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star RAW novel - Chapter 39
38화
스으윽.
나는 말 없이 케이스를 열고 기타를 꺼냈다.
디잉! 디링!
그리고 천천히 소리를 들어 가며 줄을 조율했다.
“갑자기 무슨?”
“너희도 꺼내.”
혼자 촬영에 들어가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긴장감 관리가 안 된다.
그러면 혼자 연주하게 두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아하.”
“그, 그렇구나!”
같이 한다.
드럼 혼자서 카메라 범위 안에서 연주하게 두고, 나머지 밴드 동료들은 시야 밖에서 함께하면 되는 것이다.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선에서 그녀에게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만 인지시키면 긴장감은 금방 풀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같이하면 되는 거지.”
이것이 내가 생각해낸 긴장 대처 솔루션이다.
“너, 너희들…….”
“감동 멘트는 치우고, 빨리 끝내자.”
“사람이 참 무드가 없어.”
쓸데없이 멘트를 던지려는 라희의 말을 끊어 버렸다.
분명 낯 뜨겁고 오글거리는 말들로 시간만 잡아먹을 테니까.
나는 그림자가 지지 않게 조명에서 조금 떨어지되 라희의 눈에는 잘 들어올 곳에 자리를 잡고, 감독님과 눈을 마주친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 신호를 찰떡같이 알아듣고는 촬영을 재개했다.
“다시 가겠습니다. 큐!”
딱! 딱! 딱! 딱!
큐 사인이 울리고, 라희가 박자를 잡아 곡의 시작을 알린다.
두두두두둥! 챙! 두둥…….
곧 라희가 제 박자와 연주 호흡을 찾는 것이 느껴졌다.
마스크와 후드의 그림자 탓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웃고 있었다.
‘잘하네.’
쿠쿵! 짝! 빙그르르르…….
긴장이 완전히 풀린 라희는 전이었으면 절대 하지 못했을 스틱 묘기까지 선보이며 연주를 진심으로 즐겼다.
그리고 곧 단 한 번의 테이크로 오케이를 얻어 낼 수 있었다.
시작하고 나서 몇 번이나 촬영을 멈췄는데, 긴장이 풀린 상태가 되니 너무나 순식간이다.
“이야. 조금 더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되면 오늘 재우까지 촬영해도 되겠는데?”
이창화 감독도 그 속도에 아주 기뻐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 그래도 괜찮아요?”
“응. 수현이랑 루치는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 안 되겠지만, 재우 로케이션 예정지는 저쪽 공터거든. 길어야 십 분 걸리려나?”
“오. 재우, 어때?”
좋은 제안이다.
이렇게 되면 귀찮은 4일 촬영이라는 일정을 조금 단축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일도 수현이와 내가 빠르게 촬영을 마쳐서 이틀 내에 끝낼 수도 있겠는데?’
물론 퀄리티가 유지된다는 한에서 말이다.
“난 좋음.”
그 제안에 재우가 선뜻 동의를 표했고, 이 감독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재우까지 촬영하는 거로 하시죠?”
“오케이. 가자! 상윤아, 장비 챙겨서 기타 로케 어딘지 알지?”
“넵!”
촬영 스태프들 중 뒷정리를 맡은 한 명을 그곳에 남겨 두고 우리는 모두 자리를 옮겼다.
원래였으면 내일 새벽에 찾았을 또 다른 골목으로.
“아까랑 분위기는 비슷하네요? 쓸쓸하고, 애처롭고.”
“바로 이어질 장면이라 최대한 그라데이션처럼 비주얼이 스윽 흐르도록 로케이션을 잡았지. 마음에 들어?”
“엄청요.”
직전에 라희의 촬영 분량을 만들었던 장소와 사뭇 다르면서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딱 닮아 있어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좋아. 잠깐 세팅 좀 하고 있을 테니까, 너희도 준비 필요하면…….”
“너희라뇨.”
디잉, 디리리링! 지지징…….
“재우는 혼자 하면 돼요.”
“오?”
다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촬영 소품들을 제 위치에 뿌려 둔다.
그리고 진행되는 촬영.
재우는 뭐, 멘탈을 잡아 준다거나 도와준다거나 할 것도 없었다.
지이잉! 지지지징! 지잉! 카드득…….
긴장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은 채 자기 연주를 있는 그대로 완벽하게 보여 주는 녀석.
