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38
37화
“받는 게……. 맞겠지?”
“이응.”
“화, 확실히…….”
“당근! 마이비아 뮤직비디오 감독님이라시잖아!”
효과가 굉장했다.
이창화 감독의 포트폴리오는 노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군침을 흘릴 정도로 매력적인 것이었다.
쌓아 둔 경력이라는 게 그의 실력을 완전히 증명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하한선 정도는 추측할 수 있게 만들어 주니까.
“오케이……. 그러면…….”
멤버들의 의견도 모였겠다, 은근슬쩍 나를 대표로 밀어붙인 애들을 대표해서 내가 말했다.
“찍어 보죠. 뮤직비디오.”
“탁월한 선택입니다!”
모두들 내심 기대하고 있는 모양이고, 나 역시 이것이 훌륭한 기회인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뮤직비디오 촬영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 감독은 자신의 창작욕을 채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순수하게 기뻐했다.
“음. 그럼 계약서 작성부터 하자고. 우선 이것부터…….”
그러자 재석 형이 준비해 두었던 계약서를 꺼내 중간중간 설명을 섞어 가며 계약을 도와주었다.
촬영할 곡은 가을의 향기.
여러 곡 중 하나를 고른다는 듯 말하기는 하지만, 사실상 우리가 찍을 수 있는 유일한 오리지널 곡이다.
‘우리 밴드와 잘 어울릴 몇몇 곡도 다듬어서 들려줘야 하긴 하는데……. 그건 조금 천천히 하자.’
지난 생에 직접 만들어 불렀던 노래들은 많이 있다.
제법 알려진 노래가 하나, 잠깐 좋은 반응을 얻었다가 묻힌 노래가 여럿,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노래가 부지기수.
그중 잘 뒤져 보면 럭키데이가 연주하기에 적절한 곡들이 꽤 있을 것이다.
특히나 몇몇 노래들은 그대로 묻어 두기에는 정말 아쉽기도 하고 말이다.
“이쪽에는 이 감독 서명을, 여기는 채널링 인감을…….”
물론 그것은 나중 일이고, 지금 당장은 우선순위가 더 높은 일에 집중해야지.
우리는 채널링 소속 너튜버로서 계약을 진행했다.
이창화 감독이 먼저 접촉을 해 왔고, 졸업 작품으로 써먹을 것을 고려해 제작비는 이 감독이 학교에서 받아 낼 창작지원금에 채널링이 50%를 보태는 형식이다.
“제작비 지원이 집행된 후 1개월 이내에 촬영. 그리고 완성 이후 1개월 안에 럭키데이의 채널에 오피셜 뮤직비디오로 게시하는 방향으로…….”
대신 콘텐츠 업로드로 수익 창출을 해도 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으며, 촬영의 전체적인 지휘와 기획을 충실히 따라야 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론이다.
우리가 조금 더 이익을 보는 감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나름 윈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 계약도 다 끝났겠다……. 그럼 준비해 둔 아이디어와 콘티를 조금 보여 드리겠습니다.”
“익?”
“응?”
계약서를 모두 살피고 서명까지 끝낸 후, 이 감독은 자신의 태블릿을 어떻게 조작하더니 화면을 띄워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어제 올린 영상을 보고 연락한 다음에 자료까지 모아서 가져왔다고?’
그곳에는 겨우 하루하고도 몇 시간 동안 준비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양의 자료가 있었다.
환하게 웃는 이창화 감독의 얼굴이 그야말로 프로 의식의 화신, 창작욕의 악마처럼 보였다.
“아니, 이미 자료가 다 준비되어 있나요?”
“하하하……. 노래를 듣자마자 너무 꽂혀 버려서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아, 물론 하루 만에 전부 준비한 건 아닙니다. 전부터 아이디어 단계로만 쌓아 뒀던 것들도 있고, 언젠가는 써먹으려는 작정으로 모아 둔 자료도 있죠. 자, 우선 여길 보시면 짧은 드라마 형식의 구성으로…….”
우리는 몇 시간 동안이나 앞으로 찍을 뮤직비디오의 콘셉트며 짤막한 아이디어를 나누었다.
“차라리 예전에 찍으신 V2V의 여섯 발자국처럼 라이브 무대를 보여 주는 방식은…….”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영상에 변형을 조금 주어야…….”
이창화 감독이 꽤나 세세하고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준비해 왔기 때문에 브레인스토밍을 하며 생각의 폭을 넓히면서 대강의 계획을 세우기가 쉬웠다.
