있다는 말이다.
“얘들아.”
“응?”
“왜?”
“이응.”
“이거 끝나면 버스킹이나 갈까? 대관 공연도 좋고.”
“버스킹 좋지! 난 찬성!”
“버, 버스킹…….”
“난 상관없음.”
나는 조용히 쉬고 있는 애들에게 물었다.
버스킹을 보고 음악을 시작해서 그런지 거리 공연에 환장하는 라희가 가장 적극적으로 답했고, 수현이와 재우 역시 조용하게 긍정을 표했다.
“오케이. 그러면 나중에 장소랑 플레이 리스트 같은 건 다 같이 준비해 보자.”
“예압!”
“이응.”
대충 하루 쓸 만한 장비쯤은 학교에서 대여할 수도 있고, 아니면 지난번에 연을 맺었던 스트릿뮤지커 아저씨들에게 빌려도 된다.
재석 형에게 촬영을 부탁하고, 장소 선별 도움을 받으면 버스킹 같은 행사도 훌륭하게 해낼 수 있으리라.
이제 막 시작한 럭키데이 너튜브 채널에 올릴 콘텐츠로도 아주 좋고…….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영상 올라갈 예정이라고 했는데……. 처음부터 좋은 반응을 기대하는 건 욕심이겠지?’
생각해 보니 이번 대회 참여와 럭키데이 채널 본격 스타트가 겹친다.
재석 형이 어련히 잘하겠지만, 신경이 쓰였다.
“야, 야. 이따가 우리 채널…….”
“청소년 밴드 경연 참가자 여러분은 아트홀로 모여 주세요!”
애들에게 행사가 다 끝나면 채널 모니터링이라도 같이하지 않겠냐며 제안하려던 그때, 대회 진행 스태프가 참가자들을 불러 모으는 소리가 들렸다.
“앗. 이런. 가자. 상 받으러.”
“벌써 시상식임?”
“피곤해…….”
“그럼 라희는 여깄어. 아빠는 갈 거야.”
“업어 줘!”
“너의 굳건한 두 다리를 믿어.”
“쳇! 그럼 수현이!”
“힉! 라, 라희야……. 무거워…….”
우리는 노닥거리며 대회가 진행되던, 그리고 이제 곧 시상식이 시작될 아트홀 무대 앞에 모였다.
곧 소란스럽던 실내에 정숙이 요구되었고, 결과가 발표되었다.
“동상, 화온 예술고등학교 밴드. 파란 식탁보.”
짝짝짝짝짝!
“파란 식탁보는 단단한 사운드와 신나는 리듬을 마음껏 휘두르며 뜨거운 무대를 선보임으로 심사 위원들 및 관객들에게 그 열정을…….”
시상 순서는 동상, 은상, 금상, 대상 순.
수상자를 발표하고 요약된 심사평을 간략하게 들려주는 식이다.
“은상, 형성 고등학교 밴드 동아리. 어울림.”
짝짝짝짝!
수상자가 한 팀씩 올라가면 관객들과 참가자들의 박수가 쏟아진다.
솔직히 별로 긴장이 되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가 대상을 받을 것이 너무나 당연했으니까.
“금상, 강남 예술고등학교 밴드. SY.”
짝짝짝짝짝!
이제 동상, 은상, 금상까지 모두 호명되었다.
남은 것은 우리가 차지할 대상뿐.
나는 잠시 후 있을 표창을 기다리며 금상을 받고 시상자와 악수를 나누는 학생을 지켜보았다.
찌릿!
그런데 상을 받는 여학생이 별안간 날 째려보는 것이 느껴졌다.
‘뭐지?’
나는 혹시나 연이 있는 사람인가 싶어 그 얼굴을 자세히 살폈고, 곧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아, 걔구나.’
스코프의 선우 형에게 첫 피드백을 받던 날, 만난 적이 있다.
세영이라고 했던가?
실용음악 전공자라고 성악 쪽에서 넘어온 나를 꽤나 무시하던 친구다.
‘날 왜?’
누군지는 이제 알았다만, 만난 것이 그날 한 번이 전부인데, 나에게 이렇게 적의를 품는 모습이 이해되질 않았다.
“대상!”
그리고 곧, 수상자 목록을 손에 들고 있는 심사 위원이 대상을 호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