“와……. 뮤직비디오 촬영은 이번이 세 번짼데 저 친구만큼 하는 사람은 처음 보는 것 같아.”
“그러게. 완전 자기 무대네.”
“쉿! 집중.”
“앗, 죄송합니다.”
그 모습을 보며 스태프들이 떠들다가 이 감독에게 지적을 당하는 소리가 들렸다.
‘음. 홀릴 수밖에 없지.’
홀린 듯 감탄사를 토하는 그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면서도, 우리 멤버에 대한 칭찬에 내심 뿌듯해졌다.
저 친구가 우리 밴드 기타리스트다!
이렇게 잘난 놈이다!
하지만 그런 연주 퀄리티에 비해 촬영 시간은 다소 오래 걸렸다.
재우 놈의 성격 탓이었다.
“재우야, 그……. 기타 흔드는 건 좋은데 조금 더 조금 더 절제된 느낌으로 움직일 수는 없을까?”
“엥.”
“왜, 있잖아. 내 속마음을 꽁꽁 감추고 당신을 보내 주겠다는 노래인데, 그렇게 격렬하게 움직이면…….”
“그럼 비브라토 넣는 맛이 안 사는데.”
“아……. 일단 계속 가 보자.”
본인만의 소울이 과하게 충만한 재우 녀석은 감독의 디렉팅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어휴…….”
“쟤 저럴 줄 알았어, 내가.”
“재, 재우야……. 화면에 나와야 하니까…….”
“엥.”
연주에 깊게 몰입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액션인데, 어떻게 조절하고 절제한다는 것인지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하……. 일단 촬영 계속 갑시다.”
이 감독은 이미 며칠 정도 만나서 회의를 진행하며 재우 놈의 마이페이스 성향을 충분히 지켜본 바가 있다.
그렇기에 그는 재우를 납득시켜 마음대로 움직이는 대신, 어떻게든 본인의 역량으로 화면을 살려 보려 노력했다.
“컷, 컷. 좋아요. 상윤아, 저기 2번 카메라 왼쪽 앞으로 조금만 밀어 봐.”
“이렇게요?”
“오케이. 각도는 그대로 두고.”
화면 출력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그때그때 자리를 바꿔 가며 컷을 최대한 많이 만든다.
그러면서 그는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컷을 즉석에서 건져 내고, 그 자리에서 태블릿을 이용해 잘라 붙이며 모양을 맞추었다.
역시, 유명 감독은 유명한 이유가 있다는 듯 끔찍했던 촬영 과정과 달리 결과물은 훌륭했다.
“감독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람이에요.”
“하얗게……. 불태웠어…….”
내 칭찬에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순간 집중해 체력을 모두 소모한 이 감독은 잠시 관자놀이를 부여잡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후편집을 해야겠지만, 이 정도 땄으면 재우 분량은 충분할 것 같아. 안 쓴 소스도 있고.”
“다행이네요. 해가 좀 빨리 뜨는 것 같아서 촬영 내일로 넘어가나 했어요.”
“그럴 순 없지. 재촬영은 느낌도 다르고, 익숙해지면 뉘앙스도 달라지고, 촬영에 임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지거든.”
그는 나름의 철학으로 어려웠던 두 번째 촬영을 깔끔하게 마무리 짓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리고 결국 동이 아득하게 트기 시작하는 위험한 타이밍에 맞추어 촬영을 종료할 수 있었다.
“새벽 감성이 딱 맞게 마무리돼서 다행이야.”
“감독님, 여기 이 컷 좌상단으로 자연광이 살짝 들어오는데 살려 둘까요?”
“오. 광량 조절 버전이랑 원본 둘 가지고 붙여 보자.”
다행히 엉망진창이었던 과정과 달리 이어 붙일 컷들은 쓸 만한 것 같았다.
“그럼 밥부터 먹고, 다음 촬영지로 옮겨 가시죠.”
“식당 위치 알지? 인솔 좀 해 줘.”
“네.”
우리는 다시 짐을 싸고 장소를 옮겼다.
이번에는 촬영지가 아닌 식당으로.
“메뉴, 메뉴!”
“짜장 손!”
“저요!”
“저도.”
“짬뽕!”
“짬뽕 손!”
“볶음밥 돼요?”
“됩니다!”
“짜장 다섯, 짬뽕 하나, 볶음밥 둘! 늦게 오는 사람은 바로 직접 시켜서 먹게 하시고! 사장님!”