결국 우리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당일, 거의 대부분의 촬영 계획을 완성해 버렸다.
* * *
기다리고 기다렸던 계약 다음 주 일요일.
우리는 첫 촬영을 위해 이 감독이 섭외한 골목길에 모였다.
폐업한 슈퍼마켓과 분식집 등이 주르륵 모여 있어 으스스 한 곳이었다.
“야, 야, 야. 나 지금 이거 어때? 후드 떼는 게 낫나? 아니면 덮어쓸까?”
“얼굴 가리려면 아무래도 쓰는 쪽이 낫지 않나?”
“그렇지? 쓰는 게 낫지?”
“응.”
“하……. 그냥 타이거 마스크 쓸까? 챙겨 오긴 했는데.”
“뮤직비디오에까지 타이거 마스크를 등판시키기는 좀 그렇잖아. 호랑이도 좀 쉬어야지. 최대한 그림자 잘 생기게 촬영해 달라고 할게.”
라희가 불안한 듯 칭얼거렸고, 나는 그녀의 기분을 풀어 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가 뭐 10만, 20만 명씩 보는 큰 채널도 아니고, 겨우 이걸로 너희 부모님 눈에 들어가기라도 하겠냐? 걱정하지 마.”
“그치? 그렇겠지?”
“그럼.”
그래도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는 것은 아니기에, 최대한 얼굴을 가리는 방향으로 콘셉트가 정해졌다.
일반 마스크에 후드를 덮어쓰고, 조명을 조절해 얼굴을 최대한 가리는 쪽으로.
미봉책에 불과하지만 오히려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며 이 감독은 흔쾌히 그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다.
“오케이. 좋아. 응. 할 수 있다!”
그래도 라희는 금방 자신감을 되찾았다.
첫 촬영을 끊는 것이 그녀였기에 더욱 불안했는데 다행인 일이다.
‘그래도 멘탈 금방 잡네. 아주 좋아.’
찢어진 청바지, 헐렁한 검정 후드집업, 흰색 해골이 그려진 검은 마스크, 그리고 헤드폰.
콘셉트에 맞게 잘 꾸미고 온 모습이다.
적어도 등장인물의 비주얼만큼은 흠잡을 곳이 없다.
“님, 님. 그거 써도 잘 보임?”
검은색과 회색이 교차되는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재우가 무광 가죽 재킷으로 패션에 포인트를 준 수현에게 묻는다.
살짝 흘러내리려는 선글라스를 밀어 올리며 수현이가 답한다.
“으, 응? 응. 조금 어둡긴 한데 보일 건 다 보여.”
“어? 선글라스! 나도 써 볼래.”
“여기.”
나름 잘들 입고 나온 모습에 내 옷이 너무 평범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
“흠……. 뭔가 포인트를 더 잡을 걸 그랬나?”
“왜? 무난하고 예쁜데.”
“그래요?”
재석 형이 중얼거리는 내게 다가와 용기를 불어넣는다.
평범한 검은 셔츠에 블랙진.
이쯤 되면 누구나 의상 콘셉트는 쉽게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까망까망 하군.”
바로 이 검정이 포인트다.
“근데 흑백으로 시작해서 나중에 컬러로 화면이 확 돌아가는 건데, 차라리 컬러풀한 코디가 낫지 않나요?”
“아니지. 컬러가 쫙 퍼지는 건 이 세상의 색깔이 보이는 거고, 아직 노래를 부르는 화자는 좌절 속에 머물고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오히려 검정 의상을 입은 너희들은…….”
내 의문에 이창화 감독이 쪼르르 달려와 답해 준다.
영상미와 연출이야 내 전공이 아니니 전문가의 의견에 따를 뿐이다.
‘알아서 잘해 주겠지.’
이럴 때는 감독의 실력을 믿는 것이 답이다.
“어, 어? 조명을 거기다 달면 안 되지! 시트 줬잖아!”
잠시 대화라도 하려는 줄 알았던 이 감독이 자신이 불러온 촬영 스태프가 하는 일을 보더니 후다닥 달려갔다.
책임자라는 자리가 으레 그렇듯 아주 바빠 보였다.
“후…….”
“물 마실래?”
“응. 줘.”
나는 괜히 그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한쪽으로 물러나 라희를 다독였다.