창작도 창작이지만 주린 배도 주린 배니 밥은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조연출 역할을 맡고 있는 상윤 형님이 사람들의 메뉴를 듣고 받아 적은 후, 사장님에게 전달했다.
빠르게 식사가 나왔다.
“오, 고기 많다. 대박.”
“많이 먹어. 군만두도 먹고.”
“넹!”
“여기 탕수육도. 사장님! 앞접시 좀 주세요!”
“콜라 시켜도 돼요?”
“시켜, 시켜!”
특히 금방까지 고생했던 라희와 재우는 쏟아지는 군만두와 탕수육의 세례를 기쁘게 맞이했다.
대부분 대학생 내지는 사회인인 촬영 스태프들의 눈에 고등학생인 우리가 잘 챙겨 먹여야 할 대상으로 보였나 보다.
‘여기 맛집이네.’
나 역시 오랜만에 맛보는 중식에 집중해 열심히 칼로리를 쌓았다.
회귀한 후 정신이 없었다가 최근 운동을 다시 시작하며 안 그래도 왕성했던 남고생 특유의 식욕이 폭발하고 있다.
“오늘 이렇게 잔뜩 먹으면 아마 며칠은 단백질 셰이크만 먹어야겠지…….”
“그럼 남길 거임?”
“하지만 그래도 나는 먹는다. 그것이……. 짜장이니까.”
“뭔…….”
입이 즐거운 잠시다.
다음에도 근처에 올 일이 있으면 이 집은 꼭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다음 촬영지는 어디인가요?”
일행 모두가 식사를 거의 마칠 때쯤, 수현이 손을 들고 질문을 던졌다.
“거수는 필요 없어, 수현아…….”
“앗, 미안…….”
“아니, 미안할 것까지야.”
“다음 촬영지. 흐흐흐. 좋은 곳으로 미리 골라 놨지. 루치, 내가 보내 준 사진 있지?”
“아, 네. 그러고 보니 공유를 안 했구나.”
생각해 보니 이 감독과 얘기하며 정했던 세세한 사안들 중 팀원들에게 공유하지 않은 자료가 꽤 있었다.
“음흠……. 메시지에……. 사진이……. 아, 여깄다.”
“우우우! 일방 소통 밴드 리더 물러나라!”
“왜 안 알려 주고 혼자만 앎?”
“미, 미리 말해 주지…….”
“아 그러면 너희 중 하나가 나 대신 프론트맨 해. 누가 할 거야? 라희? 재우? 수현이?”
“너 해. 앞으론 일정 공유 똑바로 하도록.”
“참나.”
결국, 바쁘게 일하는 건 나인데 어쩐지 요구만 늘어나는 기분이다.
천연 마이페이스, 소심쟁이, 음알못과 함께하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니 내 업보를 탓해야겠지만…….
“아, 여기다.”
나는 폰 앨범 앱을 뒤져 사진을 찾아 멤버들에게 보여 주었다.
지도 캡처와 주변 광경 따위였다.
“여기야?”
“사진으로 봐선 모르겠는데…….”
“가서 보면 느낌이 좀 다를 거다.”
답사 때 봤던 공원의 경치는 꽤 훌륭했으니까.
“자, 대충 다 먹었지? 출발하자.”
“넵!”
“잘 먹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이제 모두 각자 밥그릇을 다 비웠겠다, 우리는 슬슬 장비를 챙겨 예정된 촬영지로 향했다.
이번 로케이션은 골목길 같은 곳이 아닌 널따란 공원.
그중에서도 중앙에 있는 낮은 턱의 간이 무대였다.
“와……. 여기 가을에 왔으면 분위기 제대로였겠는데?”
혼자 펄쩍펄쩍 뛰어 무대로 올라가서 분위기를 살피던 라희가 입을 벌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무대 주위로 단풍나무가 주르륵 푸르게도 늘어선 것이, 가을에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그 경치가 끝내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근데 나뭇잎이 너무 파랗지 않아요? 가을 노래인데 저래도 되려나…….”
아직 늦봄인지라 나뭇잎이 푸르르다.
산천초목이 푸르게 푸르게. 생기 넘치는 경관이라 가을의 향기라는 소재를 담아내기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라희의 걱정을 이 감독이 단박에 해소시켜 주었다.
“에헤이. 그건 방법이 다 있지.”
“어떻게요?”
이창화 감독이 의문에 가득 찬 모두의 시선에 씩 웃으며 답했다.
“CG.”
생각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었다.