각자 한 번씩에 나중에 모여서 함께 한 번. 총합 네 번의 버스킹을 진행해야 하기에 첫 타자가 너무 긴장하면 영상의 완성도가 떨어질 것 같았으니까.
“후……. 잘할 수 있겠지? 이거 하고 바로 청계천으로 가서 전체 샷 찍어야 되는데…….”
영상의 전반적인 콘셉트는 새벽에 각기 다른 곳에서 시작된 음악이 한낮까지 이어져 한곳으로 흘러 만나는 모습을 그려 내는 것이다.
한 편의 짧은 영화, 혹은 드라마 형식으로 그려 내기에 좋은 스토리가 있는 노래이기도 하지만, 요즘 트렌드에 맞춘 깔끔하고 담백한 연출을 하고 싶다는 이 감독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었다.
“이쪽 벽을 등지게 설치하면 될까요?”
“앗, 네, 네. 거기서 조금 더 왼쪽으로 당겨 주세요. 담벼락 그림자가 아주 살짝 덮을 정도로……. 네. 완벽합니다.”
이창화 감독이 자신이 섭외해 온 촬영 스태프들과 함께 준비를 이어 나갔다.
살짝 어두운 골목에 드럼과 카메라, 조명 등의 촬영 장비들을 설치하고, 직접 제작한 전단지와 낙엽 같은 소품들을 주변에 뿌려 두었다.
그러자 금방까지는 솔직히 조금 무섭고 으스스하기만 했던 골목의 분위기가 조금은 쓸쓸하고 허탈한 공간으로 변화했다.
‘저거 날아가면 나중에 회수하는 것도 일이겠는데?’
그런 내 걱정에 답이라도 하듯 스태프 하나가 이 감독에게 말하는 것이 들렸다.
“그물은 저쪽에 달면 되나요?”
“잠깐만! 응! 카메라에 안 잡히게 조금만 띄워서 해 줘!”
“네!”
촬영을 위해 사전 허가며 준비까지 다 했다지만,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다운 법.
미리 그물을 주변에 설치해 두고, 라희 분량 촬영이 끝나면 스태프 한 명이 남아 전부 회수한다고.
“오케이. 라희! 드럼 앞에 앉아 볼래? 앵글을 좀 봐야겠는데.”
“네, 네!”
이 감독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하자 어느새 특유의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온 라희가 드럼 의자 앞으로 호다닥 달려가 앉았다.
이창화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만지며 각도를 보더니, 이리저리 그것을 움직이고는 곧 차에 달려가 카메라 두 개를 더 꺼내 설치했다.
“오케이, 오케이. 이 정도면 될 것 같네요. 조명! 조명!”
그렇게 총 세 대의 카메라가 각기 다른 각도에서 라희를 촬영하겠다고 눈빛을 시퍼렇게 빛내게 되었다.
달달달달달…….
‘이런.’
그때, 라희가 다리를 덜덜덜 떨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카메라에 자신의 모습이 잡히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다시 긴장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 같았다.
‘괜찮……, 괜찮겠지?’
카메라와 마이크, 조명 같은 촬영 장비들이 서서히 주변을 채운다.
촬영 개시가 머지않았다는 뜻이다.
나는 종전보다 더욱 심하게 긴장을 한 듯한 라희를 보며 잠깐 고민했지만, 아까도 빠르게 멘탈을 회복한 만큼 이번에도 그리 신경을 쓸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며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러나 촬영은 시작부터 난항에 들어섰다.
두둥, 두두둥, 틱!
손이 잘못 나가 모서리를 긁어 치면서 림샷도 무엇도 아닌 애매한 소리가 들린다.
“앗! 죄송합니다…….”
“괜찮아! 다시 한번 갈게요!”
두둥, 두두둥, 채앵! 티딕! 데구르르르…….
이번에는 따로 움직여야 할 드럼 스틱이 한곳에 모이더니 서로 부딪히며 바닥에 툭 떨어진다.
“앗…….”
“천천히 가도 됩니다! 아직 시간 많아요!”
긴장한 탓에 실수 연발인 라희였다.
‘긴장도 긴장이고, 후드에 마스크에 걸리적거리는 게 많아서 더 실수하는 것 같은데…….’
이렇게 가면 계속 실수를 만들고 촬영에 드는 시간이 늘어난다.
라희의 분량은 새벽이 가기 전에 끝내야 하는데, 이대로 가면 촬영 자체가 힘들어질 터.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아. 그러면 되겠다.’
그리고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린 나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